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31
마염의 황제 031화
“흥. 한심한 것들.”
그때 흑의인들 중 한 명이 복면을 벗으며 앞으로 나섰다. 지긋한 흰 머리칼이 나부끼는 얼굴에 긴 흉터를 가진 중년남이다. 그는 이터를 보고 빈정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운을 뗐다.
“제법이군. 우리 척살조의 50명 정예 어쌔신을 단신으로 이 지경까지 몰아붙이다니, 정말 대단해. 하지만 내가 나선 이상, 거기까지다.”
한껏 거드름을 피운 그가 다리를 벌리고 손바닥을 내밀며 자세를 잡았다.
“척살조의 두령이자 삼삼호권의 계승자인 내가 상대해 주도록 하마.”
중년남이 피워올리는 살기가 주위를 싸늘하게 만든다. 하지만 중년남을 보는 이터는 무표정했다.
“넌 내 상대가 아니야. 나서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뭐?”
중년남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건방진……. 고작 부하 몇을 쓰러뜨렸다고 나까지 얕보고 있어?
“큭, 광오한 꼬마 녀석. 그 오만한 콧대를 꺾어주마!”
버릇없는 꼬마를 가르치려면 확실한 것이 좋은 법. 중년남은 단숨에 자신의 가장 대단한 비기를 꺼냈다.
“삼삼호권의 비기! 그림자 부…….”
퍼억!
막 수인을 다 맺기도 전에 뭔가가 얼굴을 후려쳤다. 눈앞에 별이 보인다.
하나… 둘…….
“대장, 코피가!”
코피란 말에 중년남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검지로 코를 슥 문질러보니 오른쪽 콧구멍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다. 그는 애써 표정을 유지하며 헛기침했다.
“크, 크흠. 과연 큰소리칠 만한 실력은 있구나. 하지만 이번에…….”
빠직!
또 한 번 눈앞에 별이 번쩍한다. 이터가 언제 다가오는지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넘어지는 중년남을 보며 이터가 말했다.
“거봐, 약하잖아.”
“대, 대장!”
이번엔 쌍코피다. 바닥에 주저앉은 중년남은 눈이 뒤집혀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다.
“야, 이 빌어먹을 자식아! 상대의 말도 끝나기 전에 때리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냐? 네놈은 노인 공경도 모르냐? 썩을 놈!”
“아, 미안.”
씩씩거리며 일어난 중년남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잘 들어. ‘준비, 시작’ 하면 시작하는 거다. 알겠냐? 한 번만 더 먼저 때렸단 봐라.”
“응.”
고개를 끄덕이는 이터를 보며 중년남은 바로 바닥을 박찼다. 그는 속으로 히죽 웃었다.
‘바보 같은 놈, 승부에 치사하고 말고가 어딨냐?’
이터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며 중년남이 소리쳤다.
“준비, 시작!”
뻐어억!
먼저 얼굴에 주먹을 날린 건 중년남인데 부러지는 건 그의 코였다. 같은 데만 세 번째다, 시발. 코가 완전히 뭉개져 바닥에 처박히는 중년남을 보며 이터가 말했다.
“역시 너 약한 게 맞아.”
“에잇, 빌어먹을 자식. 쳐라. 모두 놈을 덮쳐!”
“우, 우아아아!”
중년남의 악에 받친 명령에 반강제로 떠밀린(?) 흑의인들이 이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진짜 어지간하면 듣기 싫은 명령이었지만 말단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제발 살살 얻어맞기만 바랄 뿐이다.
그러나 마치 재주넘기를 하듯 흑의인들 사이를 오가는 이터의 주먹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이빨 한 개는 상당히 양호한 편. 흑의인들의 대부분은 당분간은 죽 신세, 지팡이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몇 명인지 헤아리지도 못할 숫자의 흑의인들이 하늘을 날았다가 떨어졌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이터 씨!”
엘리스가 빛의 화살에 시위를 매겼다. 목표는 손으로 코를 감싼 채로 부하들을 닦달하는 중년남. 빛나는 화살이 시위를 떠나 하늘을 날았다.
“라이트닝 애로우(Lightning Arrow)!”
중년남은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공격을 깨달았다. 그는 코웃음 치며 하늘로 뛰어올라 화살을 피했다.
“흥. 고작 이런 것쯤…….”
아무리 그대로 척살조의 대장이다. 이런 화살 하나 못 피할까보냐!
끼익.
하지만 직선 코스로 날아가던 화살이 멈췄다. 그리고는 그대로 곡선을 그리며 U턴을 하더니 하늘에 떠 있는 중년남을 향해 날았다.
“엥?”
상황 파악은 금방 했다. 그런데 허공에 떠 있는 부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고속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어떻게 피한단 말인가. 빛의 화살은 그대로 중년남의 등에 꽂혔고 엄청난 스파크를 일으켰다.
“우갸아악!”
치이익.
새카맣게 탄 채로 연기를 뿜어내며 바닥에 떨어진 중년남. 기절한 그를 보며 엘리스는 콧잔등을 가볍게 쓸었다.
“엣헴… 레피아 언니의 빛의 활은 한번 노린 상대는 100% 반드시 맞힐 수 있답니다.”
부르르…….
“응?”
아직 스파크의 쇼크가 남은 것인지 의식을 잃은 중년남이 부르르 몸을 떤다. 엘리스는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쪼그리고 앉아 구경했다.
잠시 후 떨림이 멈췄다.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떨리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하던 엘리스는 다시 시위를 당겨 활을 쏘았다.
“에잇.”
파지지지직!
“으갸아악!”
스파크의 엄청난 고통에 정신이 번쩍 뜬 중년남이 비명을 내지르다 다시 기절했다. 기절한 그가 다시 몸을 떨자 엘리스는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중년남의 떨림이 멈추면 다시 쏘고 멈추면 다시 쏘았다. 물론 그때마다 중년남이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깨어났다 다시 기절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와아, 이거 신기하다. 이터 씨, 이것 좀 봐요. 계속 떨어요.”
중년남에게 화살을 계속 쏘아대던 엘리스는 타깃을 바꿔 쓰러져 있는 다른 흑의인들에게 화살을 날렸다. 파지지, 하는 고전압에 당한 흑의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깨었다가 다시 기절하며 몸을 부르르 떤다. 엘리스는 신이 나서 계속 화살을 날렸다. 그 모습을 보며 로자리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정말 지독한 엘프로군.’
저렇게 웃는 얼굴로 확인사살을 하고 돌아다니다니. 정말 무시무시한 꼬맹이가 아닐 수 없다.
“호호호, 재미있다. 얍! 얍!”
기절도 제대로 못 하고 끔찍한 고통에 계속 깨었다가 기절하는 흑의인들은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자신들도 살수지만 이렇게 잔인한 놈은 처음 만나보았다. 이터가 괴물이면 엘리스는 악마였다.
‘크윽! 차라리 죽여다오!’
견디다 못한 흑의인 중 하나가 단검을 쥔 채 엘리스를 향해 돌진했다.
“이 악마, 죽어라!”
“어?”
신나서 다른 흑의인들에게 화살을 날리던 엘리스는 다가오는 공격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의 검이 엘리스의 목을 베려는 순간이었다.
“꺼져.”
퍼억!
어느 틈에 파고들었는지 나타난 이터가 어쌔신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그 충격에 그가 약간 뒤로 튕겨나는 순간, 진각을 내딛은 이터는 그대로 발경을 날려 흑의인을 날려버렸다.
쿵! 콰쾅!
“커어어억!”
날려간 흑의인은 건물 한 채를 부수고 안에 처박혔다.
“아…….”
“괜찮아?”
멍청하게 주저앉은 엘리스를 내려다보며 이터가 물었다.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터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조심해.”
“네, 네엡!”
이터가 저런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걱정해 주다니. 그 한마디로 완전 감동. 100% 사기 충전이다.
엘리스는 활활 불타는 눈으로 빛의 활에 시위를 메겼다.
“엘리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전의에 불타는 엘리스를 보며 로자리아는 흑의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끄아악!”
쿵.
결국 마지막 흑의인까지 바닥을 구르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때까지 놀고만 있던 그레이센은 개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끝났군.”
“그렇기는 한데… 이 소동은 어떻게 할 거야.”
로자리아가 주변을 가리켰다. 마을 광장 가득히 쓰러진 흑의인들은 둘째로 친다고 해도 싸움 구경에 광장으로 모려든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시선 집중. 게다가 벌써 누군가 경비대를 불러왔는지 저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도 들린다.
어두컴컴한 뒷골목도 아니고 대낮, 그것도 마을 광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마녀와 망국의 왕자가 함께인 파티. 여기서 잡혔다가는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들 수도 있다.
그레이센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금발의 머리칼을 쓸었다.
“어쩔 수 없군. 얼마 안 남은 비자금인데. 론.”
“네, 왕자님.”
론이 품 안에서 두둑한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은 비까번쩍한 황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론은 주위에 몰려든 인파들을 향해 금화를 뿌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금빛의 동전. 반응은 0.1초도 지나기 전에 일어났다.
“그, 금화다!”
“비켜! 내가 먼저 주울 거야.”
“이 손 놓지 못해? 이건 내 거라고!”
바닥에 떨어진 금화를 줍기 위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들었고 주위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래서는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비대도 제대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고상하게 머리를 넘긴 그레이센은 로자리아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가실까?”
“…….”
로자리아는 혀를 찼다. 망해도 왕자는 왕자라는 건가. 확실히 스케일이 다르다.
광장의 소동을 뒤로하고 일행은 마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이 마을을 찾아온 것은 할 일 없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찾고 있는 게 있었다.
얼마 뒤, 로자리아는 어떤 간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마침내 도착했네.”
“‘알고 싶은 건 무엇이든 알려드립니다. 마흐라 카타부라’라고?”
가즈 블레이드가 간판을 읽었다. 로자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히 유명한 점쟁이래. 최근에 이 마을에서 개점을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점괘가 엄청 잘 나온다고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야.”
“지금 점 하나 보자고 이 먼 곳을 찾아왔다는 말이냐?”
탐탁지 않은 그레이센의 표정을 보며 로자리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잖아? 엘프들의 마을에서도 결국 이데아로크의 조각은 찾지 못했어. 그 이후에 도둑 길드에서 얻었던 다른 정보를 바탕으로 움직여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 가만히 손 빨고 있는 것보다는 점이라도 쳐봐야 하지 않겠어?”
“하지만 점 같은 거 신뢰할 수 있을까?”
가즈 블레이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레이센도 한마디 거들었다.
“비효율적이다. 그런 점은 우리 내시도 볼 줄 안다고.”
“그건 제가 신관이라서 그런 거라고요.”
론은 투덜거렸다. 심드렁한 일행의 반응에 로자리아는 볼을 부풀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신탁을 받으려면 신전이 있어야 하잖아. 아니면 너희가 좋은 방법을 내보든가. 아무 단서도 없이 이렇게 시간만 낭비하는 것보다야 100배는 낫지. 밑져야 본전이라고. 잔말 말고 따라 들어와.”
로자리아에게 떠밀려서 들어가는 일행. 그들의 뒤를 따르던 엘리스가 멈췄다. 이터가 아직 간판 앞에 서 있었다.
“안 들어가요, 이터 씨?”
이터는 엘리스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뚫어지게 간판을 바라보았다.
“무엇이든 알 수 있다?”
“이터 씨?”
엘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터는 별거 아니라는 듯 그냥 돌아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 기억도 알 수 있을까?’
***
“드디어 오는가? 로자리아, 그리고 이터라는 꼬맹이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