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44
344화
* * *
시현과 호란 사이에는 원천의 막대한 기운이 벽을 만들며 흐르고 있었다. 호란이 무엇을 한들 그 벽을 뚫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호란의 주먹이 눈앞으로 가까워졌을 때, 시현은 본능적으로 얼어붙었다.
쾅 소리가 나며 기운과 기운이 부딪혔다. 호란은 아무 수확 없이 벼랑 위로 밀려났지만 곧바로 다시 주먹을 쥐고 덤벼들었다.
시현은 저도 모르게 두 팔로 머리를 가리고 말았다. 저를 감싼 기운이 다시 크게 흔들렸다.
“시문 님! 때릴 거예요!”
호란이 악을 썼다.
“이미 사부하고 싸우고 사부를 죽였어요. 시문 님하고마저 그럴 수는 없어요! 절대로! 저 진짜로 무슨 짓이든 할 거예요. 시문 님이 안 한다고 할 때까지 때려서라도 막을 거예요!”
다시 한번 기운과 기운이 부딪히는 충격이 전해졌다. 호란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시현은 자신이 떨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가 호란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 방벽 덕택에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별의 운명을 좌우할 힘을 손에 넣은 지금도 그는 여전히 폭력이 무서웠다.
어떤 폭력으로부터도 자신을 지켜주던 호란이 제게 손을 올리는 모습은 더더욱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직전까지 흔들림 없던 확신이 본능적인 공포로 흐려졌다.
시현은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기억해냈다.
자신이 꺾였던 순간을 기억해냈다.
갈 길을 못 찾고 무력감에 갇히고 겉으로 속으로 무너졌던 일을 기억해냈다.
그때마다 그가 의지했던 것은 힘이 아니었다. 그것도 기억해냈다.
“야! 야! 임마! 완시현!”
계속 부르는 소리에 시현은 겨우 고개를 들었다.
목청 높여 그를 부르고 있는 것은 단이었다. 단은 화내고 소리치면서도 여전히 그를 향해 한껏 팔을 뻗고 있었다.
시현과 눈이 마주치자 호란도 반사적인 것처럼 주먹을 풀었다. 호란은 치려던 동작을 거두고 손을 펼쳐 내밀었다.
“시문 님! 시문 니임!”
호란이 애타게 소리쳤다.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시현은 제게 내밀어진 두 개의 손을 바라보았다.
언제 어떤 순간에나 그를 무한히 믿어준 한 사람과, 아무리 노력해도 끝까지 그를 믿어주지 않았던 한 사람이, 지금도 그의 곁에 있었다.
결국 그 둘이 같이였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것까지 떠올리고서 시현은 더 두려워졌다.
그 둘이 다 하지 말라고 한다면 자신이 뭔가를 잘못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럴 수도 있었다. 사람은 그럴 수가 있었다.
떠오르는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도 더 커졌다.
원천은 너무 컸다. 그 책임은 더 컸다. 자기는 그냥 사람이었다.
사실은 항상 두려웠다.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다 두려웠다. 해낸 일만큼 망쳐버린 일도 많았다. 하지 못한 일은 더 많았다.
그래도 단과 호란은 여전히 곁에 있었다. 바로 가까이에서 자신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호란이 소리쳤다.
“시문 님! 괜찮아요! 아직 괜찮아요! 그만둘 수 있어요!”
“그래 등신아! 혼자 짜지 말고 이리 와!”
단이 소리치는 걸 듣고서야 시현은 뺨에 눈물이 흐르는 걸 알았다. 어쩔 줄 모르게 된 그가 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돼?”
단이 말했다.
“일단 이리 와. 같이 정해!”
시현이 팔을 뻗었다. 두 개의 손이 힘껏 그를 잡아 끌어당겼다.
지면에 내린 순간 시현은 원천이 포효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직전까지 그가 제어하던 거대한 힘이 중심추를 잃지 않으려는 것처럼 시간과 장력을 늘렸다.
시현은 참지 못하고 신음했다. 이미 신체의 일부처럼 그를 타고 흐르고 있던 원천의 힘이 잡아 뜯기듯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대신 사람의 체온이 그를 푹 감쌌다.
“잘했어요, 시문 님!”
힘 있는 목소리가 들리고 호란과 단의 팔이 단단하게 등을 받쳐주었다.
그 순간에도 태양과 같은 힘의 사태는 그에게서 끊임없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시현은 공포에 질렸다. 절망했다. 후회했다. 온 세상이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가 이룰 수 있었을 일들, 무수한 가능성, 인생, 세계, 모든 희망과 행복과 공의가 물거품으로 무참하게 스러졌다.
영영 포기하지 않으리라 여긴 지향이었다.
삶과도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목표였다.
그의 삶이 끝난 뒤에도 영원히 빛날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제 앞의 체온을 놓치지 말아야 했다.
44. 결말
“시문 님! 코에서 피 나요!”
잠깐 머릿속이 아득해졌던 시현은 호란의 걱정하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자신은 원천이 있는 벼랑 가에서 좀 떨어진 데까지 데려와져 있었다.
단이 천을 꺼내 시현의 코밑에 대어주다가 화들짝 놀랐다.
“미친. 얼굴 왜 이렇게 차가워? 손은 왜 뜨겁고?”
발을 고쳐 딛고 선 시현이 제 손으로 천을 누르며 웅얼거렸다.
“너무 거대한 기운에 휩쓸렸던 탓이다. 내 신체가 내기와 외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호란이 물었다.
“낫는 거죠?”
“이 정도는 놔두면 되돌아온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시현이 천으로 코와 입가를 닦아내며 원천 쪽을 돌아보았다.
말대로 피는 금방 멎었다. 혈색과 체온도 돌아오고 있었다.
시현이 말했다.
“별의 원천. 저것을 쓸 것이면 모르되, 안 쓰기로 한 이상 이대로 지상과 연결한 채 두어선 안 된다.”
“그건 그렇죠.”
호란이 말했다.
시현과 갈라놓아진 원천은 한없는 물 아래로 되돌아갔지만 이미 흐름은 전과 같지 않았다.
잔잔하고 규칙적이었던 소용돌이는 끊어지고, 빛을 뿜으며 불규칙하게 넘실대는 것이 당장에라도 밖으로 넘쳐흐를 것 같았다.
저 기운이 틀을 잃고 세상에 흩어져버리면 그것이 별의 끝이다. 반대로 이대로 안정된다면 세상의 기운을 계속 빨아들여 고갈시킬 것이다.
원천이 지표에 나와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결코 좋은 결과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단이 물었다.
“도로 다 땅 밑에 쑤셔 넣으면 되는 거 아냐?”
“이미 말했지만…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본디대로 돌아갈 것이다. 돌 인간들이 이 일을 일으키기 전으로.”
시현이 자신 없게 말했다.
“그걸로 될까, 정말로?”
“그건 안 돼요. 세상의 종말을 막아야 하잖아요. 기운이 지금처럼 빨리 소모되지 않게 해야 해요.”
호란이 곧바로 대답했다. 단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시현이 원천의 힘을 써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품었던 것 자체가, 예전의 세상이 이대로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호란이 말했다.
“전 돌 인간들이 전부 틀린 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여러 가질 잘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하려 한 일을 다 없던 걸로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현도 단도 침묵으로 동의했다.
조금 후 단이 말했다.
“원천의 기운이 땅 위로 펑펑 새니까 땅인들이 펑펑 쓰는 거 아냐. 그걸 막는 방법은 없어?”
“기운이 많은 데서 적은 곳으로 흘러나오는 것 자체는 섭리이니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시현의 시선이 원천을 머금은 큰물에 가서 멎었다. 그가 골똘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여기에 물이 있지. 별의 중심에는 바다가 있고.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한없이 많은 물이.”
시현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지면을 향해 뻗은 두 손이 아득한 땅속에 있는 별의 중심을 재어보기라도 할 것처럼 몇 번 움직였다.
한참 만에 그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원천과 함께 저 큰물을 별의 중심으로 돌려보내고, 그곳에 물과 기운이 서로 이끄는 성질을 이용하여 겹겹이 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 별의 내부에서 순환이 계속되는 한은 땅 위까지 새어 나오는 기운이 무척 적어질 것이다.”
호란이 물었다.
“그러면 땅님들이 마법을 못 쓰게 되나요?”
“그렇다. 그사이 원천이 차오르고 별의 종말이 아득히 미뤄질 것이다. 다만 문제는.”
시현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이미 세상에 물이 너무 많이 줄었다. 법술이 없으면 물을 모으기도 정화하기도 어렵다. 땅에 감도는 기운이 미약하면 농작물도 잘 자라지 않을 것이다. 법술이 없는 상황에서 하늘인들이 부족한 물과 식량을 독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절대 무리지.”
단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호란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때 종종 하던 생각이 솟구쳐올랐다. 호란이 얼른 말했다.
“만약에 강이 있으면요?”
“강?”
단이 물었다. 호란이 끝없이 펼쳐진 물을 가리켜 보였다.
“그래, 강! 여기, 여기 이렇게 많은 물이 있잖아. 이걸 세상에 되돌려보내면? 여기저기에 강이 흐르고, 옛날처럼 비가 많이 오고, 누구든지 물을 쉽게 얻을 수 있으면… 그러면 마법이 없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
단은 상상이 잘 안 가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가 시현 쪽을 보았다.
“그런 게 가능해. 현실적으로?”
시현은 어려울 것도 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원천의 힘을 쓴다면 가능하다. 내가 원천을 손에 넣었을 때 가장 처음 하고자 한 일도 강을 만드는 것이었다.”
단은 곧바로 질린 표정이 되었다. 시현이 생각을 더 한 다음에 말했다.
“온 세상에 강을 만들고, 그 강이 유지될 만큼의 대순환을 맺으려면 물만이 아니라 기운도 필요하다. 물이 사람의 삶터를 중심으로 순환하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그만큼의 기운이 감돌아야 해.
원천에 물의 고리를 맺어 세상 기운을 줄이되, 어느 정도는 세상에 기운이 흘러나오도록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종말을 늦출 수 있도록 지금보다는 적게, 하지만 물을 붙잡아둘 만큼은 충분히…. 그러면 땅인들도 전보다는 약하지만 법술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호란 생각에는 제일 좋은 방법 같았다. 하지만 시현은 걱정하는 얼굴로 단을 보았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단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원래 너 그거 하러 여기까지 왔잖아. 까먹었어?”
“하지만… 법술의 힘을 되찾는다는 건 사회도 예전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또다시 땅인들이 권력을 갖고 횡포를 할 것이고.”
“몰라. 내가 알 게 뭐야.”
단은 툴툴거리더니 덧붙였다.
“그래도 물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겠지. 신분이 어떻든 물은 다 필요하잖아.”
그 말로 결정이 났다.
시현이 펼쳐진 물과 그 안의 원천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강을 만드는 것도, 사람의 삶터를 중심으로 물의 대순환을 만드는 것도, 원천을 별 가운데로 되돌려 고리를 맺는 것도. 내가 원천의 힘을 써서 할 수밖에 없다.”
호란은 단과 잠시 시선을 맞췄다. 호란이 말했다.
“그건… 좀 멋대로 같은 소리지만 이것만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기운을 맘대로 쓰려는 게 아니라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한 일이잖아요. 다른 방법도 없고요.”
“어. 강은 둘째치고, 어쨌든 저걸 도로 집어넣기는 해야 하니까.”
단도 끄덕였다.
“그렇다…. 이제는 돌 인간들이 없으니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
호란과 단이 이미 수긍했는데도 시현은 더 말했다.
“내가 원천을 써야 한다. 나밖에 할 사람이 없고. 도저히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고. 이 일은 반드시 내가 해야 한다.”
그가 설득하듯 되뇌었다.
호란이나 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설득하려는 것 같은 투였다.
시현은 심호흡을 한 다음 원천을 향해 몇 발짝을 내디뎠다. 하지만 발걸음에 자신이 없었다.
그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이제 원천과 나를 다시 이을 것인데, 일을 끝낼 때 너희가 나를 잘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