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15
0414 동물세끼(3)
“해주나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왜 그렇게 지쳐 있는 거야.”
“아……. 선배님. 그냥, 좀 많이 돌아다녀서 지쳤어요.”
한껏 지쳐 있는 해준 형은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금방 끝낼 줄 알았는데……. 동물원 전체를 한 바퀴 돌았어요. 라쿤들이 모여 있다길래 갔는데 없었고, 제보를 받아서 다시 이동했는데 사라져 있었거든요. 거의 무슨 추적을 하듯이 동물원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서야 겨우 찾아서 밥을 먹였네요.”
“이 넓은 곳 한 바퀴를 다 돌았다고?”
“예, 선배님. 자연구역까지 들어갔어요…….”
라쿤들의 활동 무대는 사람들이 그득한 곳이 전부가 아니었다. 종종 자연구역으로 나들이 가듯 들어가, 산딸기나 각종 열매 같은 것들을 챙겨 먹기도 했다.
덕분에 해준 형은 말 그대로 동물원을 한 바퀴 돌았던 것이다.
“선배님. 괜히 라쿤한테 밥 주는 게 가장 많은 포인트를 주는 게 아니었어요…….”
해준 형은 한껏 지친 모습으로, 성원 형이 주는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결국, 형들은 내일부터 포인트가 낮더라도 여러 동물들의 먹이를 챙겨주는 형태로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게 조금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세진 형만큼은 내일도 조류관에 모이를 챙겨주러 가기로 했다.
“쟤 성격 생각하면 포인트 낮은 거라고 편하다는 보장도 없어. 그리고, 이것저것 해먹으려면 포인트도 많이 필요하다고. 한 번에 확 벌어야지.”
한탕주의에 빠진 세진 형은 반짝 고생하고 큰 포인트를 벌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 생각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저녁까지 마무리하고 간단하게 인터뷰 시간을 가진 뒤, 피로에 찌든 듯한 형들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형들의 촬영이 다시 시작되었다. 동물들도 아침을 먹어야 했기에,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는 것이었다.
“아침 뭐 먹지?”
“눌은밥……을 할 게 없구나. 어제 다 먹어서.”
저녁에 누룽지까지 싹싹 긁어먹었던 형들이었기에, 아침으로 먹을 것이 없었다. 결국, 형들은 아침부터 피디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침으로 드실만한 것들도 팔고 있는데……. 여러분, 포인트 있으세요?”
“포인트…….”
전날 저녁에 원기회복이니 뭐니 하면서 거하게 차려먹은 형들이었다. 당연히 남은 포인트가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세진 형이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말았다.
“가불하자. 가불.”
“가불? 뭐, 우리야 상관없는데, 괜찮겠어? 이자가 하루에 20퍼센트인데.”
“쟤는 진짜, 피디 아니었으면 어디 사기죄 같은 거로 징역살이하고 있을 거라니까.”
세진 형은 피디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침을 먹지 않을 수는 없다며 해서는 안 될 가불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침부터 포인트 빚을 지게 된 형들은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제 했던 것처럼 새들 밥 주고 올게요. 시간 늦으면 반응이 격해진다니까 먼저 갑니다.”
세진 형이 먼저 일어나서 사라진 뒤, 다른 형들도 하나둘씩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세진 형을 제외한 다른 형들의 경우에는 전날 이야기 한 것처럼 여러 동물들의 먹이를 챙겨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조류관에서 세진 형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예상한 반응이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고 다른 형들을 따라나섰다.
“호랑이가 물지는 않죠?”
“전혀요. 저희 신수의 둥지에 있는 호랑이들은 맹수가 아니라, 애교 가득한 동물들이거든요.”
호랑이 먹이 주기를 선택한 해준 형은 한껏 긴장한 얼굴로, 생닭을 가지고 호랑이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도, 호랑이들은 전혀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준 형의 앞으로 몰려들어서 닭을 제게 달라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끄르르릉.”
발치에서 바닥을 뒹굴며 두툼한 앞발로 그루밍을 하기도 하고, 까끌까끌한 돌기가 가득한 혓바닥으로 슬쩍 손등을 핥기도 하는 등의 애교를 부리는 것이었다.
귀엽긴 하지만 찾으러 동물원 전체를 돌아다녀야 했던 라쿤들과 다르게, 오히려 몰려들어서 애교까지 부리는 호랑이들은 해준 형의 마음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오오……. 현석이 같아.”
아주 좋아하는 절친한 친구를 언급할 정도로, 해준 형은 호랑이들에게 푹 빠져 있었다. 애교를 부리는 호랑이들에게 생닭을 하나씩 직접 먹여줄 정도였다.
그리고, 해준 형이 호랑이들에게 파묻혀서 헤헤- 웃고 있는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바다 형 특유의 핫핫핫- 하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촬영하는 이들을 놔두고 소리가 난 곳으로 이동하니, 바다 형이 거북이들이 있는 곳에서 아주 즐겁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구 잘 먹는다! 그래, 조금 더 먹을래? 자 여기 있다!”
바다 형은 무척 즐겁다는 듯이 거북이들에게 배추를 먹이는 중이었다.
눈 속에 파묻어 줘야 하는 일 없이, 그냥 배추나 저마다 좋아하는 채소류를 앞에 쌓아주기만 하면 잘 먹는 거북이들의 모습을 보며 무척 좋아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느릿느릿하면서도 무언가 빠르다는 느낌이 드는 거북이들의 식사 장면은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사뭇 날카롭게 보이는 주둥이가 배추를 와삭- 베어 물면 배추가 찢어지듯 푹 파였다. 그러다가 그 힘으로 인해 배추가 이리저리 굴러가면 당황한 듯이 움직임을 멈추는 모습은 재미까지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한무가 한 입 물었다가 이리저리 굴러가는 배추를 잡아준 바다 형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배추를 잡아주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듯한 그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성원 형을 찾아 나섰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동물원이 오픈한 상태였기에, 성원 형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조금 소란스러운 곳을 찾으면 그곳에 형들 중 한 명이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곳을 찾아 움직이니, 성원 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원 형은 건축소장……이 아니라, 비버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중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사과를 푹 찔러 끼운 나뭇가지를 흔들어 유인하는 것에 가까웠다.
“눈치채기 전에 빨리 무너트려!”
뒤에서는 비버가 열심히 지어둔 댐과 같은 집을 무너트리는 시설관리팀이 있었다. 성원 형은 먹이로 비버의 시선을 끄는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성원 형은 그런 역할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사과를 조금씩 먹이면서 비버가 제 집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다. 어떻게 보면 잔인한 일이었지만, 비버의 꾸준한 활동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모두가 열심히 동물들의 끼니를 챙겨주는 모습을 만족스레 확인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잠시 처리했다.
섭외 요청이나 동물들의 특이사항 점검 등등. 내가 해야 할 일을 한참 처리하고 나니, 어느덧 은수가 하원할 시간이 되었다. 누나가 은행에 볼 일이 있다고 나간 상황이었기에, 내가 은수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빠르게 유치원으로 향하니, 유치원 입구 부근에서 선생님의 손을 잡고 있는 은수가 보였다.
“아뿌!”
유치원 근처에 차를 세우고 은수에게 다가가니 은수가 도도도- 달려와 덥석 안겨들었다. 그런 은수를 안아들고 선생님에게 인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은수야, 이제 뭐 할 거야? 유치원에서 숙제 준 거 있어?”
“이거!”
은수는 유치원 가방을 휙 풀어서 종이 한 장을 내게 주었다.
종이들을 대충 가방에 쑤셔 넣어 꼬깃꼬깃한 소은이와 달리, 은수는 얌전히 종이를 접어 가방에 넣어둔 상태였다. 덕분에 읽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던 종이를 읽어 보니, 은수가 해야 하는 숙제였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행동을 그림으로 그려보세요.]집에 오면 숙제를 먼저 해야 한다- 라고 가르쳤기 때문인지, 은수는 그 숙제 종이를 가져가서 바닥에 철푸덕 엎드렸다. 그리고 구석에 놔둔 색연필을 가져오더니 곧바로 종이에 끄적끄적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은수가 그리는 그림은 딱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이었다. 그림에 재능이 있지도, 그렇다고 너무 못 그리는 것도 아닌 딱 그 정도 수준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초록색으로 새싹을 큼직하게 그리고, 그 옆으로 은수가 좋아하는 자그마한 물뿌리개가 물을 쏟아내는 것이 그려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숙제를 마무리한 은수가 벌떡 일어났다.
“아뿌, 이제 놀 수 이써?”
숙제를 다 했으니 놀아도 되냐는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허락하니, 은수는 곧바로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더니 현관까지 달려나간 것처럼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뒤늦게 현관이 쿵- 닫히며 도어락이 띠리릭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모습에 도대체 뭘 하러 가는 건가 궁금해져, 은수를 따라가기로 했다. 키도 작고 보폭도 짧은 유치원생이었기에, 따라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은수야, 밭에 가?”
“웅! 저번 주에 심은 거 싹 났을 거야!”
저번 주에 심은 것이 싹이 났을 테니, 그것을 확인하러 가겠다는 소리였다.
가장 좋아하는 행동이 새싹에 물을 주는 것이라고 그릴 정도인 은수 다운 모습이었다.
취향이 참 확고하다는 생각에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은수와 함께 밭으로 향했다.
그런데, 밭에서는 여전히 동물세끼의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동물들의 밥을 챙겨준 형들이 밭에서 일을 하는 중이었다. 미리 심어두어 자라났던 알팔파는 이미 수확을 끝냈기에, 새롭게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었다.
“알팔파는 정말 잡초처럼 잘 자라는 식물이라 대충 뿌려도 되긴 하지만, 더 많은 영양분을 위해서는 약간씩 거리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넓은 지역에 흩뿌리듯 뿌려보십시오.”
이제는 어지간한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잘 하는 무하마드의 지휘 아래, 형들은 열심히 밭에 알팔파 씨를 뿌리고 있었다.
도중에 실수를 연발하는, 도련님이란 별명을 가진 세진 형의 실수를 바로잡으며 화려한 손기술을 보여주기도 했다. 분명 씨를 가볍게 흩뿌리는 동작이었는데 씨앗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땅에 떨어지게 하는 손기술이었다.
“히히히.”
하지만 은수는 그런 손기술에는 관심이 없는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이제 막 싹이 트기 시작한 식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물이 부족하다 싶은 곳에는 전용의 자그마한 물뿌리개를 들고 물을 뿌리는 것은 덤이었다.
새싹을 보며 귀여워하는 새싹 같은 은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새싹을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짓던 은수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동물세끼를 촬영하는 촬영 현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촬영장으로 난입하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기에, 재빨리 은수를 붙잡으려 했지만 밭에서 이동속도에 대한 버프라도 받는 건지 은수는 내 손길을 피해 빠져나가 촬영장에 당도했다.
“그거 그러케 하는 거 아닌데!”
내 손을 피해 결국 촬영장에 난입한 은수는, 어느덧 밭에 있는 작물을 캐내고 있던 형들에게 훈수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