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0
0019 아니, 이게 뭐야?
국내 최장수 동물 관련 교양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애니멀 팜의 이름이 담긴 이메일은 내 시선을 잡아 끌기 충분했다.
이 좁은 땅덩이에 그렇게 신기하거나 대단하거나 사연 있는 동물들이 그리 많은지, 소재가 끊이지 않고 매주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에서 왜 나를…… 이 아니라, 충분하네.’
잠시 내 초능력에 대해 망각했던 나는 애니멀 팜에서 내게 이메일을 보낸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메일에 담긴 내용은 내 예상과 거의 비슷했다.
“꼭 출연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 편의를 위해서 부산에서 촬영할 거고, 최대한 나한테 맞춰준다고?”
이메일에 담긴 내용은 간단하게 요약해주면 최대한 나한테 맞춰줄테니 출연해달라! 였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었긴 했지만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따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건 담당 PD인지, 작가인지 모를 제작진 중 하나의 연락처였다.
“아, 그런데 보낸지 좀 됐네?”
다만 하나 문제가 있다면, 해당 이메일이 내 메일함에 보관된지 사흘이 넘었다는 것이다.
아니 요즘 누가 이메일 하나하나 확인하고 다니냐고. 업무용 이메일도 아니고.
‘업무용 이메일도 안 본다고 욕 처먹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이메일 보는 건 왜 이렇게 귀찮은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전화번호로는 연락하지 않았지? 나름 지상파라서 내 번호를 찾는 건 쉬웠을 텐데.’
3류 찌라시도 내 번호를 캐서 연락하는 상황인데, 거대 기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상파 방송사가 내 번호로 직접 연락하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금세 유추할 수 있었다.
‘나쁜 인상 심기 싫다는 거겠지. 괜히 척을 졌다가 출연하지 않는다고 하면 자기들만 손해잖아.’
가볍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몇 가지의 논란이 있은 이후로 시청률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를 섭외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방송사든 뭐든, 내가 갑이라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방송에 출연하면 구독자도 꽤 오르겠지?’
내가 방송사를 상대로 갑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갑질이 내 취향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송에 출연함으로써 내 뮤튜브 채널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방송에 출연하게 된다면 내 소개를 해주는 부분이 있을 건데, 거기에 내 뮤튜브 영상을 삽입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 됐다.
그 자료 영상으로 보여줄 영상의 아래에 출처로 내 뮤튜브 채널명을 자막으로 달아둔다면 호기심에라도 찾아볼 사람이 많으리라.
“흐흐……. 그럼 진짜 개꿀이겠는데?”
“뭐가 개꿀이야?”
“왁! 놀래라…….”
갑자기 들려온 누나의 목소리에 나는 순간 화들짝 놀랬다.
실버 버튼을 신청하는 동안 심심했던 것인지 슬그머니 나갔던 누나가 돌아온 탓이었다.
너무 집중하고 있던 탓인지, 누나가 접근하고 있는 것을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다.
“놀랬어? 미안. 근데, 뭐가 개꿀이라는 거야?”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베시시 웃는 누나의 모습에, 놀라서 쿵쾅거리던 심장이 금세 원래의 움직임을 되찾았다.
“아, 누나도 알지? 애니멀 팜.”
“애니멀 팜? 당연히 알지. 예전에는 매주 챙겨 봤는 걸? 요즘에야 잘 안보긴 하는데……. 엄마랑 아빠는 아직도 매주 챙겨보실 거야. 근데, 그건 왜?”
“섭외 요청이 왔거든. 아무래도 내 초능력이 있다보니까, 동물 관련된 프로에서 찾지 않을 수 없나봐.”
자부심 넘친다는 듯이 가슴을 쫙 펼치며 어깨를 으쓱이니, 누나는 마치 아이를 칭찬하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구, 우리 수환이! 대단해요오!”
“악, 애 취급 하지 말라니까!”
“그래도 누나한텐 귀여운 걸?”
마치 짜몽이나 마루의 얼굴을 쓰담듯이 내 양 볼을 잡고 부벼대는 통에, 나는 누나와 잠깐 투닥거릴 수밖에 없었다.
누나나 나나 조만간 30줄에 접근하는데, 아직까지 이런 반응을 보일 수는 없는 거다!
조만간 예비 남편으로서의 위엄을 온 몸에 새겨주리라 마음 먹으며, 애니멀 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아무튼! 애니멀 팜에서 나를 섭외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 연락이라기 보다는 이메일을 보낸 거지만.”
“그게 개꿀이라고 했던 거야?”
“응. 아무래도 애니멀팜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물 관련된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들일 거 아냐? 그럼 내 뮤튜브 채널도 홍보 될 거니까.”
“그건 그렇지. 이런저런 말이 조금 있기는 해도,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잘 챙겨보는 편이니까. 하다못해 뮤튜브에서라도 챙겨 볼 걸?”
누나는 내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누나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내 팔뚝을 콕- 찔렀다.
“출연료는? 얼마나 준데?”
누나의 호기심이 발동한 원인은 출연료였나 보다.
아무래도 연예인들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출연료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겠지.
하지만 나는 누나에게 대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나도 몰라. 이메일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거든. 따로 알려지면 안 되는 거라서 알려주지 않는 걸 수도 있고, 나랑 흥정을 하기 위해서 쓰지 않았을 수도 있고. 뭐, 그런 거겠지.”
“에이…….”
자기가 챙겨보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출연료가 제법 궁금했던 건지, 누나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솔직히, 나도 궁금하긴 했다. 간간히 어떤 뉴스에서나 누가 얼마를 받아서 화제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게 정말인지 무척 궁금했다.
“지금 바로 전화해서 물어볼까?”
“……진짜?”
“못할 건 없지. 어차피 출연할 생각도 있으니까, 이 참에 출연하겠다고 하면서 얼만지 물어보면 되잖아.”
내 말에 누나는 나보다 더 기대하고 있던 건지, 책상에 놓여 있던 내 휴대폰을 건네줬다. 어서 전화하라는 그 압박에 피식 웃으며, 이메일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부드러운 음색의 가수가 부르는 발라드가 컬러링으로 잠깐 울려 퍼졌다.
이 노래 제목이 뭐더라- 생각하던 도중, 컬러링의 음악이 끊기면서 저음의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애니멀 팜 메인 피디 이재형입니다.”
“아, 네. 그, 이메일 보내주셔서 전화드렸거든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요. 지금 전화 가능하신가요?”
“오오! 예, 예!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예!”
내 말에 담당 피디라는 사람은 예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아니, 피디님. 수화기 너머로 당신 찾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요? 피디님, 피디님! 애처롭게 부르는 소리가 당신에겐 들리지 않습니까?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나는 수화기에 자그마하게 들려오는 애처로운 목소리를 무시했다.
“일단, 제가 이메일을 늦게 확인했네요. 아무래도 잘 쓰는 이메일이 아니다보니 확인하는 게 늦었습니다.”
“아유, 아닙니다! 전화를 걸어도 열흘이나 있다가 답신 해주는 사람도 있는데요!”
뭔가 그 열흘이라는 것에 뭔가 쌓인 것이 많은 듯한 느낌의 피디님이었다.
하지만 피디님은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이, 곧바로 내 출연 의사를 묻기 시작했다.
“선생님. 혹시, 저희 프로에 출연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비록 저희가 교양국에 속해 있지만 여타 예능이나 드라마에 비해 시청률이 낮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출연은 저희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선생님께도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피디님은 내 출연이 정말 필요하다는 듯이, 나를 선생님이라 칭하면서까지 애원에 가까운 요청을 했다.
하지만 피디님이 애원을 하든 말든, 내가 출연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는 한 가지였다.
“혹시, 출연료로 얼마나 책정이 됐는지 알 수 있을까?”
“출연료 말씀이십니까? 저희 교양국에서는 간간히 초능력자 분들을 섭외해서, 기준표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서 선생님과 같은 최상급의 능력자 분들은 한 회 출연에 천오백만 원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웬만한 A급 MC들 보다도 높은 출연료입니다!”
‘오…….’
피디님의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누나! 천오백이래!’
곁에서 같이 그 내용을 듣고 있던 누나에게 손짓과 입모양으로 출연료가 1500만 원임을 알려주었다.
당연히 누나는 크게 경악한 듯한 모습을 보이며 입을 헤- 벌렸다.
누나가 카페를 운영할 때, 이런저런 비용을 다 제하고 나서 매달 가져가는 돈이 평균적으로 250~300이었기 때문이다.
“아웁!”
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살짝 넣었다가, 물릴 뻔한 손가락을 급히 빼냈다.
샐죽하게 째려보는 누나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나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흐음…….”
이럴 때 한 번 튕겨주는 것이 있어야 했다. 정해진 기준표가 있으니 더 많이 받기는 힘들지 몰라도, 약간의 서비스를 더 받을 수는 있겠지.
“선생님. 저희가 봐드릴 수 있는 편의는 전부 봐드리겠습니다. 한 번만 출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십쇼!”
약간 고민하는 듯한 소리를 내자마자, 피디님은 다급히 외쳤다. 누가 봐도 안달난 모습은, 스스로를 더 을의 위치로 만드는 행동이었지만 내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 조건만 맞춰주신다면 출연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만 하십쇼!”
“출연하게 된다면, 제 소개가 짤막하게라도 나가겠죠?”
“맞습니다. 국내 최초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능력자인데, 선생님의 소개를 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러면, 그 때 제 뮤튜브 채널의 홍보를 약간만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뭐, 과한 수준이 아니라, 제 영상의 일부를 자료영상으로 내보내면서 출처에 제 채널명을 넣는 정도로요.”
“아이고! 물론입죠! 추가로 방송 후, 저희 뮤튜브 채널에 올라갈 영상에는 선생님의 채널 주소를 고정댓글로 박아두겠습니다!”
피디님은 내 요구가 수용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확인하자마자 안도하더니 높은 텐션으로 기뻐했다.
“그렇게까지 해주신다니, 출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으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선생님, 혹시 촬영이 가능한 날짜가 어떻게 될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무때나 괜찮은데……. 보통, 방송 촬영은 요일이 정해져 있지 않나요?”
나는 예능 같은 프로들은 촬영하는 날짜가 정해져 있음을 떠올리며 되물었다.
“그건 고정적으로 출연하시는 분들이 스케쥴을 맞추기 위해서 되어 있는 겁니다. 선생님께서 나오실 부분을 촬영하는 건 선생님께서 편하신대로 촬영할 수 있습니다!”
주말도 상관은 없지만 원활한 촬영을 위해서 오전에서 낮 시간으로 부탁드린다며, 피디님은 원하는 날짜를 알려달라 했다.
“음…….”
나는 잠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카페 건물의 완공이 다 되지도 않았기에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그것이 방송에 내보내지는 것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내일 부터 주말까지, 편하신 시간을 잡아주세요. 그 사이라면 언제든지 괜찮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피디님은 그렇게 외치더니, 무언가 찾는 듯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웅성거리는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다, 다시금 귓가에 휴대폰을 가져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그럼 모레, 어떠십니까?”
“모레요? 예, 괜찮아요.”
“아, 그리고 저희가 선생님 댁까지 픽업을 해드리는 게 이동하시기 편하시겠죠?”
“그렇게까지 해주신다면 저야 고맙죠.”
나는 내게 베푸는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 남자다. 자기들이 해주겠다는데 뭣하러 거절해?
“그럼 모레, 저희가 선생님 댁까지 모시러 갈테니 이 번호로 주소를 좀 알려주십쇼! 아, 그리고 조금 있다가 저희가 촬영에 관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드릴테니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피디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할 것이 많은지,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소리치며 전화를 끊었다.
그 소리를 같이 듣고 있던 누나와 나는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내 남자친구가 애니멀 팜에 출연할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데.”
“나도 내가 거기에 출연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거든?”
누나와 나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히죽히죽 웃었다.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을 시작으로, 내가 정말 초능력자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