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94
0193 동생이야!
새순이 올라오고 생명이 충만해지는 봄이 지나고, 어느덧 더위가 찾아왔다.
“누나, 이것도 챙길래?”
“음……. 필요할 거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모르니까 일단 챙길까?”
여름에 접어든 날씨에, 나와 누나는 열심히 땀을 흘리며 커다란 캐리어에 이런저런 짐들을 챙기기 위해 집안을 누비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둘째의 출산 예정일이 이제 머지않았으니,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고 있는 것이었다.
“애기 옷은 뭘로 챙길까?”
“예쁜 거?”
아이가 생겼음을 알게 된 이후부터 하나둘씩 사 모으던 둘째 옷마저 챙겨 넣었다.
하지만 짐은 아무리 싸도 부족한 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안 넣은 거 있나?”
“어……. 그런 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나와 누나는 캐리어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그런데 그렇게 고민하고 있으니, 방문이 스르륵- 열리며 소은이가 들어왔다.
“모해애?”
나와 누나 사이로 파고들며 다리를 붙잡은 소은이는 우리가 짐을 싸는 걸 보며 호기심을 나타냈다.
매번 짐을 싸는 건 여행 가는 상황이었으니, 여행 가는 건가- 싶어 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할 거라서 짐을 싸고 있는 거야.”
“……!”
내 말에 소은이가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입을 헤- 벌리며 누나를 바라보았다. 어찌나 놀랐는지,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멍하니 누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 엄마 마니 아파?”
엄청 놀라, 멍하니 있던 소은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누나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무척 걱정하는 듯한 그 모습에, 누나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소은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엄마가 아파서 가는 게 아니라, 소은이 동생이 조만간 태어날 거라서 그래.”
“동생?”
“응. 엄마 뱃속에 소은이 동생이 있잖아.”
“와! 동생!”
엄마가 아픈 게 아니라, 동생이 태어나기 위함이라는 걸 알게 된 소은이는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뛰어다니다가 이제는 캐리어에 들어가려는 소은이를 붙잡았다.
“지금 바로 가는 게 아니라, 나중에 갈 거야.”
“우웅. 나두 가?”
“소은이도 같이 갈 거야. 동생 보고 싶지?”
“보고 시퍼!”
소은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누나의 부푼 배를 만졌다.
“소은이는 동생 태어나면 잘 돌봐줄 수 있지?”
“웅!”
앙증맞은 두 손을 불끈 쥐어 보이는 소은이의 모습에 나와 누나는 흐뭇한 미소를 참지 못했다.
그런데 주먹을 쥐고 있던 소은이가 갑자기 방을 뛰쳐나가더니 잠시 후에 돌아왔다.
손에는 가장 아끼는 조그마한 토끼 인형 하나를 든 채로 말이다.
“이거, 동생 줄꺼야!”
“그거 소은이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인데?”
“동생이 더 조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이 좋다며, 소은이는 인형을 캐리어에 내려놓았다.
동생을 무척 좋아하는 소은이의 그 모습에, 누나는 한동안 배를 내어주고 있어야 했다.
○ ◑ ● ◐ ○ ◑ ● ◐ ○
여름이 되고, 날이 조금씩 조금씩 더 더워질 때. 드디어 때가 찾아왔다.
“윽……! 수, 수환아.”
뱃속에서 자랄 만큼 자랐다고, 둘째가 이제는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나는 급히 누나를 데리고 산부인과를 찾았다. 이미 예전부터 예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1인실에 들어온 누나는 진통이 싹 사라졌는지, 평온한 얼굴로 소은이와 장난치고 있었다.
“소은아. 소은이는 동생이 남동생일 것 같아? 아니면 여동생일 것 같아?”
“우웅……. 나는 남동생이면 조케써!”
“왜 남동생이면 좋겠어?”
“지여니도 남동생 있대써!”
자기 절친한 친구가 남동생이 있으니, 자신도 남동생을 갖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 모습에 우리는 피식 웃으면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누나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남자아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법적인 부분 때문에 정확히 남자아이입니다- 하고 의사선생님이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파란 옷이라던가 장난감 칼 같은 걸 구해두라며 에둘러 말해준 것이었다.
“그럼 동생한테 누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른 나오라고 해볼까?”
“얼른 나와야대애! 내가 많이 놀아줄 거야!”
소은이는 누나의 배에 볼을 착 붙이고 얼른 나오라며 배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런데, 정말 둘째가 소은이의 부름에 응답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누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웅크렸다.
“으…….”
나는 그 모습에 재빨리 간호사를 호출했다.
소은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이 병원에 다니며, 나름대로 돈을 꽤 많이 쓴 상태였다. 한 마디로 VIP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VIP의 힘인지는 몰라도, 간호사를 호출한 것뿐인데 의사까지 세트로 호다닥 달려왔다.
이후, 분만 준비를 해야 한다며, 누나가 누워 있던 이동식 침대를 끌고 분만실로 향했다.
“압빠, 엄마 오디가?”
“동생이 이제 태어나고 싶어 해서, 준비하러 가는 거야.”
“우웅.”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은이는 동생이 태어나면 뭘 하고 싶은지 혼잣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등등. 6살 어린이가 할만한 생각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소은이가 혼잣말을 하는 것을 엿들으며 시간을 보내니 양가 부모님들이 모두 찾아오셨다. 미리 연락을 해두었기에 빠르게 찾아오신 것이었다.
“아이구, 우리 손주. 할미 왔어요오~!”
찾아오신 네 분의 어르신들은, 나는 본 체도 하지 않고 소은이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너무하네 진짜.
“뭐해? 안 들어가고.”
심지어, 뒤늦게라도 나를 바라본 아빠는 나를 타박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인사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냐?
“뭘?”
“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니 마누라 애 낳는데 혼자 둘 거야? 소은이는 우리가 볼테니까 들어가. 저번에 이야기해 줬잖아.”
아빠가 저번에 이야기해 주었다 말하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소은이가 태어날 때 해주었던 이야기였는데, 내가 태어날 때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진 십몇 년 동안 그걸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들어갈 생각이었기에, 황당하다는 듯이 아빠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지금은 들어가지도 못해.”
“왜?”
“……아빠가 그러니까 욕을 먹었지.”
“아니, 이놈이?”
이번에는 아빠가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 들어가시겠습니다.”
“봐. 다 준비를 하고 부른다고.”
나는 나를 데리러 온 간호사를 따라 이동했다. 뒤에서 소은이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아빠가 어디 가냐고 묻는 것과, 엄마와 어머님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소리를 뒤로하고 간호사를 따라 초록색 방호복 같은 것들을 챙겨 입고 들어가니, 분만 준비가 끝난 누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통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얼굴이 붉어져 있는 데다 땀을 흘리고 있었다.
“많이 아파?”
“으음……. 지금은 괜찮아. 나중엔 모르겠지만.”
부드럽게 웃음 짓는 누나의 모습에, 가볍게 손을 맞잡아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손을 맞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니 누나의 인상이 점점 찌푸려지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윽! 아악!”
처음에는 억눌린 비명에 가까웠지만, 뒤이어 나오는 비명은 있는 힘껏 내지르는 느낌이었다.
그런 소리를 들었음에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그저 손만 부여잡고 팔을 쓸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를 살아있는 토템이라고도 불리게 만들어주는 초능력 덕분인지는 몰라도, 누나의 그런 고통은 금세 끝이 났다.
“으아아아앙!”
바로,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말이다.
나는 나를 톡톡 두드리는 간호사를 따라 움직여,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에게로 다가갔다.
탯줄을 자르라는 듯이 의료용 가위를 잡게 유도해 주는 의사를 따라 탯줄을 잘라내니,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갓 태어난 아기를 누나의 품에 안겨주었다.
“왕자님이시네요. 축하드려요.”
쭈글쭈글하고, 피처럼 붉은 아기였다. 하지만 누나와 내게는 무척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눈물까지 한 방울 흘리며 기뻐하는 누나와 함께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우웅……. 모, 못생겨써…….”
비록, 잠시 후 소은이가 아직은 쭈글쭈글하고 붉은빛의 피부를 가진 동생을 보며 못생겼다는 평가를 내리긴 했지만 말이다.
태어난 직후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나중에 보면 소은이처럼 귀엽게 변할 거라 알려주니 다시금 동생에 대한 기대를 불태우는 소은이었다.
‘나중에 선의의 거짓말 정도는 가르쳐야겠네…….’
갓 태어난 동생에게 냅다 못생겼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며, 나는 훗날 소은이가 팩폭의 공주님 같은 별명을 얻지 않길 바랐다.
어쨌거나, 그렇게 세상으로 나온 둘째. 나와 누나의 이름을 적절히 섞어서 신은수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우리 가족에 합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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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며칠간 병원에서 신세를 진 다음 돌아온 우리를 반기는 것은 동물들이었다.
동물들은 새로운 가족의 합류에 호기심을 드러내며, 은수가 있는 아기 침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내도 보, 껙!”
“쉿, 도련님 주무심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그 앞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청호에 의해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스펙 좋은 냥아치인 남캣이라 할지라도 청호의 철벽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아직은 약한 아기니까, 나중에 보게 해줄게.”
“약속한 기다? 난제 보여 주야 된데이.”
“나도 보고 싶은 거샤! 동생 애기!”
“후후후, 나는 창틀에서 볼 수 있소만.”
추후 동물들에게 은수를 보여주겠다 약속하고서, 집단으로 린치 당하는 유부를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늦긴 했지만, 따로 하려고 생각해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은이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우리 동물원의 중심부에 위치한 공터로 향했다.
“소은이 것도 심을까?”
“난 갠차나! 이건 은수 꺼야!”
다름이 아니라, 은수가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나무 한 그루를 심기로 했기 때문이다.
소은이도 딱히 질투하거나 하지 않고 있었기에, 나는 소은이와 함께 모종삽으로 흙을 조금 파내고 자그마한 묘목을 심었다.
소나무 묘목이었는데, 갓 태어난 은수의 키와 비슷할 정도로 자그마한 나무였다. 처음에는 이게 그냥 나뭇가지인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나는 은수가 성인이 될 때 즈음이면 커다란 나무로 자라 있을 거라 예상하며, 소은이와 함께 묘목의 주변을 꼼꼼하게 두드렸다.
그리고 하루하루 젖을 먹어가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은수처럼, 소나무 역시 매일매일 열심히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