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97
0396 라떼(3)
“끈적해……. 좀 놔줘…….”
“으하하학! 쟤 핥아진다!”
북극곰의 혓바닥에 얼굴 가죽이 슥슥 밀리고 있는 한 수의사의 모습에, 다른 수의사들이 그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모르고 그러는 것이었다.
우리 백설기는 아주 공평한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으아악!”
“꺅! 나 화장했어! 핥지 마!”
수의사들은 하나하나 빠짐없이 백설기의 품에 안겨 핥아졌다. 아주 공평하고 사랑을 나눠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백설기다웠다.
그런 백설기와 수의사들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덕분에 잠깐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백설기의 새끼에게로 다가갔다.
백설기가 방금 낳은 새끼는 백설기와 곰돌이의 새끼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사족보행을 하는 기준으로 지면과 가까운 쪽은 백설기의 새하얀 털이, 등 쪽으로는 곰돌이의 갈색 털이 그라데이션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털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애매한 솜털이었지만 일단은 약간의 색을 띠고 있긴 했다.
아무래도 갓 태어난 녀석이다 보니, 털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양수나 백설기의 침까지 묻어 있다 보니, 안 그래도 없어 보이는 털이 더더욱 희미한 상태였다. 그래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곰돌이나 백설기처럼 털이 그득그득하게 자라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새끼 곰이 곰돌이와 백설기의 자식이 분명하다는 것이 솜털임에도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근데 이렇게 되면 앞뒤가 다른 건가?”
엎어졌을 때 수평으로 색이 나뉘다 보니, 이 녀석이 이족보행하듯 서있으면 앞뒤가 다른 녀석이 될 것 같았다. 앞은 북극곰인데 뒤는 불곰인 곰이 되는 것이었다.
소은이가 얘를 보고 갑자기 아수라 백작 같은 걸로 이름을 짓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 그럴 일은 없으려나?”
나도 듣기만 하고 직접 본 적은 없는 아수라 백작이었으니, 소은이가 아수라 백작 같은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아무리 뮤튜브로 온갖 것들을 섭렵한 이 시대의 어린이라고 해도 아수라 백작은 모를 게 분명했다.
“사장님.”
새끼 곰의 이름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니, 어느새 백설기에게서 풀려난 수의사들이 내게 다가왔다. 다만, 내게 용건이 있는 게 아니라, 내 품에 안겨있는 새끼 곰에게 용건이 있는 것 같았다.
“더 할 거 있나요?”
“새끼의 무게를 좀 재야 할 것 같습니다.”
“무게? 무게는 아까 재지 않았어요?”
“다른 것도 측정하고 나서 기록하려다가 그만…….”
슬쩍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니 장난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주변에 있던 수의사들도 몇 그램이었다, 아니 몇 그램이었다 하며 투닥거리고 있었다.
대충 상황을 보니, 일단 측정한 뒤에 기록을 하려다가 누군가 무게를 착각한 것 같았다. 네가 맞니 내가 맞니 하다가 결국 다 같이 헷갈려서 재측정을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나도 가끔 숫자를 기억하고 있던 도중에 다른 일을 하면 다른 숫자로 기억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도 원래 태어난 직후 말고도 양수 같은 걸 닦아낸 다음에도 측정하는 겁니다.”
다 안다는 듯이 웃었더니, 수의사들이 얼굴을 붉히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에이, 그렇게 변명 안 해도 다 이해하는데.
내가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으니, 수의사들이 포기한 듯 곧장 새끼 곰을 저울로 가져갔다. 어디 주방에서 볼 법한 전자저울이었는데, 그 위에는 투명한 그릇이 하나 있었다. 준비해 놓은 저울이 새끼 곰 보다 조금 더 작았기 때문에, 확실하게 무게를 측정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몸을 깨끗하게 닦아낸 새끼 곰을 그 투명한 그릇에 살포시 내려놓은 수의사는 저울에 표시되어 있는 무게를 기록했다.
“천삼백구십 그램. 거봐, 아까 내가 말한 게 맞잖아.”
1390g. 그게 바로 새끼 곰의 무게였다.
북극곰의 새끼 평균 무게가 1kg이 안 되는데, 이 녀석은 평균보다도 40% 정도나 더 무거웠다. 한 마디로 이 녀석은 우량아 그 자체였다.
“사장님. 이 새끼 곰은 이름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량아 새끼 곰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으니, 수의사가 새끼 곰의 이름을 물었다. 각 개체별로 건강을 따로 관리하니, 그 정보가 담길 문서에 넣을 이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새끼 곰에게 어떤 이름을 주어야 할까- 잠시 고민이 됐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니, 고민 자체를 할 필요가 없었다.
“와! 얘, 압빠가 마시던 라떼랑 비슷하게 생겼어! 그러니까 얘는 라떼야!”
다름이 아니라, 어느새 곰돌이를 타고 얼음궁전으로 들어온 소은이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면서 새끼 곰의 이름을 정했기 때문이다.
내가 주문했던 라떼를 소은이가 유심히 바라봤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새끼 곰의 이름이 라떼로 정해졌다.
안 그래도 솜털의 배색이 라떼같긴 했는데, 무게를 잰다고 투명한 그릇에 넣어놔서 더더욱 라떼처럼 보이긴 했다. 마치 투명한 유리 국그릇 같은 것에 라떼를 부어놓은 느낌이었다.
“……소은아, 소은이가 짓는 것도 좋지만 백설기랑 곰돌이한테도 물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곰돌이랑 백설기의 아기잖아.”
“웅. 알았어!”
소은이는 내 말에 동의하듯 끄덕이더니, 곰돌이와 백설기에게 허락을 받아냈다.
“지는 모르겠시유. 설기 씨가 결정하셔유.”
“나는 우리 귀염둥이가 지어주는 이름이라면 좋아!”
곰돌이와 백설기의……. 정확히는 백설기의 허락 하에, 새끼 곰의 이름이 라떼로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라떼야!”
소은이는 투명한 그릇에 담긴 라떼를 보며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압빠, 라떼 만져봐도 돼?”
“음……. 일단 새끼니까 젖부터 먹이고 나서. 라떼도 배고픈 거 같네.”
소은이에겐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소은이는 라떼를 바로 만질 수가 없었다. 태어난 직후부터 젖을 물려야 하는데, 상태를 확인한다고 살짝 지체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배고픈 듯이 울음소리를 내는 라떼를 백설기 가까이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백설기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새끼에게 젖을 물렸다. 끼잉끼잉 울던 녀석이 금새 잠잠해졌다.
소은이는 그런 백설기와 라떼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백설기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아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이었다.
“라떼는 애기니까 많이 먹고 많이 커야 해!”
소은이는 라떼가 어서 무럭무럭 자라서 자기와 함께 뛰어노는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런 소은이에게 백설기의 앞발이 슬쩍 다가왔다. 라떼가 젖을 물기 편하도록 자세를 유지한 채로 앞발만 슬쩍 움직인 것이었다. 그렇게 앞발을 가져간 녀석은 소은이의 신발을 톡톡 건드렸다.
“귀염둥이야. 언니도 많이 먹어야 하지 않을까?”
“설기는 안 돼. 살 많이 쪘잖아.”
“끄으응…….”
직설적인 소은이의 말에 백설기가 앓는 소리를 냈다. 녀석도 자기가 새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많이 먹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라떼 젖 먹여야 하니까 쪼금 더 먹어도 돼.”
물론, 소은이도 이제 10살이 된 만큼,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젖을 먹이는 것도 잘 챙겨 먹어야 가능함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라떼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소은이가 백설기에게 맛있는 먹이를 챙겨줄 것 같았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 걱정이 됐다. 북극곰은 거의 1년에서 2년 정도를 젖을 먹여가며 새끼를 키우는 동물이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따로 운동이라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느덧 라떼가 백설기의 품에서 살짝 떨어져 나왔다.
먹을 만큼 먹었다는 것 같았는데, 갓 태어난 동물답게 금세 잠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였다.
“라떼 엄청 귀여워!”
입가엔 젖을 먹은 흔적을 가득 남긴 채 고로롱 잠에 빠진 라떼의 모습에 소은이가 다시금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소은아, 곰돌이랑 백설기랑 라떼랑 다 같이 사진 찍을까?”
“사진? 좋아!”
“그리고 사람들한테도 라떼가 태어났다는 걸 알려줘야지.”
“웅!”
소은이는 곧바로 백설기의 곁에 있는 라떼를 조심이 안아들었다. 순식간에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던 건지, 녀석은 안아드는 와중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숨 쉬는 것에 따라서 몸이 살짝 부풀었다 줄기는 반복할 뿐이었다.
“압빠, 어떻게 찍어?”
“음……. 우리 가족사진 찍은 거 기억나지? 그렇게 찍을 거야. 곰돌이랑 백설기가 뒤에 있고, 소은이가 라떼를 안고 있는 걸로 하자.”
“그럼 내가 라떼 눈나야?”
“아니, 소은이는 의자 역할.”
내 말에 소은이가 놀랐다는 듯이 입을 벌리고 두 눈을 댕그랗게 치켜떴다. 설마 자기가 의자 역할일 줄은 몰랐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내 곰 가족의 사진이라는 것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이는 의자 역할도 상관없다는 듯, 두 발로 벌떡 서있는 곰돌이와 백설기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녀석들의 덩치가 워낙 커서, 소은이가 라떼를 든 손바닥을 살짝 높게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소은이가 라떼를 들어 올리는 모습에, 곧바로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당연히 라떼 단독 사진 역시 잊지 않고 찍었다. 라떼가 태어났음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잠에 푹 빠져 있는 라떼 녀석을 화면에 가득 담아 사진을 찍었다.
“아빠는 아웃스타랑 뮤튜브에 라떼 태어났다고 알려주러 갈게. 소은이는 여기서 더 놀 거야?”
“우움……. 더 놀고 싶은데, 추워. 집에 갈래.”
내 물음에 소은이가 몸을 살짝 떨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보니 급하게 달려왔는지, 방한복을 꼼꼼하게 챙겨 입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소은이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소은아? 라떼는 여기 있어야지. 백설기가 젖도 먹여야 하잖아.”
“힝.”
“그래도 안 돼. 라떼는 여기서 살아야 돼.”
은근슬쩍 라떼를 데리고 집으로 가려던 소은이를 말리고, 라떼를 백설기에게 보냈다. 녀석은 얼음궁전의 추위에서 새끼를 보호하듯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우리 귀염둥이가 많이 아쉬워? 그럼 자주 놀러 와! 우리 귀염둥이라면 라떼를 얼마든지 보여줄게!”
“웅, 안녕!”
소은이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세 마리 곰들을 향해 손을 붕붕 흔들었다. 그 이후, 춥기는 추웠는지 호다닥 달려나갔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먼저 달려나간 소은이를 따라 움직였다. 뒤에서 수의사들이 백설기의 상태도 다시금 체크하는 모습을 보며 SNS에 라떼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내 SNS를 확인하던 몇몇 기자들로부터 그 소식이 더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불곰과 북극곰의 잡종이 태어나다!] [국내 유일의 북극곰 사육과 국내 최초 브롤라 베어를 사육하는 신수의 둥지.] [불곰 브라운 베어와 북극곰 폴라 베어의 혼혈, 브롤라 베어에 대해서 알아보자!] [살아 있는 라떼를 만나 보았다.]당연한 말이지만 북극곰으로도 모자라, 북극곰과 불곰의 혼혈인 라떼의 탄생은 동물원을 찾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다.
애초에 북극곰을 사육하고 있는 동물원은 국내에 우리 동물원이 유일했는데, 북극곰과 불곰의 혼혈인 브롤라 베어를 사육하는 동물원은 전 세계를 다 놓고 봐도 몇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라떼 한 마리만을 보기 위해서라도 우리 동물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리였다.
어마어마한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라떼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뀨뀨 울기만 하던 녀석은 어느새 귀여움 가득한 걸음으로 아장아장 걸어 다닐 정도가 되었다.
덕분에 소은이가 다시 한번 집안에서 라떼를 키우겠다고 선언하는 일이 있었지만, 라떼도 백설기의 자식이다 보니 한여름인 외부의 온도를 버티지 못했기 때문에 실천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