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60
0259 으윽. 가슴이.
“수환아, 수환아. 이거 봐봐.”
둘이서 갈라파고스에서 모처럼 즐거운 데이트를 즐겼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내게 더 붙어 있던 누나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휴대폰에서는 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는데, 제법 내용이 참신했다.
그 영상에서는 자신이 이상 행동을 했을 때,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들의 반응을 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인 행동은 강아지 앞에서 커다란 담요를 들고 있다가, 옆에 있는 문으로 도망치며 담요를 놓는 것이었다.
담요가 공기의 저항으로 느릿하게 떨어지는 사이, 담요 뒤에 있던 주인이 모습을 감추는 것이었다.
“와, 얘 진짜 주인한테 관심 없네?”
하지만 영상 속에 보이는 강아지는 주인이 사라지거나 말거나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보자면, ‘어? 사라졌네?’ 하는 정도의 반응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곧바로 곁에 있던 사료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댈 뿐이었다.
그 모습에 잠깐 주인이 절망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 절망은 오래가지 않는 듯했다.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금 이상한 행동들을 보였다.
죽은 듯 가만히 있기, 괴상한 춤 추기, 갑자기 쓰러지기, 개사료처럼 생긴 시리얼 먹기, 사료를 들고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 등등. 온갖 이상한 행동들을 강아지 앞에서 보여준 것이었다.
죽은 듯 가만히 있는 것은 정말 개무시가 뭔지 보여주었고, 괴상한 춤을 추니 호다닥 도망갔고, 갑자기 쓰러지니 주인을 방석으로 썼다. 그나마 사료를 주지 않고 가만히 서있을 때 가장 큰 반응이 나왔다. 컁컁 짖으며 주인을 와그작 물어버린 것이었다.
“푸흐흐흐, 가차 없이 물어버리네?”
“너도 한 번 이런 거 찍어 볼래?”
“내가?”
“응! 너무 똑같이 하면 안 되겠지만, 네가 갑자기 쓰러진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면 애들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지 않아?”
누나는 기대된다며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평범한 일반인도 아니고, 드루이드인 내가 갑자기 쓰러진다거나 하면 동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된다는 것이었다.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동물들의 반응이 어떨지 무척 궁금했다. 내가 쓰러졌다고 호들갑을 떨지, 아니면 영상 속 강아지처럼 개무시를 할 건지 궁금했다.
“그럼 오랜만에 뮤튜브에 올릴 걸 촬영하면서 방송도 같이 해볼까?”
나는 무척 오랜만에 누나에게 카메라를 들게 하고, 방송을 시작했다.
[ㅅㅎ!] [와! 여왕님이다!] [여왕님 자주 좀 나와 주세뮤ㅠㅠ] [언니 왜 아직도 피부가 탱탱해요? 비결 좀…] [여왕님도 나왔으면 공주님도 나와야지!]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들어온 시청자들은 나를 반기는 것보다 누나를 더 많이 반겼다.
“안녕하세요.”
누나도 자길 반겨주는 사람들이 싫지 않았는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적당히 인사를 하는 걸 기다려준 다음, 나는 곧바로 오늘 할 컨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갑자기 간식 같은 것들을 들고 쓰러진 척을 하면, 동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실험해 보겠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바로ㄱ] [그래도 드루이드인데 개무시하겠어?] [공주님 아니니까 개무시당한다에 한표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말에 사람들이 여러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평소 동물들의 반응 때문인지, 사람들이 나도 개무시당할 수 있다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후, 한 번 봅시다.”
나는 곧바로 동물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남캣 녀석이었다.
청호 말고는 이기지 못하는 녀석이 없는 남캣은, 말 그대로의 무법자였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녀석이었다. 툭하면 거실 중앙에 드러누워 있거나, 길목의 중앙에 드러누워서 길을 틀어막는 일을 벌여댔다.
나는 그렇게 현관의 바로 앞에서 드러누워 있는 남캣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남캣이 내게 시선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연기를 시작했다.
“으, 윽. 가슴이.”
마치 심장이 아픈 것처럼 왼쪽 가슴 부근을 감싸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물론, 완벽하게 쓰러지는 연기를 하기에는 이래저래 아플 것 같아서, 부드럽게 쓰러졌다.
동물들이 좋아하는 간식들 몇 알이 바닥에 흐트러졌고, 남캣이 환장하는 츄르 한 개를 손에 쥔 상태였다.
“……뭐하냐.”
남캣의 곁으로 스르륵 쓰러져 드러누우니, 녀석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녀석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정말 어딘가 나빠져서 쓰러진 것처럼 보이도록 나름대로 열연을 하는 중이었다.
‘자, 뭐라도 반응해 보라고!’
쓰러진 척을 하면서, 남캣이 빨리 반응을 해주길 바랐다. 드러눕는 과정에서 자세가 조금 이상했던 건지, 생각보다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캣은 내 바람대로 반응을 보였다.
내 주변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상태를 바라보더니, 주변에 흐트러진 몇 알의 간식을 재빠르게 먹어치운 다음에 츄르를 물고 도망친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드러눕는 과정에서 간식 한 알이 볼 아래에 깔렸는데, 남캣은 그것을 꺼내겠답시고 내 머리를 밀어내기까지 했다.
순식간에 남은 거라곤 하나 없이 깨끗해진 주변에,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아니, 내가 쓰러졌는데 관심도 안 주고 먹을 거만 챙겨서 튀어?
그리고, 내가 황당함을 느끼는 만큼, 시청자들은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다.
[ㅋㅋㅋㅋㅋㅋ다털렸죠?] [아 드루이드 보단 츄르라고 ㅋㅋㅋㅋㅋ] [그래서 저 츄르 어디 제품인가요?] [역시 좆냥이. 갓댕이가 최고야!] [갓냥이는 저런 맛에 키우는 거라고. 뭘 모르시네. 충성심을 원하면 인공지능 비서나 키우라고 ㅋㅋ]사람들은 남캣이 내겐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먹을 것만 훔쳐간 것을 보며 즐거워했다.
“푸흐흐.”
심지어, 카메라를 들고 있던 누나도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어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세가 안 좋았는지 살짝 저린 팔을 휘휘 돌리며, 다른 동물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다음 동물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청호였다. 반려동물 포지션이라기보다는 경호원 포지션에 가까운 녀석이었기에, 우리 가족이 있는 곳이라면 거의 언제나 발견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보이지 않는 경우라면, 주변을 순찰하겠다며 자리를 떠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그렇게 청호를 만나게 된 나는 누나에게 잘 찍으라는 신호를 보내며, 다시금 연기를 시작했다.
“아, 악. 가슴이 아프다.”
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더 어색해지는 듯한 말투와 함께, 천천히 바닥으로 드러누웠다. 주변으로 몇 알의 사료들을 흩뿌리는 것은 덤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바닥으로 드러누우니, 청호가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남캣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왔다.
“도, 도움-! 아무나 도움-!”
청호 녀석은 내게 호다닥 달려와서는, 코로 내 몸을 쿡쿡 찔러댔다. 그렇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나를 바라보더니, 주변으로 크게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도와달라는 의미를 가득 담아 외친 녀석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 같자, 발을 동동 굴러댔다.
어쩌나- 어떡하나- 고민하던 녀석은, 이내 다른 곳으로 달려 나갔다. 감각이 좋은 녀석인 만큼, 누나가 주변에 있음을 파악하고서 누나에게로 뛰어간 것이었다.
“도움! 도움! 도움!”
“청호야 왜 그래.”
컹컹컹- 짖어댄 녀석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누나의 옷자락을 살며시 물고서 질질 끌어당겼다. 누나는 영상을 길게 뽑아낼 생각인지, 청호에게 살짝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옷에 구멍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청호에게 이끌려 내게 다가왔다.
결국 청호는 누나를 내가 있는 곳까지 이끌고 왔다.
“수환아.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온 누나는 나를 콕콕 찔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일어나니, 청호 녀석이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쓰러진 척한 거야.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거든. 역시 청호네. 네가 있어서 진짜 든든해.”
나는 청호 녀석을 칭찬해 주며, 녀석에게 간식을 가득 내어주었다. 지금처럼만 해주면, 정말 만에 하나라도 불상사가 생겼을 때 안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남캣과 비교되는 청호의 그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의 채팅이 터져 나왔다.
[역시 갓댕이!] [나만 없어 군견 ㅠㅠ] [쟤가 군견 출신이라 저런 건가? 아니면 모든 개들이 저러는 걸까?] [당연히 교육 탓이지. 우리 갓냥이들도 교육만 받으면 저 정도는 한다고 ㅋㅋ] [우리 집 댕댕이는 나 자빠지니까 방석으로 쓰던데…]고양이 다음으로 개가 나오니, 채팅창이 갓댕이파와 갓냥이파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개와 고양이들을 여럿 키우는 입장에서는 하등 쓸모없는 구분이었기 때문이다.
개냥이라고 불리는 고양이도 있었도, 이게 고양인가 싶을 정도로 까칠한 개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완전히 뒤집어엎어주기로 결정했다. 이번 목표는 나태 녀석이었다.
“윽, 가슴이!”
조금은 편해진 듯한 연기와 함께 바닥에 드러누웠다.
“……………………………………………….”
그리고, 주변 일대가 침묵에 휩싸였다.
[둘 다 쥬금?] [뭔데? 시체놀이 대결이야?] [먼저 움직이는 쪽이 진짜 시체가 되는 대결인가…] [아니 청호 다음으로 너무 갭이 큰 거 아니냐고 ㅋㅋㅋ]나태 녀석은 마치 나태함의 대결을 펼치듯, 그 어떤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쓰러지든 말든 관심도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졌어 임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태 녀석의 주둥이에 간식 한 알을 물려주고 떠났다. 나태 녀석은 내가 떠나고 나서도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찾은 녀석은 바로 남캣의 부인이자 천적인 폭신이였다.
“억, 가슴!”
녀석의 앞에서 순식간에 털썩 쓰러지니, 녀석이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제자리에서 폴짝 뛰어오를 정도로 놀란 녀석은, 곧바로 내게 다가와 내 볼을 슥슥 핥아댔다.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폭신이는 내가 걱정이라는 듯이, 나를 톡톡 건드렸다. 핥기도 하고, 얼굴을 비벼대며 일어나 보라고 이야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주변에 간식이 흩어져 있든 말든, 내게 관심을 쏟고 있었다.
남캣과 비교되는 그 모습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을 슥슥 쓰다듬어 주고서, 츄르까지 쭈욱- 짜주었다.
“다음부터는 이런 장난치면 안 돼요. 알았죠?”
게다가, 녀석은 이렇게 장난을 치다가, 언젠간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오면 도움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며 잔소리까지 해댔다.
그 이야기를 누나를 비롯한 시청자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ㄹㅇ 갓냥이의 표본!] [남캣이 쪽도 못 쓰는 이유가 있쥬?] [완전 엄마 아님? ㅋㅋㅋ] [빨리 잘못했다고 빌어 ㅠㅠㅠ] [근데 진짜 개랑 고양이도 딱 성격을 나누긴 힘든 듯?]사람들은 폭신이의 행동에 감동했다며, 폭신이에게 맛있는 츄르를 더 주라고 후원을 터트려댔다. 그 모습에 츄르를 몇 개 더 내어주니, 녀석은 이제 다 커서 한 덩치 자랑함에도 어여삐 여기는 새끼들에게로 향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다른 동물들에게도 몇 번 실험을 이어갔다.
짜몽이 녀석은 내가 쓰러지니 딱 좋다며 내 곁에 함께 드러누워 자기 시작했고, 치킨이 녀석은 간식을 게걸스레 탐하다가 내가 움직이지 않는 것에 뒤늦게 놀랐었다.
그 외에도 여러 동물들이 각양각색의 반응들을 보여주었다.
가장 특이한 행동을 보인 녀석을 꼽자면, 아라 녀석을 꼽을 수 있었다. 녀석은 사람들이 아프면 병원을 간다는 걸 알려주었더니, 나를 잡아채서 병원에 가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다음으로 특이한 행동을 한 녀석은 루돌프 녀석으로, 내가 쓰러지니 갑자기 수의사를 납치해서 데려왔었다. 녀석의 우람한 뿔에 옷가지가 칭칭 휘감겨 매달려 왔었다.
정말 각양각색의 반응에 즐거워하며 웃고, 신기해하고 있으니 소은이가 뽈록- 튀어나왔다.
“나두 해볼래!”
내가 하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소은이가 자기도 해보겠다며, 사료 한 주먹을 허공에 흩뿌리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리고, 동물원에 큰 이변이 생겼다.
“비상-! 비상-! 비상-!”
앵무새 몇 마리들이 갑자기 날아오르며 비상사태를 선포하더니, 여러 동물들이 호다닥 뛰어온 것이었다.
“…….”
나는 그 모습에 황당함을 느끼며, 동물들을 다시 돌려보내는데 제법 시간을 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