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04
0303 세끼(4)
“은수가 봤음 엄청 좋아했겠네.”
텃밭을 보고 있으니, 문득 은수가 생각났다. 잘 가꿔진 작물들을 보면 그렇게 좋아하는 은수였으니,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맞다.”
그런데 은수 생각을 하고 있으니, 바다 형이 갑자기 멈춰 섰다.
왜 그런가 싶어 바라보니, 걱정스럽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혹시, 닭 같은 것도 괜찮아?”
“예? 뭐가요?”
“아니……. 그런 거 있잖아. 계란을 가져가고 그런 거.”
“아아.”
나는 바다 형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동물 학대 논란이 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기 때문이다.
알을 품고 있을 암탉들에게 알을 뺏어서 가져오는 것이 동물 학대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소리였다.
“혹시, 닭장에 수탉도 있어요?”
“수탉은 없지. 전부 다 암탉이야. 그건 왜?”
“그럼 문제없어요.”
나는 나와 바다 형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닭 이외의 조류들도 무정란을 낳기는 해요. 가축화되어 알을 많이 낳는 닭과 다르게 자주 낳지는 않지만요. 아예 안 낳는 경우도 있긴 하고요.”
“그래? 무정란은 닭만 낳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죠. 실제로 조류를 키워 봐야 알 수 있는 거니까요. 저희 동물원에는 조류도 여러 종이 있는데, 메추리나 앵무들이 무정란을 자주 낳는 편이에요. 그리고, 앵무들은 보통 발정기에도 번식을 하지 않으면 무정란을 낳죠.”
바다 형뿐만 아니라, 카메라 감독도 신기하다는 듯이 오- 하며 입술을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요.”
“문제?”
“네. 새들이 일단 무정란도 자기 알이니까, 품으려고 한다는 거죠.”
“그게 문제가 되는 거야?”
“좀 그런 편이에요. 새들이 알을 품는다는 건 어마어마한 체력을 소모하니까요. 밥도 먹지 않고 알을 품는데만 집중하는 종도 있거든요. 그런 개체들은 보통 짝이 밥을 챙겨줘야 하는데, 무정란이니 짝이 있을 수가 없죠. 그냥 굶으면서 무정란을 품는 거예요. 이게 부화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까지요.”
“아…….”
바다 형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정란이 확실할 때는, 무정란이라는 걸 인지시키고 알을 빼주는 게 좋아요. 다른 사람들은 인지시키는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조심스럽게 빼내는 게 중요하고요. 저도 동물원에서 무정란이 확실한 것들은 처리를 하는 편이에요. ”
말이 나온 김에 닭들도 한 번 보러 가기로 했다.
나름대로 큼직하게 지어진 닭장에는 여섯 마리의 닭들이 모여, 싸우고 있었다.
“어? 어?”
옆에서 바다 형이 놀란 모습을 보니, 이런 경우가 처음인 것 같았다.
“머, 멈춰!”
푸드닥푸드닥, 닭 주제에 날아다니며 힘차게 싸우는 녀석들을 보며 재빨리 마법의 단어를 사용했다.
날아오르던 모습 그대로 다시 추락하는 닭들의 모습에, 닭장 문을 열고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왜 싸우고 있어?”
“이 년이 내가 먹을 모이를 먹었딱!”
“아니딱! 저 년이 내 걸 노린 거딱!”
아주 참 단순한 이유로 싸운 것이었다. 동그란 플라스틱 접시에 모이가 가득했는데, 그게 서로 자기 것이라며 싸운 것이었다. 물론, 동물들이 싸울만한 이유로는 충분했지만 말이다.
나는 적당히 싸우지 말라며 달래준 다음, 밥그릇과 물그릇을 더 가져와 나누었다. 여섯 마리가 한 번에 밥을 먹기엔 그릇이 조금 작은 탓이라고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싸우지 않고 잘 먹는 닭들의 모습을 보며, 녀석들이 낳은 알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알이 하나 있었다.
“이거 가져갈게.”
“그건 내 알이딱!”
자기 알이라며 날개를 파닥거리는 한 마리의 닭을 보고선, 곧바로 교육 아닌 교육을 시작했다. 수탉과 교미하지 않고 낳은 알은 무정란이고, 그것에서는 병아리가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었다.
“그럼 가져가도 된딱!”
병아리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면 미련이 없는 건지, 닭들은 알을 가져가도 된다고 무심한 모습을 보였다.
알 하나를 챙겨 닭장을 나온 나는, 주변 일대를 다 소개받았다. 집 뒤로 난 길을 따라가면 숲이 나오고, 그 뒤로 가면 낚시하기 좋은 곳이 있다고 알려준 것이었다.
그렇게 주변 일대를 둘러본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가니, 모두들 할 일을 끝냈는지 느긋하게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후 더워. 어떻게 선풍기도 안 주냐. 이거 인권 유린 아냐?”
“선풍기 있잖아?”
“야익, 방에 고정된 벽걸이잖아! 그거 뜯어 와?”
아니, 세진 형은 피디와 기싸움 중이었다.
그러다가 우릴 발견했는지, 기싸움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놀이나 하러 가자! 더워서 안 되겠다.”
“물놀이? 좋지이. 수환아, 너도 괜찮지?”
“저야 좋죠.”
짐을 그냥 방에 던져둔 상태로 풀지도 못했는데, 물놀이부터 가게 됐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마루나, 애초에 물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긴 펭귄인 페엥을 함께 데리고 나섰다.
깨끗한 해변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가 잔잔하게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느낌에, 우리는 다 같이 물에 입수했다. 시원한 물이 몸을 휘감으며, 더위를 싹 잊게 해주었다.
“나 잡아바랑!”
“잠수는 반칙이야!”
물론, 페엥과 마루 역시 무척 즐겁게 놀고 있었다. 물론, 물 위를 뛰어다니는 마루를 보며 사람들이 무척 신기해 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수영도 하고 물놀이를 하며 조금 친목을 다졌다. 튜브에 올라탄 상태로 멍하니 있다가 떠내려가던 세진 형을 페엥에게 구해오게 시키는 등 사소한 일이 있던 덕분에 더더욱 친해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즐겁게 논 우리는 슬슬 저녁 재료도 준비할 겸 물놀이를 끝냈다. 바다 형이 낚싯대를 잡아들었다.
“낚시하시게요?”
“저녁 먹을 것도 낚아야지. 안 그럼 우리 선수가 얼마나 눈치를 주는데.”
“내가 언제!”
투닥거리는 것으로 사이좋음을 어필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유부와 아라를 불렀다. 얘들이 잠깐 수고를 해주면 풍족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나를 막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피디였다.
“잠깐만요!”
다급히 다가온 피디는 두 녀석에게 물고기를 잡아오도록 부탁하려는 나를 말렸다.
“유부와 아라에게 시켜서 물고기를 낚아오는 건 금지입니다!”
“아 왜 또!”
“아니, 형. 자급자족이라니까?”
“자급자족이잖아! 유부랑 아라는 수환이랑 세트니까, 우리 멤버지!”
“아니……. 아무튼 안 돼!”
투닥거리는 세진 형과 피디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나는 두 녀석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적당히 주변을 날아다니며 놀다가, 알아서 돌아올 것이었다.
그렇게 두 녀석을 놀도록 풀어준 다음, 아쉬워하는 세진 형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유부랑 아라가 바다에서 잡을 수 있는 건 숭어 정도예요. 뛰어오르는 걸 기다렸다가 잡거나, 수면에 가까이 있을 때만 잡을 수 있는 거죠.”
“그래? 하긴, 숭어는 아까 많이 먹긴 했지.”
“그런 의미에서 저녁은 조개탕 어때요?”
“조개? 여기서 무슨 수로? 여긴 물이 거의 안 빠지더라고.”
세진 형이 의아함이 가득 담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섬이 뾰족한 산봉우리처럼 생긴 곳이라, 물이 좀 빠진다고 해도 갯벌이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따로 가지고 있던 주머니를 꺼냈다. 휴대폰 같은 걸 넣어놓으려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것이 들어 있었다.
“어? 조개잖아! 이거 어떻게 구했어?”
“페엥이 캐왔더라고요. 잠수해서 뭔갈 찾아오는 걸 보물찾기 같은 놀이라고 좋아하다 보니까, 조개를 가득 잡아 왔더라고요.”
주머니에는 조개가 가득했다. 깊은 곳까지 잠수했던 페엥이, 바닥에 있던 조개들을 하나씩 하나씩 주워온 것이었다.
사실 미각이 거의 없기에 짠맛 정도만 느끼는 펭귄이라 엄청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개를 좋아해서 가져온 것이었다. 한 마디로, 까서 달라는 것이었다. 물고기를 통으로 먹는 펭귄이라, 조개를 까는 재주는 없었다.
“이 정도면 조개구이까지 해도 되겠는데?”
“네. 대신 좀 구워서, 페엥한테도 좀 줘야 해요. 자기가 먹고 싶어서 캐 온 거니까요.”
“아니…….”
그리고,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피디가 허탈하다는 듯이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설마하니 펭귄이 조개를 캐서 올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성원 씨! 조개탕 할 줄 알죠?”
짙은 보조개가 박힌 미소를 지으며, 조개가 든 주머니를 들고 호다닥 뛰어가는 세진 형이었다.
“하아.”
“저한텐 이것도 자급자족이에요.”
옆에서 한숨 쉬는 피디에게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변명했다.
“그래도, 다음부턴 동물들로 재료를 캐오게 하시면 안 됩니다.”
“네, 걱정 마요.”
제발 부탁한다는 피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동물들이 없다고 쫄쫄 굶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직 체감하지 못한 듯했다.
나는 저녁 걱정을 덜었다며 기뻐하는 형들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동물들이 형들에게 아주 예쁨 받는 모습을 보며, 맛있게 끓은 조개탕과 알맞게 익은 조개구이를 입에 털어 넣었다.
“마이?!”
“잘 먹네~ 자, 더 먹어라!”
덕분에 맛있는 저녁을 먹게 됐다고 즐거워하는 세진 형이 페엥에게 조개를 먹여주었다. 혹여 뜨거울까, 후후 불어서 식혀주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의외의 모습까지 발견하며 맛있고 즐거운 저녁을 즐긴 우리는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편안한 집과 달리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잠을 자게 됐지만, 곁에서 고로롱고로롱 숨소리를 내는 마루 덕에 나름대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 웬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에 잠에서 일어나게 됐다.
휴대폰 알람을 꺼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평소에 일어나는 것보다도 한참이나 늦은 시간이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일어났던 건지, 이부자리만 남아 있었다.
“뭐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이었다.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쓸어넘기며 밖으로 나왔다.
“해준 형. 방금 무슨 소리예요?”
“아, 일어났어? 이거 봐!”
밖에 나오니, 마당에 있던 해준 형이 상기된 얼굴로 이걸 보라며 바구니 하나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반질반질한 계란들이 차가운 물에 담겨 있었다. 열 개 정도 되어 보였는데, 그게 조금 전의 소리와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그냥 계란이네요?”
“무려 열 개나 돼!”
그제야 나는 해준 형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하루에 몇 개 안 되는 계란을 얻었는데, 아침부터 열 개나 되는 계란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한 개도 안 주더니, 너 왔다고 이렇게 주는 거 좀 봐. 역시 드루이드가 대단하네.”
열 개나 준 것은 무조건 내 초능력의 영향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해준 형을 뒤로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가볍게 세수를 하고 나왔다.
어느새 호들갑에 동참한 다른 형들의 모습을 보며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야아, 계란이 이렇게 많아? 오늘 아침은 간단하게 프라이에 계란국으로 할까?”
“오, 좋아좋아. 간단하게 먹고 쉬자 좀.”
“도련님은 이제 그만 쉬어도 되지 않을까?”
“아익, 내가 언제 쉬었다고. 해준아, 가서 불 좀 피워라.”
“네…….”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만담 같은 것을 구경하던 나는, 순식간에 차려지는 아침을 먹고 가볍게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워낙 활동량이 많은 마루를 데려왔으니, 이 녀석이 충분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줘야 했다.
“산책 가시려고요? 그럼 저희도 따라갈게요.”
그리고, 내가 산책을 나가려고 하니, 몇몇 카메라 감독들이 나를 따라오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따라오면 힘드실 텐데, 그냥 헬리캠으로 찍으시는 게 나을걸요?”
“에이, 걱정 마세요. 저희가 체력 하나는 끝내줍니다. 무거운 거 들고 얼마나 뛰어다니는데요. 바다 씨가 뛸 때도 저희가 다 따라갑니다.”
자신감 넘치는 카메라 감독들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나는, 마루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뛰어? 뛸 거야? 뛰자! 뜀! 와아앙!”
산책을 가는 것임을 눈치챈 녀석은 집을 나서자마자 전방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스포츠카도 이 정도의 순간 가속력은 내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며, 나 역시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으악!”
순식간에 카메라 감독들이 뒤처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숲길을 내달렸다.
힘껏 달리고 있으니, 어느샌가 헬리캠이 하늘에서 나를 찍는 모습이 보였다. 적당히 손을 흔들어주며, 계속해서 마루를 따라 섬을 돌았다.
마치 프로펠러처럼 흔들어 추진력이라도 얻는 건지, 마루의 꼬리가 아주 힘차게 도는 모습을 보며 땀을 쭉 빼고 나니 무척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