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27
0226 장보기
“수환아!”
추운 겨울의 일요일. 차갑디 차가운 바깥과 다르게 따듯한 집 안에서 소은이와 느긋하게 귤이나 까먹고 있으니 누나가 주방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떨어지려 하지 않는 소은이를 번쩍 안아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음므 은능!”
“소은아, 입에 있는 건 다 먹고 말해야지. 다 흐르잖아.”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한가득 귤을 집어넣고 우물거리는 소은이의 모습에 누나가 휴지로 소은이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내게 시선을 돌린 누나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수환아, 미안한데……. 내일 마트 가서 장좀 봐줄 수 있을까? 오늘 가려고 해도 오늘은 마트도 쉬는 날이잖아.”
“나 혼자? 누나는?”
“내일 자선행사가 있어서, 거기 가봐야 해.”
신년 맞이 자선행사가 있는데, 누나가 거기 참가하기로 되어 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맞네.”
“응. 그래서 내일은 시간이 안 될 거 같은데……. 그럼 당장 내일 저녁에 먹을 게 없을 거 같아. 지금 보니까 냉장고가 좀 비어 있네.”
“내일…… 굶어?”
먹을 게 없을 것 같다는 누나의 말에 소은이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직까진 노는 것과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아이다웠다.
그 모습에 나와 누나 모두 푸흐흐-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진지해 보이는 소은이의 모습에 웃음을 참아냈다.
“아냐. 아빠가 마트 가서 먹을 거 사 올 거야.”
“마트! 나! 나두 갈래!”
내가 마트에 가서 먹을 걸 사 온다고 하니, 소은이가 그제야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마트에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담는 걸 그렇게 좋아했다.
“그럼 내일 아빠랑 같이 갈까? 은수도 데리고.”
“조아!”
“꼭 사야 하는 건 내가 메모해 줄 테니까, 둘러보고 셋이서 사고 싶은 거도 사 와.”
“예에에에!”
사고 싶은 걸 사와도 된다는 말에, 소은이가 무척 좋아했다.
누나는 그 모습을 보며 살짝 아쉬워했다. 누나도 소은이처럼 마트를 돌아다니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다 괜찮긴 하겠지만, 그래도 상태는 보고 사야 해.”
“걱정 마셔.”
“마셔!”
누나의 걱정을 덜어내기 위해 한 마디 했더니, 소은이가 내 말을 따라 했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 누나가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 ○ ◑ ● ◐ ○
“다녀올게.”
“잘 다녀와.”
아침부터 자선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나가는 누나를 배웅한 나는, 곧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운 바깥 날씨를 고려해서 동글동글 눈사람처럼 옷을 입힌 소은이와 은수를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
오늘은 운전하는 동안 아이들을 케어해줄 누나가 없어서 걱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큰 문제 없이 마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시트에 태운 은수 옆에서 어린이용 시트에 앉은 소은이가 잘 놀아준 덕분이었다.
“마트다앗!”
물론, 잘 돌봐준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이 마트에 내리자마자 방방 뛰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마트에 도착한 나는 카트를 끌고 소은이와 은수를 태웠다.
은수는 유아용 의자에, 소은이는 카트 짐칸에 태웠다. 그리 권장되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마트에 오면 텐션이 올라가는 소은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었다.
“출발! 꼬!”
카트에 얌전히 앉은 소은이는 손을 팟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 모습에 천천히 카트를 밀기 시작했다.
“일단 엄마가 사라고 한 것부터 챙기자.”
“웅.”
메신저로 따로 메모해 준 것을 확인해가며, 마트 곳곳을 돌기 시작했다.
“파는 뭐가 싱싱한 거지?”
“몰라!”
다만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가족이 먹을 거라 좋은 걸 사고 싶은데, 뭐가 좋은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소은이는 수많은 파들이 가득한 곳에서 잠시 동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뭐, 다 똑같이 생겼으니 그게 그거겠지.
“이걸로 할까?”
“웅!”
대충 가까이 있는 것으로 집었다. 솔직히, 파를 메인으로 먹는 건 아니니 아무거나 해도 괜찮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걸 카트에 넣으려고 하니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으우우우!”
“어, 안 돼?”
“우!”
바로, 은수였다. 은수는 카트에 파를 넣으면 안 된다는 듯이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초능력의 효과로 어느 정도 은수가 말하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제법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름이 아니라, 그 파가 별로 좋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거?”
“으우우!”
“이건?”
“꺄우!”
그런 은수의 반응을 보며, 묶여 있는 파들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그러던 도중, 하나를 가리키니 은수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쳐댔다.
“뭐……. 은수라면 믿을 수 있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식물 관련된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은수였다. 그런 은수의 선택이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아들이 원하는데 파를 고르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보인 그 모습은 파 하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은수야, 여기 당근은 뭐가 좋을까? 까놓은 거보단 흙당근이 조금 더 좋겠지?”
“은수야, 고구마를 사야 해. 어떤 상자가 제일 맛있을까?”
“이번에는 감자. 어떤 걸로 할까? 이거?”
“음, 양파도 사야 하는데……. 아, 저거로 하자고?”
“우리 은수가 좋아하는 브로콜리~ 뭐 할까? 아무거나 빨리 줘?”
누나가 사라고 메모해 준 것들 중에 작물 같은 것들은 모조리 은수의 선택으로 결정한 것이었다.
은수가 고른 것들을 자세히 보면 신기하게도 다른 것들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들은 캐내면서 상처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러한 것들이 거의 없는 품질 좋은 것들이었다. 게다가, 양파나 파 같은 것들도 다른 것들 보다 조금 더 싱싱하게 보였다.
비록, 브로콜리의 경우에는 뭐가 됐든 다 맛있으니까 빨리 달라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브로콜리를 가장 좋아하는 은수 답다고 할 수 있었다.
“저게 뭐야…….”
근처에 지나가던, 장을 보던 한 어르신이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이상한 사람 본다는 듯이 지나갔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솔직히, 이제 두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가 고르는 것으로만 카트에 담고 있었으니 일반인들 눈에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리 마트에서 판매하는 것들이라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품질이 좋고 나쁜 것은 있었으니, 아기가 고르는 것만 카트에 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도 은수에게 식물 관련된 초능력이 없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은수의 선택을 받은 것들을 카트에 넣고 있으니 소은이가 입술을 비죽 내밀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왜 그래? 이상한 거 있어?”
“나느은, 은수가 내 동생이지만 이해가 안대! 저걸 왜 조아할까?”
알고 보니, 은수가 브로콜리를 품에 안고 꺄르륵 좋아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브로콜리를 조각내서 이유식에 섞어도, 입속에서 요령 좋게 모아 뱉어내던 소은이 다운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소은이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며 다음 물건들을 사기 위해 움직였다. 중간중간, 브로콜리가 담긴 봉지를 끌어안은 채로 베어 물려고 하는 은수를 막아서면서 말이다.
“보자……. 밀가루 여기 있고. 아, 파스타 면도 여기 있네.”
누나가 꼭 사 오라고 메모했던 물건들이 많이들 채워졌다. 남은 거라곤 냉장 식품으로, 나가기 직전에 카트에 담으면 되는 것들이었다.
“이제 구경하자!”
“와아앙!”
만세 하는 소은이를 태운 카트를 끌고 과자 코너로 가장 먼저 찾아갔다.
“나나나나나! 저거! 저거!”
그리고, 그곳에서 소은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고르기 시작했다. 흔한 감자칩 과자부터, 외국에서 수입해왔다는 초코 과자 같은 것들도 마구 담았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소은이가 과자들을 한가득 끌어안고 있었야 했다.
“적당히 다 둘러본 거 같지?”
“웅! 이제 엄마가 사라고 한 거 사자!”
“그래.”
냉장 식품 위주로, 아직 구매하지 않은 것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유제품 코너에서 아이들이 먹을 우유를 시작으로 요거트와 치즈를 카트에 담았고, 과일 음료 같은 것들도 카트에 담았다.
그렇게 카트를 꽤나 채울 정도로 물건들을 담고 나니, 사야 할 것이 마지막으로 하나 남아 있었다.
“계란 사러 가자!”
“계란! 맛있는 계라안! 계란 푸라잇!”
계란으로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 되었든 꽤나 좋아하는 소은이는 계란을 산다니 신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웃으며 계란을 찾으러 이동했다.
그리고, 계란을 판매하는 곳으로 다가가니, 수백 판의 계란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계란 많아!”
계란이 한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소은이는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계란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소은이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압빠, 저거 모야?”
“어떤 거?”
“저거, 유정란! 저거는 계란이 아냐?”
소은이가 고개를 갸웃거린 이유는 바로, 계란들 사이에서 따로 판매하고 있던 유정란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 있던 유정란 메추리알 역시 소은이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소은이에게는 계란은 계란이었고, 메추리알은 메추리알이었다. 유정란 계란이니, 유정란 메추리알이니 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소은이를 바라보며 어떻게 설명을 해야 좋을까 고민했다. 어린이 특유의, 질문에 질문이 엮이고 거기에 또 질문이 엮이는 질문 지옥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아주 가볍게 설명을 해주기로 결정했다.
“음……. 유정란이라는 건, 새끼가 될 수 있는 씨앗 같은 게 들어 있는 알을 말하는 거야. 무정란은 그 씨앗이 없는 알이고.”
“그러엄, 저거 유정란에서 병아리가 나와?”
“잘 키우면 되는데, 사람들이 먹기 위해서 나온 거라서 병아리가 나올 확률은 엄청 낮아.”
소은이는 내 설명을 들었지만, 딱히 이해가 되는 건 아닌지 고개만 계속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다시금 고민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메추리알로 한 번 확인해 볼까? 유정란이랑 무정란 둘 다 사서, 우리가 부화시켜 보는 거야.”
“좋아!”
머리카락이 펄럭일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이 앞에, 원래 목적이던 계란 한 판과 메추리알 두 묶음을 내려놓았다. 유정란 한 묶음과, 무정란 한 묶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