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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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정탐
“괜찮으십니까?”
권태수가 창백한 안색의 이바노프를 살폈다.
영혼고문을 마치고 추적을 피해 이리저리 동선을 꼬며 돌아가는 길, 멀쩡하던 이바노프는 점점 상태가 안 좋아졌다. 달리 행동에 흐트러짐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말수가 지극히 줄어들고 딱딱해진 표정은 펴질 줄을 모른다.
“두 번이나 사용한 건 확실히 무리였던 듯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은 제가 사용하는 건데.”
“으음……”
처음, 마법사를 영혼고문한 후 교차검증을 위한답시고 검귀까지 마법서를 통해 고문했다. 정보의 신뢰성은 확보했지만 그 대가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듯하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닙니다. 조금 무기력할 뿐.”
“그거, 다르게 생각하면 몸 대신 영혼에 부상을 입은 겁니다. 마냥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닌 듯한데요?”
그렇게 말하니 어쩐지 와닿는다. 이바노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다루기엔 벅찬 물건이었군요.”
아무리 긍정적인 감정을 대가로 소모한다는 찜찜한 성능을 갖고 있다고 하나 딱 보기에도 굉장히 유용할 것이 분명한 물건, 그런데 어째서 반고 왕국은 류한에게 선물이랍시고 순순히 건네주었을까? 그들이라고 이 마법서를 사용하려 든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 리 없는데?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유용한 건 맞지만 그 누구도 한두 번 이상 사용하기 힘든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계속 가지요.”
하지만 아무리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아도 지금은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두 영혼에게서 얻어낸 정보들은 미토스가 생각보다 만만한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첫째, 축복 마법.
몸에 마법재료를 사용해 문신으로 새겨지는 마법으로, 아주 소량의 마력만으로도 반영구적 유지가 가능하다. 주된 효능은 신체 컨디션의 유지와 정신의 보호, 그리고 독이나 저주 같은 상태이상에 대한 저항력을 제공한다. 에르체그에게 사용했던 자백제가 빨리 풀려버린 원인이다.
둘째, 결속 마법.
축복과 마찬가지로 각종 마법재료를 통해 문신으로 새겨지나 지속시간은 한두 달 정도, 물론 이것 역시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다. 효능은 같은 채널의 결속 마법이 새겨진 동료들과 텔레파시 종류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서로의 상태와 위치를 직감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 두 가지가 몸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패시브형 마법이다.
다른 중요한 액티브형 마법도 물론 있는데, 처음 사로잡아 심문했던 포로 에르체그가 말한 것처럼 주변 사물들의 기억을 읽어내는 마법을 주목할 만했다.
나무, 땅, 바위, 무엇이든 상관없다. 투여한 마력의 양에 따라 최대 일주일 내외의 주변 변화를 시각화해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용하면 마치 홀로그램으로 투사하는 것처럼, 과거의 기록을 CCTV 녹화영상마냥 돌려볼 수 있다.
그렇게 시각화하는 것 뿐만이 아니다. 지나간 마력의 변동을 레이더처럼 파문형식으로 볼 수도 있다. 단순히 은신으로 모습을 감추고 이동한다고 추적에서 벗어나긴 어렵다는 뜻.
벗어나려면 공간을 뛰어넘어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동하거나, 도저히 일일이 추적할 수 없을 정도로 긴 거리를 이동하거나, 혹은 해당 추적마법을 사용하기 어려운 장소로 이동하는 방법이 현재로선 최선이었다.
만약 이곳에 뛰어난 실력의 마법사가 있었다면 똑같이 마법으로 흔적을 지워 대응할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둘은 그런 재주가 없다.
그밖에 다른 주목해야 할 전투 및 보조계열 마법도 물론 많다. 처음 전투가 벌어졌을 때 지원조가 뿌려대던 탐지마법도 그 중 하나.
모두 영웅 켈데브렘이라는 존재에게서 나온 마법들이었다. 류한의 레야처럼, 그는 미토스의 중추에서 여러 마법적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하며 전력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사람과 제대로 협력하는 남색 등급의 존재는 그들이 상대했던 죽음의 군주보다도 더 강력할 것이다. 미토스가 유럽의 패권을 쥐게 된 것은 당연하다.
그런 그들이 겨우 유럽에서 만족할 것 같지는 않았다.
지도자의 성향에 따라 다소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반드시 어딘가로 진출하려 들 것이다.
어디로?
남쪽의 지중해를 끼고 돌며 이집트 부근까지 먼저 진출할 수도 있겠지만, 러시아 지역에 이다니자카스라는 강력한 세력을 두고 굳이 사막 가득한 땅부터 점령하려 들 확률은 낮다. 애초에 적이 될지도 모를 세력을 곁에 둔 상태로 다른 지역부터 도모하는 건 전략적인 선택이 아니기도 하고.
가장 가깝고 위협적인 세력부터 제거한 후 주위를 쓸어담는 것이 정복의 정석.
그렇기에 둘이 향하는 곳은 이다니자카스 쪽이었다. 추적을 뿌리칠 수 없다면 다른 세력의 끄나풀로 오해하게 만들 수밖에 없고 어차피 두 세력은 서로 싸우게 되어 있다. 꼬리를 달고 본거지로 향하는 것은 이바노프의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또 그래야지만 무사히 귀환할 수 있기도 했다.
그때, 이바노프가 뒤를 힐끔 돌아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의 따라붙었습니다.”
아직 권태수의 기감에는 닿지 않는다. 그러나 추적에 민감한 암살자 직업을 가진 이바노프가 착각을 했거나 헛말을 할 리는 없다.
권태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평소 갖고 다니던 폭탄들을 꺼내 빠르게 설치하기 시작했다. 좀처럼 쓸 일이 없어 방치되던 폭탄들, 바로 군용 크레모아 지뢰들이다.
땅 뿐만이 아닌 나무 위쪽과 같은 사각지대에도 적절히 설치한 후 인계철선을 깔고 위장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이삼 분.
“어지간하면 걸릴 겁니다.”
권태수가 자신했다.
상대는 각성자로서의 싸움에는 몰라도 이런 기계적인 함정과 폭탄을 대하는 군대식 싸움에는 익숙하지 못할 것이다. 군필자 가득한 류한에서조차 크레모아는 거의 사용한 적 없는 물건, 이런 종류의 함정에 대비하고 있을 확률은 낮았다. 아마도 마법적인 함정에만 주의하고 있을 터.
그렇게 함정을 깔아놓고 출발한지 얼마 후.
뒤편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땅이 미약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권태수가 이바노프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소리를 보아 제대로 터졌다. 일부로 터뜨린 게 아니라면 적어도 두셋 이상 사상자가 나왔을 테니 수습에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이후에도 다른 함정들을 경계하느라 이동속도가 느려질 것이다.
그 사이 거리를 벌려야 한다. 둘은 좀 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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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개자식들…!”
고작 두 명이다. 헌데 아군의 피해가 벌써 열 배를 넘었다.
상대는 교묘하게 동선을 틀어 그들의 추적을 지연시키면서도 이렇듯 치명적인 함정을 남겼다. 무려 셋의 목숨이 날아갔다. 이렇게 허무히 잃어선 안 되는 인재들인데, 개 중 하나는 친동생처럼 여기던 대원이었다.
디아네 하이드크뤼거, 그녀는 이번 이다니자카스에 대한 정탐임무 지원 책임자이자 죽어버린 자들의 전우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백인 특유의 하얀 피부가 붉게 물들고 눈에는 잔뜩 핏발이 섰다.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고혈압으로 쓰러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
“이제부터는 확실히 국경을 넘게 됩니다.”
곁에서 부관이 조심스레 보고했다. 계속해서 추적하다 보니 어느새 이다니자카스의 영토 지척까지 접근했다.
“조금만 더 가면 정찰대가 있을 겁니다. 그간 쑤셔놓은 게 있는지라……”
지형도 좋지 않다. 앞에는 산맥에 걸쳐진 숲이 끝나고 평야지대가 나타난다. 엄폐물이라곤 뜨문뜨문 자란 가느다란 나무 몇 그루와 간신히 몸을 숨길 만한 바위, 그리고 야트막한 언덕 지형들 뿐인 곳.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입은 피해가 극심하다. 이 정도 실력을 가진 것으로 보아 상대는 최소 간부급,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정예로서 아는 것이 많을 확률이 높으니 무조건 잡기만 하면 만회할 수 있다.
무조건 그래야 한다. 동료들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 수는 없다.
“계속 추적한다.”
결국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마주치는 정찰조는 지원을 부르기 전에 끊어내야지.”
직접 잡히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다.
이다니자카스에서 그들 같은 마법을 가졌다면 또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대비가 되어 있다. 나중에 의심은 받겠지만 감히 그 정도로 미토스에게 대놓고 따져댈 수 있을까?
자신들의 힘에 대한 강한 확신, 거기에서 비롯된 오만에 가까운 판단이 내려졌다.
그렇게 그들은 국경을 넘어 계속해서 흔적을 쫓았다.
사냥꾼과 암살자 직업을 가진 대원들이 흔적을 찾아내고 그것이 사라지는 곳에선 마법으로 단서를 얻어 다시금 추적에 나선다. 상대가 아무리 용쓰는 재주를 갖고 있더라도 그들의 추적을 떨쳐낼 수는 없다.
바로 그때였다.
“이쪽……”
푸확!
앞서 길을 안내하던 한 사냥꾼의 머리에 구멍이 뚫리며 피가 튀었다. 시체가 되어 쓰러지는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신성술사와 마법사들 몇이 본능적으로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콰창!
재차 날아든 저격은 두 개의 보호막을 관통했지만 세 번째 보호막까진 뚫지 못하고 가로막혔다.
“무슨 위력이…!”
보호막을 펼쳤던 앞쪽의 마법사가 경악했다.
막히긴 했지만 한 번의 공격으로 보호막이 두 겹이나 관통당했다는 게 충격적이다. 그들이 각자 몸을 엄폐하며 몇 겹으로 보호막을 두르고 어디서 날아온 저격인지 서둘러 찾는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 스코프로 지켜보던 권태수가 눈을 떼며 입맛을 다셨다.
한 명을 저격하긴 했지만 반응이 재빨라 두 명 죽이기에는 실패했다. 게다가 우왕좌왕 하던 것도 잠시, 곧장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니 그 와중 마력탄환이 남긴 빛의 궤적을 본 자가 있는 모양이다.
밴시여왕의 우플랑드가 있어 들키지는 않겠지만 거리가 좁혀진다면 위험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상대의 수가 서른이 넘는 관계로 직접 맞붙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그가 괜히 저격으로 위치를 노출한 것은 아니었다.
미토스의 추적대는 그들의 존재를 알지만, 이다니자카스의 국경 정찰대는 그들의 존재를 모른다. 설령 알더라도 미토스와 달리 제대로 추적해오지 못한다.
권태수가 저격을 가한 위치는 평원에서도 나름 언덕진 구릉 위, 아래쪽에서는 반대편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반대편에서 이바노프가 일부로 소란을 피워 유인해오고 있는 이다니자카스의 정찰대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갑시다.”
유인에 성공하고 어느새 도착한 이바노프, 그와 함께 권태수는 서둘러 몸을 피했다. 양측이 맞불을 위치에서 정확히 수직으로 향하는 방향이었다. 어디로 피하든 미토스 측에서 마법을 쓴다면 다시 쫓아올 수 있을 테지만 아마 그럴 여유는 없을 거다.
쾅!
잠시 후, 뒤편에서 마법에 의한 폭발음이 터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고함과 비명성이 아스라히 들려오며 전투가 벌어졌다.
서로 구릉을 넘어 마주친 두 세력이 오해를 풀 시간도 없이 맞붙었다.
미토스는 상대가 권태수와 이바노프를 지원하러 온 병력인줄 알 것이고, 이다자카스는 상대가 누구이든 국경을 침입했으니 일단 제압하려 드는 게 당연하다.
누가 승리할지는 모른다. 머릿수는 이다니자카스가 조금 더 많았지만 실력은 미토스가 더 뛰어난 듯하다. 그러나 미토스가 이긴다 해도 더 이상 추적을 강행할 여력은 없을 것이다. 이다니자카스의 정찰대라고 아무런 연락망도 없진않을 테니, 이제 그들이 쫓기는 입장이 될 차례였다.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은 이바노프와 함께 권태수는 최단거리를 잡고 서둘러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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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챕터 완이네요. 어째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좀 있어서 나중에 다시 손을 봐야겠습니다.
내일은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