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2
0031 프러포즈
내게 남은 관문이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프러포즈였다.
누나에게 결혼하자고 이야기도 했고, 승낙도 받았지만 프러포즈를 하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형만 아니면 프러포즈는 생각도 못했을 건데.’
그리고, 그 프러포즈를 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 지인 중 한 명의 결혼생활 덕분이었다.
어릴 때 태권도를 다니며 알게 되어 지금까지 연을 이어오고 있는 형인데, 그 형의 결혼생활을 보고 있자면 프러포즈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한지 이제 5년 정도 된 형은 티비라던가 영화에 누가 이벤트를 해준다거나 하는 내용이 나오면 무척 불편해했다.
언제나- 라고 해도 될 정도로, 형수님 되는 분께서 형을 갈궈댔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저렇게 프러포즈를 받았네, 하면서 부러워하는 모습을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도저히 참다참다, 더 이상 참지 못한 형이 결국에 간략하게나마 프러포즈 형식의 이벤트를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 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 번씩 까이고 있다고 한다.
누나가 딱히 그런 것에 연연하는 성격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생에 한 번 있을 이벤트인데 챙겨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괜히 지레짐작으로 안 했다가 까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어떤 방식으로 프러포즈를 해야 누나가 좋아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생 잊지 않을 기억을 남겨주려면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인터넷도 뒤져보며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검색해도 내 성에 차는 결과는 없었다.
뭔가 특별함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검색 결과는 대부분이 비슷했다. 양초를 하트 모양으로 깔고 꽃이나 반지를 준다던가 하는 것들이 전부였다.
“아오.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좋은 방법에, 나는 그냥 책상에 엎드렸다.
키보드나 마우스가 주르륵 밀려나며 자그마한 소음이 생겼다.
“뭐 하냐?”
“무슨 문제라도 있소이까?”
그리고, 그 소음을 듣고서 남캣과 유부가 찾아왔다. 남캣은 꼬리를 살랑이며 고양이 특유의 걸음으로 다가왔고, 유부는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틈만 나면 치고 받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두 녀석은 은근히 자주 붙어다녔다.
아무튼 그렇게 다가온 녀석들은 내가 왜 널부러진 건지 궁금하다는 듯이 내 주변에서 알짱거렸다.
“아니, 좀 고민 되는 게 있……. 잠깐만.”
남캣과 유부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려던 나는, 도중에 녀석들을 바라보며 말을 멈추었다.
“그래. 너희들이 있으면 되겠다.”
나는 프러포즈의 방식을 결정했다.
내 초능력을 뒀다가 뭐 하겠나, 이럴 때 써먹는 거지. 이런 방식이라면 누나에게도 평생 기억 될 추억을 만들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게 분명했다.
“또 뭔 짓을 할려고 하는 거냐?”
“내가 도울 것이 있소?”
두 녀석의 반응이 서로 달랐으나, 나는 그저 부드럽게 웃음을 지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 ◑ ● ◐ ○ ◑ ● ◐ ○
내 능력을 활용하여, 누나에게 프러포즈를 하기로 결정한 나는 곧바로 준비를 착수했다.
장소도 영업을 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가 끝난 카페에서 할 생각이었으니 크게 준비할 것은 없었다. 그저, 나를 도와줄 동물들을 교육하는 것이 전부였다.
“유부야. 이거 찢어지지 않게 물어봐.”
“이거 애 므르라능 그오?”
유부는 내가 내미는 자그마한 편지봉투를 부리로 물고서 되물었다. 덕분에 순식간에 편지의 일부가 찢기고 구멍이 났다.
그 날카로운 부리로 말하겠다고 움직이니 연약한 종이가 버티지 못 했다.
하지만 몇 번 연습을 하고나니, 유부는 아주 훌륭한 우체부가 되었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면서도 부리로 물고 있는 편지에 훼손이 전혀 없을 정도가 된 것이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캐릭터를 따라하게 만든 건데, 생각 외로 유부에게 재능이 있던 건지 훌륭하게 소화해 낸 거다.
“이건 왜 하라는 것이오? 인간들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구려.”
유부가 조금 투덜거리긴 했지만 싱싱한 소고기 한 덩이를 던져주니 찹찹 뜯어먹으며 행복해했다.
나는 그런 유부를 뒤로하고, 이번에는 세 마리의 개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만히 앉아서 꼬리를 흔들어대는 마루,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술빵이. 그리고 언제나처럼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나태가 시선에 들어왔다.
“준비 됐지?”
“네!”
내 물음에 마루가 힘차게 대답하며 일어났다. 그런 마루를 따라 술빵이가 일어났다. 물론, 나태는 여전히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마루와 술빵이 두 녀석이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니 변화가 생겼다.
두 녀석이 움직이는 것이 맞춰,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나태 녀석이 스르륵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편하네요.”
마루와 술빵이의 하네스에 엮인 자그마한 썰매에 누워 있는 나태는 너무나도 편하다며 좋아했다.
그 모습에 내가 시킨 것도 제대로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잠시 들었다. 그래도 나태가 시킨 것 까지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두 녀석에게 끌려온 녀석은 내 앞에 다가오더니, 슬그머니 자신이 깔고 있던 자그마한 상자를 밀어냈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몸 아래 깔린 휴대폰을 빼내는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당연하지만, 그 자그마한 상자는 반지가 들어 있는 상자였다. 결혼 반지라기 보다는, 프러포즈를 위해 준비한 반지였다.
아무튼 그렇게 유부와 개들까지 확인한 나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 고양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음……. 그래, 너희는 잘 하겠지.”
세 고양이들에게 맡긴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냥 입구까지 찾아온 누나를 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고양이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곧바로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수 많은 까치와 까마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너희들도 잘 할 수 있지?”
“걱정 마십셔! 큰형님!”
“저희만 믿으시오!”
까치와 까마귀들은 내 물음에 힘차게 대답했다. 다들 한쪽 발을 들어올리면서 말이다.
“좋아. 그럼 바로 내일 실행할테니까, 실수 없이 하자고. 잘 해결 되면 맛있는 걸로 보답할게.”
내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동물들이 좋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긴장한 덕분인지는 몰라도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계획해둔 이벤트를 실행할 시간이 되었다.
“누나, 잠깐 카페에 갔다 올게.”
“카페에?”
“응. 점검도 한 번 해보고, 애들이 있는데 불편한 게 있는지도 다시 확인 하려고.”
“이 시간에……? 뭐, 알았어. 다녀와.”
내 말에 누나는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는 시간이었지만, 누나는 크게 의심하거나 하지 않았다.
당장 내일이면 카페의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니, 또 한 번 점검한다고해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동물들을 모조리 이끌고 카페 건물로 향했다.
동물들이 충분히 뛰어놀 수 있도록 만들어둔 잔디밭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딱히 양초를 깔아둔다거나, 꽃으로 하트를 만들어놓지는 않았기에 휑했지만 조금 후면 바뀔 것이었다.
“유부야.”
“알겠소!”
나는 휴대폰을 놔두고 왔으니 잠깐 카페로 와달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유부에게 내밀었다.
유부는 내가 내미는 편지봉투를 물고서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녀석이 집으로 쏙-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본 나는, 곧바로 세 고양이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누나를 여기까지 데려오면 돼. 할 수 있지?”
“간단하지.”
남캣은 내 말에 대답하고서는 폭신이와 치킨이를 데리고 카페의 입구로 이동했다. 누나가 카페로 들어온다면 내가 있는 이곳까지 데려올 것이었다.
“너희는 일단 숨어 있어. 내가 신호주면 나와.”
내 말에 개들과 까치, 까마귀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 모습을 만족스레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멀리서 집 대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이어 세 마리 고양이들에게 안내를 받아 다가오는 누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부한테 편지 배달은 언제 가르친 거야? 영화에 나오는 부엉이 같았어.”
누나는 유부가 전해준 편지를 흔들며 베시시 웃어보였다.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카페 건물 옥상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까치와 까마귀들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신호로 받아들인 녀석들은 곧바로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나와 누나 주변으로 날아오며 발에 쥐고 있던 물건들을 투하했다.
“꺅!”
누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장미꽃잎들을 보며 놀랐는지 짧게 비명을 내질렀다. 꽤나 많은 양이 떨어져, 나와 누나 주변은 빨간 꽃잎이 가득해졌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린 것이 장미꽃잎임을 확인한 누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면서도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장미꽃잎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출발하기 시작한 개들이 도착했다.
“마루?”
제 곁에 다가온 마루를 확인한 누나는 마루와 술빵이의 몸에 연결 된 썰매를 발견했다. 그 위에 널부러져 있는 나태도.
“나태는 정말……. 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나태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던 누나는, 나태가 슬그머니 내미는 자그마한 상자를 발견했다.
그것을 확인한 누나는 나와 상자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천천히 상자를 들어올렸다.
“수환아?”
기대감, 의아함 등이 한가득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대로 누나의 손에 들려 있는 상자를 가져와 열어보였다.
“누나. 나랑 결혼하자. 누나랑 평생 함께 하고 싶어.”
내 말을 들은 누나는, 안 그래도 크게 치켜뜨고 있던 눈을 더 크게 치켜떴다.
눈을 크게 뜨는 걸 제외하면 잠시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누나의 모습에 잠시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누나는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나를 냅다 끌어안았다.
어찌나 힘차게 끌어안았는지, 손에 쥐고 있던 반지 상자를 바닥에 떨어트릴 정도였다.
“응!”
그렇지만 나를 껴안으며, 행복함이 가득한 외침을 내지르는 누나의 모습에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행복함에 결국 훌쩍이기 시작하는 누나를 달래주며, 바닥에 떨어진 반지를 주워 누나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누나는 무척 행복하다는 듯한 모습으로 웃음을 지었다. 눈물로 눈가가 촉촉한 상태에서 웃고 있는 모습은 무척 귀여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그 모습에 나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인간들의 행동은 역시 신기하오.”
“뭐지? 주둥이를 왜 이렇게 가까이 하지?”
“나, 이거 알아! 인간들이 교감을 나누는 거야!”
“주인님이 여주인님이랑 인사한다!”
“인간들의 인사는 신기하네에. 손도 흔들고 머리도 흔들고.”
주변에서 동물들의 감상평이 들리고 있었지만, 지금 내게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