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98
0397 백화점
라떼가 태어난 이후, 소은이의 얼음궁전 방문이 부쩍 잦아졌다.
라떼는 정말,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밤에 쿨쿨 자고 아침에 찾아가면, 그 차이가 느껴질 정도였다. 매일매일 측정하는 무게를 그래프로 그리면, 그냥 우측 상단 방향으로 죽 그어버린 것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그런 수준의 변화 때문에라도 소은이는 매일매일 라떼를 보러 가는 편이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아침에 눈을 뜨면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아침에 보고 저녁에 봐도 성장한 것이 느껴지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봐도 성장한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눈도 못 뜨던 녀석이 뽈뽈 움직이고, 눈도 뜨면서 덩치까지 커지는 모습은 소은이에게도 무척 신기한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새롭게 생긴 소은이의 일과는 주말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이 되었음에도 소은이는 눈을 뜨자마자 라떼를 보러 얼음궁전으로 달려간 상황이었다.
“응? 수환아, 소은이는?”
“라떼 보러.”
“또? 엄청 좋아하네.”
라떼를 보러 갔다는 말에 누나가 고개를 슬슬 내저었다. 그래도 딱히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침에 학교를 보낸다고 신경 쓸 일이 줄었기에 좋아하는 편이었다.
학교 가기 전에 꼭 보고 가겠다고, 누가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라떼를 보러 가는 것을 싫어할 리가 없었다. 아침마다 겪어야 하는 피곤한 일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솔직히, 나도 그 부분은 무척 반가웠다.
“수환아, 조금 있다가 나갔다 오자.”
“응? 어디?”
“백화점. 이번에 옷 좀 사야 해.”
“어……. 옷……?”
백화점을 간다는 소리에, 나는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옷을 사러 간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티셔츠 하나 사는데 삼십 분은 기본이었고, 옷 한 벌을 맞추려면 한두 시간 정도는 걸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두 번 이상 방문하는 건 귀찮다고 한 번에 두세 벌씩 사니, 그 시간은 더더욱 길어졌다. 그러니 백화점을 가는 것이 반가울 리가 없었다.
“아까 소은이 옷 입히는데, 조금 작더라? 워낙 쑥쑥 자라는 시기라서 그런가……. 하의는 뭐, 치마나 반바지를 입으면 크게 티가 안 나는데, 상의가 문제야. 작년에 입던 거는 벌써 배꼽이 나올 것 같아서 못 입혔어.”
“은수는?”
“은수 옷은 얼마 전에 사서 괜찮아. 저번에 너 신발 사러 갔을 때, 그때 예쁜 게 보여서 여러 개 사뒀잖아. 기억 안 나?”
“아, 맞네.”
소은이의 옷만 필요하다는 것에, 순간 소은이만 데리고 다녀와- 하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했다간 구박받을 것이 뻔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소은이 데리고 올게.”
“부탁해. 난 은수 씻기고 옷 입히고 있을게.”
누나는 곧바로 마당으로 향해, 화단에서 토마토 하나를 따서 입으로 가져가던 은수를 안아들고 욕실로 향했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얼음궁전으로 향했다.
얼음궁전에 도착하니, 소은이의 모습이 바로 보였다. 백설기가 소은이를 등에 태운 채로 어슬렁어슬렁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소은아, 설기야. 라떼는?”
그런데 그 어디에도 라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백설기의 품에도, 소은이의 품에도 라떼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곰돌이를 닮아 갈색의 털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갈색이라고는 소은이가 입은 옷의 무늬뿐이었다.
“요기!”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소은이가 자기 앞으로 살짝 손을 뻗더니, 그곳에서 라떼를 쑥- 들어 올렸다.
마치 딱 절반만 나누기라도 한 듯, 절반만 갈색인 라떼였기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백설기의 새하얀 털에, 갈색인 등 부분을 대고 드러누워 있었으니 하얀 부분만 보이고 있는 상태였다. 갈색 부분은 백설기의 털에 가려졌으니, 라떼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끄웅!”
그리고, 그렇게 소은이의 손에 들어 올려져 자신만의 숨바꼭질을 끝낸 라떼가 한쪽 앞 발을 들며 인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소은이를 보고 자라면서 배운 행동이었다.
“그래, 안녕.”
라떼의 인사에 가볍게 대답을 해주고선, 곧바로 소은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라떼와 떨어지는 것이 내심 아쉬운 듯한 눈치였지만, 새 옷을 사러 간다고 하니 아쉬움을 떨쳐냈다. 라떼야 원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새 옷을 사는 것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또 올게에에!”
백설기와 라떼에게 손을 붕붕 흔든 소은이는 곧바로 나보다도 빠르게 집으로 호다닥 달려갔다. 누나를 닮아, 소은이도 옷을 고르는 걸 꽤나 좋아했다. 당연히 시간도 많이 걸리는 편이었고 말이다.
생긴 것뿐만 아니라 많은 것이 누나와 똑닮은 소은이를 따라서 집으로 돌아가니, 누나는 벌써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은수 역시 깨끗하게 씻겨지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있었다.
“소은아, 깨끗하게 씻고 나와.”
“웅!”
옷을 사러 간다는 것을 알기에, 소은이는 곧바로 아주 빠르게 준비를 끝냈다. 물론, 누나의 눈에는 미숙한 부분이 많았기에, 누나의 손길을 한 번 더 거쳐야 하긴 했다.
소은이가 누나의 손길로 깔끔하게 바뀌는 동안, 나 역시 가볍게 준비를 끝냈다. 일어나자마자 씻었기에 옷만 깔끔하게 챙겨 입는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 외출 준비를 끝낸 다음, 우리는 곧바로 백화점을 향해 움직였다.
차로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백화점 주차 관리인은 우리를 곧바로 VIP 구역으로 안내했다. 물론, 백화점에 적잖은 비용을 쓴 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버는 돈이 많은 만큼, 쓰는 것도 꽤 많았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널찍한 공간에 여유롭게 주차를 마친 나는 곧바로 옷을 사기 위해 움직였다.
“와! 엄마 저거 예뻐!”
“그렇네? 우리 소은이한테 잘 어울리겠다.”
“히히. 이거는 엄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럼 같이 입어볼까?”
그리고, 수많은 옷들이 가득한 층에 도착한 누나와 소은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아주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옷, 저 옷. 이 브랜드의 옷, 저 브랜드의 옷. 정말 온갖 옷들을 보고 있었다. 디자인이 괜찮다 싶으면 만져서 재질을 확인하고, 재질도 괜찮다 싶으면 거울 앞에서 대어 보고, 그래도 괜찮으면 시착까지 해보면서 옷을 고르는 중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나와 은수는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다.
“수환아, 이거 어때? 잘 어울릴까? 나이 많아 보이진 않겠지?”
“어어, 예쁘네. 그거 좋다.”
“은수야! 이거 눈나한테 딱이지?”
“웅. 딱.”
이 옷이 괜찮냐, 저 옷이 괜찮냐 나와 은수를 붙잡고 물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발도 같이 파는 매장이라 놔둔 것 같은 의자에 앉아, 멍하니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은수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아뿌아……. 다른 거 구경하러 가면 안 돼?”
결국 나보다도 먼저 지쳐버린 은수가 피난을 제안했다. 나는 그런 은수의 말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 은수 데리고 근처에 좀 둘러보고 올 테니까 전화해.”
“응!”
옷에 정신이 제대로 팔렸는지, 누나는 옷에서 시선도 떼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나는 곧바로 은수를 데리고 다른 층으로 도망쳤다. 가장 먼저 이동한 곳은 지하에 만들어져 있는 카페였다.
“은수야, 아이스크림 먹을까?”
“녹차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도 식물과 연관이 있는 걸 좋아하는, 우리 취향이 확고한 은수를 위한 메뉴로 가볍게 당을 충전했다.
지쳐 있는 듯한 모습의 은수도 아이스크림이 주는 달달함에 만족했는지, 빵긋빵긋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은수야, 아빠랑 구경 갈까?”
“웅!”
컨디션을 회복한 듯한 은수를 데리고 곧바로 1층에 있던 전자제품 매장으로 향했다. 냉장고, TV는 물론이고 최근에 출시한 휴대폰이나 노트북 같은 것들이 주르륵-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집에 있는 것도 나름대로 최신형이었기에, 우리 부자의 시선이 가는 곳은 게임 코너였다. 게임용 기기 본체는 물론, 그 기기로 구동할 수 있는 게임들도 판매하는 곳이었다.
“아뿌! 나 이거! 이거 할래!”
“우리 은수는 왜 이렇게 취향이 확고할까? 응?”
나는 은수의 손에 잡혀 있는, ‘문듀 밸리’라고 적힌 게임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하다못해 농사 게임을 하려 하는 모습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주지 못할 이유는 없었기에 곧바로 구매를 한 뒤, 다른 곳도 천천히 둘러보았다. 꽤나 큰 백화점이었기에, 우리가 볼만한 것들도 제법 많았다.
그런데 이것저것 구경을 하던 도중, 은수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은수야? 뭘 보는……. 아.”
왜 멈춰서 움직이지 않는 건가 싶어, 은수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저 물건이라면 은수가 멈출만하지.
[가정용 스마트 식물 재배기]은수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바로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식물 재배기였다. 대형 스마트 팜에 들어가는 기능들을 축약시킨 것이나 다름없는 제품이었다.
햇빛을 조명을 통해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고, 주변 습도와 흙 내부의 습도 등을 파악해서 수분 공급도 자동으로 이뤄지며 영양제까지 자동으로 투입해 주는 제품이었다. 정말 씨앗만 심어 놓고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아도 식물들이 잘 자라나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아뿌. 나, 저거!”
“저거는 안 돼. 방 안에 놓기 힘들잖아. 그리고, 마당이랑 밭에서 이것저것 많이 키우고 있잖아.”
물론, 좋은 제품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줄 수가 없었다. 제품의 만듦새를 떠나, 마당과 밭이 있는데 식물 재배기를 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은수는 무척 탐이 나는지, 내 옷을 꼬옥 붙잡으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아뿌지! 사주세요!”
심지어, 유치원에서 배워온 아버지라는 말까지 하면서 초롱초롱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결국 그런 은수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나는 식물 재배기를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보나 마나 소은이는 옷을 한가득 사 올 건데, 은수에게도 약간의 선물은 있어야 공평할 것 같았다. 저번에 은수의 옷을 살 때는 소은이에게 동물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장난감을 사주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주문하고 배송 신청을 하고 나니, 누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옷을 다 골랐다고 하기에, 곧바로 은수와 함께 옷이 가득한 매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옷이 들어 있는 가방을 한가득 가지고 있는 누나와 소은이가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옷을 다 골랐다는 말은 옷을 다 구매했으니 집으로 가자는 말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수환아. 이게 나을까? 아니면 이게 나을까? 소은이는 둘 다 괜찮다고 해서, 고르질 못하겠어.”
“……다 골랐다며?”
“이것만 결정하고 갈 거야. 그래서, 어떤 게 어울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누나가 내밀고 있는 두 벌의 옷을 바라보았다.
한 벌은 조금 펑퍼짐한 블라우스에 꽤나 짧고 타이트한 치마였고, 다른 한 벌은 래시가드처럼 딱 달라붙는 상의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주름치마였다.
그걸 입고 있을 누나를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소은이가 그걸 예쁘다고 따라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유부남이면서 딸 가진 아빠가 되고 바뀐 된 생각이 하나 있었다. 여자친구가 입을 때는 마냥 좋아 보이던 옷이, 와이프나 딸이 입는다고 생각하니 못마땅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 두 벌의 옷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곧바로 배치를 바꾸고 하나를 선택했다. 펑퍼짐한 블라우스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주름치마를 고른 것이었다.
“이게 딱이네. 예쁘겠다. 진심으로.”
“무슨 개화기 패션을……. 이거 유행 지났잖아.”
“유행은 돌고 도는 거야. 그리고 유행은 따르는 게 아니라 선도하는 거라고.”
나는 다른 옷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한 모습으로 결제까지 끝냈다. 그렇게 구매한 옷을 챙겨, 곧바로 누나의 등을 밀며 차로 돌아왔다. 물론, 소은이는 은수가 열심히 밀어주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뚝뚝 흐르는 눈망울의 두 여자를 차에 태울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홍보팀을 호출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얌전한 옷차림을 유행시킬 생각이었다.
저게 예쁜가? 하다가도 유행이라고 하면 괜히 좋게 보이고, 나중에는 스스로 찾는 상황이 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누나와 소은이가 입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입히지도 않으면서, 나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