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26
0225 신년
“5!”
“4!”
“3!”
“2!”
“1!”
수많은 사람들이 TV 화면에 나와, 함께 카운트다운을 이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대애애앵-!
그리고, 그 카운트다운에 맞춰 들려오는 보신각의 새해맞이 종소리가 들려왔다.
집에 있는 전자시계에 시간을 표시해주는 숫자가 모두 0이 되었고, 날짜를 표시하는 숫자는 1이 되었다.
새로운 해의 1월 1일이 되는 그 순간, 나와 누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수환아, 새해 복 많이 받아.”
“누나도 새해 복 많이 받아.”
휴대폰 역시 곧바로 진동을 울리며, 단체방에서 새해 축복 메시지가 넘쳐났다. 지잉지잉, 쉬지 않고 울어댔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은수는 이미 누나의 품에서 쿨쿨 자는 중이었기에, 곧바로 소은이에게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소은이도 새해……. 어이구.”
그런데 소은이에게 새해 인사를 해주려던 우리는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보신각 종소리를 꼭 듣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던 소은이가 소파에 드러누워 코오오- 소리를 내며 꿀잠을 자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소은이를 보며 피식 웃고서, 찹쌀떡 같은 볼따구를 살며시 매만졌다.
“웅악?”
그리고, 내 손길 때문인지, 소은이가 두 눈을 번쩍! 치켜뜨더니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순간 소은이 볼이 전원 버튼인 줄 알았다. 살짝 건드렸다고 펄쩍 뛰어오르니 나도 놀랄 정도였다.
“소, 소은아?”
“종소리다앗!”
내가 놀라든 말든, 소은이는 TV를 향해 도도도도- 달려갔다. 이내 TV에 착 달라붙듯 다가간 소은이가 여전히 종을 대앵대앵 울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두 팔을 힘껏 치켜들며 만세 했다.
“히히, 나두 종 치는 거 봐써!”
“그래? 우리 소은이, 좋겠네?”
“웅!”
누나의 물음에 소은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1월 1일이 되는 그 순간 치는 종이 있다는 소리에 무척 흥미를 갖고 꼭 보고 싶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수시로 깨고 자고 반복하던 아기 시절에 보긴 했지만 그때는 기억나지 않는 듯했고, 6살인 작년에는 보려다가 잠들어서 보지 못했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타이밍 맞게 깨어나서 볼 수 있었으니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소은이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몸을 빙글 돌리더니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엄마! 압빠!”
“응?”
우리를 부른 소은이는 갑자기 두 손을 이마에 착- 붙이더니, 몸을 숙이기 시작했다.
저러다 넘어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몸을 숙이던 소은이는 이내 무릎을 접고 바닥에 상체를 밀착했다.
“푸흡.”
다만, 문제가 있다면 엉덩이가 조금 과하게 솟아 있어 세배라고 보기엔 힘들었지만 말이다.
절을 한다기보단, 어떤 요가 자세 같은 걸 하는 느낌이었다. 몸을 최대한 웅크리는 쪽으로 해야 하는데, 덜 웅크리며 허벅지가 세워진 것이었다.
매년 자세가 이상하다고 알려줘도,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아니, 바뀐다고 해도 매번 이상하게 바뀔 뿐이었다. 말 그대로 일자로 엎드리는 것은 기본이었고, 작년에는 무릎 위에 팔꿈치를 대는 바람에 머리가 공중에 떠 있어야 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요상한 자세로 1초 정도 가만히 있던 소은이가 고개만 뽁, 들어 올려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은 귀여움 그 자체였다.
“새해 많이 복 받으세요!”
“소은아, 그럴 때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거야.”
“웅!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순을 바로잡아주니 그제야 일어난 소은이가 뽀르르 달려왔다.
정확히는 누나의 품에 안겨 있는 은수에게 달려온 것이었다.
“은수도 새해 복 많이 받아야대.”
자는 은수를 깨우고 싶은 건 아니었던 건지, 소은이가 아주 자그마하게 속삭이는 듯한 소리로 새해 인사를 했다.
그런 소은이를 바라보던 나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것을 꺼내들었다. 이제 8살이 되어, 몇 달 후면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소은이에게 주기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짜잔!”
“오옹?”
갑자기 자기 앞에 내밀어진 큼지막한 선물상자를 바라본 소은이가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선물임을 깨달은 소은이의 얼굴에 행복이 마구마구 피어나기 시작했다. 히죽히죽 웃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선물상자와 함께 나를 끌어안으려 했다.
“윽!”
“아파아!”
덕분에 선물상자의 모서리에 우리 부녀가 찔려 함께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옆에서는 누나가 푸흐흐-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소은이는 찔끔 흐르는 눈물을 재빨리 닦으며 선물상자 모서리에 찍힌 배를 슥슥 문지르고서는, 여전히 환한 미소를 유지한 채 선물상자를 끌어안았다.
선물상자에 반격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선물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기쁜 것이었다.
“압빠! 열어봐두 돼?”
“응. 소은이한테 주는 선물이니까.”
소은이는 마치 호랑이가 먹잇감을 할퀴듯, 그대로 선물상자를 헤집었다. 포장이 순식간에 벗겨지고, 그 뚜껑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튀어 올랐다.
“와앙!”
선물상자를 열어젖힌 소은이는 그대로 내용물을 꺼내들며 환호했다.
소은이에게 준 것은 하얀 것 같으면서도, 약간 분홍빛이 감도는 토끼 모양 장식들이 달린 가방이었다.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형태의 가방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천만 원이 훌쩍 넘는 비싼 물건이었다.
단순히 메고 다니는 것만으로 충전되어 작동하는 반영구적 GPS가 달려 있었고, 캐리어처럼 잠금장치를 설정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완벽한 방수가 되는 제품이라, 비상시에는 튜브나 구명조끼처럼 쓸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물론, 가격이 비싼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방탄복에 들어간다는 케블라를 비롯한 신소재로 만든 가방이었기 때문이다. 일반 가방과 비교하면 조금 더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소은이의 체력이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준비한 것이었다.
1월 1일, 오늘 선물해 주기 위해서 추가금까지 내고 드론으로 배송을 받아 준비한 물건이었다. 오류인지 뭔지는 몰라도, 집 지붕에 던져놓고 가는 바람에 유부와 아라가 도와줘야 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선물 받았다는 것에 기뻐한 소은이는 벌써부터 가방을 메고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어때? 어때? 나 잘 어울려? 히히히!”
토끼 모양을 본뜬 장식들이 가득한 토끼 가방이었기 때문인지,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토끼 흉내마저 내는 중이었다.
무척이나 귀여운 그 모습에 나와 누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마구 찍어댈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빠르게 자랄 것을 감안해서 조금 넉넉한 크기로 만들었기에, 가방은 지금의 소은이에겐 조금 커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귀여움을 더 배가시키고 있었다.
“앞으로 초등학교 갈 때, 그거 메고 다녀.”
“학교!”
초등학교에 등교할 때 메고 다니라는 말에, 소은이가 무척 기대된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기대감도 오래가지 못했다. 당장은 잘 시간이 넘었기에 몰려오는 졸음과 싸워야 했고, 졸음에 패배하고 잠에 빠져든 다음부터는 신년이 되며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소은이는 할 일이 더더욱 많았다.
“이러케! 이러케 인사하면 되는 거야!”
동물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동물들에게 새해 인사라며 절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소은이의 교육을 받은 개와 고양이들은 마치 기지개라도 켜듯이 앞발을 쭉 내민 상태로 고개를 바닥에 푹 수그리는 자세를 취했다.
“잘해써!”
개와 고양이들에게 절하는 방법을 가르친 소은이는 그대로 다른 동물들에게로 향했다.
마치 모든 동물들에게 절하는 것을 알려주겠다는 듯한 모습으로, 온갖 동물들에게 절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심지어, 조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삐, 삣!”
어떻게든 몸을 수그리려던 참새 한 마리는 삣삣거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무리 그래도 팔이 없는 새들에게 절하는 것을 가르치는 건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소은이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새들은 결국 절하는 방법을 터득해 내고 말았다. 마치 바닥에 떨어진 모이를 쪼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듯한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원산폭격 자세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새들에게도 절하는 방법을 가르친 소은이의 다음 타겟은 뽀니와 루돌프, 사올라를 비롯한 말과, 사슴과와 소과의 동물들이었다.
“와! 잘해써!”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원래부터 바닥에 쉬이 엎드릴 수 있는 동물들이었기에 절하는 것을 아주 쉽게 배울 수 있었다. 녀석들은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를 꾸뻑 숙이는 것으로 소은이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소은이에게 절을 배우는 동물들 중에 생각하지 못한 복병이 있었다. 바로, 원숭이들이었다.
몸을 웅크리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원숭이들은 그런 가르침을 아주 수월하게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약간의 착오가 있었다.
바로, 절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소은이라는 것이었다. 본인도 완벽한 자세가 아닌데, 그 자세로 가르치고 있으니 아주 잘 따라 하는 원숭이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엉덩이를 치켜들고, 꼬리까지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 원숭이들이 얼굴을 땅바닥에 처박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 심란해졌다.
“……놔둬도 괜찮겠지?”
“……뭐 어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해 주는 건데.”
절하고 있는 원숭이들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나쁜 의미로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게다가, 그렇게 절하는 방법을 배운 동물들의 행동 덕분에 관람객들도 무척 즐거워할 수 있었다.
1월 1일을 맞아 가족끼리 찾아왔다가, 동물들에게 새해 인사를 받으니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딜 가서도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없었으니, 오히려 동물들에게 새해 인사를 받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평소와 다르게 할 일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동물들이었지만, 동물들도 딱히 싫어하지는 않았다. 새해 인사를 받은 사람들이 설날은 아니더라도 세배를 받았다며 세뱃돈 느낌으로 맛있는 간식들을 넉넉히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즐거워지는 새해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