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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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단을 영리하다 칭찬했던 병치는 금세 불쾌한 표정이 되어 단을 흘금거렸다.
그럴 것이 대화를 따라가다 보니 얼결에 자신과 찰령부사가 한씨 율지의 주도대로 움직였음을 인정하게 되어버렸다. 직전까지 거간꾼이다, 땅인 자격도 없다며 한씨 율지를 잔뜩 깎아내리던 참이었으니 더 민망할 터였다.
시현은 또다시 쓸데없는 불똥이 튀기 전에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왔다.
“아마 한씨 율지는 처음부터 두 분 부사의 힘을 빌릴 생각으로 판을 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암시장은 무력의 보호 없이는 유지할 수 없으니까요. 최소한, 그는 일을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군요.”
“교활한 자지요. 앞에서는 온통 알랑거리면서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하지만, 머릿속엔 중개료 한 푼이라도 더 덤터기 씌울 생각만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 시장이 있어서 원곡부의 주둔군도 어느 정도 득을 보는 것이 아닙니까?”
“시장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시장을 유지하느라 공을 들이는 것은 이쪽인데, 사이에서 줄을 타고 거간 노릇을 하면서 이익만 쏙쏙 빼가는 꼴이 보통 얄미운 것이 아니랍니다.”
“수완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요.”
병치는 시현의 말투에서 율비에 대한 미약한 호의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가 바로 언성을 높였다.
“아닙니다. 율지는 작은 금전에 눈멀어 툭하면 말을 뒤집고 신뢰를 버리는 자인데, 천한 장사치면 모를까 땅인이 되어서 어찌 그것을 수완이라 말하겠습니까?
남재께서도 율지 같은 모리배와 상종하시면 그것이 두고두고 흠으로 남을 겁니다. 그자는 변두리 토호 출신이라 대관성 정계에선 남재께 아무 힘이 못 됩니다. 하물며 매격을 했다는 말까지 도는데!”
“매격이라? 격을 샀다는 말인가?”
시현이 눈을 크게 떴다. 놀란 나머지 원래 말투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운관에서는 그것이 놀랄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병치는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흔한 이야기지요. 벼슬할 생각도 없이 이름만 사 놓고 지방에서 행세할 생각이었는데, 변고 때문에 험지에 부임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지니 반강제로 떠밀려 부임했을 겁니다. 대릉읍 말고도 변고 후 변두리의 작은 읍성에 새로 온 자는 태반이 돈이나 연줄로 격을 산 이들입니다. 법술 실력이 일천하니 혼란이 더 통제가 안 된다 하더군요.”
병치는 시현이 놀라 하는 얼굴을 보고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한씨 율지에 대한 신뢰에 충분히 금을 냈다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위험 때문에 다들 마다하는 자리에 와서 제 배 불릴 생각부터 하는 것을 보면 율지 그자가 배짱만은 대단합니다만. 그래도 격을 가질 자격이 없는 것만은 분명하지요. 이제 제가 제안을 드리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이것은 저와 총령부에도 좋은 일이지만 남재께도 살길입니다.”
병치는 대답을 기대하는 눈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시현이 웃었다.
“난처하군요. 이제 다시 제가, 저는 여행하는 사람일 뿐이고 복잡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으며, 한씨 율지와 결탁한 바가 없다 말해도 부사께선 믿지 않으시겠지요. 더구나 방금 찰령부사에게서 경매에 참가하면 큰일이 될 줄 알라 협박을 듣고 왔는데, 원곡부사께선 반대로 경매에 나서 달라 하시니 더욱 곤란합니다.”
“아, 찰령 쪽 일이라면 아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찰령부사가 화제에 오르자 병치가 씨익 웃었다.
“그자는 제 법술만 믿고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하려 하는 무식한 자지요. 남재께서 입찰에 나서시면 펄펄 뛰며 당장이라도 경매를 엎고 무력으로 돌을 차지하려 들 것입니다.”
“그건 오히려 크게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제가 있으니까요. 제가 그자를 구슬러, 일단 경매를 포기해서 돌을 넘겨준 다음 귀수관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군으로 압박하여 돌을 빼앗자고 제안하겠습니다. 찰령부사는 그 성격에 틀림없이 넘어오겠지요.
그러면 첫째, 남재께서는 저와 찰령부사가 빠진 경매에서 최대한 낮은 가격에 입찰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일단 그것으로 한씨 율지가 주머니 채우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둘째, 경매가 끝나면 바로 돌을 가지고 저희 쪽에 의탁하여 원곡부 주둔군의 호위를 받으며 대운관을 향하시면 됩니다. 찰령부사는 남재께서 귀수관 쪽으로 가시리라 생각하고 그 방향에 부대를 깔아 놓았으니 대응이 늦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부사께서 직접 찰령부사를 속이는 일이 되는데, 찰령부와 원곡부 사이에 큰 싸움이 나지 않겠습니까. 찰령부사도 참석 일에 아주 진심이던데.”
병치가 씨익 웃었다.
“싸움이 나면 나라지요. 저는 그자가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미 돌이 우리 손에 들어온 후라면, 꼬리를 내릴 쪽이 누가 되겠습니까?”
병치는 아주 의기양양했다. 율비와 원진에게 한 방씩 먹이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들뜨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현은 좋은 표정을 할 수 없었다. 병치도 원진도, 관군을 사사로이 싸움에 동원하고 심지어 관군끼리 내전을 벌이는 것에 아무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시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 머릿속이 복잡하군요. 시간도 늦었으니 내일 이야기를 마저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
병치는 시현의 의중을 읽으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쪽을 대우하며 마음을 사려던 모습은 순간 사라지고, 거만하고 계산적인 분위기가 그를 감쌌다.
병치가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말했다.
“그리하시지요. 생각하실 시간도 필요하실 테니까요. 그러나 제가 이미 드릴 수 있는 정보를 다 드리고, 베풀 수 있는 호의를 다 베풀었다는 것을 아시고 신중히 결정하셔야 합니다. 판단을 잘못하셨을 경우엔 저도 지켜 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협박으로 나오는 것은 병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현은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병치는 인사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문을 나서려던 그는, 시현의 마지막 반응이 시원찮다고 생각했는지 등을 돌리고 한마디를 더 붙였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시기에는 큰 욕심을 부리기보다 안전을 먼저 생각하셔야 합니다. 최소한 대운관 중시조가 위씨의 이름은 이 땅 위에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현은 뒤쪽에서 단이 작게 숨을 들이켜는 것을 들었다. 시현도 얼굴이 굳었다.
시현이 딱딱하게 말했다.
“말씀을 주의하십시오. 나는 내가 위씨 가 사람이라 말한 일이 없습니다.”
“물론, 비밀이야 지키겠습니다만.”
“아니요, 말 그대로 발언을 조심하라 한 것입니다. 위교연은 죽었지만 그 이름으로 흐른 피가 아직 땅 위에 마르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위씨 가문의 이름을 운운하는 것이 세간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지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것도… 주의해야지요. 옳습니다. 정쟁의 빌미가 될 말은 입밖에 안 내는 게 좋지요.”
병치는 아리까리한 얼굴이 되어 느릿느릿 말했다. 표정을 보니 시현이 위씨 집안 자제일 거라는 굳은 확신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병치는 어중간하게 인사말을 남기고는 데려온 수행을 이끌고 떠났다.
단이 방문을 닫고 오니 시현은 병치와 나눴던 다상을 밀어놓고 새 잔에 물을 따르고 있었다.
자리에 돌아온 단에게 시현이 물잔을 내밀었다. 그가 어쩐지 눈치 보는 기색으로 말했다.
“미안하구나.”
“뭐가?”
“아니…. 내가 공연히 너를 자리에 불러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말을 듣게 하고….”
답지 않게 주뼛거리는 시현을 보며 단은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빠졌다.
이 녀석도 사람한테 주눅 들고 기죽고 다 할 줄 아네. 그게 기세등등한 부사 앞에서는 안 나오고 내 앞에서만 나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
단이 반응을 곤란해하고 있는데 마침 밖에서 소란스러운 기척이 났다. 호란이 우당탕 대청에 올라오더니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자! 들어가서 네가 말씀드려!”
호란의 목소리엔 날이 서 있었다. 단도 시현도 의아해서 문 쪽을 바라보았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들어온 것은 율비가 보내준 종자 두 명 중 한 사람이었다.
호란 또래의 여자 종자로, 성격이 쾌활하고 지역 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 도움이 되었다. 흰바위마을의 현재 사정과 낮 시장과 밤 시장에 대해 일행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이 종자였다.
시현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죄송합니다….”
종자가 머리를 숙였다. 호란이 눈을 부릅뜨고 일러바쳤다.
“요 녀석이 곁방에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근데요….”
종자는 연신 머리를 꾸벅이며 말했다.
“근데 치읍감님… 율지 나으리가, 들켜도 괜찮으니까 들을 수 있는 건 들어 오라고 하셔서요….”
시현이 눈을 가늘게 했다.
“그러면 혹시 그이가, 들키면 자기가 시켰다 말하라고도 하더냐?”
“네. 괜히 꾸물대다 혼나지 말고 바로 고하라고 하셨어요.”
종자가 냉큼 대답했다. 시현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한씨 율지란 이는, 사람이 대범하다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뻔뻔하다고 하셔도 아무도 뭐라 안 할 것 같은데요. 이제껏 겪은 적 없는 유형인 건 분명하네요.”
단까지도 어이가 없는지 실소하며 말했다. 시현이 종자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앉거라. 네 이름이 송이라고 하였지? 한씨 율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미 여러 가지를 들었다만, 네게서 한번 들어보는 것도 좋겠구나.”
“아! 네! 들어주세요!”
시현이 말하자 송은 곧바로 반색을 했다. 그가 거의 흥분하며 목청을 키웠다.
“원곡부사님이 너무 하셨어요! 치읍감님이 돈을 좀 밝히셔서 그렇지 절대로 그렇게 나쁜 분이 아니거든요! 치읍감님 안 계셨으면 지금 이 동네는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고요.”
“그래. 천천히 이야기해 보거라. 목소리는 조금 낮추고.”
“아…. 네.”
송은 무릎 꿇은 자세를 고치고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변고가 나자마자 돈 좀 있는 땅님들은 종이고 소작인이고 내버려 두고 자기들만 피난을 갔어요. 전임 치읍감과 법군 부장도 땅님들과 몫꾼들을 모아다가 대릉읍에 틀어박히셨고요. 그분들이 대관성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읍소하고 뇌물 쓰는 데 몰두한 사이에 읍성 주변 마을이 모두 거석에 짓밟혔지요.”
“율지는 달랐단 말이냐.”
“예. 원래 계시던 땅님도 다 떠나가는 판국에, 새 치읍감님은 선뜻 이런 벽지에 부임해 와주셨잖아요. 혼자만 온 것이 아니라 강한 법술사님이랑, 병사들이랑, 일 잘하는 잡관들까지 데려와서 대릉읍을 살려 주셨어요. 막혔던 물길도 몇 군데나 다시 복구하셨고요.”
시현은 생각하는 얼굴이 되어 물었다.
“이 마을에 암시장을 연 것도 율지가 맞느냐.”
“그거야… 밭이 다 짓밟혀 버려서 가을 추수를 못 했으니까요. 먹고살 길이 막막하니 암시장을 열어서 지역에 식량이 풀리게 해주신 거예요. 치읍감님 아니었으면 다들 굶어 죽었든지, 사람이 다 떠났을 거예요.”
“네 말대로라면 한씨 율지는 정말 훌륭한 관리가 아니냐. 원곡부사가 그를 지나치게 모함했구나.”
시현이 미소를 짓고 말했다. 하지만 율지를 칭찬하는 말을 듣자 송은 갑자기 자신 없는 얼굴이 되었다.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근데…. 부사님이 꼭 없는 말만 하신 건 아니고…. 아마 매격을 했다는 소문은 진짜일걸요? 치읍감님이 마법 쓰는 거 본 적 없거든요. 거간 노릇으로 돈 좀 만지시는 것도 사실인 거 같고.”
“……그렇구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