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80
0279 공주님이 동생을 돌보는 방법(1)
“올 때 기념품 같은 거 꼭 사 와야 해!”
“아직 가지도 않았거든? 내일 가는데 벌써부터 무슨 기념품이야.”
“그래도, 미리미리 말을 해둬야지.”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누나의 모습에 나도 피식 웃음을 지었다. 누나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내가 내일부터 해외로 짧은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웃나라이자, 판다에 진심인 나라인 중국에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다의 번식이나, 먹이 등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를 초청한 것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중국의 요구를 거절하려 했다. 판다를 제외한 동물들의 보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국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판다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이놈들은 판다용 야동의 필요성이 있을 정도로, 번식에 적극적이지 못한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간, 번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멸종할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그렇게 결정된 중국 출장이 바로 내일이었다. 나를 태우고 중국으로 날아갈 전용기가 아침에 공항에 기다리고 있을 예정이었다.
“어, 수환아. 잠시만.”
이런저런 기념품들을 사 오라고 이야기하던 누나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리며 전화가 왔음을 알려왔다.
“뭐, 정말?!”
그런데, 그 전화를 받은 누나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꽤나 놀란 모습을 보인 누나는 연신 어떡해-를 연발했다.
심각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이는 누나를 바라보는 나도 덩달아 심각해질 정도였다.
“무슨 일이야?”
전화를 끊은 누나의 모습에 조심스레 이유를 물었다.
“어……. 너도 알지? 내 친구 유리.”
“유리 누나? 어, 알지.”
“유리가 교통사고가 나서 크게 다쳤대. 그래서 좀 다녀와야 할 거 같아.”
“심하게 다친 거야?”
“응……. 그런 거 같아.”
“어이고…….”
누나의 말에 안타까움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생각난 것이 있었다.
“그럼 애들은 어떡하지?”
“부모님……은 안 되겠구나. 여행 가셨지. 어쩌지?”
바로 애들을 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보니 아이들을 데려갈 수가 없었고, 크게 다친 사람의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누나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부모님들도 사이좋게 여행을 떠난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니, 우리 이야기를 들었던 건지 소은이가 뽀로록 튀어나왔다.
“나 혼자 있을 수 이써!”
“그럼 은수는?”
“은수도 내가 돌볼 거야! 나 할 수 이써! 나 이제 애기 아니야!”
소은이는 허리에 팔을 척 얹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와 누나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따로 이야기가 오간 것은 아니었지만, 눈빛만으로도 많은 대화가 이어졌다.
‘괜찮을까?’
‘가능할 거 같은데?’
‘소은이가 은수까지 돌볼 수 있을까?’
‘불가능하진 않을 거 같아. 아니면 영지라도 부를까?’
‘영지는 내 사촌이지만 좀……. 같이 논다고 은수는 못 챙기지 않을까? 둘이 워낙 잘 맞아야지.’
‘그것도 그렇긴 하네. 그냥 소은이한테 맡겨 보자.’
누나와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소은아, 정말 소은이가 은수를 돌볼 수 있겠어?”
“웅! 나는 동생을 잘 챙기는 눈나니까!”
소은이는 정말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 소은이가 은수 기저귀도 갈아줄 수 있어?”
“우……웅!”
기저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건지, 소은이가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늦게나마 힘차게 대답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 모습에 나와 누나는 다시금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누나가 입을 열었다.
“좋아. 대신, 무슨 일이 있으면 경호원 언니들한테라도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아라써!”
소은이는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우리는 조금이나마 걱정을 덜어낼 수 있었다. 동물들과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말괄량이가 따로 없지만, 그래도 똑똑한 아이였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는 아이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선택지를 고르고서 저마다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떠났다.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돌아오기로 결심하면서.
○ ◑ ● ◐ ○ ◑ ● ◐ ○
“다녀오세요오!”
소은이는 걱정된다는 듯이 계속 뒤를 돌아보는 부모님들을 향해 손을 붕붕 흔들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소은이는 곧장 집안으로 도도도도- 뛰어 들어갔다. 물론, 아직 은수가 잠에 빠진 상태임을 알고 있었기에, 발소리는 최대한 줄인 상태였다.
사뿐사뿐, 그러면서도 꽤나 빠른 속도로 안방으로 들어간 소은이는 아기용 침대에서 콜콜 자고 있는 은수를 바라보았다.
“히히, 내 동생 귀여워!”
입을 아주 살짝 벌린 채로 자는 은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던 소은이는 은수가 잠에서 깰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우…….”
잠에서 깨, 멍하니 옹알이를 하는 듯한 은수의 모습을 바라본 소은이는 그대로 아기 침대의 옆 프레임을 해체했다. 딸깍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옆이 활짝 열렸다.
“누운아.”
“웅웅, 눈나야.”
자신을 알아보는 은수의 모습에 해맑은 미소를 지은 소은이는 그대로 은수를 안아들었다. 아침마다 엄마와 아빠가 하는 모습을 보고 기억해둔 행동이었다.
“맘마.”
“웅? 은수 맘마 먹고 싶어?”
“맘마!”
일어나자마자 배가 고팠던 건지, 은수가 소은이의 품에 안겨서 밥을 찾았다.
그런 은수의 모습에 소은이는 곧장 은수를 안고서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 있는, 은수 전용의 아기 의자에 은수를 앉힌 소은이는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다. 어린아이로 보이는 외형과 달리, 아빠의 초능력을 아주 강하게 받으며 자란 소은이는 제법 힘이 강한 편이었다.
“움, 여기 있다고 했는데.”
냉장고를 열어젖힌 소은이는 내부를 뒤적거리며, 엄마가 만들어 두었다는 은수용 이유식을 찾기 시작했다. 엄마가 분명 있다고 했는데- 하면서 두 번 정도를 훑어보니 그제야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볼 땐 분명 없었던 거 같은데- 하면서, 이유식이 담긴 그릇을 꺼냈다.
“지잉지잉, 위잉위잉, 전자레인지!”
가볍게 흥얼거린 소은이는 곧장 전자레인지에 이유식이 담긴 그릇을 넣고, 엄마가 알려준 대로 전자레인지를 돌렸다.
간혹 혼자 있을 때 배가 고프면, 냉동실에서 냉동 간식 같은 것들을 혼자서도 데워먹은 경험이 있기에 문제 하나 없이 이유식을 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이유식을 데운 소은이는 은수에게 맞는 숟가락을 가져와, 조금씩 식혀가며 이유식을 먹여 주었다.
“은수, 아~!”
“아~!”
옴 맛있게 이유식을 받아먹고 있는 은수를 해맑은 미소로 바라보던 소은이는 은수가 맛있게 먹는 이유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은수가 열심히 씹고 있는 것을 확인하더니, 한 숟가락을 퍼서 제 입으로 직행했다.
“웅, 마시따. 역시 엄마가 해준 게 최고야.”
“누우나!”
“앗, 미안!”
제 것을 빼앗겼음을 인지한 은수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소은이는 그 모습에 재빨리 사과하고서, 어느새 입이 비어 있는 은수의 입에 이유식을 다시 채웠다.
잠깐 소동이 생길 뻔했지만, 어떻게든 은수의 아침 시간이 끝을 맺었다.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깨끗하게 이유식을 다 먹은 은수는 의자에서 내려달라는 듯이 소은이에게 손을 뻗었다.
소은이는 그런 은수의 모습에 곧바로 의자에서 내려, 바닥에 앉혀 주었다.
기저귀로 푸짐한 엉덩이가 바닥에 닿자, 은수는 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가고 싶은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소은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빵 한 조각을 베어 물면서 그런 은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엄마가 매일 하는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킁킁.”
“남캣 안녕!”
그리고, 도중에 유독 은수를 좋아하는 고양이들이 은수에게 다가와 킁킁거리는 모습에 인사도 해주었다. 어찌나 은수에게 집중하는지, 대답이 돌아온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힝, 은수가 있으면 냥이들이 나한테 대답을 안 해.”
조금 아쉬워한 소은이는 열심히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은수를 바라보았다. 좋은 냄새라며, 은수의 몸에 코를 박고 정신을 못 차리는 고양이들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히 특별한 냄새가 나는 거 같지 않은데, 고양이들이 너무 좋아하니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제게 들러붙는 고양이들을 떨쳐내며 움직이는 은수를 따라다니던 소은이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는 은수를 바라보았다.
“은수야 모해?”
갑자기 멈춰 선 은수의 모습에 소은이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다가온 청호 덕분에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아가씨. 도련님께서 큰일을 보신 것 같슴다.”
“큰일? 아! 응가 했구나!”
소은이는 청호의 말에 이해했다는 듯이 짝- 손뼉을 쳤다. 그러나, 이내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엄마랑 아빠에겐 자신이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긴 했지만, 막상 그 일이 닥치게 되니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은수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 맞다!”
그리고, 잠시 걱정에 망설이던 소은이가 호다닥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서울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원숭이를 불러오는 것이었다.
“숭아! 은수 기저귀 갈아야 하는데, 도와줘!”
“고, 공주님?”
갑자기 불려오게 된 원숭이는 꽤나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소은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은이를 돕기 시작했다.
“은수야, 눈나가 기저귀 갈아줄게!”
소은이는 은수를 데리고 거실로 나와, 폭신폭신한 매트 위에 은수를 눕혔다. 꺄르륵- 웃음을 지으며 얌전히 드러누운 은수의 옷을 재빨리 풀어냈다. 도톰한 기저귀가 보였는데, 기저귀도 순식간에 뜯어냈다. 엄마가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티슈!”
“여기 있습니다!”
“파우더!”
“옙!”
“기저귀 새거!”
“미리 준비해뒀습죠!”
원숭이를 조수삼아, 소은이는 열심히 은수의 기저귀를 교체해 주었다.
티슈를 달라고 하며 티슈를 주고, 베이비파우더를 달라고 하면 베이비파우더를 주고, 새로운 기저귀를 가져오라면 재빠르게 가져오는 원숭이는 매우 뛰어난 조수였다.
“꺄앙!”
“히히, 해냈다!”
새로운 기저귀를 깔끔하게 채워주니, 기쁘다는 듯이 팔다리를 쭉- 펴 보이는 은수의 모습에 소은이가 만세를 했다.
힘차게 만세를 한 소은이는 자신을 도와준 원숭이에게 잘했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물론, 기저귀의 교체 타이밍을 알려준 청호를 칭찬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