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573
소메이요시노 (11)
따스한 베니스 이불의 가슴이 넉넉하게 내 품을 덮었다.
차가운 공기 하나 침입하지 못할 잠자리.
나를 더듬는 손짓 때문에 옅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베니스의 손이 내 뺨을 더듬고 있었다.
“…뭐하냐 베니스.”
잠결에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허리를 감은 손에 힘을 주자, 내게 안긴 베니스가 어딘가 복잡한 얼굴로 내 눈꺼풀을 어루만졌다.
“잠이 안 와?”
“그게 아니라. 네가 워낙 불쌍해야지.”
“…?”
“앓는 소리 때문에 귀가 아파서 잠을 못자겠다는 소리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물기가 어려 있는 손을 내민 베니스의 표정을 보고 알았다.
내가 모르는 새에 또 병신같은 정신병이 도졌나보다.
“아…. 이건 뭐 어쩔 수 없어.”
요즘엔 악몽을 꿔도 전혀 꾼 것 같지가 않다.
알바가 준 약이 효과를 보았는지, 아니면 내 신체가 적응했던지. 최근엔 악몽을 꾸어 다음날 내 기분이 잡치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악몽을 꾸는 순간에 보이는 내 신체적 변화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남들은 다 넘어갈 것도, 베니스에게는 그렇지 않다. 꿈꾸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울림이 이 여자에겐 시끄럽게 들렸나 보다.
베니스는 눈을 비벼대며 하품을 했다.
“그럼 내가 잘게, 네가 일어나 있어라.”
그 말만 하지 않았다면, 내가 알아서 그리했을 텐데.
“심심하면 내 몸을 가지고 놀아도 돼. 이게 그 누이좋고 매부좋고, 도랑치고 가재잡는 법 아닌가?”
“자는 동안 성욕도 채우려는 놀부 심보가 아니라?”
뜨끔한 베니스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럼 뭐. 둘 다 깨어있는 수밖에 없지.”
검은색 가느다란 끈을 내리자 출렁- 드러나는 가슴.
내려간 내 손이 베니스의 엉덩이를 움켜쥐자, 그 입에서 아찔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앗.”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짓곤, 내게 달라붙어 가랑이로 애무를 하는 녀석.
“낮엔 그렇게나 내 위에 서고 싶어서 안달이던 놈이.”
밤에는 깔리고 싶어한다니.
베니스는 아찔한 하반신을 내 눈앞에 자랑하듯 내놓고, 제 속옷을 벗어 내 앞에 흔들었다.
“이거 세탁 안했다.”
“그걸 왜 내 얼굴에- 읍!”
끈적한 애액이 누덕누덕 묻어나는 냄새나는 속옷.
음부에 딱 맞붙어 있던 부위와 내 코가 닿도록 씌운 베니스가 킥킥 웃어댔다.
아직 커지지 않은 내 아랫도리에 젖은 가랑이를 살살 비벼대며 한다는 소리가.
“너 이런거 좋아하잖아.”
“……드디어 네가 미쳤구나.”
“음, 네 감정을 읽어보면. 이런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왜 글쎄. 마을에서 날 범할 때도 겨드랑이에 코도 박고. 특히 먼지 투성이 양말의 냄새를 맡는 건, 나도 좀 놀랐다.”
나는 침묵했다.
“그것도 그냥 먼지투성이가 아니었지, 이틀이나 이곳저곳을 밟아서 내 땀에 절여진….”
“제발 그만.”
“암컷의 냄새에 발정하는 건 이상할 게 없는데, 왜?”
“그짝은 그럴지 모르는데, 인간들은 좀 달라서.”
“흠, 아무튼. 내 냄새가 널 발정시킨다는 건 맞지? 이제 청결 마법은 안 써도 되겠군.”
그러지 마라 제발.
나는 베니스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힘껏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흐읏…. 화났나 봐? 그래그래. 다 받아줄게. 친구니까, 응?”
톡.
“앙…!”
텐트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 돌아온 등불이 우리 텐트에 들썩이는 그림자를 비치기까지. 밤은 끝나지 않았다.
*****
다음 날.
우리는 무사히 네 번째 관문에 진입할 수 있었다.
“아마 여기부터 진짜겠지.”
“아는 게 있어?”
베니스는 자신의 음부를 훤히 드러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옷차림은 이곳저곳이 찢어져 섹시를 넘어 천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여기부터는 제대로 된 마물이 나온다는 듯하니까. 요시노 가문의 놈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걔들이 그런 말을 해준다고?”
“당연히 몰래 들었지.”
“그래? 그런데, 옷은 그거밖에 없어?”
내 말을 들은 베니스가 눈을 고쳐뜨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보였다.
어제 장난치느라 끊어진 검은색 속옷. 내가 시선을 피했다.
“아끼던 건데.”
“…음.”
“뭐, 친구니까 봐주도록 하지.”
“그 작은 속옷을 내 머리에 끼운 네 잘못은 하나도 없고?”
“없고!”
당당해서 보기 좋기는 개뿔, 옷을 찢으니 좋다고 안기던 애가 저리 말하니 속이 뒤틀린다.
일단 앞으로 가자. 신전 앞으로 발을 내미니, 주변 곳곳에 거대한 마력이 잠들어있다는 게 피부 표면으로 느껴졌다.
-드득.
“첫장부터 봐줌은 없다는 건가.”
베니스는 바닥에서 솟구치듯 일어난 거대한 골렘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귀족이 살법한 저택만큼 커다랗다.
물리적인 피해를 전혀 받지 않기 위해 여러 마법진이 그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고, 골렘은 이윽고 나를 적대하기 시작한 건지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크그그그-]거대한 주먹을 뒤로 빼어, 한 순간에 내지르는 정권.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열차를 정면에서 보는 기분이다.
집채만한 돌덩이가 나를 향해 내리쳤고. 베니스가 어쩔거냐며 나를 돌아보았다.
“마법진을 보니 이건…. 정령의 힘으로밖에 무찌르지 못할 것 같다.”
무엇으로밖에 하지 못한다. 따위는 없다.
나는 마기를 주먹에 모아 골렘과 똑같은 자세로, 정권을 내질렀다.
-쿠구구구!
꽈앙! 부딪힌 주먹.
골렘의 팔에 균열이 터져나오며 한 순간에 놈의 몸체가 중심을 잃고 무너져버렸다.
[크긋?!]숲에 격한 흔들림이 찾아온다. 바닥이 무너져 엎어진 골렘의 눈에 의식이 저물었다.
가루도 남기지 않을 작정으로 때렸는데.
확실히 여기 마물이 강하긴 한 모양이다.
“전력을 다했는데…. 얘네 좀 강하네. 소모전으로 가면 내가 먼저 지치겠다.”
“…….”
베니스의 얼굴은 장관이었다.
“네 말대로 쉬운 길로 가는 게 낫겠어, 정령술을 쓰자.”
“…방금 그 광경을 보여주고 한다는 말이 그거야? 정령술을 배울 필요도 없었네 이거.”
“그 말 맞는데, 정령술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야.”
쓰러진 골렘에게 다가가니, 골렘의 시체에 옆에 자라난 나무의 몸통에서 희미한 글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과 새가 그려진 그림으로, 간단한 식이 만들어져 있다.
[인간] + [새] = ?해석하면 대충 이런 그림.
왜 정령의 대표로 새가 그려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측컨대, 아마 에리니에스가 처음 아비를 만났을 때 새의 모습을 하여 그런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이건?”
나를 뒤따라온 베니스에게 묻자, 베니스는 한 번 읽곤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화로군.”
“정령화…. 아아.”
정령과 내 마력 형질을 동등하게 유지해서, 정령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음과 동시에 정령이 가진 본래의 힘도 증진시키는 능력.
내가 일전에 수목의 왕에게 사용했던 천마신공의 정령의 태세와 같았다.
“정령술의 극의…. 요시노 가문의 자제들은 이걸 두고 그리 불렀지만, 사실 마음이 맞는 인간과 정령이라면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어,”
아무래도 네 번째 관문은 정령화의 단련에 초점을 둔 모양.
마물이 정령술에 잘 쓰러지도록 설계한 걸 보면 더더욱 그랬다.
“써본 적이 있다고?”
“아마.”
엘레오노르와 루시 때의 기억을 살려본다.
아직 날 믿지 않아 하는 베니스. 노심초사한 손길로 내 손을 꼭 부여잡아온다.
“그게 사실이라면, 한 번 써봐라.”
“괜찮겠어?”
“그 편이 훨씬 쓰러뜨리기 쉽다니까 뭐.”
인간형의 정령에게 써보는 건 처음이다.
나는 이어진 손을 통해 베니스에게 연결선을 타고 마기를 불어넣었다.
정제된 마기가 베니스를 타고 흘러 들어가자, 움찔-
“으긋, 으그으으윽!?!”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더니, 눈을 까뒤집었다.
“앙, 아앙…! 잠, 잠깐만!”
반말을 내뱉으며 내 손을 놓으려는 베니스. 나는 베니스의 손을 놓아주곤 어깨를 으쓱였다.
“으으으으….”
“왜.”
“이딴게 무슨 정령화라고.”
베니스의 피부가 약간 짙어진 듯도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하얗게 되돌아왔지만, 트라우마가 남았는지 내 손을 잡으려하지 않았다.
“방식이 너무 난폭해. 정확하겐 네 힘이…. 난폭하다.”
“그 정도야?”
“어떤 느낌이냐면, 처음 네가 내 엉덩이에 박았을 때랑 똑같은 느낌이었어.”
신랄한 비유 덕분에 잘 이해했다.
엘레오노르와 루시의 반응으로 볼 때 예측하긴 했지만, 정말 비슷한 수준의 자극이었을 줄이야.
“이렇게 억지로 파장을 맞추는 것도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가 있나?”
“…서로가 갖는 부담이 크지. 너는 마력을 유지하는데 더 신경을 써야할 거고. 정령도 마력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아질 거야.”
“그런가.”
“정령화에 대한 자세한 건 몰라. 하지만… 네가 아는 방식대로 하면 완벽한 형태를 띄울 수 없다는 건 알 것 같아.”
내 방식이 기존과 약간 다른 걸까.
‘사쿠가 쓰던 정령화.’
나는 숲지기 선발전에 보았던 사쿠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그때 사쿠는 몸에 그 어떤 정령도 달라붙어 있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데, 몸에는 정령의 마력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형태.
진정한 정령화는 아예 한 몸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걸 어떻게 쓰는데?”
“……내가 알 턱이 있나.”
베니스는 기가 죽은 듯 기다란 엘프 귀를 쭉 내렸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아. 예전에 본 게 있다. 정령화를 수련하던 요시노 가문의 자제들의 방식을.”
“빨리 말해봐.”
“…정령을 몸에 묶고 파장이 동등해질 때까지 함께 다니더군.”
“몸에 묶어?”
지금 다른 정령과 합하는 것보단, 눈앞에 있는 SSR 정령을 쓰는 게 맞다.
나는 베니스의 몸을 흘겼고, 베니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피식 웃었다.
한 번 해보자.
우리 둘의 생각이 거의 동시에 스쳐지나갔다.
*****
-콰아앙!
골렘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우리를 빗겨나간다.
“이거 맞아?”
“모르는데. 기분은 좋아.”
좋기는 미친.
거대 마물을 상대하는 우리는 현재, 서로 안은 상태에서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과격한 서양 야동에 나올법한 자세로 안겨 밧줄로 꽁꽁 묶어둔 우리.
베니스는 내 상체를 비비적대며 뺨에 입술을 찍어댔다.
“가만히 있어 제발.”
“어허이, 서로 파장을 맞대는 게 정령화의 기초라고 했어.”
“이게 무슨 파장을!”
자기도 부끄러운 건 마찬가지인지 기다란 귀가 빨갛다.
베니스는 내 등을 꼭 부여잡고, 아랫도리를 자극하는 녀석.
옷이 말려 올라가 두 사람의 아랫배가 딱 맞물린다.
“…!”
그러다 보니 반응이 느릴 수밖에 없다.
골렘의 주먹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베니스의 등 뒤에서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골렘의 주먹을 베어버렸다.
그 과정에 내 마력이 약간 빠져나간 걸 생각하면, 정령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조금씩 동화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데.’
여기서 조금 더 발전시켜야만 정령화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는 걸까.
“읏! 야….”
“차라리 교접하고 있는 편이, 더 동화에 쉽지 않을까?”
공중에서 내 아랫도리를 더듬은 녀석이 음낭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그만하란 의미로 엉덩이를 힘껏 때리니.
“아앙…!”
오히려 좋다고 아랫도리를 적셔온다.
어지럽다.
아직도 마물이 우리를 노리고 있는 와중인데, 자기 떡만 보려는 어이없는 녀석.
우리를 보는 마물의 눈동자가 약간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