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05
0304 세끼(5)
“와……. 어떻게 바다 형보다 체력이 더 좋을 수가 있지?”
하루에도 십수 Km를 달린다는 바다 형의 체력을 보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내가 섬을 뛰는 것을 보고서 무척이나 놀란 모습을 보였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질주하는 마루와 어느 정도 속도를 맞춰가며 따라갔으니 말이다. 마루가 속도를 맞춰주긴 했다지만, 그래도 무척 빠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어우, 저도 죽겠어요.”
나는 내 체력에 놀란 듯한 이들에게 손사래 치며,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아침부터 땀을 쫙 빼고, 개운하게 샤워까지 하고 나니 무척 상쾌했다.
그런데, 개운하게 씻고 밖으로 나오니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바로, 피디와 세진 형의 대치였다.
“소고기 있지? 줘.”
“안 된다니까? 이건 동물들 전용이야. 아니면……. 형이 십 분 이상 동물 흉내 내면 먹게 해줄게. 개나 고양이 정도면 되겠다. 어때?”
“미쳤냐?”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는 세진 형의 모습에도 피디는 생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동물들 전용이라고 이야기했던 건가 싶었다.
하지만 세진 형은 그냥 찔러 본 것이었는지,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너네가 파는 거 있잖아. 그거라도 살게.”
“오, 진짜? 그럼 삼겹살 백 그램에 삼만 원이야.”
“진짜 사기꾼 아냐!”
“사기꾼이라니. 이거 다 우리 배송비야. 현실적이지 않아? 배로 육지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드는 돈이 얼만데.”
말하는 걸 보면 진짜 사기꾼이 아닌 것처럼 들리는 게, 오히려 사기꾼 같았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세진 형에게 다가갔다.
“형. 돈은 있어요?”
“어. 있긴 해. 물고기 잡은 거, 무게 달아서 100그램에 천 원씩 받았거든.”
“사기꾼 맞네.”
“거 봐!”
살 때는 천원에 사고, 팔 때는 삼만 원이라니. 사기꾼이 따로 없었다.
“에이, 사기꾼이라뇨? 양심적인 보부상이라고 해주시겠어요? 저도 이렇게 사서 뭍에 가서 배송비를 받고 파는 거라고요.”
“팔긴 뭘 팔아! 너네 입으로 다 들어가는 걸 내가 봤는데!”
“우리도 먹고살아야지.”
“와, 이러려고 이번에는 배를 안 준 거냐?”
세진 형은 이제 더 이상 말이 나오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피디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한 번을 못 이기네- 하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배송을 저희가 하면 배송비는 안 내도 되겠네요?”
“네. 그렇죠. 대신, 아라에게 매달려서 나가는 건 금지입니다.”
이미 내가 아라를 타고 다니는 것을 알고 있는지, 피디가 선수를 쳤다. 가장 쉬운 방법이 막힌 것에, 나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약간의 아쉬움을 말이다.
“형. 지금 얼마 있어요?”
“지금 사만 원 정도? 방법 있어?”
“제가 못 나간다고, 배달 시키지 못하는 건 아니죠. 필요한 게 뭐죠?”
“일단 고기. 삼겹살이 괜찮겠지?”
고기면 다 된다는 듯한 모습의 세진 형이었다. 정말 확실한 그 요구에, 나는 피식 웃으며 종이를 가져왔다. 그 사이, 다른 형들도 다가와 삼겹살이 좋다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삼겹살로 그럼 이만 원 정도 살까요?”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이는 형들의 모습에, 종이에 그 내용을 휘갈겼다. 삼겹살 2만 원어치 주세요, 하루세끼입니다-라고.
“유부야!”
그리고, 그 종이에 2만 원을 포함해서, 녀석에게 물려주었다.
“어제 고기 샀던 그 마트 알지? 거기 직원한테 좀 갖다 줄래? 그럼 고기를 줄 건데, 그거 가지고 오면 돼.”
“알겠소이다.”
유부는 그대로 날아올라, 어제 소고기를 샀던 그 마트를 향해 빠르게 날았다.
제작진들 중 일부가 동물이 보는 시선으로 항공샷을 찍고 싶다고 유부에게 액션캠을 달아둔 상태라, 몇몇 제작진들이 무척 기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피디 역시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기대하는 시간이 한동안 이어졌다. 유부가 언제 오나, 사람들이 하늘을 계속 힐끔거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유부는 십여 분 정도가 더 흘렀을 때 모습을 드러냈다.
“어어!”
저 먼 곳에서 검은색의 무언가를 달고 날아오는 것이 보였는지, 제작진 중 한 명이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사람들이 시선이 순식간에 집중되었고, 유부는 수십여 명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내 근처로 다가왔다.
새카만 검은색의 비닐봉지를 발로 붙잡고 온 녀석은, 봉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그 봉지 안에는 형들이 그토록 원하던 삼겹살이 고운 자태를 자랑하며 들어 있었다. 제대로 계산되어, 영수증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와아아!”
해준 형이 옆에서 삼겹살이 생겼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을 성원 형에게 건네주었다.
삼겹살을 배달시킨다니, 벌써부터 김치찌개 같은 것을 끓일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저게 이만 원이야? 저 밀수업자한테 사면 저 정도면 수십만 원을 줬어야 하는 건데.”
“밀수업자? 나 말하는 거야? 내가 왜 밀수업자야?”
“야, 밀수업자가 아니면 어떻게 삼겹살 백 그램을 삼만 원에 팔아?”
또다시 피디와 투닥거리는 세진 형을 뒤로 한 채, 착착 만들어지는 김치찌개를 구경했다. 옆에서 해준 형이 솥밥을 하는 것을 바다 형과 함께 구경했다.
강력한 화력 덕분인지, 김치찌개와 밥이 순식간에 상 위에 차려지기 시작했다.
“와, 맛있겠다.”
“진짜 비주얼만 봐도 맛있겠는데요?”
“그치? 선배님이 요리 하나는 진짜 잘 하신다니까.”
제작진들이 밥상을 찍는 것을 기다리며 잠깐 이야기를 하던 우리는, 카메라가 비키자 곧바로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잘 익은 김치에서 나오는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게다가 삼겹살까지 들어가서 나오는 고기의 맛은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그렇게 점심을 만족스럽게 먹은 우리는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물론, 아침에 거하게 한 판 뛴 나는 평상에 널브러져서 쉬기로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가자!”
해준 형이 더워하는 페엥을 데리고 바다에 한 번 다녀오겠다고 해준 덕이었다.
그렇게 해준 형이 나가고, 바다 형도 한 바퀴 뛰고 오겠다며 마루와 여름이를 데리고 나간 덕분이기도 했다.
“잘 먹네.”
“야, 내가 독수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줄이야.”
곁에서 성원 형과 세진 형이 유부와 아라가 고생해 줬다며 열심히 소고기를 먹이고 있는 덕에 정말 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마냥 쉬고 있기엔 눈치가 보였기에, 설거지도 하고 닭들의 모이도 챙겨주며 간단한 소일거리 정도는 했다.
그 외에도, 주요 식자재 공급원이라고 할 수 있는 텃밭 역시 관리해 주었다. 자화자찬 같지만, 내가 잠깐 돌봐주는 것만으로도 텃밭이 풍성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불과 하룻밤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작물들의 씨알이 굵어지고 있었다. 평범한 고추가 오이고추처럼 덩치가 커지고 있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내 몫은 했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그늘진 평상에 드러누웠다.
형들이 동물들과 노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갔다.
“이제 슬슬 저녁 먹어야 하는데, 뭐 먹지?”
“난 솔직히, 점심에 너무 많이 먹어서 많이 먹고 싶진 않은데.”
“나도. 선수, 뭐 간단하게 먹을 거 없어?”
“흐음.”
형들이 저녁 메뉴로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준 형이야 옆에서 조용히 듣기만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에 내가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고구마튀김 같은 거랑 맥주나 한잔하실래요?”
“고구마튀김? 좋……은데, 고구마가 없어.”
“고구마가 없다고요?”
재료가 없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산에 널린 게 고구마던데. 아침에 마루랑 뛸 때, 고구마 있는 거 보고 왔어요.”
“……고구마가 있다고?”
고구마가 있다는 말에 형들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아니, 널린 게 고구마던데, 몰랐던 거야?
“피디님. 섬에 있는 건 뭐든 먹어도 된다고 했죠?”
“네. 섬에 있는 것 중에,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먹어도 됩니다. 다 허락받은 상태에요.”
채집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나는 형들을 이끌고 산으로 올라갔다. 해가 더 지기 전에 빠르게 끝내기 위해,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여기 이게 전부 고구마에요.”
“……이게?”
“아, 워낙 많이 자라서 구분하기 힘들긴 하죠?”
고구마를 가리키니, 형들이 전혀 분간을 못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의 관리를 받지 못하며 자라고 있는 것들이라, 그냥 숲이나 산에 그득한 풀떼기 정도로 여긴 듯했다.
나는 미리 가져온 도구를 이용해 바닥을 살짝 파내었고, 내 팔뚝만 한 고구마 한 덩이를 꺼낼 수 있었다.
“저게 무슨 고구마야.”
“팔뚝만 하니까 팔뚝이구마!”
“아이씨. 아재 개그 좀 그만해요.”
“아니, 도련님 방금 웃는 거 봤는데?”
바다 형과 세진 형이 만담하는 것을 뒤로하고, 우리는 곧장 고구마를 캐냈다.
몇 개 캐지 않았음에도 무척 커다란 것들이다 보니, 어느새 어마어마한 양을 캐내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간단하게 고구마튀김 정에도 맥주를 마시려던 계획에서, 고구마 파티를 하게 되었다. 장작불 아래에 군고구마를, 그렇게 불타는 장작 위에서는 기름이 지글지글 끓으며 고구마가 튀겨지고 있었다.
프로페셔널하게 움직이는 성원 형의 움직임에 맞춰, 고구마튀김들이 튀겨져 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이 남은 고구마는 순식간에 맛탕으로 변해갔다.
고구마로 파티를 하게 된 우리는 산더미 같은 고구마 요리를 앞에 두고, 캔맥주를 땄다. 칙- 소리가 나며 탄산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올라와, 다들 하나같이 캔을 입에 댔다.
“크, 이 맛이지!”
기름진 튀김에 맥주만큼 어울리는 게 없다며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는 형들이었다.
그렇게 튀김과 맥주로 저녁을 대신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많아졌다.
요즘 어떻고, 어떤 작품을 시작할 예정이고, 누가 어땠고. 방송으로 볼 때는 편집되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들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아, 성원 씨. 얼마 전에 딸 결혼했잖아. 어때?”
“어떠긴 뭘 어때. 복잡하지.”
그러던 도중,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나왔다. 성원 형의 딸이 얼마 전에 결혼을 했는데, 아직까지도 독신인 세진 형이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맨날 옆에 있던 애가 이제는 다른 곳에 가 있으니 어색하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하고……. 뭐, 그래.”
성원 형은 정말 기분이 복잡 미묘한 건지, 얼굴의 표정이 1초도 안 되어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런데, 그 순간 곁에 있던 바다 형이 나를 콕 찔렀다.
“수환이 너도 딸 있잖아? 나중에 딸이 결혼할 사람이라고 누굴 데려오면 어떻게 할 거야?”
소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형들의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나는 그 시선을 받으며, 나중에 소은이가 더 컸을 때를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흥. 절대 가볍게 허락해 줄 순 없지.”
“아하하하학!”
내 말에 그럴 줄 알았다며 바다 형이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형들이라고 딱히 다르진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허락해 줄 건데?”
어떻게 허락해 줄 거냐고? 나는 그 물음에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흠……. 일단, 동물원의 동물들한테도 다 허락을 받고 오면 생각은 해줄 수 있겠네요.”
“동물원 동물들?”
“소은이는 동물원 동물들의 공주님이니까요. 동물들이 소은이를 얼마나 아끼는데요.”
나는 예전에 소은이가 동물원에서 울게 되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인간 말종 하나 때문에 소은이가 우는 일이 있었는데, 코뿔소나 코끼리가 벽을 개박살내며 탈주해서 소은이를 보호하려 했었다.
“게다가, 동물들이 사람 보는 눈이 좋거든요. 사람을 딱 보았을 때, 심성이 착하다 아니다 정도는 구분을 해요. 이 인간이 나를 괴롭히거나 귀찮게 굴지 않을 거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하, 그러니까 최소한 그런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는 거네?”
“그렇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니, 다른 형들이 좋은 방법이네- 하고 동조했다. 하지만, 해준 형은 조금 반응이 달랐다.
“잠시만……. 그 기준을 통과해야 허락해 줄지 말지 생각해 주는 거야? 허락해 주는 게 아니라?”
“당연하죠.”
이 형은 뭘 당연한 걸 묻고 있어? 심사는 2차에 3차에 4차로도 부족한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