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08
0307 북극곰(2)
빠르게 이동한 차량은 곧장 고속도로로 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이동하다가 가장 가까운 휴게소로 진입했다.
따로 휴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고, 뒤에 있을 북극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냉동차량의 짐칸 문을 여니, 북극곰 녀석이 편안하게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으억, 더워! 빨리 닫아!”
그리고, 그렇게 널브러져 있던 녀석은 내가 문을 열며 들어온 열기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마치 에어컨에서 나온 냉기가 빠져나간다고 투덜거리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녀석의 상태만 재빨리 확인하고 다시금 문을 꼭 닫아주었다. 닫힌 문 내부에서 크헝-하고 만족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휴게소 두 개 정도는 패스해도 될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내 말에 운송 담당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몰았고,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한참을 이동하고 있으니, 삑- 하고 소리가 났다. 짐칸에서 앞쪽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둔 장치가 작동한 것이었다. 짐칸 내부에 있는 북극곰이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임을 눈치챈 나는 마침 근처에 있던 휴게소로 향했다.
문을 살짝, 냉기가 빠져나와도 많이 빠져나오지는 않도록 열어 내부를 바라보았다.
“왜?”
“나 배고파.”
“배고파? 먹을 거 넣어뒀……. 다 먹었구나.”
얼음까지 와그작 와그작 다 씹어 먹었던 건지, 바닥에 물 한 방울도 없었다.
나는 녀석에게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하고서, 곧바로 휴게소의 편의점을 향해 움직였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는데, 그런 이들에게 적당히 호응을 해주면서 편의점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물건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동물들에게 먹여도 되는 닭가슴살부터 시작해서, 사과나 배 같은 과일까지 싹 쓸어가듯이 골랐다.
배가 고프다고 하는 북극곰이니, 이 정도는 되어야 그나마 배가 좀 차겠지 싶었다.
휴게소 편의점에서 이 정도로 쓰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금액을 결제한 뒤, 그것들을 들고 차량으로 향했다.
내가 내린 차량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들이 근처에서 구경하고 있었기에, 나는 얼마든지 보라고 짐칸의 문을 활짝 열었다.
“더운 거 싫어!”
문이 활짝 열리며 들어간 열기에, 북극곰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냉기가 풀풀 뿜어져 나오는 냉방장치 앞으로 몸을 피했다. 이 녀석은 따로 우리를 만들 게 아니라, 라디에이터 같은 온열기구만 주변에 깔아두면 되는 게 아닐까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와, 북극곰이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북극곰의 모습에 신기해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녀석에게 먹을 것을 쏟아냈다. 배가 고팠던 녀석은 내가 들이붓는 것처럼 내려놓는 먹이를 마구 탐했다. 날카로운 이빨이 닭가슴살을 찢고, 사과를 으깨고 있었다.
“먹고, 나중에 또 무슨 일 있으면 또 두드려. 알았지? 그렇다고 너무 세게 두드려서 망가트리진 말고. 저거 망가지면 시원한 바람 안 나온다?”
“히익!”
내 경고에 북극곰이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며, 냉방기를 보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귀여운 그 모습에 푸하핫- 웃음을 터트리고서 짐칸의 문을 닫았다.
그렇게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러 북극곰의 상태를 확인하며 이동하길 몇 시간. 허리가 뻐근해질 정도로 차를 타고 움직이고 나니, 어느덧 동물원의 입구를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어우, 죽겠네. 수고하셨어요.”
“아닙니다. 이게 제 일인 걸요.”
“그래도 고생한 건 맞잖아요.”
운전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장거리라면 더더욱. 나는 특근 수당을 따로 더 챙겨주기로 하고 차에서 내려, 북극곰의 상태를 보러 짐칸으로 향했다.
“압빠!”
그리고, 내가 온 것을 어떻게 알아차린 건진 몰라도, 소은이가 나를 바라보며 기대감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북극곰을 데리러 간다고 나간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대감에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소은이의 볼을 콕- 찌르고선, 소은이와 함께 짐칸으로 향했다.
“자, 개봉 박두!”
“와아아앙!”
짐칸의 문을 여니, 소은이가 손뼉을 짝짝 치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 환호성은 금세 잠잠해졌다.
다름이 아니라, 소은이가 격하게 반겨줄 북극곰이 코를 커어어억- 골면서 잠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쉬이이잇!”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한 북극곰의 모습에, 소은이는 입에 손가락을 대고 쉿- 소리를 내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 쉿- 하는 소리가 제법 컸다는 것이었다.
“응컥?”
그 소리에 북극곰이 잠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물론, 소은이에겐 그것은 별로 중요치 않았지만 말이다.
“와앙! 북극곰 깼어!”
북극곰이 멍하니 일어나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소은이가, 냅다 냉동차에 뛰어 올라가더니 북극곰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꾸오오옹?!”
그리고, 난데없이 소은이를 품에 안게 된 북극곰은 멍하니 있던 정신을 일깨우더니,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엄청 귀엽잖아!”
소은이의 모습을 확인한 북극곰 녀석이 소은이를 품에 안은 채, 그대로 발라당 넘어졌다. 덕분에 소은이는 녀석의 배 위에서 해맑게 웃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추워!”
“아이고, 추우면 안 되지!”
그리고, 그렇게 배 위에 소은이를 올려두고 있던 북극곰 녀석은 소은이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복슬복슬한 털 사이에 파묻히게 된 소은이는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히히, 압빠. 엄청 따듯해!”
해맑은 미소로 따듯하다며 좋아하는 소은이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짐칸으로 올라가, 소은이와 북극곰을 데리고 내려왔다.
아니, 내려오려 했다.
“꾸어어엉! 더운 거 싫어!”
짐칸에 보물이라도 숨긴 것처럼, 녀석은 짐칸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열기 때문이었다.
“여기보다 더 시원한 곳으로 갈 거니까, 내려와.”
“……더 시원한 곳? 진짜?”
“그래.”
더 시원한 곳으로 간다고 이야기하니, 북극곰 녀석이 한참을 망설이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꾸엉꾸엉- 나가기 싫다는 듯이 아쉬움 가득한 소리를 내며, 짐칸과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 더워 주거…….”
냉기 가득한 짐칸에서 내려오자마자, 녀석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도망칠 것을 대비해, 짐칸의 문을 닫는 것으로도 모자라 차량 자체를 이동시켰다.
“꾸엉!”
멀어지는 냉동차량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북극곰 녀석은 아주 느린 걸음으로 힘겹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설기 화이팅!”
“백설기? 북극곰한테 이름지어 준 거야?”
“웅! 얘는 하얀 털이 복슬복슬하니까 백설기야!”
며칠 전에 백설기에 꿀을 찍어 먹었던 기억이 강렬했던 건지, 소은이는 북극곰에게 백설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원래는 흰둥이라고 하려고 했는데, 흰둥이가 이미 있어!”
“아, 흰머리오목눈이?”
“웅웅.”
흰둥이라는 더 쉬운 이름이 순간 떠올랐다가, 자기가 이미 다른 녀석에게 지어주었다는 것도 같이 떠올린 듯했다.
그런 소은이의 말에 피식 웃으며, 소은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소은이가 백설기 화이팅-이라는 소리를 계속 외친 덕분인지, 백설기 녀석은 어떻게든 얼음궁전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다!”
백설기 녀석은 얼음궁전의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냉기를 발견하더니, 호다닥 달려나가 문틈에 코를 갖다 박았다.
문틈에 얼굴을 박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히히?, 백설기 빵댕이!”
소은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백설기 녀석의 엉덩이를 ?! 두드렸다. 물론, 냉기에 정신이 팔린 백설기 녀석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당연히, 씰룩거리는 엉덩이 역시 그대로였다.
그런 백설기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문에 달려 있는 스위치를 탁- 눌렀다. 동물들이 멋모르고 들어가지 않도록, 버튼을 눌러야 열리도록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꾸오오오오옹!”
이윽고 지잉-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니, 백설기 녀석이 힘차게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대로 냉기가 철철 넘쳐흐르는 내부를 향해 돌진했다.
마치 어느 다큐멘터리에서나 볼법한, 북극곰의 사냥 장면을 재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곰돌이 주거유!”
근처에 있다가 저돌적인 백설기의 몸통박치기에 당한 곰돌이가 튕겨져 나뒹굴었다.
하지만 워낙 튼튼한 녀석이다 보니, 딱히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소은이와 방한복을 챙겨 입고서 얼음궁전 내부로 향했다.
“곰돌이 안녕!”
“아가씨 안녕하셔유!”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드는 곰돌이를 뒤로하고, 얼음궁전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향했다.
은근슬쩍 소은이 뒤에서 따라오는 곰돌이와 함께, 콜드스팟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 도착하니 백설기가 있었다.
“하아아아아. 좋아! 시원한 게 최고야! 늘 짜릿해!”
차갑디 차가운 얼음판 위에서 뒹굴뒹굴 구르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백설기였다.
그리고, 그런 백설기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니, 우리보다도 백설기에게 먼저 다가가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바로, 소은이 뒤에서 졸졸 따라오던 곰돌이였다.
“지를 이렇게 치고 간 암컷은 처음이여유! 지와 진지허게 교제를 해보지 않겠어유?”
“압빠! 곰돌이가 백설기한테 고백해써!”
백설기에게 다가간 곰돌이는 냅다 고백을 박았다.
소은이는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입을 가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어서 백설기가 그 고백에 대답해 주길 바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나와 백설기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동물들이 구애하는 것을 엄청 많이 봤음에도, 곰돌이 녀석처럼 대놓고 고백하듯이 이야기하는 녀석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자신의 수컷다움을 자랑하거나, 자신이 구해온 먹이 같은 것들을 가져와 호감을 끌어내는 편이었다.
그리고, 백설기는 그 고백을 받은 당사자였기에 더더욱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어, 어?”
이런 고백은 태어나서 처음인지, 백설기가 당황스럽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그 당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녀석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곰돌이의 고백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처음 본 곰은 좀.”
“꾸우웅. 알았시유. 하지만 지는 포기하지 않을 거여유!”
하지만 곰돌이는 포기하지 않았다며, 도망치듯 어디론가 사라졌다.
호다닥 사라진 곰돌이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나는 백설기의 곁으로 다가가, 이곳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여기? 전에 지내던 곳보다 시원해서 좋아. 짜릿해. 최고야!”
“다행이네. 일단 따라와. 앞으로 여기에서 지낼 거니까,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려줄게.”
만족하는 듯한 백설기의 모습에, 나는 녀석을 데리고 얼음궁전을 소개해 주기로 했다. 이 녀석이 앞뒤 가리지 않고, 가장 추운 곳으로 냅다 달려오는 바람에 설명해 줄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설기야! 나 태워줘!”
“귀염둥이, 언니 위에 타고 싶어? 타!”
그리고, 나는 냅다 백설기 위로 올라타는 소은이의 모습을 보며, 천천히 움직여 얼음궁전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