Druid RAW novel - Chapter 195
0194 성장
“으아아앙!”
이른 아침. 아니, 해가 이제 막 떠오르는 듯한 새벽 시간. 은수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나와 누나가 눈을 번쩍 뜨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배고프다네.”
어린 아기에게도 통하는 내 초능력 덕분에, 누나는 반쯤 비몽사몽한 모습으로 옷을 풀어헤치며 은수에게 젖을 물렸다.
소은이가 아기일 때도 그랬지만 내 초능력 덕분에 육아는 그렇게 힘들지 않아도, 이렇게 주기적으로 밥 달라고 울어대는 것 하나만큼은 힘들었다.
애초에 깨어 있을 때는 미리미리 상태를 확인해서 울기 전에 젖을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었기에, 새벽에 깨우는 것이 제일 힘들 수밖에 없었다.
아침, 점심, 저녁. 심지어 새벽에도 그렇게 우리를 깨워대니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쿠우우우우우…….”
물론,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쿨쿨 자고 있는 소은이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은 듯했다.
내 딸 아니랄까 봐 나와 똑같은 수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소은이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살짝 올라가서 배꼽을 드러내고 있는 윗옷을 내려주고 이불을 덮어준 다음, 어느새 젖을 다 먹였는지 누나가 은수의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윽.”
“울음소리도 그렇고, 우렁차네.”
트림 소리가 아기 치고는 크게 나오는 것에 무심코 감상평을 말했다. 그 소리에 누나가 푸흐흐- 웃으며, 눈을 꿈뻑이는 은수를 침대에 눕혀주고 있었다.
“조금 더 잘래?”
“으응, 난 조금 더 잘래. 수환아, 너는?”
“난 일어난 김에 그냥 있지 뭐.”
나는 다시금 침대로 올라가는 누나를 보며 슬며시 방문을 열고 나섰다.
“……뭐 하냐?”
그리고, 문 앞을 틀어막고 있던 청호 녀석을 밟을뻔했다.
“지키고 있었지 말임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저놈들 말임다.”
청호가 앞발로 슬그머니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개와 고양이, 토끼와 라쿤 등등. 여러 동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은수 보겠다고 저러고 있는 거야?”
“그렇슴다. 도련님 한 번만 보겠다고 귀찮게 구는 검다.”
“어휴.”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젓고 있으니, 옆에 있던 창문으로 무언가가 살짝 보였다가 사라졌다.
“밖에 날아다니는 녀석들도 은수 보겠다고 저러는 거고?”
“그렇슴다.”
“거기, 너희들 이리 와.”
내 말에 동물들이 쪼르르- 몰려왔다. 구석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던 건지, 하늘다람쥐인 하늘이나 바닥에 착 붙어 있는 족제비 같은 녀석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녀석들을 불러 모은 나는 다시금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은수를 바라보았다.
‘아니, 잠든 거 아니었나?’
두 눈을 뜨고 있는 모습에 흠칫했지만, 딱히 이상이 있어서 깨어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레 은수를 안아들고, 동물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이제 동물들에게 보여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자. 우리 둘째, 은수야. 만지면 안 되고, 그냥 거기서 보기만 해.”
조심스레 안아든 나는 동물들에게 은수를 보여주었다. 말 그대로, 보여주기만 했다.
“쬐끄만한 거샤!”
“아가 마이 쪼메나네.”
“쥔님 나도 보여조요!”
동물들은 은수를 보며 행복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그루밍해 주고 싶어 안달 나던 소은이 때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적하며 물어보니, 청호가 대표로 나서듯 대답해 주었다.
“뭐랄까, 도련님은 아가씨랑 차이가 난다고 해야 할 것 같슴다. 사랑스러운 느낌은 똑같긴 하지만, 아가씨는 안달 나게 만든다고 해야 하면 되겠슴다.”
한 마디로 은수도 사랑스럽긴 한데, 소은이가 더 사랑스럽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초능력의 영향인 것 같았다. 소은이가 최상급이라면, 은수는 상급 정도라고 볼 수 있겠지. 물론, 제대로 등급을 측정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최상급인지 상급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은수를 보게 해주니, 동물들은 만족하며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토끼즈처럼 아기는 보호해야 해! 라고 외치며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동물들을 제외한 녀석들이 떠난 것이었다.
토끼즈가 무단 침입하지 못하도록 청호에게 맡긴 나는, 은수를 침대에 다시 눕혀놓고서 집을 나섰다.
이제 막 해가 떠오르는 동물원은 무척 한적했다.
피르르릇, 새들의 지저귐이 울려 퍼지며 산뜻한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그런 동물원을 가볍게 거닐며, 동물원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곳에 심어둔 소나무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은수가 태어난 것에 맞춰 심어둔 것으로, 주변에는 훼손 방지 펜스까지 만들어둔 상태였다.
“……?”
그런데, 그 펜스를 넘어서 내부로 들어간 나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잘 다져두었던 땅이 조금 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자라나려는 잡초들을 뽑고 땅을 다져놨는데, 마치 막 갈아엎어둔 흙처럼 풀어진 것이었다.
누가 들어온 건가 싶었지만, 이내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벌써 뿌리가 이렇게 자랐다고?”
흙더미 사이사이로 보이는 소나무의 뿌리를 보고서, 땅이 풀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벌써부터 땅속으로 깊고 굵게 뿌리를 내린 탓이었다. 뿌리가 퍼지며, 그만큼의 흙을 밀어낸 덕분에 땅이 풀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게다가, 땅이 풀어진 것 때문에 눈치채는 것이 늦었는데, 나뭇가지 같던 묘목도 그 크기가 조금 커져 있었다. 굵기 역시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이것도 내 초능력 영향인가? 엄청 빨리 자랐네.”
호주에서 토끼도 잡아먹는 네펜데스가 자라났던 걸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식물용 영양제 하나를 꺼냈다. 잘 자라고 있지만, 더 잘 자라면 좋은 거지.
묘목이 심어진 흙에 영양제를 팍, 꽂아넣었다. 잠시 바라보고 있으니 바닥에 내린 뿌리가 천천히 영양제 쪽으로 뻗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 착각이겠지만.”
아무리 빠르게 자란다고 해도, 식물이 움직이는 게 눈에 보이긴 힘들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금 집으로 향했다.
소은이와 누나는 여전히 잘 자고 있었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던 은수도 얌전하게 잘 자고 있었다.
“어이구, 배는 또 왜 까고 있어.”
비록 소은이는 또다시 배를 홀라당 드러낸 채로 자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소은이의 옷을 스윽, 내려주고 이불까지 덮어주니 만족스러웠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옷을 내리고 이불까지 덮어주는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은이가 두 눈을 흐리멍덩하게 뜨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우……웅?”
천천히 잠에서 깨는 듯, 눈을 끔뻑이던 소은이는 나를 바라보더니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바뀌었다.
“압빠! 굿모닝!”
“응. 소은이도 굿모닝. 잘 잤어?”
“웅! 잘 자써! 엄마……는 굿나잇!”
소은이는 개운하게 일어났다는 듯, 기지개를 켜더니 누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쿨쿨 자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소은이는 쉬잇-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은수……도 코코낸내.”
요령 좋게 아기침대에 매달려 올라간 소은이는 마찬가지로 잘 자고 있는 은수를 보며 헤실헤실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자기도 동생이 있다며, 은수를 보고 좋아하는 것이 소은이의 일과 중 하나였다. 아니, 일과의 대부분이었다.
유치원 가기 전에, 갔다 온 다음에, 간식을 먹고, 동물과 놀다가, 씻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사실상 하루 종일 은수를 보며 좋아하는 중이었다.
“엄마 일어나기 전에 씻고 기다릴까?”
“은수 쫌만 더 보구!”
“그래.”
아기 침대에 매달린 채 은수를 구경하던 소은이는, 은수가 반사적으로 오물오물 입술을 움직이는 것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고 있으니, 소은이가 천천히 아기 침대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내려온 소은이를 데리고, 누나가 일어나기 전부터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치하고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나서 깔끔하게 변한 소은이는 또다시 아기 침대로 다가갔다.
“깨끗하게 씻었으니까, 은수 만져두 대?”
“음, 얼굴은 만지면 안 돼.”
온몸이 옷으로 감싸인 은수였기에, 소은이는 아쉬워하면서도 은수의 손이 있는 곳을 가볍게 건드렸다.
자고 있는 은수가 무척 아쉬운지, 소은이는 누나가 잠에서 깨고 아침 준비를 마칠 때까지 은수의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만큼, 소은이가 은수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소은이의 사랑까지 받는 덕분인지는 몰라도, 은수는 하루하루 열심히 성장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은수가 성장하는 것만큼 동물원의 중앙에 심어둔 나무 역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라나고 있었다.
팔뚝만 한 길이의 묘목은 심고 나서 약 한 달 가량 흘렀을 때 거진 두 배의 길이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두께 역시 그 이상으로 두꺼워져 있는 상태였다.
“정말 매일매일 자라나는 것 같다니까?”
“그렇지? 나도 아침마다 보는데, 은수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진짜 잘 자란다니까.”
누나와 나는 은수와 나무를 볼 때마다 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일매일 은수와 나무가 자라났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볼이 빵빵해지는 은수, 하루가 다르게 높이 자라며 두꺼워지는 나무. 마치 둘이 서로 엮인 듯 아주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