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41
341화
* * *
“어째서 원천이 저곳에 있지? 별의 중심에 있어야 할 원천이.”
금강도 모들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단과 호란이 한발 늦게 경악했다.
“뭐?”
“네?”
“잠깐만. 말이 돼? 원천은 이 별을 지탱하는 힘이라며. 그게 어떻게 여기….”
단이 말을 멈추었다.
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기압차가 만드는 잔물결 따위가 아니었다. 수면 위의 한 점을 중심으로 큰물 전체가 느리고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류는 기이하도록 느렸다. 하지만 끝도 수심도 알 수 없이 거대한 물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모습은 사람이 평생 상상해본 적 없는 압도감을 주고 있었다. 그 물 아래에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실감하는 데 기감은 굳이 필요가 없었다.
호란이 침을 꿀꺽 삼키고 시현에게 물었다.
“정말로 원천이 여기 있어요? 어떻게 이런 데 있어요?”
“저들에게 묻거라. 전부 변고를 일으키기 위해 저들이 저지른 일이니.”
“네?”
시현이 두 돌 인간을 노려보았다. 창백해졌던 얼굴에 핏기가 돌아와 있었다.
“원천의 핵에는 스스로 기운을 끌어당기는 인력이 있다는 감람의 말을 기억하느냐. 저들은 원천을 지표 가까운 곳까지 끌어내고, 그 인력을 이용해서 이제까지 온 세상의 법력을 북으로 모아들인 것이다. 변고를 일으킨 건 처음부터 원천 그 자체였다. 특별한 마력회로 같은 것이 아니었어.”
“그럼, 여기 있는 마력회로들은 다 뭐예요?”
“전부 인간의 인지에서 원천을 감추기 위한 것들이다. 법력을 모으는 것과도 가둬놓는 것과도 아무 상관 없었다. 단이 목표한 회로를 찾아내지 못한 건 그 때문이었다.”
모들은 이상한 것을 보는 눈으로 시현을 보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네가 그것을 알 리가 없다. 인간의 몸으로 직접 지각할 리는 더더욱 없다. 그리고 원천은 저곳에 있지 않아.”
“왜 부정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심산에서 원천의 인력을 직접 접했다. 별의 중심에서 지표까지는 닿지 않을지 몰라도 인간이 사는 좁은 땅을 뒤덮기에는 충분한 힘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지금 저 물 밑에서 세상의 기운을 흡수하는 원천의 존재를 명확하게 느끼고 있다. 서툰 거짓말은 그만두거라.”
금강이 긴 한숨을 쉬었다. 그가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니, 모들은 거짓말을 안 했어. 원천은 별의 중심에 잘 있어. 미쳤다고 원천의 위치를 옮기겠어? 순식간에 별이 붕괴할 텐데. 우린 별의 중심과 이 장소를 초물리계에서 연결한 것뿐이야. 힘이 드나들 수 있도록.”
“내가 듣기엔 그것도 충분히 미친 것 같은데.”
단이 중얼거렸다. 시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심산의 마력 추출구처럼 말이냐?”
“바탕은 비슷하지. 훨씬 더 안정된 기술이긴 하지만.”
“결국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 연결이란 쌍방향이다. 지표면에 인력이 작용하고 기운이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건, 역으로 원천의 기운이 세상에 흘러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상 전체에 터무니없는 위험이다. 당장 연결을 끊어라.”
“그건 곤란해. 원천핵의 인력이 사라지면 지표로 마력이 되돌아오고, 인간들이 다시 마력을 펑펑 사용할 테니까. 이제까지 우리가 한 일이 원래로 되돌아갈 뿐이지.”
“그러면, 지금 내 손에 원천이 들어온 것은 너희에게 곤란한 일이 아니란 말이냐?”
시현이 말했다.
금강은 잠깐 동안 자기가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가 눈을 부릅떴다.
“말도 안 돼. 인간이 원천을 지각한 것만도 말이 안 되는데, 원천의 힘을 통제하기까지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산에서 감람이 내게 원천이 저곳에 있으니 닿아 보라고 말한 순간부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너희가 열어 놓은 통로 덕택에 내 지각은 이제 원천 전체에 닿았다.”
“불가능해.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온 우리 동료들 중에서도, 원천과 직접 연결된 채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내가 유일했다.”
“그런 것이 너희가 사람에 대해 착각하는 부분이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이 왜 필요하겠느냐? 우리는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이기에 경험할 수 없는 무한에 사유가 이르고, 경험만이 아닌 지식으로도 인지를 넓힌다. 그리고 초물리계에서 지식과 지각은 하나다.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다룰 수 있다. 다룰 수 있는 것은 인지할 수 있다.”
시현의 말을 증명하듯 물 아래 광원이 더 밝아졌다. 아직 끊어지지 않고 남아 있던 바닥의 마력회로들이 열을 못 이기는 것처럼 스스로 불탔다. 하늘에 가득했던 흰구름도 수면의 회오리를 비춰낸 것처럼 거대한 나선형을 그리고 있었다.
금강이 아니라 단이 더 질린 얼굴이 되어 몇 걸음 물러섰다. 시현이 말했다.
“제안하겠다. 지금 당장 공간의 연결을 끊고 원천을 원래로 돌려놓아라. 그리고 인류를 절멸시킨다느니 하는 헛된 생각 따위는 영원히 그만두어라. 세상 사람들이 제 뜻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고, 우리와 함께 별을 유지할 다른 방법을 찾는 거다. 너희가 약속한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다. 하지만 거절한다면 나는 원천의 힘을 써서 너희와 싸울 수밖에 없다.”
금강은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대신 모들이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그가 말했다.
“이걸로 우리 방식의 한계가 명백해졌군. 수 시대 전, 대절멸을 계획하고 실행을 결심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오판을 하고 있었다. 대절멸은 최초부터 잘못되었어.”
금강은 화들짝 놀랐다.
“모들? 설마 계획을 포기할 거야? 그건 모두 함께 결정한 거야! 마음대로 바꿀 순 없어!”
“포기가 아니라 변경이다. 합의가 있다면, 그리고 별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어떤 결정이든 수정될 수 있어.”
모들이 말하면서 천천히 이쪽을 보았다. 얼굴이 초연했다. 평소 같은 분노도 살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호란은 다음에 일어날 일을 알았다.
먼저 움직인 것은 시현이었다. 하늘과 물이 동시에 빛을 뿜었다. 수면에서부터 솟아오른 수없는 빛줄기는 하늘을 향해 뻗는가 하더니 사태처럼 허물어지며 벼랑 위로 밀려왔다.
모들의 몸에서도 흑색의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어둠을 몸에 두른 탄환이 밀려오는 빛을 가르며 시현을 향해 돌진했다.
빛과 어둠의 충돌은 생각과 달리 과격하지 않았다. 백색과 흑색은 닿은 순간 서로를 무화시키며 사그라들었다. 물결에 밀려나듯 속도가 줄어든 모들이 시현이 뻗은 손 얼마 앞에 멈춰 섰다.
시현과 눈을 마주친 채 모들이 말했다.
“인간이 명맥을 잇게 둔 것이 잘못이야. 처음부터 인류 전부를 몰살해야 했다. 단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시현이 말했다.
“이런 선택밖에 없느냐. 원천을 다룰 수 있다는 내 말을 믿지 않은 것이냐? 아니면 내가 별을 유지하도록 돕겠다는 말을 믿지 않느냐?”
“반대다. 난 네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 그리고 네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인간들도 조만간 해낼 것이란 걸 안다. 그리고 그중 누군가는 반드시 세상을 망쳐놓겠지.”
모들이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내가 모든 걸 끝내겠다는 거야.”
“잠깐만! 모들!”
다시 움직이려는 모들에게 금강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안 돼! 원천을 열어놓은 채 싸우는 건 미친 짓이야!”
“뭐가 걱정이야? 원천의 힘은 우리도 쓸 수 있잖아. 오히려 마법사가 원천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지 못한 지금밖에 기회가 없어.”
“어쨌든 간에 원천이 소모되잖아. 종말까진 아니라고 해도, 자칫 싸움이 끝난 후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별이 될 수도 있어!”
“아, 그거 좋은데. 그럼 인간도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을 거 아냐.”
“안 된다니까!”
금강이 소리쳤다. 지면에서 푸른 빛의 장막이 솟아 시현과 모들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설마 정말로 인간을 모두 죽일 셈이야? 인류 전체를 별에서 완전히 없애겠다고?”
“그러겠다고 말했잖아? 사실 대절멸이란 말의 진짜 의미는 그쪽이지.”
“하지만 별과 함께 인간을 존속시키는 건 다 같이 결정한 거잖아!”
모들이 금강 쪽을 보았다. 그는 어째선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금강, 그동안 우리가 한 일들을 되돌아봐. 대절멸이라며 셀 수 없는 인간을 죽이고, 미미한 숫자만을 남겼다가 다시 문명이 태어날 때까지 보호하고, 그 인간들이 번성해서 별을 위협하기 시작하면 다시 대절멸을 일으키고. 그야 한두 번 미봉책은 되었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걸 반복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어.
우리가 시도해보지 않은 게 뭐가 있지? 인간이 살아가기에 풍요로운 환경도 혹독한 환경도 다 제공해봤어. 여러 나라들과 직접 교류하며 문명의 방향을 이끌기도 했지.
문명 발전을 늦추려고 환경을 통일해서 문화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생존가능한 지역을 극단적으로 좁히고, 인구밀도를 낮추고…. 결과가 어땠어? 대절멸의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원천의 균열은 점점 심해지고. 동료들은 줄어갔을 뿐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이제는 별도 한계고, 우리도 한계야. 이건 계속될 수 없어.”
모들이 선언하듯 말했다. 그러나 금강의 표정은 더욱 완고해졌다.
“하지만 별의 존속만큼이나 인류의 존속도 중요해. 인간과 소통을 그만둔 동료들이 어떻게 되는지 봤잖아. 다들 자아도 기억도 잊고 원래로 되돌아갔어. 인류가 완전히 멸종되면 결국 우리도 사라질 거야.”
“그건 큰 문제가 아니야. 별이 존속하기만 한다면. 처음부터 우리 목표는 존속이었어.”
“그 존속하려는 욕망조차도 자아를 갖게 됐기 때문에 생긴 거잖아. 그리고 이제까지 쌓아온 시간들은? 우리가 알게 된 것들은? 그 모든 걸 다 잊고 존속하기만 하겠다고?”
“잊는 게 뭐가 문제야?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테니 아무렇지 않을 거야. 녹렴을 잃은 네 고통. 그것도 잊힐 거야.”
녹렴의 이름을 듣자 금강은 괴로운 얼굴을 했다. 그가 가슴을 쥐며 말했다.
“그리고 사랑한 사실도 잊겠지. 그렇게 해서 뭐가 남는데?”
“영원! 금강, 영원이 남아.”
모들이 말했다. 크게 뜨인 눈이 기이한 열기로 번득거렸다.
“우리 모두가 합의한 목표는 단 한 가지. 영원히 존속하는 거였어. 그것만을 추구해야 했어. 기쁨을 느끼고 싶다거나, 사랑하고 교감하고 싶다거나, 더 알고 싶다거나… 그런 걸 동시에 원해선 안 됐어. 이제까지 우리가 실패한 이유는 욕심이 많고 바란 게 많아서야.”
말하는 사이 모들의 전신이 머리칼까지 새카만 빛으로 물들었다. 오직 눈에서만 빛이 피어오르며 동자와 흰자위를 가리지 않고 덮었다.
어둠 속의 불길처럼 눈에서 살기를 사르며 모들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와 세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모들이 선언했다.
“너희를 죽이고, 인간 모두를 죽이고, 오직 영원만을 얻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