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07
0306 북극곰(1)
하루세끼의 촬영이 끝나고 며칠 가량이 흘렀을 때, 해준 형을 비롯한 형들이 정말 동물원을 찾아왔다. 섬에서 보았던 동물들 외에도 여러 동물들과 직접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형들이 꽤나 긴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떠나갔다.
그리고, 누나는 그런 형들에게 정말 싸인을 받고서 즐거워했다. 구겨지지 않게 조심히 보관하는 그 모습에 괜히 심술이 나, 나도 싸인을 해주기로 했다.
내 싸인을 거절하려는 누나의 거절을 거절하고, 그대로 누나의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갔다. 쪼오옥- 힘차게 목덜미를 물고 빨았더니, 누나의 목덜미에 내 입술 형태에 가까운 붉은 자국이 남았다. 누가 봐도 저건 키스마크다! 라고 할만한 것이 새겨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키스마크를 남기고 나니, 내게도 마크가 하나 남았다. 일명 핸드마크라고, 이러고 어떻게 밖을 다니냐고 외친 누나가 내 등에 남긴 손바닥 자국이었다.
물론, 그런 자국을 얻었다지만 한 점 후회는 없었다. 뭐, 며칠 지나면 없어지겠지.
그렇게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시간을 보낸 나는,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누나와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아쿠아리움 한 편에 만들어 놓은 수영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뜨거운 여름에는 바다고 뭐고, 역시 실내 수영장이 최고였다.
“히히?, 아빠 등에 손자국 이써!”
“그래. 아빠가 엄마한테 싸인해 주니까, 엄마가 너무 좋았나 봐.”
“오오옹.”
신기하다는 듯이 내 등을 바라보는 소은이를 데리고 물장구를 쳤다. 그렇게 잠시 물을 헤엄치고 있으니, 아쿠아리움에서 놀다가 찾아온 펭귄들이 물속으로 포로록 뛰어들었다.
“꺄하하하항! 나 잡아 봐라아아아!”
소은이는 그런 펭귄들과 함께 열심히 헤엄을 치며 넘쳐나는 체력을 소진시켰다. 오늘 저녁엔 잘 자겠군.
그렇게 소은이가 문제없이 펭귄들과 노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내 등에 새겨진 손자국의 주인과 은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꺄앙!”
“은수는 신선놀음이 좋은가 보네.”
동그란 형태로 중심에는 물에 빠지지 않도록 그물망이 쳐져 있는 튜브에 올라탄 은수는 허리 부근까지 차오른 물을 찰박찰박 치며 좋아했다.
주변에서 누가 움직이며 파도치듯 물결이 일면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 은수의 곁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며 물결을 만들어 주었다. 꺄르륵 웃음을 터트리며 좋아하는 모습에 움직이는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국 아직도 남아 있네?”
“누가 있는 힘껏 자국을 남겨줘서.”
“흥, 네가 남긴 것도 아직 있거든?”
“아쉽다. 사라졌으면 또 만들어 주는 건데.”
“야!”
설마 또 하는 건 아니겠지- 하고 슬쩍 도망치려는 누나를 붙잡고 물속으로 다이빙하듯 잠수했다. 물결이 크게 이니, 은수가 좋다고 꺄르륵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우리 가족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느덧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을 시간까지는 아니었고, 힘차게 움직이다 보니 허기가 지는 것이었다.
“간식 먹으러 가자!”
“와아아아앙! 간식이다아아앙! 근데 뭐 먹어?”
즐겁게 놀며 제일 무더운 시간을 피했으니, 만족스러운 얼굴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간식을 먹고 있으니, 한 직원이 나를 찾아왔다.
“무슨 일이에요?”
“그, 서울에 있는 가상 동물원에서 협조 요청이 있습니다.”
“협조 요청?”
“현재 가상 동물원에 북극곰이 있는 상태인데,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여름이다 보니, 아무리 온도 조절을 해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이 여름에 한국에서 북극곰을 데리고 있는 동물원이 있었어?
나는 북극곰이 있는 동물원이 있다는 소리에 꽤나 놀랐다. 아무리 환경을 조성해 준다고 해도, 북극곰에겐 한국의 기후가 맞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리 신경을 쓴다고 해도, 환경에서 오는 부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설마, 그 북극곰을 맡아 달라는 소리는 아니겠죠? 우리도 북극곰을 위한 설비는 없잖아요.”
“일단 북극곰을 맡아 달라는 건 맞습니다. 다만, 설비는 따로 제작할 수 있을 것 같긴 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가상 동물원 측에서도 설비 제작에 지원을 하기로 했고요.”
“설비를 만드는 게 어렵진 않겠어요?”
“시설팀에서는 일단 파충류관과 연결하면 크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나는 뜬금없이 파충류관이 나오는 것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어진 설명에, 대강 어떤 원리로 하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냉방 장비에서 필히 나오는 열기를 이용해, 열대동물들에게 알맞은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었다. 냉기가 필요한 동물과 열기가 필요한 동물들 모두를 한 번에 만족시키겠다는 소리였다. 두 장소가 필연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흠…….”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북극곰은 한국에서 사육하기 좋은 동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고민은 순식간에 끝을 맞이했다.
“부끄꼼? 나 져아!”
입안 가득 간식을 물고 있던 소은이가 호다닥 튀어나와, 북극곰을 키우자며 나를 짤짤 흔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짤짤 흔들며 입을 가득 채우던 간식을 우물우물 열심히 씹어 삼킨 소은이가 나를 재촉했다.
“나, 나 북극곰 볼래! 우리 북극곰 키우자! 북극곰!”
“떽. 아빠가 떼쓰면 어떻게 한다고 했지?”
“동물이랑 못 논다고 했어. 힝.”
소은이는 아쉬워하면서 나를 짤짤 흔들던 것을 멈추었다. 하지만 여전히 애절함이 그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들어주지 않고는 못 버틸 그 눈빛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아앙!”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만세를 한 소은이는 그대로 호다닥 달려나갔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근처에 있던 직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된 거, 북극곰을 받는 거로 하죠. 물론, 관련 시설의 준비가 먼저 끝나고 나서요.”
내 말에 조속히 준비를 하겠다며, 직원이 호다닥 뛰쳐나갔다.
갑작스레 북극곰을 사육하게 되긴 했지만 딱히 손해는 아니었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금 집으로 들어왔다.
동물원에 새로운 동물이 들어온다는 것은 곧 기존 동물원에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여기던 이들을 다시 찾아오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소은이는?”
“북극곰 키운다니까 갑자기 나갔는데?”
“……북극곰?”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한 누나의 말에, 나는 직원이 해준 이야기를 이야기해 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북극곰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인지, 누나 역시 조금은 기대된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누나가 만든 간식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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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의 동물원 합류가 확정되자, 곧바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어마어마한 자본을 한 번에 들여, 어마어마한 인력을 투입하니 공사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관련 준비가 모두 끝났다는 것에, 나는 곧바로 공사 결과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파충류관이었다.
“아따, 뜨시다.”
“좋냐?”
“니도 나이 들어바라. 뜨신 게 최고다.”
인간으로 치면 영감님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나이 대의 도마뱀 한 마리가, 그렇게 진행된 공사의 결과물 앞에서 눈만 꿈뻑이고 있었다.
북극곰을 비롯한, 한대기후 동물의 터전이 될 곳을 위해 냉방을 가동하면서 나오는 열기를 파충류 관을 비롯한 열대기후 동물들의 영역으로 몰아주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온열등이나 히터를 이용할 때 보다 조금 더 온도가 높아진 상황이었다.
냉방을 하며 나오는 열기가 지금 도마뱀이 있는 파충류관을 후덥지근하게 덥히고 있는 것이었다. 뙤약볕에 내리쬐는 외부보다도 더 더운 곳이 되어버렸다는 단점은 있지만, 오히려 그 단점이 동물들에겐 장점이 되고 있었다.
“너도 좋냐?”
내 물음에 근처에 있던 누렁이 녀석이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대답을 하기보다는 몸으로 말해요를 즐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대기후 동물들에게 천국이 완성된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바로 곁에 있는 한대기후 동물들을 위한 곳으로 향했다.
[주의 – 현재 내부 기온 -10도. 필히 비치된 방한복을 입고 입장해 주세요!]얼음궁전이라는 이름을 붙인, 한대기후 동물들이 살아갈 곳의 입구에는 큼지막하게 주의 표시를 걸어 두었다. 내부를 아주 한계까지 춥게 만들다 보니, 여름 같은 계절에 그냥 들어갔다간 감기에 걸리기 딱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 정도 온도차를 오가면서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비치된 방한복을 꼼꼼히 껴입은 다음, 새하얀 김이 스멀스멀 피어 나오고 있는 얼음궁전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흐어, 춥다!”
절로 춥다는 말이 나오는 것에, 나는 새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이미 몇 마리 동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무더운 열기를 피해 들어온 곰돌이 같은 녀석들이었다. 하나같이 털이 두꺼운 녀석들이었는데, 얼음궁전이 생기고 무척 좋아하던 녀석들이었다.
“여기 너무 좋아유.”
어디서 얻은 건지 모를 꿀 사탕 하나를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으면서 바닥을 뒹구는 녀석은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물론, 가장 추운 부분까지 버티긴 힘들었기에 입구 주변에 있는 실정이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얼음궁전까지 정상적인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북극곰을 데리러 가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서울에 도착한 나는 곧장 북극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미리 연락이 된 상태로 이동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프리패스로 북극곰을 볼 수 있었다.
“더……………워……………………. 나…………… 주거……………….”
열심히 냉방을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외부의 온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북극곰은 힘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이게 곰인지, 장식용 곰 가죽인지 모를 모습을 하고 있는 북극곰에게 다가간 나는 곧장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엉………?”
“시원한 곳으로 갈래?”
“시원…………!”
내 말에 힘 없이 늘어져 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거짓말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한 눈빛은 덤이었다.
괜히 위협하는 듯한 녀석의 새카만 코에 톡- 딱밤을 날린 나는, 곧바로 녀석을 데리고 나왔다.
무더운 열기 때문인지, 녀석은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렇게 따라온 녀석은 곧바로 냉동차량에 탑승했다. 따로 동물 운송용 차량은 아니었지만, 내부에 충격 방지용 스펀지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둔 상태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냉동 수준의 냉방이 안 되는 운송용 차량은 도움이 안 되었으니 말이다.
“흐아, 살겠다!”
나는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추워서 달달 떨리는데, 북극곰은 역시 북극에서 사는 동물답다고 해야 할지 아주 좋다며 바닥을 뒹굴었다.
“여기서 좀 혼자서 있을 수 있지? 무슨 일 있으면 이거 누르면 돼. 배고프면 저기 얼음 안에 먹을 게 있으니까 깨서 먹고.”
“언제까지 있어야 돼?”
“좀 걸릴 거야. 다른 곳으로 갈 거거든. 여기는 계속 있기엔 좁잖아? 넓으면서도 시원한 곳으로 갈 거야.”
“시원한 거 좋아!”
북극곰 녀석은 시원하면 어딜 가도 된다는 듯, 내게 코를 슥슥 비벼댔다. 마치 애교를 부리는 듯한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녀석을 냉동차에 태운 채로 빠르게 동물원을 향해 내달렸다. 물론, 운전은 운송차량 담당 기사가 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