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62
0061 이것은 육아인가 서커스인가
“휴…….”
소은이가 다시금 새근새근 잠에 빠져든 것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와따, 뒤지는 줄 알았다 아이가!”
하지만 아직 해야 할 것이 남았다.
나는 살아났다는 듯이 다시금 호들갑 떠는 라쿤들의 뒷덜미를 재빨리 잡아챘다.
“아직 살았다고 하기엔 애매하지 않을까?”
“힉!”
“도대체 거긴 왜 들어가 있던 거야?”
“그, 그기…….”
내 말에 라쿤들이 눈알을 데록데록 굴리며 변명할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간식 때문 아니겠슴까.”
“그렇지?”
그러나, 나는 물론이고 청호 역시 라쿤들이 그곳에 숨어 있던 이유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라쿤들이 주방에 숨어서 할 것이라고는 잘 보관해둔 간식 포대를 털어먹는 것 외에는 없었다. 츄르라면 드라마도 찍어낼 정도로 식탐이 강한 남캣처럼, 두 라쿤 역시 먹을 것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너희들.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 예상하고 있지?”
“하, 한 번만 봐도!”
“다시는 안 그라께!”
간식 제한을 당하며 한동안 다른 녀석들이 간식을 받아 먹는 걸 구경만 해야 했던 기억이 있는 두 라쿤은 앞발을 싹싹 빌며 용서를 구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녀석들이 내려놓은 딸랑이를 다시금 쥐어주었다.
“그럼 너희는 앞으로 우리 소은이 전용 딸랑이야.”
“엑…….”
“싫어? 싫으면 간식 제한 당하던가.”
“에헤이, 좋아서 그라제!”
내 말에 두 라쿤은 당장이라도 딸랑이를 흔들어대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 소리에 또 소은이가 깰까, 녀석들을 제지하면서 씩- 웃음 지었다.
“소은이가 울 것 같다 싶으면 너희들이 잘 달래야 된다? 그럼 간식은 내가 풍족하게 줄 게.”
손바닥을 내밀며 말하니, 두 마리 라쿤이 가볍게 앞발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때, 가만히 있던 청호가 슬며시 나를 불렀다.
“쥔님.”
“왜?”
“아가씨께서 침 흘리시지 말입니다…….”
소은이의 입에서 살며시 흘러내린 침방울이 청호의 등을 적시고 있었다. 아기인 만큼 그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 등에 침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는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꿀잠을 자고 있는 소은이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잠결에 손아귀 힘도 느슨해진 덕에 청호를 붙잡은 손을 뗀다고 고생할 일은 없었다.
“아이고 잘 자네.”
색-색- 소리가 나며 잠을 자는 소은이를 보고 있으니 절로 흐뭇함이 느껴졌다.
나는 재빨리 소은이를 아기 침대에 뉘여주고서, 청호를 바라보았다.
“조금 있다가 씻겨줄게. 괜찮지?”
“알겠슴다.”
씻는 것이 일상이던 군견답게, 청호는 씻겨준다는 말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에도 며칠에 한 번씩 깨끗하게 씻는 녀석이었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일기토. 소은이 좀 부탁할게? 소은이 깨면 저기 버튼을 눌러주면 돼.”
“걱정하지 마샤!”
나는 소은이를 일기토에게 맡겼다. 아니, 맡겼다기 보다는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라고 시켰다. 누나가 만삭이 되며 움직이기 힘들어 때, 집 어디에서든 나를 부를 수 있게 호출벨을 만들어둔 것을 다시 이용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토끼도 누를 수 있는 버튼이었으니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금세 뛰어올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일기토에게 소은이를 바라보고 있게 만든 나는 1층으로 가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누나가 미리 만들어뒀던 샌드위치를 먹으니, 소은이를 안고 흔든 탓에 느껴지는 허기가 금세 가셨다.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다시금 소은이가 있는 곳으로 가니, 여전히 천사같은 모습으로 자고 있는 소은이가 보였다.
“별 일 없었지?”
샌드위치를 흡입하듯이 먹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라도 무슨 일이 있을 수는 있었으니 일기토에게 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샤!”
일기토는 귀를 쫑긋거리며 소은이가 아주 잘 자고 있음을 어필했다.
나는 그런 일기토와 소은이를 보며 다시금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소은이를 보기만 하면 도저히 흐뭇한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나는 아기 침대에 누워 있는 소은이를 다시금 안아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누나와 함께 쓰는 큰 사이즈의 침대에 같이 누웠다.
곁에 눕힌 소은이의 몸을 가볍게 토닥이니, 나도 모르게 졸음이 쏟아졌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졸음이 몰려와, 어느새 소은이 곁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런 내 수면은 오래가지 못했다.
“쥔님. 쥔님!”
함께 자리하고 있던 청호가 나를 툭툭 건드리며 깨웠기 때문이다.
“……왜.”
“아가씨께서……. 싸신 거 같슴다.”
“억!”
청호의 말에 나는 벌떡 일어나, 소은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잠들었던 사이에 깼던 건지 소은이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일기토의 털을 붙잡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살짝 얼굴이 찌푸려진 듯한 느낌이 들긴 했다.
그러한 소은이의 모습에, 청호의 말이 사실임을 눈치 챈 나는 재빨리 소은이의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코가 워낙 예민한 청호가 도중에 잠깐 도망치는 일이 있긴 했지만, 금세 해결하고 나니 소은이가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꺄응!”
“소은이 좋아요?”
해맑게 웃는 소은이의 모습에, 소은이의 배를 살살 간지럽혔다. 아기들 특유의 뽈록한 배를 문질러주니 소은이가 좋다며 꺄르륵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아, 힐링된다.”
똥기저귀고 뭐고, 이런 모습만 보면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으우우웅.”
소은이를 보고 마냥 웃고 있었더니, 소은이가 다시금 칭얼거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워냈으니 또 채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루에 세 번이면 충분한 성인과 다르게, 아직 어린 아기인 소은이는 틈만 나면 조금씩 식사를 해야 했다.
점심에 그러했듯이 젖병을 깔끔하게 비워낸 소은이의 등을 쓰다듬어 트림을 유도해주었다. 하지만 이어진 행동은 점심과 달랐다.
먹고 바로 졸린 모습을 보이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소은이가 마치 놀아달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눈에 보이는 게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는 그냥 잠이 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음…….”
나는 곧바로 소은이와 놀아줄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며 천천히 집안을 배회했다.
그러던 도중 물건 하나가 내 눈에 띄였다. 아기들을 앉혀놓고 자동으로 흔들어주는 전동 바운서라는 기계였다.
“작동이……. 음, 여전히 안 되네.”
슬며시 전원을 넣어, 작동시켜보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발로 가볍게 밀어보니 바운서가 힘없이 스르륵- 쓰러졌다. 흔들리는 것이 신기하다며 청호를 제외한 개들이 달려들었다가 배송받은 당일에 파손되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청호야. 또 네가 고생좀 해야겠다.”
“뭐든 시켜만 주십셔!”
“네가 있어서 엄청 든든해. 알지?”
내 말에 청호는 기쁘다는 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은근슬쩍 가슴을 부풀렸다. 의기양양한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고장나 있는 바운서에 소은이를 태웠다. 어떻게든 일기토를 놓지 않으려는 모습이라, 일기토까지 태우니 바운서가 꽉 들어찼다.
“우우?”
배송 당일에 고장난 탓에 타보지 못했던 바운서가 신기한지, 소은이는 눈을 데록데록 굴리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청호야. 부드럽게 흔들어봐.”
“알겠슴다!”
내 말을 찰떡같이 이해한 청호는 바운서를 한 발로 잡고 부드럽게 밀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고장나서 힘없이 쓰러지던 바운서는 청호의 힘 앞에 멀쩡해진 것처럼 부드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꺄!”
가볍게 흔들리는 것을 느낀 소은이는 즐거운지 꺄르륵 소리를 내며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라쿤들을 다시금 불러들였다.
“뭐고?”
“알잖아? 흔들어.”
“끙…….”
자기들이 잘못한 것이 있음을 아는 두 마리의 라쿤들은 내 말에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소은이 앞에서 열심히 딸랑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소리가 나며 소은이의 시선이 집중 됐다.
그런데 조금씩 소은이의 표정에 불편한 기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장난 바운서라 대충 구석에 방치해둔 것이었는데, 에어컨이 가동되며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다른 위치와 달리 약간의 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지금 소은이는 더워하는 것이었다.
‘옮겨?’
이걸 에어컨 바람이 부는 곳으로 옮길까- 생각도 했지만, 더 좋은 생각이 들었다. 에어컨 바람을 직접 쐬게 하는 것 보다는 가볍게 부채질을 하듯이 바람을 쐬게 해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한 나는 곧바로 창문을 열고 크게 소리쳤다.
“유부야!”
유부를 부르고 삼십 초 정도를 기다리고 있으니, 하늘에서 파르륵 소리와 함께 유부가 창틀에 내려앉았다.
“부르셨소?”
“어. 좀 도와줄래? 나중에 먹을 거 챙겨 줄 게.”
“뭘 도와드리면 되겠소이까?”
“부채질.”
“……?”
내 말을 순간 이해하지 못한 유부였으나, 소은이의 곁에서 바운서를 흔드는 청호와 딸랑이를 흔들어대는 두 라쿤을 본 유부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녀석은 잠깐 황당하다는 기색을 보였지만, 다른 녀석들처럼 소은이를 귀여워하고 있었기에 곧장 몸을 움직였다.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소은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 유부는 그대로 날개 한 쪽을 펼쳐 소은이를 향해 부드럽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큰 덩치의 유부를 날도록 해주는 날개는 그만큼 커다랬고, 그 크기만큼의 바람을 만들어내어 소은이를 향해 뿜어냈다.
소은이가 있는 곳까지 닿지 않던, 에어컨으로 시원해진 공기가 소은이를 향해 뿜어졌다. 덕분에 소은이의 얼굴에 나타나던 불편한 기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히려 꺄르륵 소리를 내며 웃음까지 터트리고 있었다.
“으흐흐핫! 니들이 최고다!”
꺄르륵 웃음을 짓는 소은이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뻐졌다.
당연히 내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호가 밀어주는 바운서에 탄 채로 일기토를 주무르며, 라쿤들의 재롱을 보고 유부의 날개 부채질을 받는 모습은 카메라에 담지 않는 것이 손해였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으니, 카페에 보낸 다른 동물들을 모두 불러오지 못한 것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이 때 만큼은 내가 카페를 오픈한 것이 후회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오히려 다 불러모으지 못한 것이 내게는 다행이었다.
“소은이 돌보랬지, 서커스 보여주랬니!”
“끄으으윽……!”
외출에서 돌아온 누나가, 소은이가 즐거워하는 건 별개로 내가 하는 꼴을 보더니 등짝 스매싱을 풀파워로 날렸기 때문이다.
아파 죽겠네. 하필이면 손도 잘 안 닿는 곳을 때려서…….
‘그래도 소은이가 좋아하면 됐지 뭐.’
등에서 느껴지는 화끈함을 애써 없애기 위해 몸을 꼼지락거리면서도, 꺄르륵 웃음을 터트리는 소은이를 보니 그런 고통쯤은 금세 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