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14
0413 동물세끼(2)
피디가 어서 고르라는 재촉을 하자, 출연진들은 일단 목록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저……. 감독님. 포인트로 뭘 얼마나 살 수 있어요?”
그런데 목록을 확인하던 도중, 해준 형이 중요한 부분을 짚었다.
피디는 출연진들의 반응을 100% 확신한다는 듯한 모습으로 씩- 웃음을 지었다.
“감자 한 알에 10포인트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자세한 부분은 일을 마친 다음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피디는 나중에 알려주겠다며 말을 가볍게 흐렸다.
“뭐? 감자 한 알에 10포인트라고? 호랑이 밥 줘도 감자 한 알밖에 못 먹는다는 소리야? 미쳤나 봐.”
“감독님, 진짜에요? 진짜 호랑이 밥 줘도 감자 밖에 못 먹어요?”
“쟤는 진짜 좀, 그래. 이거 그냥 포인트 많이 주는 거만 골라서 하라는 거잖아. 포인트 많이 주는 건 당연히 힘들 거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출연진들이 성을 냈다. 호랑이 밥을 줘도 감자 한 알밖에 못 먹는다고 하면 나 같아도 성질이 날 것 같긴 했다.
하지만 피디는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과연 그 감자가 평범한 감자일까요?”
“……그럼 뭐, 금으로 만든 감자냐?”
“우리 제작비 그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거든? 그래도 감자는 진짜 평범한 감자는 아니니까 걱정 마요.”
“무슨 감자길래?”
“무려! 드루이드가 손수 기른 감자입니다!”
피디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출연진들의 시선이 내게 날아와 꽂혔다.
정말이냐고 묻는 듯한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급될 식재료의 절반 정도는 내가 키웠거나, 은수가 키운 작물들이었다.
“뭐, 그 정도라면야.”
내가 키운 작물은 내 초능력의 영향으로 더 맛있고, 영양도 더 많은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법 값어치가 있는 편이었는데, 시중에 대규모로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희소성으로 인한 값어치가 조금 더 있었다.
시중에서는 거의 구할 수 없는, 내가 기른 작물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에 출연진들은 나름대로 괜찮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저희는 절대 바가지를 씌우지 않습니다.”
“퍽이나 그러겠다.”
세진 형의 투덜거림 후, 출연진들이 밥을 주는 것이 가능한 동물 목록을 제대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선배님들. 제가 라쿤 밥 주고 오겠습니다.”
“정말? 괜찮겠어? 저 방송국 놈들이 괜히 300포인트나 책정한 게 아닐 건데.”
“힘들 수도 있긴 하지만, 풍족하게 먹어야죠. 그리고, 혹시 쉬울지도 모르잖아요.”
괜히 겁먹어서 하지 못하게 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라는 판단을 내린 해준 형은 가장 힘든 일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리고, 다른 형들 역시 저마다 하나씩 골랐다.
바다 형은 모처럼 이런 기회가 왔으니 이색적인 체험을 하겠다고 얼음궁전에 있는 동물들의 밥을 챙겨주기로 했고, 성원 형은 아쿠아리움에서 해양 생물들에게 밥을 챙겨주기로 했다.
그리고, 세진 형은 조류관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이전에 아라를 꽤 예뻐했던 것이 원인인 것 같았다. 아라는 조류관이 아니라 은수목 상단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알려줘야 하나 싶었지만, 조류관에서 보일 그의 모습이 예상되었기에 알려주지 않았다.
“자, 그럼 여러분들이 동물들에게 안전하고, 올바르게 먹이를 줄 수 있도록 도와줄 분들을 모시겠습니다.”
피디의 말에 몇몇 사육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리 따로 섭외가 되어 있었음에도, 그들은 무척이나 긴장한 듯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분은 바다 씨를 도와주실, 북극곰 담당 사육사이십니다. 이분은 해준 씨를 도와주실 라쿤 담당 사육사이시죠. 이쪽에 계신 아리따운 여성분은 성원 씨를 도와주실 분입니다.”
“나, 날 도와줄 사람은?”
바다 형과 성원 형, 해준 형을 도와줄 이들을 소개하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사람의 소개가 없자, 세진 형이 놀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사육사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해야 하나- 걱정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조금 바쁘셔서 여기까지 못 오신 거예요. 조류관에 가시면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후.”
세진 형이 다행이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형의 모습에 가볍게 웃은 피디는 세 형들과 세 명의 사육사들을 마주하게 했다.
어떤 식으로 먹이를 줘야 하는지, 주의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간단하게 이어졌다.
그런데 다른 형들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달리, 해준 형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라쿤한테 먹이를 주는데 휴대폰이랑 무전기가 필요한 건가요?”
“네. 이거 없으면 얘들 밥을 못 줘요.”
“어째서……?”
“워낙 신출귀몰한 녀석들이라,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래요. 라쿤들을 찾아서 밥을 먹여야 하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찾아다녀야 해요. 그래서 휴대폰이랑 무전기가 필요한 거죠. 무전기로는 다른 직원들에게 라쿤 발견했는지 물어볼 때 사용하고, 휴대폰은 SNS로 라쿤 발견한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죠.”
평범한 동물원들처럼, 동물들을 우리에 가둔 채로 사육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필요한 과정이었다. 우리 동물원의 라쿤들이라면 우리에 가둬놔도 순식간에 탈출했겠지만 말이다.
“이 무전기를 들고, 제가 하는 말을 따라 해보세요. 여기는 라담, 라쿤 찾는 중이라고 알림.”
“그대로 따라 해요?”
“네.”
해준 형은 잠시 망설이다, 무전기에 대고 사육사가 말한 대로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호담 하나, 라쿤 네 마리 방금 은수목 주변 지나갔다고 알림.”
“방금 말한 호담이라는 건 호랑이 담당이라는 소리예요. 그리고 은수목은 저쪽에 보이는 가장 높은 나무를 말하는 거죠. 그 주변에 있었다고 하니, 빠르게 가서 찾아봐요.”
라쿤 담당의 사육사는 곧바로 해준 형을 데리고 이동했다.
그리고, 이후 지속적으로 무전기가 치직치직 울리고 있었다.
“라쿤 찾고 있다고 알림.”
“라쿤 찾고 있다고 알림…….”
“라쿤…… 찾고 있다고 알림…….”
갈수록 지쳐가는 듯한 해준 형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들려왔다. 보나 마나 동물원 전체를 누비면서 체력을 소모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괜히 300포인트라는 높은 수치의 포인트가 책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 포인트는 내가 사육사들의 의견을 받아서 정한 수치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준 형이 고생하는 무전을 들으며, 세진 형을 따라 움직였다.
세진 형은 조류들에게 모이를 주러 이동하고 있었는데 조류관 앞에는 박충유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류관과 파충류관 모두를 관리하는 사람이 박충유였기 때문이다.
“조류들의 먹이 주기를 도와줄 박충유입니다. 지금 모이를 채워주는 시간이 조금 늦은 상태라, 죄송하지만 빠르게 움직이도록 할게요.”
박충유는 시계를 흘끔 보더니 별다른 인사를 하는 대신, 곧바로 세진 형에게 안전장구들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거 자전거 탈 때 쓰는 헬멧 아닌가요?”
“네. 자전거용 헬멧이에요.”
“……위험한 건가요?”
“위험하진 않습니다. 새들이 지금 밥 먹을 시간이 지나서 심통을 부릴 수 있다는 게 문제죠.”
왠지 위험을 조심하라는 듯한 박충유의 말에, 세진 형이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다급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박충유 때문에, 세진 형 역시 덩달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주히 움직인 두 사람은 금세 준비를 마치고 조류관의 입장을 앞두었다. 새들이 선호하는 몇 종류의 모이들을 품에 든 두 사람은 곧바로 조류관으로 들어갔다.
“뛰세요!”
아니, 뛰어들었다.
세진 형은 앞장서서 내달리는 박충유를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푸드드드득! 하고 수많은 새들이 동시에 날갯짓하는 소리가 조류관 밖으로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악!”
뿐만 아니라, 세진 형의 비명소리 역시 조류관 밖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수환 씨. 괜찮은 거 맞죠? 출연진들이 다치면 저희가 좀 곤란해져서…….”
그런 세진 형의 비명에, 계속해서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던 피디가 슬그머니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출연진이 다치게 되면 문제가 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모습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비명을 비롯해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오긴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동물원의 동물들은 직접 공격당하지 않는 이상은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이 된 녀석들이었다.
“새들이 배가 고픈 상태라서 그래요. 배가 고픈 상황에서 밥을 들고 온 사람을 어떻게 맞이하겠어요?”
“어……. 반갑게요?”
“그렇죠. 아주, 아주아주! 반갑게 맞이할 거예요.”
배가 고픈데 마음껏 먹으라고 밥을 갖고 오는 사람을 반겨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조류관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는 배고픈 새들이 박충유와 세진 형을 아주 격하게 반겨주는 소리였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말한 대로 세진 형은 상처 하나 없이 조류관 밖으로 나왔다.
“봐요, 멀쩡하죠?”
“저 모습을 멀쩡하다고 해야 할지…….”
피디는 세진 형의 몰골을 보며 어색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옷 주름 사이사이나 자전거 헬멧의 구멍 같은 곳에 새들의 깃털이 아주 가득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날개에 뺨이라도 한 대 맞았는지 뺨이 불그스름한 상황이었다.
“내가 진짜, 쟤 번호를 차단했어야 하는 건데……. 이 나이 먹고 뭐 하는 짓이야 이게.”
조류관 밖으로 다시금 빠져나온 세진 형은 바닥에 퍼질러져 앉더니, 피디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형,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피디는 그런 세진 형에게 아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갔다. 내부에 설치해둔 거치 카메라만 생각하고 따라 들어가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한 것 같았다.
녹화된 거나 보라며 버티던 세진 형은 계속된 재촉과, 20포인트를 더 주겠다는 피디의 꼬드김에 넘어갔다.
“들어가니까 바로 새들이 날아오더라? 내가 다트 판이 된 줄 알았어. 수백 마리가 순식간에 날아드는데…….”
세진 형은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 마리의 새들이 달려들어, 마치 약탈이라도 하듯 모이를 노렸다. 포대에 들어 있는 모이를 노리고 포대를 뜯으려 하기도 하고, 그런 새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저항하는 세진 형의 손을 날개로 탁탁 쳐대기도 했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이를 내려놓으면 바로 먹기 위해 어깨나 머리에 자리를 잡고 앉은 녀석은 물론이고 포대를 뚫고 들어가서, 포대를 터트린 녀석도 있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래요? 원래 포대까지 터트리지는 않는데, 배가 많이 고팠나 보네요. 촬영 준비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늦긴 했거든요.”
“어후……. 내일부터는 시간을 꼭 지켜야겠네.”
늦어서 그렇다는 말에 세진 형이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을 지키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데, 시간을 제때 맞춰도 보이는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저 포대를 터트리지 않을 뿐, 어서 달라고 보채는 건 똑같았다.
내일이 되면 알 수 있는 일이었기에, 새 깃털들을 털어내는 세진 형을 보며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세진 형과 제작진들을 따라 다시금 밭으로 돌아왔을 때, 세진 형처럼 마찬가지로 지친 듯한 모습을 보이는 형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라쿤들을 찾아다니는 해준 형을 빼고.
눈 속에 파묻힌 먹이를 찾아 먹는 걸 즐기는 북극여우를 위해 눈을 파서 먹이를 묻어야 했던 바다 형은 머리카락과 눈썹이 살짝 얼었다가 녹고 있었고, 아쿠아리움에 해양 생물들에게 먹이를 먹이러 갔던 성원 형은 물에 빠졌던 건지 홀딱 젖어 있었다.
“괜히 포인트가 높았던 게 아니었어…….”
“자기야. 난 앞으로 포인트 낮은 거로 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해준이 얘는 어딜 간 거야? 불 피워야 하는데.”
형들은 포인트가 높았던 것에 이유가 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포인트를 이용해 저녁을 구매했다. 아니, 정확히는 재료를 구매해, 하루세끼에서 하는 것처럼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으어어……. 선배님…….”
그리고, 저녁이 거의 완성되어 갈 즈음, 한껏 지친 듯한 해준 형이 어기적어기적 걸어왔다.
해준 형은 네 마리 라쿤들을 찾기 위해서 아주 열심히 동물원 투어를 다녀왔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