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16
0415 동물세끼(4)
“이, 이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밭에 가득하게 있던 감자들을 수확하다가, 가장 가까이에서 은수의 훈수를 들은 해준 형이 의아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은수를 바라보았다.
“해주나 잠깐만……. 얘 혹시 수환이 아들 아니야? 은수……였던가?”
“안녕하세요! 신은수! 입니다!”
자기를 아는 듯한 모습에, 은수는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배꼽인사를 했다. 인사보다도 훈수가 먼저 나온 게 좀 그렇지 않나 싶었는데, 일단 형들은 딱히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은수를 만나서 반갑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은수야. 아저씨 기억하니? 저번에 왔을 때 은수랑 은수 누나한테 용돈도 줬는데.”
“아저씨!”
은수는 제게 용돈을 주었던 성원 형을 기억했는지, 해맑은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때 성원 형이 준 용돈은 당근으로 변해 은수의 뱃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무튼, 그렇게 훈수를 먼저 둔 은수의 정체를 알게 된 형들과 제작진들은 은수의 난입을 제지하지 않았다. 투덜대는 것이 캐릭터가 아닌 세진 형조차, 은수를 아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히려 은수 주변으로 출연진들과 카메라 감독들이 몰려들 정도였다. 당연히 작가 한 명이 내게 달려와 은수도 출연을 할 수 있을 건지 물어보기도 했다.
“은수야.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했지? 그럼 아저씨들이 뭘 잘못한 건지 알려줄래?”
성원 형은 은수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한 모습으로, 은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은수는 키가 무척 큰 성원 형이 눈높이를 맞춰주는 것에 놀란 모습을 잠시 보이다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이 해준 형이 수확한 감자를 가져왔다.
큼직한 소쿠리에 담겨 있던 감자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깔끔하게 수확이 되어 있었다. 당장 어디 내다 팔아도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상등품처럼 보였다.
파종과 재배 시기가 조금 알맞지 않았지만, 나와 은수의 초능력을 이용해서 아주 튼실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이었다. 해준 형이 수확한 것만 봐도 가장 작은 것이 내 주먹만 한 크기일 정도였다.
“이거!”
그리고, 그런 감자들 중에 가장 위에 놓여 있는 감자를 들어 올린 은수는 그게 잘못 수확된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저씨들이 이거 수확을 제대로 못 한 거야?”
“네에! 이거 나빠요!”
고개를 끄덕이며 외치는 은수의 말에, 형들이 은수의 손에 있던 감자를 가져가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자기들 눈에는 멀쩡하게 보였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은수야. 이게 어디서 나쁜 건지 알려줄 수 있니?”
“요기! 그리구우, 요기!”
은수는 큼직한 감자의 두 부위를 가리켰다. 형들은 은수가 짚어준 그곳을 유심히 살폈고, 그제야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 상처가 난 건가? 살짝 베인 느낌이 있네.”
“선배님. 여기는 멍이 든 것 같은데요? 어……. 아닌가?”
형들이 들고 있는 감자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상처들이 제법 많았다. 땅속에 있는 감자를 캐내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상처가 생긴 것이었다.
호미를 이용해 캐내는 과정에서 날에 상처가 생기기도 하고, 흙이 부드러운 곳에서 손으로 뽑아내다가 상처가 생기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과정에서 감자에 상처가 생긴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흙 때문에 발견하는 게 쉽지 않은 상처였기 때문인지, 형들에게 밭일을 가르치고 있는 무하마드도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식물에 진심인 은수였기에 발견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혹시 무하마드가 가르치는 것을 실수한 건가 싶어, 무하마드가 시범삼아 캔 것을 확인했는데 그것은 상처하나 없이 멀쩡했다. 형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형들이 배운 것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반 강제적으로 체험을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요령을 피운 탓에 감자를 수확하는데 상처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거 마덥써요!”
“이 감자가 맛없는 거라는 말이야? 혹시, 아저씨들이 감자에 상처를 내서 그래?”
상처가 생긴 이유를 확인하고 나니, 은수가 형들이 쥐고 있는 감자를 가리키며 맛이 없다고 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형들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그냥 맛이 없다고 하는 것보다는 맛이 없는 이유를 알려줘야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상처가 난 감자는 수확하고 바로 먹으면 상관없지만, 보관하기가 힘들어요. 솔라닌이라고 하는, 싹에서 생기는 것과 동일한 독성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맛이 없는 건 당연하고요.”
“진짜? 아 그런 건 몰랐네.”
형들은 자기들이 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에 멋쩍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괜찮아요.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바로 동물들한테 바로 주면 되니까요.”
수확하며 생긴 상처는 수확 직후에 먹는다면 맛의 차이는 크게 느낄 수 없었다. 보관 과정에서 독성이 생기며 맛이 변질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딱히 부담 가질 것 없다고 하니 형들은 안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내 말에 부담을 내려놓은 형들이 다시금 은수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은수야. 그럼 아저씨들이 감자를 잘 캘 수 있게 가르쳐줄래?”
“그래! 은수가 아저씨들을 가르쳐주는 꼬마 선생님이 되어주는 거야.”
형들은 은수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했다. 형들의 눈치를 보니, 방송에서의 좋은 그림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웅!”
하지만 그러한 사실은 모르는 은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게로 쪼르르 달려왔다.
“아뿌, 나 이제 선생님이야! 우리 선생님처럼!”
은수는 자기 담임 선생님처럼 선생님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무척 좋다는 듯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아주 빵실빵실 웃음을 짓는 은수의 모습에 나도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행복함 가득한 웃음을 지은 은수는 출연진들의 농사 선생님이 되어주기로 했다.
원래 그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는 무하마드가 있긴 했지만, 무하마드도 자신이 할 일이 있어서 매일 붙어서 가르쳐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밀짚모자와 삼베옷을 입고 뽀니가 끄는 수레를 타고 밭으로 가는 게 일상처럼 되긴 했으나, 무하마드는 가진 돈 만큼 하는 일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은수가 선생님이 되어주는 것은 모두가 반기고 있었다. 제작진은 그림이 나온다며 좋아하고, 은수는 선생님이 되어 농사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좋아했다. 당연히 무하마드도 자신만의 시간이 더 생겨나는 것이었기에 무척 만족하며 보조 교사 자리를 맡았다.
“내가 가르쳐줄게요!”
은수는 자기 전용의, 주문제작으로 제작한 작은 크기의 호미를 들고 아주 힘차게 외쳤다. 형들은 그런 은수를 따라 감자 캐는 방법을 다시 한번 배우기 시작했다.
“여기를 이케이케하구우, 이걸루 요케요케 하면 돼요!”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소은이와 매일 사이좋게 지낸 탓인지는 몰라도, 소은이가 설명하는 모습과 유사해졌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말만 들어서는 절대 이해하기 힘들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은 보조 교사 역할의 무하마드가 근처에 있다는 것이었다.
“호미로 감자가 없는 주변을 살살 흔들어서 흙을 조금 부드럽게 만들어준 뒤에 조심스럽게 움직이라는 소리예요. 그리고, 감자가 살짝 보이면, 호미를 감자보다 더 깊은 곳으로 움직이면 돼요. 이렇게 하면 감자가 상하지 않고 흙에서 드러나게 되죠.”
한국인 유치원생의 말을 중동 부자가 한국어로 번역해 주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형들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무하마드가 통역해서 알려준 은수의 조언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움직이며 감자를 캐내기 시작하니, 이전과 다르게 감자들이 상처 없이 수확되었다.
“은수 선생님! 조금 더 쉽게 하는 방법은 없나요?”
“그케 말구 이케!”
“손목을 너무 세우지 말고, 조금 더 눕혀서 해보라고 하네요.”
“오오! 아까보다 더 편해!”
알아듣기는 힘들어도, 은수의 조언이 무척 도움이 되는 것을 확인한 형들은 정말 은수를 선생님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은수도 신이 나서 형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것에 더더욱 열성적이게 되었다. 촬영일이 되기를 고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촬영하는 날에는 유치원을 가는 것보다 형들의 농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할 정도였다.
당연히 유치원생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결과물이 더 좋아지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제작진들 역시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케미가 뛰어나 보는 것만으로 재미가 느껴지는 인물들과, 각양각색의 매력을 가진 여러 동물들과, 귀여움이 가득한 은수의 모습이 담겼기 때문이다. 흥행의 성공 요소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은수는 거의 고정 출연진이라 보아도 무방한 상태가 되었다. 촬영을 할 때면 매번 은수의 자문아닌 자문을 받으며 밭일을 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은수의 자문을 받아가면서 하던 밭일은 어느덧 다음 코스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미리 심어둔 작물을 절반 정도 수확했으니, 그곳에 새 작물들을 심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넓은 밭을 새로 다 갈아야 한다고? 여길 언제 다 갈아.”
새 작물들을 심기 위해 밭을 다 갈아야 한다는 것에, 세진 형이 또 투덜거릴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투덜거림은 이윽고 등장한 도우미들로 인해서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소……?”
“예. 이곳에서는 특별하게 우경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 농업 기술도 이용하긴 하지만, 밭을 갈거나 하는 등의 작업에는 소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설마 우리보고 소를 끌고 밭을 갈라는 거야?”
“그럼 농기구로 직접 가실래요? 저희는 그 장면을 찍는 것도 좋습니다.”
“됐어!”
난감하긴 하지만 소를 이용해서 밭을 가는 것이 직접 몸으로 하는 것보다는 편할 것이 뻔했다.
결국 형들은 두 마리의 소. 정확히는 칡소인 황희와 정승을 몰아서 밭을 갈기로 했다.
형들은 밭을 관리하며 소를 꽤나 자주 몰아본 무하마드에게서 도움을 받아, 쟁기를 소들에게 걸고 앞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땅이 순식간에 뒤엎어지며, 내부에 남아 있던 뿌리나 감자 같은 것들이 뿅뿅 튀어나왔다.
그런데, 밭을 갈던 황희와 정승이 중간중간 멈추며, 주변에 나와 있는 풀들을 먹는 모습을 보였다. 형들은 태업을 하기 시작하는 소들을 어떻게든 끌기 위해 갖은 노력을 들였다.
옆구리를 톡톡 치면서 앞으로 가도록 유도하거나, 앞에서 먹이를 흔들어 관심을 끄는 등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황희와 정승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형들이 내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상황까지 되었다. 그러나, 형들이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소는 그렇게 모는 거 아닌데!”
바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소은이가 황희와 정승을 붙잡고 낑낑거리는 형들을 향해 훈수를 두게 된 것이었다. 동생인 은수가 한 것처럼.
당연히 이번에도 형들은 은수에게 그러했듯 소은이에게 가르침을 요청했고, 소은이 역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소은이는 은수처럼 출연진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되었고, 아이들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선생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덕분에 동물세끼가 정식으로 방영된 이후로 아이들에게 꼬마 선생님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설명이 조금 난해한 덕분에 무하마드가 보조 교사가 아닌 통역 교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덕분에 방송에서 나온 동물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보기 위해 동물원을 찾는 이들이 더 많이 늘어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카페의 매출 역시 껑충 뛰게 되었다. 형들이 밭에서 재배한 작물을 먹으며 무척 맛있다고 한 것과, 카페에서는 그 작물들을 이용해 디저트를 만든다는 내용까지 방영되었기 때문이다.
은수는 더 넓은 밭을 얻은데다 자기가 기른 작물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늘어서 좋고, 소은이는 자길 예뻐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좋고, 나는 관람객이 늘어서 좋고, 영지는 카페 매출이 늘어서 좋고, 동물들은 더 많은 간식셔틀이 와서 좋고, 관람객들은 방송에서 보았던 것들을 떠올리며 조금 더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아했다.
정말 말 그대로 모두가 행복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