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95
0294 너도 쓸모가 있구나?(1)
은수의 생일 파티를 마친 이후, 나는 다시금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 화단을 둘러보고서 동물원을 한 번 순찰 돌고, SNS 상태를 점검도 하고, 여러 직원들이 올린 보고서도 검토한다. 그다음으로는 누나가 일하는 사무실로 가서 적당히 노닥거리다가, 소은이나 은수와 놀아주는 일상이었다. 당연히, 중간중간 동물들을 돌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주기적으로 방송을 하면서 팬들과 소통하는 것도 빠트릴 수 없었다. 방송이 체질이다- 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청자들과 대화하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아무튼, 은수 생일이라고 남캣이 준비해 온 게 뭔 줄 알아요? 우리 기념품 상점에서 파는 당근인형이었어요. 나중에 알아보니까, 포동이들한테 협박했더라고요. 맞을 건지 교환권을 내놓을 건지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말이죠.”
남캣 녀석은 내 예상대로 포동이들에게 교환권을 갈취해온 것이었다.
[대륙간탄도미살 님이 10만 원 후원!] [“그래서 포동이들이 협박에 순응했나요? 저항했나요?”]“대륙간탄도미사……가 아니라, 도미살이네? 일단, 십만 원 감사합니다. 포동이들이야 당연히 상수컷들이라 남캣의 협박에 굴하지 않았죠. 수십 대의 냥냥펀치를 얻어맞고 빼앗길지언정, 억압에 굴복하지 않는 녀석들이랄까……?”
[날래쏘라우 님이 10만 원 후원!] [“포동이들 다친 건 아니죠? 그 남캣한테 냥냥펀치 맞은 거면 다친 거 아니에요?”]닉네임을 보면, 지금 후원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이들은 포동이들의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인 것 같았다.
나는 포동이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포동이들은 멀쩡해요.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포동이들은 예전부터 맷집 하나는 어마어마하던 녀석들이거든요. 남캣한테 한 대 맞아도, 포동포동한 뱃살을 흔들면서 뒹굴고 멀쩡히 일어날 정도였죠.”
식탐이 강한 녀석들답게, 녀석들은 남캣의 먹이까지 노린 전적이 아주 많았다. 들킬 때마다 얻어맞았음에도 여전히 멀쩡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녀석들에겐 대단한 손재주 외에도 대단한 맷집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걔들이 호랑이 우리에 쳐들어가서 호랑이 먹이도 훔쳐 먹을 수 있던 건, 한두 대 정도는 맞아도 문제없이 도망칠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 거예요. 그 정도로 맷집 하나는 대단한 거죠.”
포동이들이 대놓고 호돌이의 밥을 훔쳐 먹었던 것은 어마어마한 맷집에서 오는 깡다구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맞아도 멀쩡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실제로, 괴도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의 대포동 녀석은 호돌이에게 한 대 얻어맞고 뒹굴었는데, 그 힘을 추진력 삼아 데굴데굴 구르면서 도망친 전적도 있었다. 그 와중에 호돌이의 먹이까지 사수하고서 말이다.
“아무튼, 남캣 그 녀석은 협박이 안 통하니까 곧바로 냥아치력을 발휘해서, 포동이들한테서 교환권을 훔쳤어요. 근데 생각했던 거랑 다르게, 남캣이 포동이들을 패거나 하진 않았더라고요. 남캣도 포동이들이 맷집 좋은 걸 아니까, 괜히 힘 빼는 대신 교환권을 넣어두는 가방을 노린 거였죠.”
남캣은 포동이들을 패봐야 자기만 귀찮다는 것을 알고서, 녀석들이 교환권을 넣고 다니는 자그마한 주머니를 노렸었다.
CCTV에 녹화된 것을 확인했더니, 때리는 척하다가 가방을 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가방의 끈을 순식간에 잘라내서, 물고 도망친 것이었다.
냥냥펀치 한 방에 가방끈이 잘리고, 그렇게 떨어진 가방을 물고 도망치는 남캣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시청자들에게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가방을 기념품 상점 직원에게 냅다 던지고, 당근인형 하나를 물어가는 남캣의 모습 역시 보여주었다.
[ㅋㅋㅋㅋㅋㅋ교환권을 주고 절도하는 수준인데?] [자! 선물이야!(장물임)] [결국 피해자는 신수 님 아닌가요? 교환권도 다 신수 님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ㅋㅋㅋ] [직원 어리둥절한 거 봐라 ㅋㅋㅋㅋ]나는 여러 반응을 보이는 시청자들의 채팅을 바라보며, 의자에 편안하게 기댔다.
그런데 편안하게 기대는 그 순간, 마치 폭죽이 터지는 듯한 효과음과 함께 후원 메시지가 도착했다.
[괴산군 님이 100만 원 후원!] [“도움!”]“이건 또 무슨…….”
나는 단 두 음절로 끝난 100만 원짜리 후원 메시지를 보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100만 원이라는 금액대의 후원 메시지가 오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억 단위의 구독자를 보유한 뮤튜브 채널의 주인인 내가 라이브 방송을 하는 만큼, 부를 꽤나 축적해둔 이들도 찾아오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의 말을 번역해달라고 천만 원 수준의 후원을 거침없이 던지는 부자들도 있는 판국에, 100만 원짜리 후원에 놀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단 두 음절만 담고 있는 후원은 처음이었다.
“일단, 제 이목을 끌려고 하는 거라면 성공적이라고 말씀드릴게요.”
나는 곧바로 해당 후원을 한 이와 개별적인 채팅을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방송을 보고 있을 것이 뻔한 상대만 채팅을 하고, 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도아정입니다.]“어……. 네, 안녕하세요. 근데 공무원이신데 왜 갑자기 백만 원 후원을……?”
공무원이라는 양반이 지역 이름을 닉네임으로 달고 백만 원을 후원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스스로 도아정이라 소개한 상대가 어그로를 끈 이유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저희 괴산군에 있는 한 마을에는 전 세계에서 오직 대한민국에만 자생하고 있는 미선나무가 있어요. 괴산군에는 무려 세 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중이죠.]“미선나무요? 어……. 처음 들어 보는 나무네요?”
[앗! 그러신가요? 미선나무라는 건, 부채. 아, 사극에서 왕 뒤에 있는 시녀들이 흔드는 하트 모양 부채를 생각하시면 돼요! 그 부채와 비슷하게 생긴 열매가 자라나는 나무예요. 1속 1종의,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있는 특별한 식물이죠! 그것도 대부분이 저희 괴산군에 있답니다!]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에 유일하게 있다는 소리에, 조금 흥미가 생겼다.
나는 곧바로 미선나무에 대해 검색했다. 미선나무 네 음절만 검색했음에도 정말 미선나무라는 것이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 꽃 축제도 하네요?”
[네! 미선나무 꽃은 꽤 아름다워서, 꽃놀이하기에도 참 좋은 나무예요. 홍보가 쪼금 부족해서 그렇지, 정말 예쁜 꽃을 보실 수 있어요! 분홍색 꽃을 피우는 미선나무도 있답니다!]묘하게 홍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야기의 주제를 바꿨다.
“그래서, 그 미선나무랑 저한테 도움이라고 딸랑 두 음절 짜리 후원 메시지를 보낸 이유가 뭔가요?”
[아! 제일 중요한 걸 잊을 뻔했네요! 지금 미선나무 자생지가 쫄딱 망하기 직전이라서요! 신수 님의 도움이 꼭 필요해요!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예……?”
나무의 자생지가 쫄딱 망한다는 건 또 무슨 소리고,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또 무슨 소리인지 의문이 들었다.
설명을 해달라는 표정으로 잠시 기다리니, 다시금 채팅이 올라왔다.
“가시박이요? 알긴 알죠. 동물원의 자연구역에 잠깐 생겼다가, 아주 열심히 다 뜯어낸 거니까요.”
나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가시박이라는 식물이 있는데,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주변 생태계에 치명적인 것들이었다. 나무를 비롯해 풀, 꽃 같은 것들을 가리지 않고 뒤덮어 버리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식물들을 뒤덮어 버리면, 뒤덮인 식물들은 당연하게도 광합성을 하지 못하게 되어 말라죽게 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가시박이 너무 촘촘하게 뒤덮어, 부러지는 나무가 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독성 물질까지 내뿜어, 가시박 외에는 주변에서 자라나지 못하도록 환경까지 바꾸는 능력까지 있었다.
그렇게 생태계를 교란하는 식물인 주제에, 번식력은 또 어마어마하게 좋았다. 다 뽑아냈다고 생각하면 그다음 해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을 정도로 번식력과 생존력이 좋은 식물이었다.
그런 만큼, 가시박이 나타나면 그것을 없애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나도 가시박을 없애기 위해 꽤나 고생을 했었다.
“혹시, 그 가시박이 미선나무라는 게 자라는 자생지를 뒤덮었나요?”
[ㅠㅠ]모음으로 이루어진 이모티콘이 대답을 대신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미선나무라는 것이 자라는 곳에 가시박이 뒤덮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던 식물들을 말려 죽이는 가시박이 자생지를 뒤덮었으니, 그곳을 관리해야 하는 공무원들로서는 죽을 맛일 것이 뻔했다. 싹 다 정리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ㅠㅠ]채팅일 뿐임에도 애절함이 느껴지는 것에, 나는 쉽사리 거절하지 못했다.
단순히 어디 밭 같은 곳이라면 싹 다 제초하라고 말하겠지만, 미선나무라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도 몇 곳에서만 자생하는 희귀한 식물이었다.
결국, 나는 가시박을 없애는 것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물론, 희귀한 식물인 만큼, 동물원의 자연구역에 옮겨 심을 몇 그루 정도 양도받을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방송이 아니라, 다음에 전화로 하는 걸로 하죠. 저희 쪽에서 따로 연락드릴게요.”
나는 가시박이나 미선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미뤄두고, 다시금 방송을 이어갔다.
그리고, 며칠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미선나무 자생지를 뒤덮은 가시박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동물원에 가시박이 나왔을 때 가시박의 퇴치에 앞장섰던 몇몇 동물들과, 은수를 데리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