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2
0021 그 수문장의 사연(2)
내 시야에 들어온 녀석은, 피디님이 보여준 영상에서 본 것과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불과 어제의 영상이었으니 다른 것도 이상하겠지만.
그런데, 녀석은 정말 ‘수문장’처럼 아파트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정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통행하라고 만들어둔 곳을 지키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만, 말이 수문장이지 딱히 사람들을 막거나 하는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기는 것 같은데?’
녀석은 사람들이 문을 통과할 때 마다 잠깐 반응을 하고 있었다. 꼬리가 슬며시 흔들린다던가, 귀가 쫑긋거리는 것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면 동상마냥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거겠지.
“보시다시피, 저 녀석은 지금 약 삼 주째, 저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딱히, 주변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건 아니지만, 억지로 어디론가 옮기려고 하면 크게 저항한다고 하네요.”
“그래요? 지금 보기에는 꽤 순해 보이는데 말이죠.”
“처음엔 사람들도 그래서 쉽게 접근했다고 합니다. 근데 아니었던 거죠. 믹스견처럼 보여서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품종을 알 수는 없지만, 외형만 보면 대형견이잖습니까.”
힘이 장사랍니다- 라고 덧붙이는 피디님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야위어 보이긴 했어도, 대형견 특유의 단단한 몸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끌려가기 싫다고 힘을 좀 주었다면 사람 한둘 끌고 가는 것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거다.
그런 힘을 한 번 겪고 난다면, 괜히 녀석을 강제로 끌고 가겠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도 없었을 거고.
“아파트측에서는 저희가 촬영을 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신고를 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녀석이 어떤 상황에 처할지는 눈에 선하죠.”
“그렇죠…….”
피디님의 말대로였다.
누군가가 구청이든 119든 신고를 해서, 녀석이 유기동물 보호센터로 보내진다면 일정 기간 동안은 보호 되겠지만…….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게 된다면 안락사에 처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생각까지 하게 된 나는 곧바로 녀석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가 아무리 최상급의 초능력자라 하더라도 전국 규모의 유기동물들을 모두 보살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눈 앞에 있는 녀석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저 녀석의 사연을 해결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기도 하지만.
“아앗! 주인님……이 아니네.”
내가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가자, 녀석은 순간 반가운 듯한 모습을 보이며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녀석이 나를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사라졌다.
조금은 시무룩하다는 듯이 처진 귀와, 늘어진 꼬리는 녀석의 기분이 그리 좋지 못함을 대변하는 듯했다.
“여기서 주인을 찾는 거야?”
“오……?! 말이 통해!”
내 물음에, 녀석은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래, 너도 처음이겠지. 말이 통하는 인간은.
수문장마냥 자리를 잡고 앉아, 움직이지 않던 녀석은 나와 대화가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부드럽게 잡았다. 빙글빙글, 계속 돌고 있으니 내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도는 건 그만 하고, 여기에 이렇게 있는 이유가 주인을 찾는 거야?”
“그렇죠! 주인님은 나랑 맨날 산책했거든요! 이 시간쯤?”
“아…….”
나는 녀석의 말에, 작게 탄식했다.
녀석의 말을 듣자니, 녀석이 버림받았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주인에게 버림받았으나, 그 주인을 잊지 못해 주인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매일같이 산책하던 시간까지 기억하며, 산책하기 위해 다니던 곳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다.
‘불쌍한 녀석…….’
나는 녀석의 행동에 무척이나 안쓰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너무나도 섣부른 추측이었다.
“근데, 여기는 주인님 집이 아닌 것 같아요. 완전히 똑같이 생기긴 했는데…… 묘하게 다르달까?”
“여기가 아닌 것 같다고?”
“그런 느낌이예요. 사실, 주인님이랑 놀러갔다가, 주인님이랑 헤어졌거든요. 어떻게 집이랑 비슷한 곳으로 오긴 했는데……. 여긴 아닌가봐요.”
“놀러갔다가 헤어진 거라고?”
“네! 너무 좋아서 뛰어놀다 보니까 주인님이 안 보이는 거 있죠? 주인님이 줄까지 풀어줘서 너무 신나게 놀았더니, 헤헤…….”
“…….”
나는 녀석의 말에 마른세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보니 버림받은 유기견 같은 것이 아니라, 놀 때 화끈하게 노는 탓에 주인을 잃은 실종견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피디님이 슬그머니 다가와 어떻게 된 일인지 묻기 시작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고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따로 유기견인 것은 아니고, 너무 활동적인 녀석이 주인을 잃을 정도로 신나게 놀아재낀 것이 원인임을 알려주었다.
“조금…… 황당한 이유네요.”
“그렇죠. 심지어, 여기도 집이랑 최대한 비슷하게 생긴 곳이라서 찾아온 거라니까요. 아무래도 이 아파트가 브랜드형 아파트잖아요? 전국뿐만 아니라 부산에도 비슷한 아파트들이 몇 개나 있다보니 착각한 것 같네요.”
내 말에, 카메라가 슥- 움직이더니 아파트의 전경을 담았다. 아파트의 브랜드가 딱! 박힌 건물 외벽의 렌즈에 담기는 것이 보여졌다.
“선생님. 그런데, 개들에겐 귀소본능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이 녀석은 왜 집을 찾지 못했을까요?”
“귀소본능이라 하니까 생각났는데, 개들에게 실제로 귀소본능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주변을 많이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힌 개체의 경우에는 집을 찾지만, 그렇지 않으면 찾지 못한다고 해요.”
“엇, 정말입니까?”
“뭐…… 자세한 연구 결과나 논문의 내용이 아니라, 단순한 실험의 내용을 본 것 뿐이지만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 실험의 내용에는 실제로 집을 찾아간 개들의 수가 전체의 10% 조금 넘는 수준이라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만 봐도, 실제로 개들에게 귀소본능이라는 것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피디님은 그 부분에 관해서 추가로 방송에 내보낼 생각인지 메모를 하고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선생님. 혹시, 저 아이의 주인을 찾는데 조금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얼마든지요.”
피디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이 주인을 찾게 도움을 주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주인 잃은 녀석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네가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줄게.”
“정말요?!”
녀석은 내 말을 이해하자마자 기뻐하며, 나를 덮쳤다.
대형견이 내게 몸통박치기를 해오는 것은 꽤나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다.
아무리 제대로 먹지 못해 조금 야위었다고 해도, 대형견의 힘과 무게가 완전히 약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으억!”
나는 짤막한 비명과 함께 널부러졌고, 그 위로 녀석이 올라타 내 얼굴을 핥아댔다.
꽤 묵직한 느낌에, 버둥거리며 녀석을 밀어냈다.
내게 해를 끼치려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표현이었기에 가볍게 밀어내는 것으로도 녀석은 밀려났다.
‘어우, 축축해.’
얼굴 가득하게 묻은 녀석의 침을 슥슥 닦아낸 나는 녀석을 진정시켰다.
“짜샤. 네 덩치를 생각해야지.”
“에헤헤!”
녀석은 질책할 생각으로 머리를 살짝 누르며 거칠게 쓰다듬어도, 주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더 기쁘다는 듯이 해맑은 모습을 보였다.
꼬리는 무슨 빗자루도 아니고, 바닥을 아주 빠른 속도로 청소하고 있을 정도였다.
“일단, 네 주인이랑 놀았다고 하는 거기가 어딘지 기억하고 있어?”
“어……. 모르겠어요. 사실, 주인님이랑 차를 타고 갔거든요!”
“차를 타고 갔다고?”
“네! 거기는 갈 때 마다 차를 타고 갔어요!”
녀석의 말에, 나는 조금 일이 복잡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면, 다른 지역에서 살던 녀석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인을 찾기가 무척 힘들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혹시, 거기가 어떻게 생긴 건지 기억하고 있어?”
“으음…….”
녀석은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엄청 컸어요! 제가 지칠때 까지 달려도 끝까지 못 가본 곳이예요! 거기에, 인간 아이들도 많았어요. 어…… 물고기 있는 연못도 있었고…….”
한두 번 간 것은 아닌지, 녀석은 그곳에 대해 아는 것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켜서 지도를 확인했다.
“얘가 주인이랑 헤어진 곳은 여기인 것 같네요.”
지도를 통해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녀석이 주인과 헤어졌던 그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먼 곳에 위치한 것이 아니면서, 대형견이 지칠 때 까지 뛰놀 수 있고 연못이 있으며 아이들이 많이 찾는 곳은 한 곳 밖에 남지 않는다.
“부산 시민공원이네요?”
“주인이랑 헤어진 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묘사해보라고 했더니, 아주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오오…….”
피디님은 잠시 감탄하더니, 곧바로 장소를 이동할 준비를 했다.
촬영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녀석을 데리고 먼저 승합차에 올라탔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얘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차를 타는 게 익숙한지, 녀석은 승합차의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나는 녀석에게 이름을 물었다.
“제 이름은 뭉치예요!”
뭉치는 주인을 만날 기대감 때문인지, 차 안에서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댔다. 덕분에 뿜뿜- 뿜어지는 털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슬그머니 승합차의 쪽창을 열 수밖에 없었다.
“출발하겠습니다!”
뭉치의 이름을 듣고, 문을 여는 사이 이동 준비가 다 끝났는지, 차량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그마하게 열린 쪽창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며 신선한 공기가 얼굴로 쏘아졌다.
나도 동물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 뿜어지는 털을 보고 있자니 신선한 공기가 무척 땡겼다.
아무튼, 그렇게 신선한 공기를 흡입하고 있으니 차량은 금세 부산 시민공원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뭉치가 튕겨져 나오듯 차에서 내렸다.
“여기! 여기 맞아요!”
주인과 헤어진 곳에 대해서 강렬한 인상이 남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뭉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방방 뛰어댔다.
드디어 주인을 만날 수 있다- 라는 기대감이 여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못 찾으면 큰 일이겠는데…….’
당연히 그 모습에, 나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기껏 찾아준다고 시민공원까지 왔는데, 뭉치의 주인을 찾지 못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쓸모 없는 걱정이었다.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습니다.] [이름 : 뭉치] [대형견으로 무척 활발한 아이입니다. 보셨거나 보호하고 계신 분은 010 **** *** 으로 연락주세요.]내 곁에 있는 뭉치가 살이 조금 더 찐다면 이렇게 보일까- 싶은 사진이 크게 박혀 있는 전단지가 주차장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관리인이 주기적으로 청소하며 떼어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구석진 곳에 딱 하나 붙어 있을 뿐이었다. 승합차 두 대를 붙여서 주차하기 위해 구석에 주차한 것이 아니라면 발견하지도 못 했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이네요.”
전단의 내용을 함께 읽은 피디님은 다행이라 말하며, 카메라맨에게 전단지를 찍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전화는 제가 하겠습니다.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견주 분과의 통화를 녹음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리를 비켜준 피디님은 내가 휴대폰을 꺼내드는 것을 보며 나를 말렸다.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었으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피디님은 전단지에 붙은 번호로 연락을 하며, 뭉치를 보호하고 있다며 견주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뭉치를 보호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한 통화는 금세 끝이 났다.
“견주께서 엄청 기뻐하시네요. 당장 오시겠다고 하실 정도로요.”
기뻐하면서 당장 온다고 한 말이 거짓이 아닌지, 뭉치와 가볍게 놀아주며 이십여 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웬 SUV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그 SUV는 우리가 있는 곳 근처에 대충 주차하더니, 중년의 남성이 내려 우리에게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리고, 그런 그에 맞추어, 내 곁에 있던 뭉치가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뭉치익쿠헤억!”
빠르게 달려나간 뭉치가 그대로 중년의 남성을 들이 받았고, 덕분에 중년 남성은 괴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몇 바퀴나 굴렀다.
하지만 고통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지, 무척 기쁘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뭉치를 끌어안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사고뭉치 녀석아!”
아, 뭉치가 그 뭉치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