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09
0308 북극곰(3)
“여기는 앞으로 널 돌봐줄 사람이 네가 먹을 것들을 챙겨줄 곳이야.”
사육사가 먹이를 챙겨주기 위한 장소부터 시작해, 냉대기후 동물들이 더 들어왔을 때를 대비해 만든 화장실과 관람객들이 지나다니는 곳, 잠자리로 쓰기 좋은 아늑한 공간까지 모두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면, 백설기의 등 위에 앉은 소은이가 백설기의 눈높이에 맞는 설명을 해주는 것에 가까웠다.
“배변하고 싶을 때는 여길 이용하면 돼.”
“응가는 저기 안에서 해야대!”
아니, 소은이 본인의 눈높이인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얼음궁전에 대한 설명을 마친 나는 다시금 가장 온도가 낮은 곳으로 돌아와, 백설기 녀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저기 인간이야!”
그런데, 그 순간 얼음궁전을 돌며 체크하던 한 직원을 발견했는지, 백설기 녀석이 그 직원을 바라보았다. 더울 때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더니, 시원함에 여유가 생기니 관심이 생기는 듯했다.
“아까 말했지? 저쪽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닐 거라고.”
“응, 그랬지.”
“사람들은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종종 찾아올 거야.”
“별게 다 궁금하네.”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그 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사람들이 근처에 다가온다고 해도 공격하면 안 돼. 알겠지?”
“웅웅. 우리 동물원에서는 착한 동물들은 사람들 공격 안 해!”
“뭐, 배고프지만 않으면 인간들을 공격할 이유는 없지.”
소은이까지 사람을 공격하면 안 된다고 하니, 백설기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차피 동물원에서 지내던 녀석인 만큼, 인간들의 접근을 자주 겪어 보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물론, 지근거리까지 접근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인간이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다- 라는 듯이 말하는 녀석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뭐……. 대신이라고 하기 그렇긴 한데, 오히려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 애교라도 부리면 맛있는 고기를 던져줄 수도 있을걸?”
“꾸옹!”
내 말에 백설기 녀석이 놀란 모습을 보이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등에 올라타고 있던 소은이가 털을 꽉 움켜쥐며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소은이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백설기가 갑자기 몸을 덩실덩실 흔들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왼쪽으로 틀며 오른쪽 앞발을 들어 올리고, 엉덩이를 오른쪽으로 틀며 왼쪽 앞발을 들어 올리는 식으로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보이는 것이었다.
심지어, 녀석은 몸을 몇 번 흔들다가 앞발을 배 앞에서 빙글빙글 돌리기도 했다.
누가 봐도 춤을 추는 것임이 분명한 그 동작에, 나는 멍하니 녀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순간 이 녀석이 미쳐서, 정형행동을 보이기라도 하는 건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뭐야? 안 줘?”
“어? 아, 어. 그래.”
하지만 이내 녀석이 그런 행동을 보인 이유가, 내가 말했던 ‘맛있는 고기’가 원인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따로 준비해두었던 고깃덩이 하나를 가져와 녀석에게 던져 주었다.
“맛있는 고기이!”
고깃덩이 하나를 던져 주니, 백설기가 고깃덩이를 순식간에 베어 물었다.
“마시써?”
“꾸으우어워옹.”
고기를 덩어리 채 씹는다고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내뱉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소은이는 그저 잘했다는 듯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니, 오히려 조금 전 백설기가 보인 춤을 따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귀염둥이도 먹을래?”
“나는 그거 못 먹어!”
백설기는 자신을 따라 한 소은이의 모습에,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이 먹던 고깃덩이의 일부를 살짝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소은이는 생고기를 먹는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쉬움 가득한 백설기의 제안을 거절한 소은이는 내게 다가와 맡겨 놓은 것이라도 있다는 것처럼 손을 쭉 내밀었다.
“나두 춤췄으니까 간식!”
“……그래, 귀여웠으니까 준다.”
잠시 소은이의 말랑말랑한 찹쌀떡 같은 볼따구니를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고구마 말랭이를 하나 꺼내 주었다. 갯과 동물이나 고구마를 먹어도 되는 동물들에게 간식으로 주는 것이었는데, 사람이 먹어도 문제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이었다.
“히히히.”
고구마 말랭이를 잡고 야금야금 먹는 소은이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백설기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방한복을 입고 있어도 추운 이곳은 오래 있기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귀염둥이야, 또 와야 해!”
“웅웅. 나중에 또 놀러 올게! 백설기 안녕!”
헤어진다는 것이 무척 아쉬웠는지, 백설기는 소은이의 곁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녀석이 떨어진 것은 안전상의 이유로 격리된 곳을 벗어날 때 즈음이었다.
아직 동물원에 완벽 적응한 것이 아니다 보니, 사고라도 칠 것을 대비해서 일반 관람객들과는 마주칠 수 없도록 분리해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격리된 곳을 벗어날 수 없기도 하거니와, 그 즈음부터는 입구에서부터 외부의 열기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상태였기에 백설기가 그곳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히히. 백설기 귀여워!”
“그럼 소은이가 백설기랑 자주 놀아줘. 대신 방한복은 꼭 챙겨 입는 거 잊지 말고. 감기 걸리면 백설기랑 못 놀게 할 거야.”
“웅!”
소은이는 자기가 입고 있던 방한복을 대충 옷걸이에 걸어두고, 어딘가를 향해 달려나갔다.
“곰도라아아아!”
백설기에게 거절당했던 곰돌이에게 가는 듯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과연 곰돌이가 백설기와 짝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이 절로 들었다.
○ ◑ ● ◐ ○ ◑ ● ◐ ○
“흐아아아! 추웠다!”
“와, 진짜 추워서 죽는 줄 알았어.”
“근데 그래도, 북극곰 보니까 엄청 신기해. 아까 춤추는 거 봤어?”
“응. 너보다 잘 추는 거 같더라?”
“야씨! 내가 뭐 어때서!”
“그걸 묻는 네 양심은 어떠니?”
북극곰 백설기가 있는 얼음궁전이 일반 관람객들에게 개방되자, 많은 사람들이 얼음궁전을 찾기 시작했다.
무척 추운 곳이었지만, 오히려 무더운 여름인 탓인지 피서 장소로도 쓰이는 실정이었다. 한여름에 즐기는 혹한과, 냉대기후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얼음궁전에서 무조건 관람해야 하는 것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백설기의 춤이었다. 지나가는 관람객들에게 춤을 보여주고 고기를 받는 즐거움에 푹 빠진 백설기였다.
몸을 덩실덩실 흔들며, 맛있는 고기를 향한 식탐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 춤을 보기 위해, 고깃덩이를 든 채로 오들오들 떨면서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제, 제, 제, 제바…… 추, 춤, 추움……. 춰…….”
따다다다닥- 이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면서도 백설기의 춤을 보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는 관람객의 모습을 보면 입장시간에 제한을 둬야 하나 싶었다.
“드, 드득드, 디어……!”
한참을 달달 떨던 관람객이 백설기의 춤을 보고 기쁨에 겨운 표정으로 살얼음이 끼기 시작한 고깃덩이를 툭- 던져주는 것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그 고깃덩이를 백설기가 맛있게 먹는 순간, 얼음궁전에서 무조건 관람해야 하는 두 번째 모습이 보였다.
“지 왔어유!”
바로, 백설기에게 구애하는 곰돌이의 모습이었다.
매일매일, 매번 거절당함에도 끊임없이 구애하는 곰돌이의 모습은 얼음궁전에서 꼭 봐야 하는 것이 되어 있었다.
“왔어?”
매번 거절하긴 하지만, 그래도 곰돌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백설기였다. 물론, 아무 이유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뭐야?”
“오늘은 꿀을 들고 왔시유.”
바로, 매번 올 때마다 뇌물 아닌 뇌물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곰 주제에 자신의 수컷다움을 자랑하는 대신, 먹이를 가지고 와서 흥미를 끄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곰돌이는 백설기에게서 친밀감을 끌어내고 있는 상태였다.
“구하기 힘든 거예유. 오늘은 그나마 꿀벌들한테 삼백 번 정도만 쏘이고 가져올 수 있었슈.”
저놈 저거, 우리 집 마당에 또 쳐들어왔었네.
녀석은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벌집에서 가져온 것으로 확신되는 벌꿀을 앞발에 가득 바른 채 웃고 있었다. 그것도, 얼굴이 팅팅 부어 있는 상태로. 그나마 꿀벌들이 곰돌이를 죽이겠다는 수준으로 공격한 것이 아니라서 그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샛노랗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꿀을 가져온 곰돌이는 그것을 백설기에게 내밀었다.
“으음…….”
“어서 먹어 봐유!”
처음에는 잠시 망설이던 백설기였지만, 녀석은 이어지는 곰돌이의 권유에 이기지 못한 척 혀를 내밀었다.
“꾸오오옹?!”
그리고, 곰돌이의 앞발에 묻어 있는 벌꿀을 맛본 백설기는 화들짝 놀라더니, 들고 있던 고기 조각을 툭- 떨어트렸다.
“맛있잖아!”
“그렇쥬? 이게 지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유!”
자신의 앞발을 붙잡은 채로 꿀을 핥아대고 있는 백설기의 모습에, 곰돌이가 무척 좋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역시 여자를 꼬시는 건 달달한 건가- 생각이 들 때 즈음, 백설기가 정신을 차리고 한 걸음 물러났다. 녀석도 자기가 달달함 앞에 무릎 꿇은 것이 적잖이 당황스러운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역시 우리 집 벌꿀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달달함을 자랑했다. 백설기는 연신 곰돌이의 앞발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결국, 녀석은 달달함 앞에 굴복해버렸다.
“그거, 어디서 구하는 거야? 여기 안에도 있어?”
“이건 아가씨 집에 가야 있어유.”
“……거기 멀지?”
“조금 멀지유.”
“구해다 줄 수 있어?”
“으음…….”
꿀을 구해달라는 백설기의 말에, 곰돌이가 잠시 망설였다. 우리 집 꿀벌들의 꿀을 훔치기 위해서는 수백 방의 벌침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곰돌이의 고민하는 모습에, 백설기가 슬쩍 녀석에게 다가갔다.
“응? 그러지 말고, 한 번만 구해다 주면 안 될까? 으으응?”
슬쩍 다가와 몸을 비비적거리며 말하는 백설기의 모습에, 곰돌이가 퍼뜩 일어났다.
“지만 믿어유!”
“곰돌아 고마워!”
백설기는 곰돌이에게 냅다 안겨들었고, 곰돌이는 히죽히죽 웃음을 지으며 그런 백설기를 슬쩍 끌어안았다.
“와! 곰돌이가 드디어 백설기랑 포옹했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변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매일매일 까이면서도 끊임없이 구애하는 곰돌이의 모습을 응원하는 이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잠시만 기다려유!”
그리고, 이내 곰돌이 녀석은 백설기를 자리에 두고, 비장한 모습으로 우리 집을 향해 떠났다. 마치 죽음을 불사한 결사대가 전장으로 향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에이씨!”
까딱 잘못했다간 우리 집 담벼락이 무너지게 생겼기에, 나는 녀석보다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모처럼 진도가 나가는 듯한 곰돌이의 모습에, 내 나름대로의 선물을 주기로 했다. 꿀을 적당히 내어주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담벼락을 보호하려는 이유가 없진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곰돌이에게 꿀을 넉넉히 내어주니, 녀석은 무척 기뻐하며 꿀을 가지고 백설기에게로 돌아갔다.
“와아! 고마워! 곰돌이 네가 최고야!”
특제 꿀을 한가득 받게 된 백설기는 곰돌이가 최고라며, 그대로 곰돌이를 냅다 끌어안았다.
자길 끌어안고 꿀을 탐하는 백설기의 모습에, 곰돌이는 콧김을 푸욱푸욱 내뿜었다. 그리고, 녀석들은 한동안 오붓하게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어찌나 잘 붙어 다니는지, 더위를 미치도록 싫어하는 백설기 녀석이 얼음궁전 밖으로 나올 정도였다.
비록, 앞발 발톱에 끼워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특제 부채로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5분 정도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백설기가 얼음궁전 밖으로 나올 정도로 녀석들의 사이가 좋아진 것이었다.
나는 수많은 이들의 축하와 축복을 받는 두 녀석을 바라보며 내년 화이트데이와 밸런타인데이에는 꿀을 팔아볼까-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