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1
0020 그 수문장의 사연(1)
띵-
누나와 머리를 맞대고 히죽히죽 웃으며 꽁냥거리고 있을 때, 컴퓨터에서 자그마하게 알림음이 들려왔다.
메일함을 열어둔 탓에, 새로운 메일이 왔음을 알려주는 소리였다.
“그 촬영 관련된 내용을 보낸다는 그건가?”
“어서 보자!”
내 말에, 누나는 흥미가 가득한 얼굴로 나를 재촉했다.
메일에는 ‘촬영 전 까지 외부 유출을 자제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하고 짤막한 글과 함께 워드 파일이 하나 첨부되어 있었다.
편집용으로 컴퓨터를 좋은 걸로 사면서, 각종 프로그램까지 사둔 상황이었기에 워드 파일을 여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딱히 대본 같은 건 아니네?”
워드 파일이 열리자마자 가볍게 훑어본 누나는 약간 아쉽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촬영에 관련된 내용이라니, 대본 같은 걸 예상했나보다.
워드 파일에 저장되어 있는 내용은 촬영할 동물에 관한 사연 같은 것이 짤막하게 적혀있을 뿐이었다.
그 사연이라는 것도 자세한 것이 적힌 것은 아니었다.
부산의 어느 아파트 입구에 몇 주 째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수문장마냥 입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를 섭외한 것도, 그 개에게 있을 어떤 사연 같은 것을 알아봐 달라는 거겠지.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그 개의 행동을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알아낼 수 있으니까.
그런 내용 외에는 촬영일 까지는 해당 위치로 사전 답사 같은 행위도 자제 부탁한다고 적혀 있었다.
괜히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가서, 촬영하기도 전에 촬영 아이템을 다 말아먹는 일이 없길 바라는 거겠지.
“근데, 이렇게 보니까 정말 궁금하긴 하네. 아파트 입구를 지키는 개라니?”
내 어깨에 매달리듯 달라붙어, 내용을 읽은 누나는 여전히 얼굴에서 호기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아파트 입구를 지키는 개라고 하면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긴 하지.
“아파트에서 키우는 경비견 같은 건 아닐까? 알고보니 천재견이라서 아파트 입주민들의 얼굴을 다 아는 거지. 입주민이 아니면 으르렁거리면서 경비실을 경유하라고.”
“에이, 그 정도로 똑똑하면 아파트 입구를 지키는 개가 아니라, 천재견 같은 걸로 소개했겠지.”
“그런가?”
아무렴 어때- 하고 해맑게 웃은 누나는 내게 촬영을 다녀오면 꼭! 후기를 들려달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아쉽네. 누나도 같이 갔으면 재미있었을 건데.”
“그러니까…….”
누나는 내 말에 무척 아쉽다는 듯이, 내게 안겨들며 흐느적거렸다.
다름이 아니라, 한동안 누나는 조금 바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건물 공사가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에 인테리어에 관해서 해야 할 것도 있었고, 이런저런 행정절차를 처리해야 했다.
나는 그런 누나의 아쉬움을 덜어줄 생각으로, 누나를 안아들고 침대로 올라갔다.
행복하면 시간이 빠르게 간다고 하던가?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누나와 행복하게 꽁냥거리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순식간에 촬영의 시기가 다가왔다.
그래봐야 사실상 48시간도 아니고, 40시간 정도 지난 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나는 내 휴대폰에 울리는 메시지를 확인하고서, 누나에게 손을 휙휙 흔들었다.
“누나, 갔다 올게.”
“잘 다녀와. 후기는 꼭 알려주고!”
곧 나갈 생각인지, 얼굴에 화장품을 톡톡 바르고 있던 누나는 내 말에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원래라면 가벼운 뽀뽀 정도는 하며 배웅해달라고 징징거렸겠지만, 오늘은 참았다. 이미 누나의 입술이 빨갛게 변한 걸로 봐서는 나가기 전에 다시 씻어야 할 것이 분명했다.
‘처음으로 뮤튜브가 아닌 방송에 나가는 건데, 입술자국이 남은 상태로 찍는 건 좀 그렇지.’
아쉽긴 했어도, 세수를 다시 할 시간도 없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할 수밖에 없었다.
띵- 동-
왈왈왈왈왈!
거실에서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와, 마당에서 들려오는 우리 강아지 군단의 짖음은 피디님이 도착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가요! 너희들은 진정하고!”
바깥을 향해 맹렬하게 짖던 세 녀석. 마루와 짜몽이, 술빵이를 진정시킨 나는 곧바로 대문을 활짝 열었다.
“멈춰!”
대문이 열리자마자 바깥으로 튀어나가려는 짜몽이를 한 방에 제압한 나는, 녀석을 마당으로 밀어넣고 문을 닫았다.
“으오오, 말 한 마디로 웰시코기를 제압하시네요. 웰시코기가 제법 똑똑하긴 해도, 이렇게 말 한 마디로 제압 될 아이들이 아닌데 말이죠.”
문을 닫고 돌아서니, 길쭉한 승합차 두 대가 집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앞쪽의 승합차 앞에 덩치가 조금 후덕한 아저씨 한 명이 웃으며 서 있었다.
저 후덕한 아저씨가 피디님이겠지.
“대화가 통하니까, 오히려 똑똑한 녀석들이 말을 잘 듣더라고요.”
“오,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군요. 아, 이거 신기한 모습을 봐서 인사도 안 했네요. 애니멀 팜 담당 피디, 이재형입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신수환입니다.”
나와 피디님은 가볍게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했다.
정밀 검증을 할 당시, 장일운 대리에게 명함을 주지 못했던 것이 꽤 신경쓰였기에 새로 만든 명함이었다.
대놓고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고 적혀 있고, 최상급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능력 보유자라는 타이틀까지 박아놨다.
아무튼, 그렇게 명함을 주고 받은 나는 피디님과 함께 승합차에 올라탔다.
올라타니 내부에는 기사님 한 분과, 크기가 꽤 큰 상자를 쥐고 있는 여성 한 분만 자리하고 있었다.
‘……?’
뒷차에는 사람이 빡빡하게 들어 차 있더니, 여긴 널널하네.
나에 대한 배려인가, 아니면 아랫사람과 동승하기 싫어하는 피디님인가 고민 됐다. 하지만 이어진 피디님의 언행에 그 오해는 금세 풀렸다.
“선생님. 혹시, 화장 하셨습니까?”
“딱히 하지는 않았어요. 스킨 로션 정도만 바르고 다니는 편이라서요.”
“그러시군요. 그럼, 따로 화장에 대한 거부감이나 알레르기 같은 게 있으신 건 아니시죠?”
“어……. 그렇죠?”
내 대답을 들은 피디님은 곧바로 뒷편에 있는 여성 분에게 손짓했다.
“저희 소속 분장팀 직원입니다. 선생님께 가볍게 화장을 해드릴 건데, 괜찮으실까요?”
“네, 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은 여자나 하는 거다- 라는 생각 따위는 없기도 했거니와, 간간히 누나가 내 얼굴에 자기 화장품 펴 바르는 경우도 있었으니 꺼릴 것은 없었다.
내 수락이 떨어지자 마자, 여성 분이 쥐고 있던 상자가 열렸다. 그 상자는 내부에 온갖 화장품과 화장용품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내가 아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모르는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꾸안꾸 화장 아시죠? 너무 과하게 하지는 않을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눈 좀 감아주시겠어요?”
여성 분은 곧바로 화장품을 내 얼굴에 펴발랐다.
간혹 누나가 하던 것과 달리, 프로의 기운이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을 정도였다.
“다 됐어요. 눈 뜨셔도 돼요.”
눈을 감고, 얼굴에 붓질이 몇 번 슥슥 오간 것이 전부 같은데 벌써 화장이 끝났다고 한다.
약간 미심쩍은 얼굴로, 상자에 달린 거울을 보니 거울 속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내가 있었다.
“오……?”
“이야! 원판이 괜찮아서 그런가, 꾸미시니까 더 잘생겨지셨는데요?”
피디님은 내 얼굴을 슥- 보고서는 칭찬을 남발했다. 어떻게든 나를 칭찬하며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것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적당히 피디님의 감탄에 반응하며, 화장을 한 내 얼굴을 잠시동안 구경하니 차량이 스르륵 멈춰섰다. 신호에 걸린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도착했네요.”
피디님은 승합차의 문을 드르륵- 열어젖히며 차량에서 내렸다.
그를 따라 내리니, 우리보다 먼저 촬영 준비를 하고 있는, 뒷 차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두 대의 카메라와 조명, 오디오 같은 티비에서 본 장비들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모습을 잠시 구경하고 있으니, 피디님이 슥- 다가와서는 가볍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제가 보내드린 파일을 읽으셨으면 아시겠지만, 오늘은 아파트 입구를 지키는 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겁니다. 저희가 제보를 받은 건데, 몇 주 째 이 아파트 입구를 지키고 있다 하더라고요.”
“저는 그 개가 왜 거기에 있는지만 알아내면 되는 건가요?”
“예! 그게 저희가 원하는 겁니다. 일단 저희가 어제 그 개의 행동을 미리 촬영 해두었습니다. 낮 시간 동안에는 아파트 입구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밤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죠.”
한 번 보라며, 피디님은 어제 촬영했다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약간의 편집을 해둔 것인지, 낮 동안 아파트 입구를 지키는 개의 모습이 빠르게 재생 됐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사람이 쉬이 다니지 못하는 곳으로 이동한 탓에 그 이후의 영상은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게 몇 주나 반복되고 있다고요?”
“예. 제보자의 말이나 아파트 경비원 분들께 물어봐도 삼 주 정도는 된 것 같다고들 하시거든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쌀이 찌푸려졌다. 주인을 잃은 건지, 버림 받은 건지는 몰라도 몇 주나 이렇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작은 새나 쥐를 사냥하기도 하고 하다 못해 쓰레기를 뒤져서라도 먹이를 찾아내는 고양이와는 달리, 개들은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지금 영상에 나오고 있는 개의 모습은 꽤나 야위어 있는 모습이었다.
제대로 먹을 것을 먹지 못했던 건지, 앙상하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개들 보다도 말라 있는 것이 여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어떻게든 빨리 해결을 해야겠네요.”
“그렇죠. 인간의 필요로 공격성을 제한당한 개들은 스스로 먹이를 찾는 능력이 부족하니까요.”
“그러면, 바로 촬영하실까요?”
괜히 시간을 끌어봐야 그 누구에게도 좋을 것이 없었으니, 나는 곧바로 촬영을 시작할 것을 요구했다.
피디님 역시 내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건지, 아니면 그냥 일이 빨리 끝날 수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쁘다는 얼굴로 촬영 스태프들을 재촉했다.
안 그래도 분주하던 사람들이 더더욱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내게 카메라와 몇몇 사람들이 다가왔다.
“일단 마이크 좀 차실게요.”
오디오 관련해서 담당하는 직원인지는 몰라도, 한 여성이 불쑥 내 상의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가족이나 누나 이외의 여자가 옷 속으로 손을 넣는 일이 처음이라 순간 놀랐지만, 말 그대로 마이크를 차는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떤 일도 없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뮤튜브 찍으실 때 처럼 해주시면 됩니다. 선생님 뮤튜브 영상을 보니까 잘 찍으셨더라고요. 시선 처리나, 음량도 괜찮고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여 준 나는 곧바로 두 대의 카메라를 대동하고서 수문장 같은 그 녀석이 있다는 아파트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나는 금세 그 녀석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