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17
0416 외전 – 판타지(1)
********* 이번 화는 본편과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외전입니다. *********
“청호야.”
“예, 쥔님.”
“너 지금 심심하지?”
“아님다! 괜찮슴다!”
내 물음에 청호 녀석이 앞발을 휙휙 흔들었다. 마치 사람이 손을 내젓는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소은이나 은수를 따라다니며 아이들이 하는 모습을 배운 것이었다. 아이들이 종종 부정을 표현할 때 손을 크게 휘휘 내저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부정을 표현하는 녀석이었지만, 나는 녀석의 말을 믿지 않았다.
“심심하잖아.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아.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니까. 널브러져 있다가 무슨 소리만 나면 거기로 시선을 돌리는데, 딱 봐도 나 심심해요 하는 모습 아냐?”
“끼잉…….”
청호가 정곡에 찔린 듯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제 속마음을 들킨 것이 부끄럽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시선을 피하던 녀석은 이내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맞슴다. 조금 심심하긴 함다. 아가씨나 도련님께서 외출하는 일도 많이 없잖슴까.”
평소에는 아이들의 경호를 담당한다고 바쁜 청호였지만, 지금은 소은이와 은수 모두 여름방학이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것은 곧 아이들이 동물원 밖으로 외출하는 일이 많이 줄어든다는 말과도 같았다. 매일 가는 학교와 유치원을 가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동물원 밖으로 나간다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인데, 그것도 많지 않았다. 우리 동물원에는 보고 즐길 것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소은이나 은수가 나가는 것보다 아이들의 친구들이 동물원에 찾아오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소은이와 은수의 친구들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했으니, 아이들의 친구들은 더더욱 부담 갖지 않고 동물원을 찾는 편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질 않게 되니, 자연스레 청호가 할 일이 줄고 한가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동물원 내부라면 아이들이 위험할 일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 청호의 모습은 마치 은퇴한 사람이 한동안 허무함 같은 것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산책이나 갈까? 어때?”
“산책 말씀이심까?”
산책이라는 말에 청호의 뾰족한 귀가 움찔- 움직였다. 코끼리도 이기고, 초능력자도 때려눕히는 녀석이긴 하지만 일단 청호도 개는 개였다. 산책이라는 말에 꼬리를 슬쩍 흔들기 시작했다.
“그래. 지루하고 심심하잖아. 한 번 체력을 쭈욱 빼고 나면 상쾌하지 않을까?”
마루를 데리고 미친 듯이 달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덕분에 나도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달릴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갖고 있었다. 네발로 달리는 개들보다 빠르고 오래 달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청호가 체력 일부를 소모할 수 있을 정도로 놀아줄 수는 있었다.
‘조금 빡세긴 하겠지만, 나도 운동하는 셈 치지 뭐.’
마루만큼은 아니더라도 청호 역시 빠르고 체력이 좋은 녀석이었다. 녀석을 데리고 산책을 제대로 하려면 나도 각오를 해야 했다.
그래도 이것이 반려동물을 기르기 시작한 사람의 의무였으니, 피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산책이라는 소리에 청호의 기분이 점점 좋아지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호원처럼 듬직한 모습만 보이던 녀석인데, 어느덧 꼬리를 붕붕 흔들어대고 있었다.
“네가 가서 산책용품 가져올래?”
“알겠슴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호가 호다닥 달려 나갔다. 어찌나 빠르게 달리는지, 마치 차량의 바퀴가 헛돌듯이 제자리에서 몇 번이나 바닥을 차고 나서야 움직일 정도였다.
청호가 산책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오는 사이에 누나를 찾았다. 누나는 주방에서 벌써부터 저녁을 준비한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벌써 저녁 준비하는 거야?”
“아, 응. 저녁에 삼계탕 하려고. 여름이니까 보양식 느낌으로. 어때?”
누나는 삼계탕에 넣을 인삼을 휘휘 흔들며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삼계탕 좋지! 안 그래도 청호랑 산책 갔다 오려고 했거든. 빡세게 움직이고 보양식 먹으면 효과는 끝내주겠는데?”
“청호랑 산책 가려고?”
“좀 심심한 것 같더라고. 애들 방학이잖아.”
내 말을 금세 이해한 듯, 누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동물원 밖으로 잘 나가지 않으니, 누나가 나갈 때면 청호가 호다닥 달려와서 행복한 것처럼 경호하던 것을 떠올린 것 같았다.
“그래, 다녀와. 대신,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
“알았어.”
청호의 체력을 빼는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최대한 늦지 않게 끝내기로 했다.
그렇게 자리를 비우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서, 산책 용품을 챙겨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청호에게 다가갔다.
물통이나 몸줄부터 시작해서 배변 뒤처리를 위한 물품까지. 제대로 챙긴 녀석의 꼼꼼함에 감탄하며 힘차게 쓰다듬었다.
이후, 녀석에게 하네스와 몸줄을 채우고, 입마개도 씌웠다. 청호가 누군가를 물지는 않겠지만 대형견인 만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입마개가 의무인 견종이 아니지만 일종의 에티켓으로써 입마개를 채우는 것이었다. 게다가 청호의 체력을 빼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니 만큼, 제법 격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러니 최대한 위협적이지 않게 느껴지도록 입마개 정도는 하는 것이 좋았다.
모든 준비가 다 된 것 같았기에, 곧바로 신발을 신고 신발끈을 꽈악 조였다. 아무리 격하게 달린다 하더라도 벗겨지지 않을 것 같았다.
“? 믈, 믈츠으으 흠드.”
“어? 뭐라고?”
그런데 입마개를 하고 있는 녀석이 무어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초능력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건지, 녀석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쥔님. 물병에 물 채워야 함다.”
하지만 딱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청호 녀석이 앞발로 입마개를 몇 번 건드리더니, 그대로 입마개를 풀어내고서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경호견이라 할 수 있는 청호였기에, 에티켓으로 입마개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유사시를 위해서 스스로 입마개를 풀어내는 방법 정도는 숙지하고 있었다. 에티켓도, 안전도 모든 것이 중요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런 청호의 지적을 듣고 물병에 물까지 채운 뒤, 입마개도 다시 씌웠다. 그렇게 완벽하게 준비를 끝내고 나서야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텅-
아니, 나서려 했다.
“뭐, 뭐야?”
무언가 단단한 것이 현관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듯, 문이 열리지 않았다. 1cm 정도만을 움직이며 단단한 것에 부딪히는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문에 달려 있는 자그마한 렌즈인 외시경으로 보아도 보이는 것은 전혀 없었다. 힘으로 열면 밀릴까 싶어 힘을 주었음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관문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 게 문이 먼저 망가질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내 집에서 나가는 것임에도 현관에서 신발을 챙겨, 거실을 통해 마당으로 나가야 했다.
그리고, 거실을 통해 밖으로 나온 나는 현관을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허허허허.”
현관을 막고 있는 거대한 거북이, 한무 녀석은 내 물음에 허허-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런 한무의 큼직한 등껍질 위에는 남캣이 요가하는 듯 허리가 돌아간 자세로 널브러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조합인가 싶었는데, 한무가 느긋하게 설명을 한 덕분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늘에서 뙤약볕을 피하고 있던 한무의 등에 남캣이 올라가 쉬기 시작했는데, 한무가 도중에 오이 조각들을 발견했다. 그것도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빵조각으로 만든 길처럼, 일정 간격을 두고 길게 늘어져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 은수가 키우는 오이 특유의 맛있는 향에 취한 한무가 그 오이들을 한 조각씩 먹다가, 동물용 출입구로 우리 집까지 들어와 현관에 자리를 잡고 앉은 것이었다.
“……은수가 분명 오이 조각낸 거 봉투에 담아 가지 않았던가?”
은수가 오이를 한가득 챙겨서 밭으로 간다고 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보나 마나 그 봉투에서 오이들이 한 조각씩 흐른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현관에 자리를 잡고 앉을 이유가 없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한무까지 데리고 대문을 나섰다. 이번에는 정말 아무런 방해 없이 대문을 빠져나갔다.
“앞으로 이렇게 문을 틀어막고 그러면 안 돼.”
한무가 또 문을 틀어막지 않도록 가볍게 주의를 주었다. 내 집인데 내가 출입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사양이었다.
“대문도 막으면 안 돼.”
특히, 우리 집인데 담을 넘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열쇠를 놓고 등교했다가,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담을 넘던 도중에 다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아무튼, 그렇게 한무에게도 주의를 준 다음 본격적으로 청호와 산책을 하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새로운 방해꾼이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우편배달 왔소이다!”
마치 마법 학교에서 오는 것처럼 편지봉투 하나를 잡고 하늘에서 날아드는 유부였다.
원래라면 현관 앞에 던져 놓거나 했겠지만, 내가 집 앞에 있으니 내게 바로 건네주려는 것 같았다.
딱 편지까지만 확인하고 산책을 갈 요량으로 유부가 건네주는 편지를 받았다. 내게 편지를 건넨 녀석은 근처 바닥에 살포시 내려앉더니, 날카로운 부리를 이용해 날개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우편이야?”
유부가 가져온 편지는 수신인도, 발신인도 적혀 있지 않은 말 그대로의 편지봉투였다. 새하얀 편지봉투에는 그 어떤 장식도 글자도 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예전에 논란이 되었던 위험물 우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곁에 있는 청호가 잠잠한 걸 보니, 딱히 위험물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이게 도대체 뭔가- 싶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편지봉투를 개봉했다. 뒷면에 살짝 붙어 있는 곳을 잡고 당기니 손쉽게 뜯겼다.
“어?”
그런데, 편지 봉투를 개봉한 나는 이상한 것을 느꼈다. 내부에 편지봉투만 한 사이즈의 흰색 종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천천히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착시 같은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 그 종이에서 빛이 일렁거리며 커지고 있었다.
“유부 너 임마! 너 도대체 뭘 가져 온 거야!”
“부우?!”
빛이 점점 커지는 모습에 당황하여 편지지를 내던졌지만, 편지지는 기이하게도 허공에 둥둥 뜬 채로 강렬한 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이윽고 폭발하듯 퍼져나오며 내 시야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쥔님!”
어느새 입마개를 벗었는지 나를 부르는 청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얗게 물드는 시야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