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61
0260 예상치 못한 홍보
“……소은아, 안 자?”
8살이고, 이미 본인의 이름표가 달린 방이 있음에도 우리와 함께 자는 걸 좋아하는 소은이를 바라보며 나는 어색하게 물어보았다.
벌써 10시가 넘었는데도 소은이가 자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침대에 누워, 이불을 어깨까지 올려서 덮고 있음에도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는 상태였다. 몇 분 내로 잠에 들지 않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히히. 잠 안 와!”
토끼귀가 달린 연분홍빛 토끼잠옷을 입고, 얼굴만 쏙 내밀고 있는 소은이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는 눈이 빠르게 두어 번 깜빡였다.
귀엽기 그지없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잠이 오지 않는 게 아니라, 잘 의지 자체가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소은이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내일이 바로 소은이가 무척 기대하는 날 중 하나인 어린이날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이 5월 5일인 어린이날인 것은 아니었다. 어린이날 직전인 5월 4일인데, 소은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일종의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5월 5일에 쉬지 못하는 가족들도 있는 만큼, 학교에 올 아이들이 직접 즐기면서 쉬는 날이 될 수 있도록 조성한 것이었다.
친구들과 즐겁게 놀 생각이 가득하고, 그것을 기대하는 것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 안 자면 내일 소은이는 못 놀게 할 거야.”
“코오오오오오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은이가 잠에 빠져들었다. 장난하듯 자는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잠에 빠져든 것이었다. 놀지 못하는 일은 절대 생겨선 안 된다는 의지가 그대로 잠에 빠지게 만든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황당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다리를 버둥거리며 자기도 재워달라는 듯이 움직이는 은수에게로 향했다.
“은수도 누나처럼 잘 자면, 내일 당근이랑 오이 줄게.”
“피휴우우…….”
은수 역시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잠에 빠져들었다. 참 개성적인 두 아이들이, 이럴 땐 죽이 잘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애들은 벌써 다 재운 거야?”
“어. 생각보단 쉽게.”
아이들이 어떻게 잠에 들었는지 이야기해 주니, 누나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자는 것도 비슷하네?”
“그러게. 일단 우리도 자자. 내일 아이들이 아주 열심히 뛰어 놀 건데, 쫓아다니려면 체력 보존해야지.”
“그래. 얼른 자자.”
나와 누나는 소은이가 벌써부터 걷어차서, 허리춤에 내려가 있는 이불을 정리해 주고 우리의 침대에 올라갔다.
가볍게 누나를 끌어안고 이불을 덮으며, 아이들이 고롱고롱 내쉬는 숨소리를 들으니 잠이 쏟아졌다.
○ ◑ ● ◐ ○ ◑ ● ◐ ○
“소은이는 학교에 먼저 가있어. 아빠는 조금 있다가 갈게.”
“웅! 빨리 와!”
학교의 등교 시간이 있는 소은이는 우리에게 손을 붕붕 흔들며 뽀니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소은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재빨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소은이의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는 우리 동물원에서도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하는 행사도 아니고, 몇 시간 잠깐 하는 행사였으니 참여하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모든 동물들을 데려가는 것도 아니었으니, 동물원 운영에도 차질은 없었다.
“누나, 은수만 좀 챙겨줘. 난 데려갈 녀석들 좀 불러야 해서.”
“아빠 다녀오세요.”
내 말에 누나가 은수의 손을 잡고 손을 흔들며, 복화술을 하는 척했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동물들을 데리러 이동했다.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데려갈 동물들이다 보니, 아무 동물이나 데려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요인들을 고려해서 고르고 보니, 대부분의 동물들이 새끼들이었다. 태어난 지 좀 되었음에도 새끼 티를 벗어나지 못하는 코뿔소 녀석들을 포함해, 새끼 동물들을 위주로 선택한 것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소은이보다 더 크게 자라난 기린, 사올라, 거북이, 뱀, 오리너구리, 에뮤, 캥거루, 코알라 등등. 여러 동물들의 새끼들을 데려가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아이들의 영원한 동반자인 펭귄들은 성체들로 데려갈 예정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고른 동물들을 한 곳에 모은 나는, 동물들의 이동을 위해 준비한 차량에 올라탔다. 동물들의 이동에 관해서는 내가 있어야, 스트레스가 최소화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새끼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이동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준비 다 됐어! 출발!”
동물들이 갑자기 쓰러지지 않도록 다들 자리에 앉도록 만든 다음, 운전석 쪽과 통하게 되어 있는 곳을 두드리며 외쳤다.
“출발!”
“쭈빠!”
동물들과 함께 탄 나와 달리, 차량의 보조석에 탑승한 누나가 즐겁다는 듯이 외쳤다. 그리고, 그 품에 안겨 있던 은수가 말을 따라 하며 팔다리를 쭉 내뻗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니,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 중턱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동물원인 만큼, 차가 언덕길을 내려갔다. 느린 속도로 움직인 덕에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십 분 정도 움직이니 소은이의 초등학교가 눈에 보였다.
잠깐의 언덕을 다시 올라가고 나니, 소은이가 다니는 학교의 운동장에 차가 멈춰 섰다. 우리 동물원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이미 알려진 상태인 데다, 차량에 동물원의 마크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으니 별다른 제지도 없었다.
“자, 내리자.”
차가 멈춰 선 것에, 나는 곧바로 동물들을 데리고 차량에서 내렸다.
아무리 잠깐 이동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동물들은 그 이동도 지루하긴 했던 건지 내리자마자 기지개를 켜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수환아, 여기가 우리 부스야?”
“응. 이쪽에서 아이들이 피딩체험이나, 동물들 털을 빗어주는 체험 같은 걸 하게 할 예정이지.”
어린이들에게 어울리는 동물 체험이라고는 대부분이 먹이를 주는 피딩체험이나, 털을 빗어주는 것 정도가 딱이었다. 어린이들은 동물들에 관한 상식을 아는 것보다, 직접 만지고 교감을 나누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우리에게 지정된 제법 큼지막한 부스에 동물들을 밀어 넣은 나는 부스를 당장 오픈해도 될 정도로 준비를 마쳤다.
수십여 개의 동물 빗, 소량으로 소분해 둔 동물용 간식 같은 것들, 아이들에게 선물로 줄 자그마한 굿즈 같은 것들을 가득 쌓아둔 것이 전부였다.
“소은이 아버님. 혹시 준비 다 되셨을까요?”
준비를 끝마치고 누나와 함께 은수와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소은이의 담임 선생님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아무래도 초등학교에서 진행하는 어린이날 행사다 보니, 참여한 업체 중에 대단한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순위를 따지자면 우리 동물원이 최대 규모의 참여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학교 측에서도 우리를 신경 쓰는 건지, 안면이 있는 소은이의 담임 선생님을 담당으로 앉혀 놓은 것이었다. 심지어, 우리의 준비가 끝이 나야 행사를 시작하겠다는 듯이 우리의 준비가 끝났는지 확인하러 올 정도였다.
“아, 준비는 다 됐어요. 한, 5분 정도면 저희 직원들도 몇몇 파견 나올 거라 인력 문제도 없고요.”
“다행이네요!”
준비가 다 된 것으로 모자라 인력까지 있다는 말에, 소은이의 담임 선생님이 무척 다행이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아이들이다 보니,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을 것을 염려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소은이의 담임 선생님이 다녀간 뒤 본격적으로 학교 건물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우리 부스로 찾아온 사람은 우리 딸이었다.
“압빠!”
“어이쿠.”
내게로 도도도도- 달려와 덥석 안겨드는 소은이를 안아주고선, 소은이가 달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소은이의 친구들이 빠르게 뛰어온 소은이의 뒤를 쫓아 달려오고 있었다.
몇몇 아는 얼굴들도 있었고, 모르는 얼굴들도 있었지만 소은이의 친구들이 분명했다.
“안녕하세요!”
우르르 몰려온 아이들은 나와 누나에게 인사하고, 간간이 은수에게도 손을 흔들어주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소은이를 포함하여 그 아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곧바로 동물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마다 선호하는 동물들이 달랐기 때문에, 아이들은 여러 동물들에게 빠짐없이 퍼져나갔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역시 펭귄들이었다.
“뀨엥! 노, 놀랬쪄!”
한 호기심 많은 어린이의 기습 교감을 받은 한 펭귄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딱히 이상한 곳을 만진 건 아니었기에, 펭귄은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외에도 아이들은 여러 동물들과 교감을 나눴다.
독에 당하지 않도록 암컷 오리너구리를 데려왔는데, 그 오리너구리는 오리처럼 생긴 부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어지고 있었다. 오리 같아, 너구린데? 근데 오리야! 하며 혼란에 빠진 듯한 아이들의 모습은 귀엽기 그지없었다.
잠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리니 옆에 있던 캥거루가 장난기 가득한 남자아이들과 갑자기 스파링을 준비하듯 서로 주먹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싸우는 건 아니겠지.
약간 조마조마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직원들의 조율과 도움을 주기 위해 나온 두 명의 선생님들이 붙으면서 상황이 안정되었다. 주먹이 아니라 서로 손바닥을 맞대는 수준이 된 것이었다.
그래도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어린아이들 답게, 워낙 천방지축인 데다 어디로 튈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도 소은이처럼 타고 있어!”
소은이의 친구인 한 아이는 소은이의 도움 덕분인지는 몰라도, 새끼 코뿔소의 등 위에 올라타서 부스 앞을 가볍게 한 바퀴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 외에도 약간의 문제가 조금씩 생겨났다.
“으악! 육아낭은 만지면 안 돼!”
캥거루의 육아낭이 궁금했던 건지, 열어 보려는 아이도 있었고.
“거북이는 빗겨줄 털이 없어요.”
털빗을 들고 거북이의 등껍질을 빗으려는 아이도 있었으며.
“먹을 걸로 놀리지 마렴.”
에뮤에게 간식을 줄 것 같으면서도 주지 않는 악동도 있었다.
역시 어린이들의 행동은 예측하기 힘들고, 어떻게든 눈을 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제지하는데 익숙한 데다, 우리 동물원에서 천방지축 아이들을 자주 접해본 직원들 덕분에 큰 문제가 생기진 않았다.
게다가, 모든 아이들이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었다.
“자, 빗으로 털을 이렇게 빗어주면 돼. 살살, 부드럽게. 그렇지.”
빗질을 가르쳐주는 우리 직원의 교육을 따라 동물들의 털을 빗겨주며 동물과 교감을 나누는 아이도 있었고.
“너도 하나, 너도 하나. 친구끼리 같이 나눠 먹어야 돼.”
모든 동물들에게 똑같이 나눠줄 기세로, 자그마한 간식을 또 쪼개면서도 동물들에게 하나씩 먹여주는 아이도 있었다.
덕분에 처음에는 동물들을 조금 무서워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조금씩 시간이 흘렀을 때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동물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동물들을 괴롭히는 건가 싶을 정도의 행동을 보이던 아이들도 선생님들과 우리 직원들의 교육에 힘입어, 동물들에게 사과하며 부드러운 손길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피곤해하고 귀찮아하던 동물들이었지만, 녀석들도 어느새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꺄하하하항! 나 잡아 봐라앗!”
폴짝폴짝 뛰는 캥거루와 술래잡기를 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펭귄의 뒤를 따라 뒤뚱거리며 걷기도 하고, 팔을 쭈욱 뻗어 기린에게 먹이를 먹여 주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동물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인지, 행사가 끝이 날 때까지 우리 부스에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아무리 우리 동물원이 부산에서 유명한 관광지라고는 해도, 모든 아이들이 찾아와 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탓인지 우리 부스에 찾아온 아이들은 이런 동물들과 교감을 할 수 있다면 부모님과 꼭 찾겠다며 다짐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동물들이 동물원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소은이의 말 덕분이었다.
단순하게 소은이를 위해 행사에 참여한 것이, 예상치 못한 홍보 효과를 낳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지역 뉴스에까지 나온 덕분에, 동물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는 반응을 보이던 이들도 한 번 정도 찾아가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는지 동물원의 방문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