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55
0354 저주(2)
‘흠……. 무조건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저주라는 생각이 들어, 처음에는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새로운 초능력인지, 아니면 기존 초능력의 새로운 활용 방법인지는 몰라도 초능력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물건이나 타인에게 작용하는 초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뷰티 메이크업 관련된 초능력이라면 메이크업을 받는 이들에게 효과가 영향이 남게 되는 것이었다. 더 예뻐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효과가 남아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것처럼, 소은이가 한 저주도 특정한 대상에게 영향력이 남아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아주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경우에는 이성에게 매혹적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그걸 생각하자면 특정 동물들에게 특정 행동을 유발하도록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메이크업 계열의 초능력처럼 얼굴에 뭐라도 남아 있는 건가 싶어, 발칙한 꼬맹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보는 것에 녀석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지만, 그렇다고 바라보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
잠시 꼬맹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무언가 이상한 위화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가 새들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무척 묘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익숙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묘하게 익숙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꿀벌들과 대화를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내가 꿀벌들과 대화를 하는 것은 육성을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녀석들의 더듬이의 움직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몸짓을 파악하거나 녀석들이 내뿜는 페로몬을 이용해서 대화하는 것이었다. 아니, 대화라고 하기보다는 녀석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유추하는 것에 가까웠다.
지금 꼬맹이에게서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마치 무언가 의미를 지닌 페로몬 같은 것이 꼬맹이에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의 의미를 굳이 글로 해석하자면, ‘새들은 여기에 똥을 싸시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렇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사는 동물인 만큼, 그런 느낌을 받은 새들이 꼬맹이에게 똥을 싼 것이었다.
그리고, 꼬맹이에게 남아 있는 그 페로몬 같은 것을 확인한 나는, 내가 그것을 없앨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따로 근거나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것을 흩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마치 초능력이 내게 너는 가능하다- 하고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소은이가 한 것을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여간, 이놈의 초능력은 파도파도 끝이 없네.’
이러니 과학계에서 초능력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진행하면서도, 초능력을 인간으로 비유했을 때 이제 손톱 하나를 분석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소리를 하지.
“이봐!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너무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건지, 참다못한 꼬맹이의 아빠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고 입을 다물고 있으니, 응접실에 불편한 침묵이 깔려 있던 것이었다.
“좀 생각할 게 있어서요.”
“허, 참나!”
뻔뻔한 내 태도에 황당하다는 모습을 보인 그가 다시금 인상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방금 그 비둘기! 그 더러운 새가 또 내 아들한테 똥을 싸려고 한 거, 맞지!”
내가 비둘기를 내쫓으며 한 말을 듣고 대충 상황을 유추한 것 같았다. 나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것으로 기회를 잡기라도 했다는 듯,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럼 더 말할 것도 없네! 당신 딸이 시켜서 이렇게 된 거잖아!”
“그건 아니죠. 방금 제가 비둘기한테, 누가 시켜서 이러는 거냐고 묻는 걸 듣지 않았나요? 비둘기는 그런 적 없다고 답을 했고요. 제 딸이 시켜서 그런 게 아니라는 소리죠.”
“웃기는 소리! 동물이랑 말이 통하는 당신이나, 당신 딸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런 꼴을 만들 수 있겠냐고!”
테이블에 여전히 올라와 있던, 꼬맹이가 새똥에 더럽혀져 있던 사진을 쾅쾅 내리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의 목적을 금세 파악했다. 이번 일을 무조건 소은이의 책임으로 만들어, 보상도 받고 넘어가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꼴을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소은이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실 비율로 따지자면 꼬맹이 쪽이 더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소은이가 자기만족을 위해서 벌인 일도 아니고, 친구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것이니 더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증거는 가지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겠죠? 설마, 조금 전에 보여드렸던 그 영상을 증거 삼겠다는 소리인가요? 그건 누구와 다르게 나쁜 말을 할 줄 모르는 제 딸이 그나마 할 수 있는 나쁜 말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초등학생도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세상이지만, 적어도 소은이는 그런 말을 쓰지 않는 아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며 좋게 행동하니, 육두문자를 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바보, 멍청이같이 아이들이 TV에서도 쉽게 접할만한 것들만 가끔 쓸 뿐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건 알 바 아니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동물들이랑 대화되는 사람이 또 누가 있는데! 그럼 짐승 새끼들이 지들 멋대로 애를 이 꼴로 만들어 놓는 게 말이나 되는 거냐고!”
“그래서 말을 했잖아요? 동물이랑 대화되는 제가, 새들이 누가 시켜서 그런 일을 벌인 게 아니라고요. 그리고, 왜 말이 안 되는 거죠? 이미 그 일이 벌어졌는데.”
“당신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뿐이잖아!”
“그럼 그쪽이 따로 애니멀커뮤니케이터라도 불러서 증명을 해보시던가요.”
내 말에 상대의 입이 드디어 닫혔다. 애니멀커뮤니케이터 초능력을 보유한 이들을 초청하기란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대부분 해외에 있으니 초청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정은 물론이고 이동에 드는 비용을 다 지불해야 할 건데, 그게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수고비 역시 절대 가벼운 편이 아닌 것은 당연했다.
조류를 포함하고 있는 석형류와 대화가 가능한 이가 한국에 있긴 했지만, 그가 내 직원인 만큼 증인으로 쓸 수도 없었다.
게다가, 어떻게 다른 애니멀커뮤니케이터를 부른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질 것은 없었다. 실제로 소은이가 동물들에게 시킨 게 아니라, 저주같이 남은 초능력의 영향으로 인해 동물들이 반쯤 자발적으로 하는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절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님을 드디어 깨달은 상대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한 번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아빠 쪽이 좀 문제가 많은 인간 같아 보이긴 했지만, 이번 일의 실질적인 당사자는 꼬맹이였으니 말이다.
“그쪽 아들이, 제 딸과 딸의 친구에게 진심을 다 해서 사과를 한다면 없던 일로 해드리죠. 새들이 더 이상 그쪽 아들에게 똥을 싸지 않게도 하고요.”
내 말에 상대의 입술이 달싹이는 것을 본 나는,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당연히 저나 제 딸이 동물들에게 특정 행동을 지시했다는 소리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고요. 동물들에게 그쪽 아들을 향해서 똥을 싸지 말라고 말하는 것뿐이에요. 동물들도 자신들만의 사회가 있으니, 그 정도면 해결될 거니까요.”
“크음.”
상대는 무어라 말을 하고 싶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는지, 콧김만 내뿜으며 못마땅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 내 제안을 받자니 지는 것 같고, 그렇다고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소은이를 비롯한 친구들이 있는 앞에서 모욕을 준 거니 명예훼손이 성립될 가능성도 있다는 걸 알아두세요. 뭐, 범법소년이니 형사적 책임은 없지만, 부모에게 민사적 책임을 지우는 건 가능하니까요.”
“그게 무슨! 아니, 애들 문제에 형사니 민사니 하는 이야기가 왜 나와!”
“애들 문제에 찾아와서 행패 부린 건 그쪽이고요. 그리고, 늙은 게 벼슬은 아니니, 더 이상 반말하지 마시고요. 이제 안 참을 거니까요. 뭐, 우리 동물원 법무팀이랑 자주 만나고 싶으시다면 계속해 보시던가요.”
“익…….”
분하다는 듯이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모습을 보니, 무척 즐거워졌다.
그리고, 잠시 동안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를 억누른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인정한 것이었다. 뭘 하려고 해도, 소은이가 지시했다는 증거가 없으니 꼬투리를 잡을 수도 없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피해를 보는 것이 자신임을 이해한 그는 금세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이 되었다.
“알……겠습니다. 제 아들이 사과하게 하겠습니다.”
결국 패배를 시인하는 그 모습에, 나도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서 우리를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던 담임 선생님이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이 상황을 만족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발칙한 꼬맹이와, 그 엄마였다.
“나는 사과하기 싫어!”
“아니, 우리 애가 왜 사과를 해요! 애가 말실수도 좀 할 수 있는 거지!”
열이 확 오르게 만드는 꼬맹이와, 답답함으로 속을 꽉 틀어막히게 하는 엄마의 콜라보를 보니 정신이 순간 아찔해졌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유리한 것은 나였다.
“싫으면 하지 마세요. 뭐, 평생 새똥이나 맞으면서 살면 되겠네.”
지금 꼬맹이에게 씌워진 저주 같은 것을 풀 수 있는 건 나와 소은이가 전부였다.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꼬맹이와 그 엄마 역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그 둘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곧바로 창문을 열고, 근처에서 날아다니던 비둘기를 불렀다. 조금 전에 쫓아낸 녀석인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을 불러 붙잡은 채, 꼬마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저 꼬마한테 똥 싸면 안 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어야 하기에 대충 연기하듯 말을 내뱉고서, 꼬맹이에게 남아 있는 저주같은 것을 지워냈다. 물론, 뭔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없었지만, 마치 페로몬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비둘기를 창틀에 놓아주니, 녀석이 꼬맹이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다시금 날아올랐다.
제게 똥을 싸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에 꼬맹이가 무척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으면, 그땐 똥으로 안 끝날지도 몰라.”
먹튀……. 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아무튼. 발칙한 저 꼬맹이가 사과하지 않을 경우도 예상할 수 있었기에, 약간의 경고를 해주었다.
그리고, 유야무야 대충 넘어갈 생각이었던 건지, 꼬맹이가 내 말에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네 생각쯤은 다 안다는 듯이 바라보니, 꼬맹이가 호다닥 도망쳤다.
“재자야! 범재자!”
꼬맹이가 도망치는 것에 그 엄마가 따라 나갔고, 꼬맹이의 아빠 역시 나를 잠시 바라보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당히 마무리된 것 같으니, 저도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고생하셨어요.”
“아, 아뇨. 제가 한 게 없는걸요.”
“저런 사람들 패악질에 고생하셨잖아요.”
“아…….”
묘하게 감동한 듯한 모습의 담임 선생님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누나와 소은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니,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재빨리 그곳으로 다가가니, 소은이가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놀이 기구에선 뭘 했고, 누구랑 놀았으며 어떤 즐거움이 있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빠 왔다!”
“압빠!”
모래사장 구석에 굳건하게 박혀 있던 철봉에 매달려 있던 소은이가 나를 보고서 호다닥 달려와 안겼다.
“수환아, 어떻게 됐어?”
“그 꼬맹이……. 범죄자……던가? 아니, 이름이 뭐 이따위야?”
“재자!”
“아, 죄자가 아니라 재자였어? 아무튼, 그 꼬맹이가 나중에 소은이 친구한테 사과하는 걸로 마무리하기로 했어.”
내가 다 해결했다 말하니, 내심 걱정하고 있었던 건지 소은이가 다행이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소은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중에 은수의 유치원에 들러, 은수를 데려오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소은이를 데리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초능력을 저주처럼 사용할 수 있음이 밝혀졌으니, 그것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