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42
342화
* * *
“안 된다고 했잖아! 모들!! 네가 이렇게 내 의사를 무시할 수는 없어!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해!”
금강이 애타게 소리쳤지만 모들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몸 안에서 한없이 넘쳐흐르는 힘은 물리계의 한계를 넘어 역으로 고요를 뿌렸다. 순흑의 피부는 모든 빛을 빨아들여 더는 얼굴 표정도 알아볼 수 없었다. 의복 아래 보였던 기결마저 어둠에 먹혀 사라졌다.
사람의 형태인데도 모들은 더 이상 사람으로도 돌 인간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자아가 있다는 증거는 온몸을 휘감은 적의뿐이었다.
금강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몇 발짝 뒷걸음질 쳤다. 그가 만든 푸른 장벽은 여전히 모들과 시현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 한 장의 벽은 일어날 싸움을 막아줄 수 없었다.
시현은 두 손을 내린 채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싸울 준비가 완전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차분한 얼굴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단이 시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잠깐 기다려 봐. 이렇게 정면으로 붙으면 원천의 힘으로 원천을 공격하게 되는 거 아니야? 네가 힘을 쓰면 쓸수록 저쪽도 그만큼 쓸 거고, 공멸밖에 없잖아.”
“다르다. 이건 소모전이 아니라 지배력 싸움이다. 원천에서 더 큰 부분을 지배해서 단번에 끝내면 된다. 내가 이길 수 있다.”
“네 생각대로 안 되면?”
“그래도 싸우지 않는 선택은 없다. 여기서 내가 모들을 막지 않으면 어차피 인류는 끝이고, 싸울 힘을 가진 것은 나뿐이니.”
시현은 단의 손을 떨쳐냈다. 하지만 다른 손 하나가 와서 시현을 붙잡았다.
“저도 싸울 수 있어요.”
“호란. 나는 정말로 원천을 지배할 수 있다.”
“알아요 시문 님. 하지만 힘을 가진다는 건, 그 힘을 쓸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호란의 눈은 올곧았다. 그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원천을 지배하실 수 있으니까 모들이 원천의 힘을 최대한 적게 쓰게 막으실 수도 있을 거예요. 시문 님은 원천을 지켜주세요. 모들하고는 제가 싸울게요.”
시현은 무리라거나 너무 위험하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한 호란의 눈빛 때문에 때를 놓쳤다.
호란은 이미 시현을 놓고 자연스럽게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모들 앞을 가로막은 푸른 장벽 앞에 다다른 호란이 금강에게 말했다.
“이거 열어 줄래? 네가 쓰는 것도 원천의 힘이랬지. 최대한 덜 쓰는 게 좋잖아.”
“…….”
금강은 착잡한 얼굴로 대답하지 않았다. 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너랑 나는 적이었지. 너랑 모들이 싸웠어도 어쨌든 너는 모들 편일 거고.”
“당연하다.”
금강이 대답했다. 호란이 눈썹을 내려뜨렸다.
“나도 알아. 하지만 난 한 번 말을 나누고 나면 다음에도 어떻게든 말로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서.”
호란은 무엇을 확인하듯 손으로 장벽을 건드려 본 후 한 걸음 물러섰다. 그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사실은 싸우는 거 말고 다른 일에, 다른 방법으로 힘을 쓸 수 있으면 좋겠어. 그치만 언제나 그쪽이 훨씬 더 어려운 것 같아. 나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고.”
호란은 주먹을 쥐며 자세를 낮췄다. 한 번 숨을 갈무리하고서 땅을 찼다.
호란이 금강의 방어벽을 꿰뚫은 순간 모들도 움직였다. 칠흑의 형상이 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응. 모들이라면 이렇게 올 줄 알았어. 가진 한 몸으로 싸우는 데 가장 익숙한 건 서로 마찬가지니까.’
상궤를 넘어버린 모들의 기세는 호란의 감각을 벗어나 있었다. 원래라면 원천과 마찬가지로 호란이 읽을 수도 사용할 수도 없어야 했다.
하지만 기운과 일체가 된 선명한 적의 덕택에 호란은 모들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힘 전부를 가닥가닥 느낄 수 있었다.
호란은 저를 덮쳐오는 살기 어린 기세에 오히려 몸을 맡겼다. 호란의 상체가 물살에 떠밀린 나뭇잎처럼 모들의 주먹 끝을 빗겨나갔다.
넘치는 살기와 늘 격분해서 날뛰는 모습 때문에 눈치채는 것이 늦었지만, 공격의 궤도도 몸 안팎 기운의 흐름도 석영과 무척 비슷했다. 돌 인간이 모두 본질에서 하나라는 말을 호란은 이제는 조금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란은 석영과 싸웠을 때처럼 모들의 팔뚝을 겨냥해 주먹을 뻗었다. 모들은 팔을 거둬 공격을 피하며 몸을 회전시켜 호란에게 바싹 붙었다. 예전 석영이 했던 동작 그대로였다.
호란은 그때 석영의 동작을 읽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모들이 붙은 만큼 함께 움직여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상체 쪽으로 꽂혀오는 모들의 팔꿈치 아래로 파고들었다.
칠흑에 먹힌 몸에는 더 이상 기결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호란은 모들의 기결이 있었던 위치도 교차된 나선이 그리던 형태도 완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몸 밖으로 넘치는 기운이 아무리 거세어도, 오히려 그 기운을 따라가면 모들의 내부에 여전히 전과 같은 흐름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호란은 지난번처럼 주위의 기운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오로지 호란이 가진 몸의 힘만을 주먹에 담아 뻗었다.
공격은 명중했지만 충돌음조차 나지 않았다. 파점을 정확하게 찔렀는데도 기결이 깨어져 나가는 타격감이 전혀 없었다. 마치 호란의 공격이 모들의 몸속에 스며들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들은 몸을 움직이지도 호란의 허점을 노려오지도 않았다. 무언가에 붙들린 것처럼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선명한 목소리가 주위를 휘감았다.
“퇴색하라.”
세상이 가라앉았다.
내리는 고요 속에서 모들의 몸을 구성하는 흐름만이 뚜렷했다. 호란의 주먹이 꽂혔던 장소를 중심으로 주홍색으로 빛나는 기결이 떠올랐다.
한발 늦게 모들의 팔이 쾅 아래를 내리쳤다. 하지만 호란은 이미 간격을 빠져나간 뒤였다.
“아아… 아아아아!”
모들이 몸을 숙인 채 비틀비틀 몇 발짝을 디뎠다. 사람의 형태를 한 심연으로부터 비틀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모들의 몸에서 칠흑빛이 천천히 벗겨져 나가고 있었다. 눈 전체를 덮었던 금빛 불길도 사그라들었다.
“아아….”
비명을 흘리던 모들이 몸을 휙 세웠다. 그가 살기에 차서 동료에게 고함쳤다.
“금강! 네가 어떻게! 어떻게 나를!”
“아니야.”
금강은 모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주문을 맺는 듯한 자세로 몸 앞에 올려져 있던 두 손이 떨리면서 천천히 내려갔다. 그가 넋 나간 얼굴로 말했다.
“널 원천에서 떼어낸 건 내가 아냐. 난 전력으로 막으려고 했어…. 했는데도.”
“말하지 않았느냐.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다룰 수 있고, 당연히 원천도 다룰 수 있다고.”
시현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현은 금강과 마찬가지로 두 손을 몸 앞에 두고 서 있었다.
그가 약간 투정하는 투로 말했다.
“나는 허언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어째선지 호란 말고는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구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어주지.”
투덜대는 단의 곁에서 시현이 다시 주문을 읊었다.
“침잠하라. 이끌리라. 침잠하라.”
“아아아악!”
모들이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그의 몸은 완전히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재해처럼 주위를 압도하던 기세도 완전히 빠져나갔다. 모들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맨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더 작게 느껴졌다.
시현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래도 이쯤이면 너희들도 믿겠지. 내가 원천에 너희보다 더 큰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인간이! 인간 따위가!”
모들은 격분해서 시현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기운을 몸에 두른 호란이 그 앞을 가로막으며 부딪혀 왔다. 기결을 노리는 호란의 발차기를 피해 모들은 몸을 굴려야 했다.
“너 따위가!”
“항상 따위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너는 우리를 제대로 적으로 삼아 줬지.”
호란이 모들을 똑바로 본 채 말했다.
호란은 종종 돌 인간과 싸우는 것이 불편했다. 꼭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 때문은 아니었다.
별의 종말을 막는다는 대의는 부정할 수 없었고, 돌 인간들은 종종 세상과 사람들의 보호자처럼 굴었다. 참사를 일으키면서도 진정어린 선의를 드러냈다.
그럴 때마다 호란은 자신이 겨울의 추위를 적대하고 지진이나 화재를 적대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자신이 하는 싸움이 옳은 것인지 흔들린 일도 있었다.
모들만이 달랐다. 모들만이 인간을 진심으로 미워했다. 자신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존재로 여기고 똑바로 적의를 부딪쳐왔다.
그래서 호란도 그들과의 관계를 직시할 수 있었다.
짧은 삶밖에 살 수 없는 인간에게 그 삶을 끊으려는 것은 적이었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에게 제 무리를 공격하는 것은 적이었다. 결사의 마음으로 싸워야 했다.
“인간!”
모들이 호란에게 덤벼들었다.
호란에겐 모들의 공격을 맞받아칠 힘이 있었다. 시현이 원천으로부터 보내 준 기운이 부드러운 바람처럼 호란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하지만 호란은 석영에게 배운 대로 한걸음 물러나 공격을 피한 후 모들의 간격에 들어갔다. 틀어쥔 주먹이 낮은 궤도를 그렸다.
기나긴 싸움을 결정짓는 마지막 한 번의 공격은 허무할 만큼 평범하고 익숙했다. 결말도 익숙했다. 빛이 허물어지고 그 다음으로 회색이 허물어졌다.
“네 적의에 감사할게.”
모들이었던,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가장 가는 적이었던 상대의 회색 잔해 앞에 선 채 호란이 말했다.
“음, 결국 이렇게 되나.”
금강이 예사로운 어조로 말했다. 그의 등 뒤에서 푸른 빛을 감은 대장석 하나가 느리게 일어섰다. 금강은 제가 만든 거석을 흘긋 보고서 일행을 향해 말했다.
“아, 이걸로 너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냐. 그래도 내가 끝까지 전의를 보이는 쪽이 너희도 나를 죽일 때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작은 배려란 거지.”
호란이 입술을 깨물었다.
“꼭 싸워야 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응. 싸워야 돼.”
“하지만 넌 인간을 좋아하잖아. 너 하나라도 여기서 멈출 순 없어? 녹렴은 네가 살아남기를 원했잖아!”
녹렴의 이름을 듣고 금강은 슬픈 얼굴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나는 끝까지 너희와 싸워서 계획한 대절멸을 실행할 거야. 다 같이 결정한 걸 걸 나 혼자서 바꿀 순 없어.”
“어째서? 왜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거야?”
금강이 티 없는 웃음을 지었다.
“약속을 지키는 건 좋은 일이잖아.”
그가 자신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얼굴과 두 손을 들었다.
“난 나를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인식해. 동료의 생각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인식해. 난 나를 좋은 사람으로 인식해. 영원을 사는 우리에게 그건 무척 중요한 거야.”
시현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검지를 곧게 뻗어 금강을 가리키고 명령했다.
“별의 자아여. 네가 누려온 시간을 잊어라.”
금강의 동공이 커졌다. 가슴 한가운데에서 무언가 퍼석 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금강이 놀란 듯 기쁜 듯이 말했다.
“마지막엔 우리를 그렇게 이해하나? 괜찮은데… 아니, 아주 좋은데.”
“되돌아가라.”
시현이 말했다.
금강의 몸이 모든 색깔의 먼지로 부서졌다. 그를 구성하고 있던 기운이 물이 번지는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금강이 만든 대장석이 쿵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완전한 고요가 깔렸다.
한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 쪽에는 끝없는 수평선, 한 쪽에는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진 광활한 공간에 그들 세 사람만이 서 있었다. 들리는 것은 빛을 품은 거대한 물이 벼랑에 부딪히는 물소리뿐이었다.
긴 침묵 끝에 단이 겨우 입을 열었다.
“이제 끝난 거야? 전부?”
시현의 얼굴에 잔잔하게 미소가 퍼졌다. 그가 말했다.
“끝났다기보다는… 나는 지금부터 시작한다고 말하고 싶구나.”
호란이 물었다.
“뭐를요?”
“글쎄다, 무엇부터 하는 것이 좋겠느냐. 너희도 함께 생각해다오.”
시현은 새삼스러운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야 너머 세상 전체를 둘러보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시선은 마지막으로 별의 원천이 깃든 큰물에 가서 멎었다.
시현이 말했다.
“내가 이제, 무엇이든 할 수가 있으니까.”
그의 음성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감하고 차분했다.
하지만 호란은 그 밑에서 벅차오르는 기쁨을 분명하게 알아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