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12
0411 나쁜 거!
모처럼 할 일 없는 토요일 오전.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아주 편안한 느낌으로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배가 부른 탓인지는 몰라도 온몸에 나른함이 감돌고 있었다. 이대로 눈만 감으면 잠에 빠져들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누워 있으니, 누나가 쟁반을 가져왔다. 뭘 가져왔나 싶어 바라보고 있으니 거실 테이블에 작은 접시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장지로 인해 내용물이 뭔지 모를 유리병 통조림을 하나 내려놓았다.
“수환아, 망고 먹을래?”
“응? 웬 망고야?”
“어제 마트 갔는데, 망고 통조림 있길래 샀어.”
잘 익어서 샛노란 색을 자랑하는 망고 과육이 통조림에서 쏙 꺼내졌다.
자그마한 접시에 담아주는 누나에게 고맙다 이야기하고, 곧바로 망고를 푹- 찍었다. 포크로 찔렀음에도 미끄러지며 접시에 다시 착륙할 정도로, 망고는 꽤나 잘 익어 있었다.
같이 놔둔 칼을 이용해서 스테이크 잘라먹듯 잘라먹으니 단맛이 입에 확 퍼졌다.
“오, 맛있는데?”
“그치? 소은아! 은수야! 망고 먹어!”
망고의 맛에 감탄하니 누나가 크게 소리쳤다. 여느 엄마들처럼 누나 역시 아이들이 과일이나 채소를 잘 먹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누나가 원하는 것과 달리, 아이들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아이들이 반항기에 접어든 것은 아니었다.
“소은이는 어항으로 갔을걸? 아까 보니까 펭귄, 뿔쇠오리들이랑 수영할 거라고 하던데.”
“그래? 은수는?”
“은수가 아까 식물도감 꺼내는 걸 봤는데. 아마 책 읽는다고 못 들은 게 아닐까? 아니면 식물도감 들고 화단 구경 갔을 수도 있고.”
나름 학구열이 있는 건지, 은수는 종종 식물도감을 가지고 동물원에 있는 식물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은수는 식물도감에 ‘어떤 꽃은 몇 장의 꽃잎이 있고 어떤 특징이 있으며……’하는 내용들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취미가 된 것 같았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식물도감이라 ‘꽃잎은 어떻게 생긴 게 몇 장 있으며 줄기에는 가시가 있다-‘정도의 내용이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은수의 흥미를 끌 수 있었다.
그 책 덕분에 은수가 한글도 빨리 익혀서, 나로서는 무척 좋을 뿐이었다. 다만, 누나는 무언가가 묘하게 아쉽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내 배 아파 낳은 애들이지만, 참…….”
“왜?”
“한글도 빨리 떼고 다 좋은데, 너무 편중적인 거 아닌가 해서. 소은이는 동물들 이름 쓰고 싶다는 이유로 한글을 빨리 익혔고, 은수는 식물도감 내용을 혼자서도 읽고 싶다고 한글을 빨리 익힌 거잖아.”
“뭐 어때. 애들 초능력 감안하면 어차피 평생 그 길로 갈 건데. 자기들이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거니까 그냥 좋아하면 되지.”
“그렇겠지?”
누나는 자기가 괜한 생각을 했다며 고개를 휘휘 저어내며 잡생각을 털어냈다. 그리고, 그대로 내가 잘라둔 망고 한 조각을 순식간에 집어갔다.
“아니, 접시에 있는 거 놔두고 뭐야?”
“원래 누가 잘라둔 걸 먹는 게 제일 맛있는 법이잖아. 자, 이번엔 내가 잘라줄게.”
누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망고 한 조각을 내밀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입가에 내밀어진 망고를 물었다. 내가 잘라먹은 것보다 맛이 좋은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잘라주는 것을 반복하던 도중, 현관문 도어락이 띠리리링- 하면서 소리를 토해냈다. 소은이는 한창 물놀이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으니, 은수가 확실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역시나 은수의 목소리였다.
“아뿌아아아아! 으하아아아앙!”
다만, 울음기가 한껏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 아니, 실제로 울음을 터트리는 것 같았다.
그 목소리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일어나며 테이블을 치는 바람에 앞접시와 포크가 나뒹구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은수야! 왜, 왜 그래!”
은수가 있는 현관으로 호다닥 달려간 나는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있는 은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급히 아이를 품에 안고,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건가 싶어 유심히 바라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그 어디에도 다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매번 그렇듯 소매나 무릎 부분에 흙과 풀 조각이 조금 묻어 있을 뿐이었다.
약간 안도하면, 도대체 왜 울고 있는 것인지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무어라 질문을 하기도 전에 은수가 나를 잡고 낑낑거리며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흐으앙! 아뿌아! 으아아아앙!”
“왜, 왜 그래?”
나를 낑낑 끌어당기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은수의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은수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누나 역시 그런 나를 따라 조용히 움직였다.
그렇게 나를 낑낑 끌어당기며 움직인 은수의 목적지는 주방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방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다용도실이었다.
“흐으……. 아뿌, 여기! 꼭꼭 숨어!”
“아빠가 숨어야 돼?”
“으흐웅, 꼬옥……! 숨어!”
울음을 터트리면서도 꼭 숨어야 한다는 말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의아했다.
“은수야, 아빠가 여기에 왜 숨어야 할까? 우리 은수는 또 왜 울고 있는 걸까?”
“후우웅……! 아뿌, 철컹철컹해! 경찰 아조씨한테 잡혀가! 그러면 안 대!”
은수는 여전히 울먹거리면서도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했다. 조금 당황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설명이긴 했지만.
“수환아, 너 뭐 잘못한 거 있어?”
누나 역시 당혹스러워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이해는 했는지 내게 잘못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뭐지? 저번에 실수로 정지선 위반한 거 과태료 날아왔나? 그거 본 건가? 아니면…… 진짜 뭐지?”
솔직히 내가 경찰에 잡혀갈 이유가 뭐가 있나 싶었다.
결국 나는 은수가 원하는 대로 구석에 몸을 구겨 넣고, 은수를 품에 안은 채로 은수를 달래줘야 했다. 이대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까지 터트리고 있는 아이에게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는 건 힘들었으니 말이다.
“아빠는 경찰한테 안 잡혀갈 거니까 은수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빠가 우리 은수 놔두고 어딜 가겠어?”
품에 꼬옥 끌어안고 토닥토닥 두드려주니, 훌쩍이며 살짝 떨리던 은수의 몸이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은수야. 왜 아빠가 경찰한테 잡혀간다고 했는지 알려줄래?”
“화단에 나쁜 거 있었어!”
“화단에?”
“웅…….”
“아빠랑 보러 가자. 화단에 뭐가 있는지.”
화단에 있는 것 중에 나쁜 게 뭔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은수와 함께 화단을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당연히 은수는 내가 잡혀갈 거라며 안 된다고 거부했다.
“괜찮아. 그 나쁜 걸 아빠가 놓은 게 아니니까, 경찰 아저씨들도 아빠 못 잡아가.”
“진짜?”
“응. 진짜! 아빠는 은수랑 계속 같이 있을 거야.”
“약속!”
소은이가 하는 것처럼, 은수도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약속을 요구했다. 은수가 원하는 대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경찰에게 잡혀가지 않겠다고 말이다.
내 입장에서는 조금 어이가 없는 약속이긴 했지만, 그래도 은수가 좋아하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약속까지 마무리하고서야 겨우 다용도실 구석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기지캐 켜니, 누나가 다가와 등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은수야, 아빠랑 엄마랑 같이 화단에 가서 나쁜 게 뭔지 찾아보자.”
“웅.”
“나쁜 게 있으면 경찰 아저씨한테 가져가라고 하자. 우리 거 아니니까 가져가라고 하면 경찰 아저씨들은 아빠를 안 잡아가고, 그 나쁜 걸 가져갈 거야.”
“진짜?”
“당연하지!”
당연하다며 말을 하니, 은수는 금세 해맑은 미소를 되찾았다. 그리고, 조금 전에 나를 다용도실로 밀어 넣은 것처럼, 나와 누나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런 은수를 따라 열심히 움직이니, 동물원에 있는 수많은 화단들 중 중간 규모의 화단 하나를 보게 되었다.
“으음, 관리는 잘 되어 있네.”
여러 꽃이 알록달록하게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같이 만개하지 않은 꽃이 없었기에,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다.
다만 그 화단에 은수가 나쁜 거라고 말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온통 만개한 꽃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라고 한다면, 은수가 내팽개쳤던 것으로 보이는 식물도감이 전부였다.
“은수야, 여기에 나쁜 게 어디 있을까?”
“이거!”
아무리 찾아도 무언가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도대체 뭐가 나쁜 건가 싶어 은수에게 물어보니, 은수는 새빨간 꽃잎을 활짝 펼치고 있는 아름다운 꽃들 중 하나를 가리켰다.
은수가 가리키는 꽃을 바라보니, 주변에 있는 붉은색의 꽃과는 조금 다른 차이점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이거 예쁜데, 나쁜 거!”
“이 꽃이 나쁜 거야?”
“웅! 이거 봐!”
은수는 자기가 내팽개쳤던 식물도감을 주워들어, 나와 누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본 우리는 은수가 왜 나쁜 거라고 표현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양귀비] [붉은색의 꽃잎을 가지고 있……] [꽃잎에는……] [국내에서는 키우는 것이 불법이다.]바로, 그 꽃의 정체가 양귀비였기 때문이다. 개양귀비 같은 마약성 물질이 없어서 키울 수 있는 종류의 양귀비가 아니라, 식물도감에 키우는 게 불법이라고 명시된 그 꽃이 고스란히 화단에 자리하고 있었다.
식물도감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에 완벽하게 100% 부합하는 식물이 내 눈앞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고. 은수가 울만 했네.”
어린아이들을 위한 식물도감이었기에, 불법이라고 되어 있는 문구 뒤에 경찰 마스코트가 수갑을 든 채로 ‘키우면 잡아가요!’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걸 봤으니 은수가 울음을 터트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수환아, 이거 어떡해?”
“신경 안 써도 돼. 경찰한테 연락해서 가져가라고 하면 되니까. 내가 피해볼 일은 없어. 뭐……. 어떻게 자라게 된 건지 조사할 수는 있긴 하지만, 그거야 CCTV 돌리면 되는 거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곧바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마약성 양귀비가 자라고 있다고 전화를 하니, 곧바로 경찰이 동물원으로 찾아왔다.
“어이쿠……. 찐이네요. 이건 저희가 수거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양귀비를 뿌리째 뽑아냈다.
“혹시 저쪽 CCTV 좀 확인해 봐도 될까요? 한 주 밖에 안 되긴 합니다만…… 드루이드의 초능력을 노리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한 주씩 재배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니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해당 화단 부근을 찍고 있는 CCTV도 확인을 했다. 동물들이 무언가를 먹고 뒤늦게 반응이 오는 경우도 있었기에 동물원 CCTV는 거의 한 달 분량을 따로 백업해서 저장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딱히 누군가가 씨를 심는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꽃을 좋아하는 이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가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바람에 날려왔거나, 새들이 옮겼을 가능성 밖에 없네요.”
자연적으로 퍼졌다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기에, 경찰들은 양귀비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은수야. 아빠가 말한 대로, 아빠 안 잡혀갔지?”
“웅! 다행이야!”
은수는 아주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폭 안겨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은수가 화단을 열심히 감시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더 이상 화단에서 양귀비가 발견되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은수가 나를 숨기겠다고 다용도실로 끌어당기는 일도 더 이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