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45
345화
* * *
“이제 원천과 나를 다시 이을 것인데, 일을 끝낼 때 너희가 나를 잘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단이 물었다.
“왜, 또 미쳐서 맘대로 하고 싶어질까 봐?”
“아니. 넘어질까 봐.”
시현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강을 만드는 것도 작은 일은 아니다만 원천에 순환의 고리를 맺는 건 별의 운명을 바꿀 정도의 큰일이다. 내 인지를 원천의 구석구석까지 연결하고, 긴 시간 동안 막대한 힘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큰 힘을 쓰다가 다시 원천에서 떨어져 나오게 되면 신체에 영향이 상당할 것이다. 잘 보고 있다가 내가 넘어질 것 같으면 꼭 잡아줘야 한다.”
호란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까보다 더 아프게 되시는 거예요?”
“그럴 것이다.”
“얼마나요?”
“미리 생각해보고 싶지 않을 정도? 그래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호란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말리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단도 무언가 말할 듯하면서 말을 못 하고 있었다.
시현이 방금 말했듯 누군가는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시현뿐이었다.
“괜찮은… 시문 님, 그래도 괜찮은 거예요?”
호란의 목소리가 떨렸다. 시현이 확신 없는 얼굴로 말했다.
“법력이 어느 정도 세상에 돌아올 테니까, 집에 돌아가면 웬만한 것은 어머니가 치료해 주시지 않을까? 기운을 읽고 법력을 다루는 능력만은, 어떻게 해도 되살릴 수가 없겠지만.”
“네?”
“뭐라고?”
“놀랄 일도 아니다. 류사예가 말했지. 사람의 감각은 특정한 범위에 한정되는 게 정상이라고.”
시현은 기운 없이 웃고는 원천의 금빛을 바라보았다. 그가 말했다.
“이 힘을 끝까지 다루고 나면 내 기감은 별의 원천에 전적으로 맞추어질 것이다. 힘과 흐름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달라지고, 더 이상 세상에 떠도는 미미한 법력을 느끼고 다룰 수 없게 되겠지. 실은 지금도 이미 호란이의 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섭섭하게도.”
호란이 저도 모르게 시현의 팔을 붙잡았다.
“시간을 들여서 다시 적응하면. 다시 나으면요….”
“그런 차원의 힘이 아니다. 그런 차원의 일이 아니고.”
“마법 말곤 아무것도 못 하는 인간이, 마법을 못 쓰게 되면 앞으로 어쩌려고?”
단의 물음에 시현은 슬쩍 웃었다.
“그건 아무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이 일을 마친 이후엔 법술로 무엇을 해도 시시할 것이니.”
호란은 걱정하는 와중에도 섬찟했다. 시시하다고 말하는 시현의 눈에는 원천과 이어져 있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시현이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차라리 잘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힘을 알아버린 자가, 이후에 어중간한 힘을 휘두르며 제 뜻에 맞게 세상일을 하겠다고 다녀서는 안 된다. 이참에 나도 함씨 둘째 숙부처럼 방구석 폐인이란 걸 해볼까 한다.”
그는 농담을 했지만 자기도 웃지 못했다.
더는 말 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현은 호란의 팔을 풀어내고 원천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시현의 시선이 닿은 순간 물 밑의 원천이 크게 일렁였다. 마치 시현의 인식과 의지가 저를 향한 것을 알기라도 한 것 같았다.
수없는 빛덩이들이 다시 수면 위로 넘치기 시작했다. 솟구치고 출렁이는 빛줄기들은 시현을 부르는 것처럼 보였다. 있어선 안 될 곳에 내놓아진 별의 원천이 절실하게 인도자를 찾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쓸린 호란은 시현을 쫓아갔다. 짧은 거리라 해도 혼자 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단도 곁을 따라왔다.
시현이 벼랑에 다 이르기도 전에 이미 셀 수 없는 빛기둥이 하늘로 뻗쳐오르고 있었다.
절벽가에 발을 딛고 선 시현이 나직하게 말했다.
“별이여.”
부름에 원천 전체가 응했다.
무수한 빛기둥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거대한 빛의 벽을 만들었다. 금색과 주홍의 흐름이 무늬로 아롱지며 위로 위로 흘러 올라갔다.
모양은 잔잔하고 아름다웠으나 앞에 선 소년의 말 한마디로 어떻게도 변할 수 있는 흐름임을 셋 다 알았다.
시현은 짧게 숨을 들이켜고 입술을 벌렸다.
“…….”
흐르려던 목소리가 끊겼다. 시현은 더 말하지 못하고 목넘김만 했다. 두 손은 들어 올려지다 말고 몸 앞에 멎어 있었다.
호란도 단도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시현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시현이 도로 손을 내렸다. 그는 두 사람을 돌아보고 어설프게 웃었다.
“괜찮다. 할 것이다. 할 수 있다…. 그냥, 잠깐… 잠깐만.”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호란이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 되어 그를 불렀다.
“시문 님….”
“그렇게 불리는 것도 마지막이겠구나. 법술을 못 쓰게 되면 더 이상 문이 아니지.”
말하던 시현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아까와는 조금 다른 얼굴로 웃었다.
“그렇구나.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비밀을 말해주마.”
시현은 여전히 떨면서도 짐짓 장난기 어린 얼굴로 호란과 단을 보았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법술사가 과거 시험에서 법술로 기준에 맞는 위력을 보이면 그 과목의 지가 되고 예가 되고 의가 된다. 위력이 기준을 훌쩍 넘어 감히 헤아릴 수 없으면 인이 된다. 세 과목 이상에서 인에 이르면 무가 된다.”
호란은 시현이 말해준다는 비밀이 무엇인지 바로 눈치챘다.
“문은요?”
“어떤 일을 해내면 문이 되는데… 내가 어릴 때 무얼 모르고 그 일을 저질러서 주위에 부작용과 피해가 막대했다. 크게 자책하고 평생 다시는 안 하리라 생각했다만.”
말을 하는 중에 시현의 눈이 점점 반짝반짝해졌다. 얼굴에 제가 뜻하지 않은 웃음이 차올랐다. 목소리에서 떨림이 사라졌다.
시현이 등을 꼿꼿하게 폈다. 그가 자랑스러운 듯 호란과 단을 한 번씩 보고는 말했다.
“문은 말이다. 비를 내리면 문이란다.”
그리고 소년은 제 앞으로 두 손을 뻗었다.
잃어버린 장난감을 되찾은 아이 같은 얼굴이었다.
* * *
북방 끝터에서 남방 끝터까지, 두꺼운 구름이 온 세상을 덮었다.
처음에 빗발은 애가 탈 정도로 가늘기만 했다. 폭우를 기대하고 물 받을 준비를 했던 사람들은 컴컴한 하늘에 어울리지 않는 실비에 혀를 찼다.
그래도 봄 가뭄이 길어지던 와중에 찾아온 비라 모두가 기뻐했다.
반가운 것은 비 소식뿐만이 아니었다. 가랑비가 밤새 이어지는 동안 땅인들이 한 사람씩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리는 비와 함께 대기 중에 마력이 되돌아왔다. 하늘을 꽉 채운 먹구름이 짙은 기운을 실어와 세상에 뿌렸다. 변고 이후 뼈대만 남았던 지맥에도 기운이 차올랐다.
되돌아온 마력의 밀도는 변고 이전에 비하면 반의반도 안 되었다. 기감이 둔하거나 적응이 느린 땅인들은 주문을 제대로 자아내지도 못했다. 능숙한 법술사들도 주문의 위력이 대폭 줄었다.
그래도 땅인들은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다들 드디어 살았다며, 이거라도 어디냐며 얼싸안고 기뻐했다. 들뜬 땅인들은 시문께서 변고를 되돌리고 비를 내리시는 거라고 제가 본 듯 떠들어대고 다녔다. 그렇게 엄중하다는 서격원의 비밀이 오만 사람의 입에서 술술 새어 나왔다.
그러나 이틀이 가고 사흘이 가도 비가 그칠 기색이 없고, 오히려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이것이 기쁘기만 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비가 쉬지 않고 한 순을 계속 내렸다. 약하지만 꾸준한 빗줄기 아래서 지형이 바뀌고 땅이 무너졌다. 낮은 지대에 자리한 농토와 마을, 읍성이 차례차례 물에 잠겼다.
비가 천천히 늘어난 덕에 사람과 짐승은 고지대로 몸을 피할 틈이 있었지만 재산 피해는 아무도 헤아릴 엄두를 못 냈다.
치풍관에서는 호수가 넘치고 산사태가 났다.
윤지관이 통째로 침수되고, 하유관과 다천관이 대하로 연결되었다. 골짜기 아래의 마을과 채집터는 모두 깊은 물 아래로 잠겨 들었다.
귀수관과 대운관, 벽명관 주위에도 굽어드는 강줄기가 되살아나며 많은 것을 휩쓸어갔다. 대운관은 고대에 비가 많았던 장소라 배수가 되는 지형이었으나 피해를 면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남운관이 가장 피해가 적은 축이었다. 유독 모진 가뭄 탓에 관성과 속령을 가리지 않고 총동원되어 있던 수법술사들과 토법술사들이 제때 물길을 다스린 덕택이었다. 공교롭다면 공교로웠다.
겨우 비가 그친 후에도 여전히 하늘에는 구름이 많았다. 사태를 수습하러 나온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가 한 방울이라도 더 떨어질까 두려워 몸서리를 쳤다.
실제로 땅이 마르는가 싶을 때마다 비가 오고 또 왔다. 삶터를 잃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예전에 없었던 질병이 돌았다.
그래도 마력이 적게나마 돌아와 땅인들이 구실을 하게 된 덕에 다들 근근이 살아남으며 새 삶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이때의 비가 결국 세상에 좋은 일이었다고 대다수 사람들이 말하게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더 시일이 걸렸다.
45. 완시현 문
시현은 제가 무엇을 했다고, 언제 어떻게 돌아갈 것이라고 남운관에 알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저 돌 인간을 모두 토벌하였으며 세상에 거석도 더 나지 않을 것임을 알리는 글만을 봉서하여 사방에 보냈다. 인장은 있었지만 글씨도 문체도 완씨 시문의 것이 아니라 의혹이 분분했다. 그러나 거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세 사람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되도록 전에 지나지 않았던 장소를 거쳐 여행했다.
없던 강줄기와 개천이 셀 수 없이 늘어나고 곳곳에 물이 고여 있어 단은 길을 고르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 온 세상 지도를 다 다시 그려야 할 판이었다.
시현은 되도록 천천히 가고 싶어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모습으로 부모님 앞에 돌아가고 싶었다.
제 몸이 상했다고 호란과 단이 벌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었고 한번 완씨저에 들어가고 나면 두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질 것도 꺼려졌다.
단은 의견이 달랐다. 중간에 본 의원과 의법사들도 의견이 달랐다. 시현이 선잠에 들 때마다 호란은 수레채를 잡고 죽어라 달렸다.
호란보다 한발 먼저 소문이 흘러갔다. 총치총령에 오른 이래 남운관 30리 밖을 나간 적이 없던 완선보 무가 사흘 길을 미친 듯 달려 아들을 맞으러 왔다.
아들이 제 발로 서지 못하고 호위의 품에 안겨 수레를 내렸을 때, 선보는 침착하게 있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들이 반기는 얼굴을 하면서도 지척에 있는 아버지를 못 찾고 시선을 허공에 띄우는 데는 견디지를 못했다.
저를 얼싸안고 무너져 엉엉 통곡하는 아버지의 품에서 시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예 안 보이게 된 것도 아니고, 차차 나아지고 있는데….
그나마 남운관에서 기다리실 어머니는 침착하실 것이라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시현이 아프면 시현을 위해서라도 감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건 많이 위안이 될 거였다.
시현의 생각대로 경재는 침착했다. 딱 제 치료가 효용을 보이는 선까지만 침착했다.
수행원의 목을 제 손으로 매달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어머니를 뜯어말리는 데 없는 기력을 다 쓴 시현은 모든 것이 싫어졌다.
얼른 가서 자고 싶었다. 이미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고 있었지만 더 자고 싶었다. 방구석 폐인이란 것 생각보다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그래도 마무리할 일은 남아 있었다.
시현은 원천의 기운이 무한하지 않음을 알리고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각 법술사가 책임 있게 힘을 발휘하라는 권고를 냈다. 그 후에 자신이 더 이상 법술을 쓸 수 없게 된 것을 공표하고 스스로 격에서 내려왔다.
그것이 완시현 문의 마지막 행적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