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07
흡사 세상이 울리는 듯한 흔들림이었다.
응당 몸을 단단히 지탱해 주어야 할 발밑이 흔들린다는 건 사람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안겨 준다.
심지어 이 흔들림이 단순한 지진이 아닌, 더욱 거대한 재앙의 전조임을 알고 있다면 그 공포를 어찌 형용할까.
“아…….”
윤종의 눈동자가 바람 앞의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천붕지음과 함께 그들이 딛고 선 땅이 더욱 크게 뒤흔들렸다.
윤종은 보았다.
‘저, 저거…….’
그들이 딛고 있는 땅의 끝. 하늘과 맞닿은 듯 보이는 그곳에서 불규칙한 선이 여러 갈래 뻗쳐 오고 있었다. 검은 뇌전이 하늘 대신 땅을 가르는 것처럼.
“어……. 어엇?”
“이, 이거……!”
절벽 위를 메우고 있던 사패련도들이 사색이 되었다.
콰르르르릉!
절벽 끝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니, 무너진다기보다 ‘으스러진다’라고 표현해야 할 광경이었다.
쿠르릉! 쿠르르릉!
조각 나고 으스러진 대지가 까마득하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릿하게 붕괴하던 대지가 점점 그 속도를 높인다.
무리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사패련도들이 상황을 모두 인식하는 것보다 붕괴가 덮쳐 오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발밑이 무너지며 훅 꺼지니, 주위에서 이를 본 이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무너진다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이 비명은 위가 아닌 아래로 향했다. 무간지옥 입구처럼 검은 아가리를 벌린 절벽 아래로 속속들이 육신이 빨려들어 갔다.
“아아아아아악!”
하나, 하나……. 그리고 또 하나.
붕괴하는 절벽은 게걸스러운 아귀처럼 사패련도들을 집어삼켰다. 단 하나도 남기지 않을 기세였다.
수많은 위기를 넘겨 온 이도, 단단한 각오를 가슴에 품었던 이도, 신념으로 전신을 무장한 이도 모두 얼어붙었다.
자신이 그저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 거대한 붕괴에 휩쓸려 짓뭉개질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이 순간만큼은 직감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안 돼에에에에에에에!”
처절한 비명과 함께, 그러잖아도 지쳐 있던 사패련도들이 추락해 간다.
간절히 손을 뻗어 무너지지 않은 곳을 부여잡고, 전력을 다해 발을 디뎌도 아무 소용 없었다. 이 절벽의 어느 한 곳도 그들의 생존을 허락하지 않았다.
“절벽이 무너진다!”
사패련도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하염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 절벽에 그들이 몸을 빼낼 만한 곳이 따로 있겠는가.
“피해에에에에에에!”
양쪽 비탈 인근에서 화산을 압박하던 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 했다.
“비켜, 이 새끼야!”
“저리 꺼지라고! 당장 비켜! 죽여 버리기 전에!”
하지만 애초에 그 비탈은 좁디좁기에 적을 막기에 유리했던 곳이다. 그랬던 만큼, 절벽에 올랐던 수많은 이들이 단숨에 그 좁은 곳을 통해 안전하게 몸을 빼낸다는 건 불가능했다.
“나오라고!”
“아아악!”
다급함에 휘두른 칼이 아군의 몸을 베었다. 제 처지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뜬 얼굴을 누군가가 거친 손길로 획 밀쳐 버린다.
어떠한 말도 지금 이곳에선 의미가 없었다. 가치 있는 것은 오로지 생존. 살아남는 것뿐이다.
칼이 마구잡이로 휘둘러지고, 거친 기운을 두른 손이 눈앞의 누구든 산 채로 뜯어낸다. 쓰러진 이들을 짓밟고, 앞선 이의 등을 밟고 타오르며 모두가 발악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비켜! 비키라고! 이 개 같은 새끼들아!”
“커헉!”
칼에 찔려 쓰러진 채 수없이 짓밟힌 한 사패련도의 눈이 고통으로 가물거렸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붕괴의 파도였다.
콰르르르르릉!
“아, 안…….”
이미 쓰러진 이들도, 인파의 벽을 다 뚫지 못한 이들도 끝내 붕괴의 급류에 집어삼켜졌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죽음이 모두를 천천히 옥죄었다.
차라리 호가명의 계책이 제대로 성공하여 절벽이 단숨에 붕괴했더라면, 절망과 고통 따윈 느낄 틈도 없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토끼몰이를 당하듯 느릿하게 죽음의 손아귀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처,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군사 이 개 같은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
“장일소! 이 악마 같은 놈! 저주받아 죽을 새끼!”
이제 와 상황을 알아챈 이들이 호가명과 장일소에게 분노와 저주를 퍼부었지만, 모두 부질없었다. 그 모든 말들은 이 절벽을 떠나지 못하고 아스라이 흩어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공포를 이기지 못한 몇몇 이들은 비탈을 통해 나가기를 포기하고 절벽 밖으로 몸을 날렸다.
무너지는 절벽에서 속수무책으로 추락하는 것보다야 나은 선택일지 모르나, 그게 그들의 목숨을 구원해 주지는 못했다.
터어어엉! 터어어엉!
뛰어내린 이들의 몸이 부서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섬뜩하게 들려온다. 저 아래의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신음이 연신 귀를 스치자 절벽 위에 선 이들은 더욱 미칠 노릇이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길을 본 사람의 심정이야 모두 같을 것이다.
비탈로 가는 것과 뛰어내리는 것. 둘 모두를 포기한 사패련도들은 끝끝내 악을 쓰며 화산과 태양궁이 맞닥뜨린 장소로 내달렸다.
화산을 쓰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길을 막고 선 태양궁을 짓밟고 넘어서기 위해서였다.
“오, 온다!”
그들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맞이한 건 무당이었다.
태양궁과 싸우기 위해 화산이 잠시 내려놓았던 무당의 검수들이 이쪽으로 귀신처럼 달려오는 사패련도들을 경계하며 힘겹게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사패련도들은 힘을 모두 잃어 뜯어먹기에 딱 좋은 먹잇감 같은 무당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무당의 검수들을 피해 지나쳤다.
“열어! 길을 열라고! 제기랄!”
카아아앙!
그들의 절규는 다름 아닌 태양궁도들에게 향해 있었다.
절벽의 가장 안쪽 끝. 산의 바깥을 향해 삐죽이 솟은 절벽이 아닌, 흙과 나무로 이루어진 곳. 그 생로(生路)를 철저하게 틀어막고 있는 태양궁도들에게로 말이다.
화아아아아아악!
하지만 태양궁도들은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열양장력을 날렸다. 사패련도들을 말 그대로 태워 버린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사패련도 수십이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채 비명을 질렀다. 작열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여 기괴했다. 그러다가도 그들은 절규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이들의 몸을 태우며 솟구친 불길은 또 하나의 벽이 되어 살고자 하는 이들을 가로막았다.
“으아아아아! 이 개자식들아아아아!”
다급한 공격이 직전까지는 아군이었던 이들에게로 쏟아졌다.
그뿐일까. 지독한 열기를 휘감은 손 역시 조금 전까지 함께 싸우던 이들을 향해 휘둘러졌다.
아비규환(阿鼻叫喚).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는 적과 아군의 경계도, 문파 간의 경계도, 심지어 정과 사의 경계조차도 허물어졌다.
남은 거라고는 오직 살아남으려는 이들과 이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이들뿐이었다.
“어, 어떻게 좀 해 봐! 빌어먹을, 너희는 화산이잖아!”
“이대로는 다 죽는다고! 제발!”
제힘으로는 태양궁을 뚫을 수 없음을 직감한 사패련도들이 절규하며 화산에게 매달렸다.
백천은 주먹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저들이 이런 수를 쓸 거란 예상은 했다. 이곳에 있는 제 수하들의 목숨조차 희생시킬 것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지켜보니 너무도 처참하지 않은가. 위장이 뒤집힐 정도로 노기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안타까움을 느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절벽의 위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계속해서 이런 속도로 붕괴한다면 그들의 발밑이 꺼지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다.
백천이 태양궁주를 노려보았다. 한없이 저열한 쾌감에 젖은 얼굴이 역겹기 그지없었다.
저 얼굴에서 느껴졌다.
태양궁주가 밟은 저곳은, 산의 정상으로 이어지는 지형이다. 이 붕괴에도 끝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고작 몇 걸음 차이지만, 저들은 생(生)에 서 있고, 남은 이들은 사(死)에 속해 있다. 이 갈림길에서 생존의 길을 틀어쥔 것만큼 거대한 권력이 존재할까.
그렇기에 백천은 저자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살아남겠다는, 눈앞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억지로 막아서고 기어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는 잔혹한 자다. 그 지독한 짓거리로 제 우위를 실감하는 저열하고 천박한 자.
“이……!”
펄떡펄떡 뛰는 심장이 분노로 물든 순간, 백천이 앞으로 쇄도하려 했다. 하지만 조걸과 윤종의 검이 한발 앞서 태양궁주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비켜라! 이 망할 새끼야아아아아!”
조걸이 내뻗은 검이 수십 개로 분열하며 태양궁주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그러나 궁주는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즉각 활화산 같은 열양기공으로 반격했다.
순간적인 압력과 열기가 검기를 짓뭉개 버렸다.
“큭!”
조걸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망할!’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다. 등 뒤에는 그저 죽음뿐이니.
“으아아아아아압!”
조걸이 뒤도 돌보지 않으며 맨몸으로 들이받으려는 순간, 철벽처럼 솟구쳤던 열양기공이 폭발하고 비산하며 그의 몸을 휩쓸었다.
“아아아악!”
“걸아!”
윤종이 필사적으로 검을 떨쳐 가까스로 조걸의 앞에 검막을 드리웠다. 하지만 그 반동은 채 다 감당하지 못했다. 윤종 역시 조걸과 뒤엉키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검은 승포를 두른 혜연이 그 즉시 파고들었다.
“오오오오오오!”
파하아아앗!
혜연의 권이 허공에 수십의 수영을 그려 내었다. 극한의 경지에 오른 나한권. 평소 펼치곤 하는 묵직한 권이 아니다. 속도와 파괴력에 중점을 둔, 그렇기에 다소 ‘다급’하다는 말이 어울릴 권이었다.
“흥!”
태양궁주가 코웃음 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십여 개의 권영이 허공에 퍼졌다. 하나하나 막강한 내력이 실려 있었다.
혜연의 공격을 모조리 파훼한 권은 이윽고 혜연의 몸에 꽂혔다.
콰앙!
“커헉!”
혜연이 피를 내뿜으며 뒤로 주욱 밀려났다.
때맞춰 태양궁주의 목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든 유이설의 검이 아니었다면, 이어지는 추격타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카앙!
하지만 그렇게 혜연을 구해 낸 유이설의 검도 태양궁주를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신속하고 정갈한 검초가 태양궁주의 귀한 손에 깊은 상흔을 남기기는 했으나, 그런 피륙의 자잘한 상처로 그를 물러서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콰앙!
태양궁주의 장력을 허공에서 받아 낸 유이설이 끝내 뒤로 튕겨 나갔다.
“죽어어어어어어어어!”
어떻게든 틈을 노리던 사패련의 련도들이 태양궁주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어차피 이자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감히!”
하지만 태양궁주가 날린 일 권이 거대한 화염의 소용돌이가 되어 그들을 에워쌌다.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수십의 사패련도가 단숨에 숯덩이가 되어 쓰러졌다.
퍼석!
동시에 시신이 부서지고 흩어졌다.
태양궁주가 거대한 사자후를 토해 냈다.
“내가 그리도 쉬워 보이더냐, 이 하찮은 것들!”
독기와 악의를 품고 태산처럼 선 태양궁주가 핏발 선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자신 앞에서 절망하는 모두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