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54
0353 저주(1)
“소은아.”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곧바로 소은이를 불렀다. 물론, 다그치는 분위기를 조성하지는 않았다.
쪼르르 다가온 소은이를 번쩍 안아들어 내 무릎에 앉히고서, 선생님이 내민 사진을 가리켰다.
“우리 소은이가 새들한테 저렇게 하라고 시켰을까?”
“나 안 그랬어…….”
“그렇지? 소은이가 안 했지?”
“웅…….”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이의 모습에, 믿고 있었다는 듯이 소은이의 볼을 슥슥 문지르고 끌어안아 등을 토닥였다.
소은이는 태어난 이후로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아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하는 게 엄청 티가 나는 아이였다. 은수나 동물들을 놀래키기 위해 장난치는 것 정도는 잘 하지만, 자기가 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는 것은 감추지 못하는 편이었다.
거짓말을 할 때 특유의 반응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정말 소은이가 새들에게 다른 아이를 향해 똥을 싸라고 시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잠시 동안 소은이를 안아서 토닥이고 있으니, 내 곁에 있던 누나가 내 품에 안겨 있는 소은이와 눈을 마주했다.
“소은아, 그러면 저기 있는 애가 저렇게 된 이유는 알고 있니?”
“그게에…….”
누나의 물음에 소은이가 우물쭈물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무언가 아는 것이 있긴 있는 듯한 그 모습에, 우리는 재촉하지 않고 대답을 해주길 기다렸다.
인내심을 갖고 잠시 기다리니, 소은이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 잠시 후, 결심했다는 듯이 소은이가 이야기를 꺼냈다.
“걔가, 영희를 괴롭히고 나쁜 말을 해서…….”
“그 애가 소은이 친구한테 나쁜 말을 했어?”
워낙 재잘재잘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다 알려주는 소은이 덕에, 소은이 친구들의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영희는 소은이의 절친 중 절친인 양지연만큼 친한 아이였다. 지연이와 일주일에 일곱 번을 만난다면, 영희는 일주일에 여섯 번을 만나는 수준이었다.
“웅……. 걔가, 영희한테 아빠 없다고 뭐라고 했어. 영희가 아빠가 없고 싶어서 없는 것도 아닌데, 막 놀려서 영희가 울었구……. 그래서 화가 나서…….”
“우리 소은이가 화나서 어떻게 했을까?”
“……새똥이나 맞으라고 그랬어.”
“새똥이나 맞으라고 했어? 새들을 시켜서 똥을 싸게 한 게 아니라?”
“웅……. 나쁜 말을 해서, 너 같은 애는 새똥이나 맞았으면 좋겠다고 소리쳤어. 절대 그러라고 시키진 않았어!”
자기는 절대 시키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소은이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 자란 성인들이 싸운 것도 아니고, 미성숙한 어린이들이 행한 일이었다. 이 경우는 그냥 원인 제공을 한 녀석이 문제라고 봐도 무방했다. 내 딸이 당사자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녀석이 패드립을 날리는 건 문제가 맞았다.
“잘 했어. 그런 나쁜 말을 하는 놈들한텐 그런 식으로 교육을 해줘야 하는 거야. 그리고, 소은이는 착한 어린이니까 그런 말을 따라 하면 안 돼.”
“웅!”
“약속.”
“약속!”
새끼손가락까지 걸며 나쁜 말을 하지 않겠다는 소은이의 모습에, 이를 악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애한테 참 좋은 소리 한다……?’
귓가에 아주 작게 속삭이며 옆구리를 강하게 꼬집는 누나 덕분이었다.
이를 악물며 참아낸 덕에, 소은이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모습이었다. 아프긴 했지만 무척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소은이는 알지 못하는 그 고통 때문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소은이가 시키진 않았지만, 동물들이 소은이의 외침을 듣고 자발적으로 행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소은아, 근데 그러면 그때 주변에 새들이 있지는 않았어? 소은이가 하는 소리를 듣고, 공주님을 위해서 우리가 쟤를 공격하자! 이렇게 한 건 아니지?”
“웅. 근처에 없었어!”
“한 마리도?”
“웅! 운동장에 있었는걸. 내가 운동장에는 오지 말라구 했어!”
“왜?”
“맨날 축구하고 그래서, 작은 새들한텐 위험하니까!”
“아이구, 우리 딸 착하다.”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며 칭찬하니, 소은이가 드디어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소은이가 직접 시킨 것도, 주변에서 소은이의 외침을 듣고 테러를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걸 어떻게 확인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으니, 교무실 구석에 있는 이 응접실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성이 터졌다.
“내 아들 이 꼴로 만든 녀석 어디 있어!”
소리만 들어도, 새똥으로 처참해진 그 아이의 부모가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소은이도 마찬가지인지 순간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런 소은이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게, 누나의 품에 안겨주며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덕분에 소은이는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다. 물론, 그렇게 신경 써 줄 사람이 없는 소은이의 담임 선생님은 그렇지 못했지만 말이다.
소은이의 담임 선생님은 곧바로 뛰어나가, 소란의 근원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응접실 근처에서 소은이가 그런 게 아니고- 화를 가라앉히세요- 등의 이야기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다 못해, 씩씩거리는 부부가 응접실이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당신이야?!”
나를 보고 냅다 당신이야? 하고 소리치는 그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냅다 반말을 지껄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다.
“재자 아버님, 이러지 마시고 일단 앉아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시는 게…….”
“시끄러워! 그쪽은 선생이라는 게, 이딴 일이나 벌어지도록 방관하고 있었어! 내가 선생이라고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당장 교육부에 항의하겠어요!”
심지어, 중재하려는 소은이 담임 선생님을 향해서도 부부가 쌍으로 폭언을 퍼붓고 있었다. 도저히 평범한 인간이라고 볼 수는 없는 그 꼴에, 누나에게 손짓해서 소은이를 데리고 나가도록 만들었다. 이런 인간과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동 교육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누나가 소은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더 이상 짜증을 숨기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애 앞에서도 그따위로 지껄입니까?”
“뭐, 뭐……?”
“애 앞에서 그따위로 지껄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제 겨우 아홉 살 된 애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네요.”
내 말이 끝나자, 근처에 있던 소은이 담임 선생님의 표정이 꽤나 볼만하게 바뀌었다. 믿었는데! 이럴 줄은 몰랐어요! 미치겠네! 등등, 온갖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 표정에서만 드러나고 있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어디 그딴 말을 지껄여!”
“당연히 모르죠. 그러는 그쪽은 내가 누군지 아시나요? 뭐, 힘자랑이라도 하시게요? 한 번 해볼까요?”
“…….”
내가 누군지 아냐는 물음을 되돌려 주니, 상대의 입이 딱 닫혔다. 내 입으로 내가 말하긴 그렇지만, 최소한 소은이가 다니는 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둔 사람들 중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소은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들이 부모님과 동물원에 놀러 오라고 입장권을 여러 번 나눠줬으니 말이다.
게다가,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은 수의 뮤튜브 구독자를 가졌으며, 여러 이유로 뉴스에도 종종 나오는 나를 모르기란 힘들었다. 내 영상을 찾아보지 않아서 내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는 있어도, 나라는 인간 자체를 모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새똥 테러를 당한 아이의 부모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서 자신이 누군지 아냐고 물을 정도면 뭔가 있다는 소리였으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내게 호감을 가지다 못해 추종하고, 추앙하는 이들까지 있는 판국이었으니 몸을 사리는 것이 당연했다. 숫자에서 나오는 힘이라는 건 꽤나 대단했기 때문이다. 자영업이라면 당장 망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었고, 사업이라면 온갖 인맥으로 엮여 있는 것들이 무너질 수 있었다. 심지어, 국가 권력이라 할지라도 그 권력이 국민들의 선택으로 나오는 것이니 만큼, 두 번 다시 쥐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지금보다 팬들의 수가 더 적었을 때에도, 가볍게 요구하는 것만으로 법원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의 탄원서를 지원받은 적도 있었다. 그 외에는 따로 팬들을 동원하는 일이 전혀 없었기에 가볍게 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얌전히, 조용히, 앉아요.”
그리고, 패악질을 부리는 것과는 별개로 멍청하진 않은지, 패악질을 부리던 부부가 입을 다물고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 뒤로, 웬 허연 이물질 같은 것이 묻어 있는 모자를 쓰고 있는 아이가 쪼르르 다가왔다. 부모의 뒤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았던 것인데, 그 꼴을 보니 아홉 살 된 애가 패드립을 날리는 건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일단 다른 걸 다 떠나서, 이번 일의 원인은 그쪽 아들입니다.”
“우리 애가 뭘 했다고!”
“멀쩡히 놀고 있던 제 딸과, 딸의 친구들을 괴롭혔다더군요. 심지어, 한 아이에겐 아빠가 없다는 소리를 하면서요. 이게 말이나 되는 짓입니까?”
“…….”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칙한 꼬맹이의 부모가 정말이냐는 듯 꼬맹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꼬맹이는 발칙하게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런 적 없다잖아! 증거라도 갖고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재자는 그럴 애가 아냐! 보나 마나 그쪽 딸이 거짓말을 하는 거지!”
발악을 하듯 소리치는 엄마 쪽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내가 말하는 순간 움찔하고,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그 누구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모습을 보면 거짓말은 그 꼬맹이가 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 중 한 명을 호출했다. 정확히는 소은이를 경호하는 경호원이었다.
경호원에게 보호받는 것을 안다면 어떤 행동을 하며 자기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자각을 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될 수도 있고, 일이 생겨도 경호원들이 다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어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경호를 하게 해둔 상태였다.
당연히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개입하지 않도록 지시도 해놓았다. 그들이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상황에 닥치면 보호하는 것과, 곤란해질 수 있는 상황에 처하면 증거 자료를 만들어 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경호원을 호출한 이유는 그 증거 자료를 받기 위함이었다. 원래라면 내가 먼저 확인하려 했었는데, 타이밍이 참 나쁘게도 확인하려던 그 순간에 소란을 피우며 찾아왔기 때문에 먼저 확인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무튼,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찍었음에도 소리가 뚜렷하게 담긴 영상 파일이 내 휴대폰으로 전송됐다. 전송된 파일에는 소은이가 말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담겨 있었다.
“자, 보세요.”
발칙한 꼬맹이가 제 부모처럼 패악질을 부리며 소은이의 친구, 영희를 향해 패드립을 날리는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영상이 큰 소리를 내며 재생되니, 꼬맹이는 물론이고 그 부모까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명백하게 남아 있는 증거에 무어라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후?!”
그런데 그때였다. 응접실의 열린 창문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 들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 녀석은 갑자기 눈을 빛내는 것처럼 보이더니, 이물질이 묻은 모자를 쓰고 있는 꼬맹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멈춰!”
꼬맹이에게 날아드는 녀석을 재빨리 멈춰 세운 나는, 모형 비행기처럼 굳어 있는 녀석을 잡아챘다. 내 손에 잡힌 녀석은 그제야 파드득 움직이며 놀란 모습을 보였다.
도대체 자기가 왜 잡힌 건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어리둥절한 녀석을 바라보았다.
“야, 갑자기 왜 저 꼬맹이한테 날아간 거야?”
“그냥……. 똥을 지려주고 싶게 생겼달까요? 아니, 똥을 지려줘야 할 것 같아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저 면상을 딱 보니까 똥을 안 지리곤 못 참을 것 같은 느낌이 팍! 들던데요…….”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게 아니라?”
“누가 시킨다고 똥 싸는 비둘기도 있어요? 미친 비둘기인가? 아무튼, 저 인간 꼬마한테 똥만 싸고 갈 테니까 놓아주실래요?”
“안 돼. 돌아가.”
나는 아쉬워하는 비둘기를 창밖으로 내던졌다. 추락하듯 떨어지던 녀석은 이내 곧바로 푸드덕 날아올랐다. 아쉽다는 것처럼 몇 번이나 주변을 알짱거렸지만, 창문을 닫아버리니 포기하고 떠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건 무슨 저주도 아니고…….’
시키지는 않았지만 새똥을 맞으라는 말을 한 소은이와, 누가 시킨 것이 아님에도 다가와 똥을 싸려는 비둘기의 모습을 보면 저주라는 것 말고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