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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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남의 땅에서
– 쯧. –
귀환한 이바노프의 상태를 살피던 레야가 혀를 찼다.
– 무리했군. 처음 사용했을 때부터 느낌이 있었을 텐데? –
“경험이 없어 어느 정도인지 몰랐습니다.”
– 병원에 가보는 건 어때? 나는 상태를 진단할 수는 있어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는 모른다. –
“참고하겠습니다.”
– 책은 다시 내가 보관하도록 하지. –
이바노프는 문제의 마법서를 넘기고 레야의 방을 나섰다. 애초에 그것을 돌려주기 위해 들른 것이다.
처음 의사 최용선을 주축으로 시작됐던 의료원은 이제 몇 개의 분점을 가진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비교적 최근에 신설된 정신과도 그곳에 있었으나, 물론 그곳에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끔찍한 기분이다.
이성적인 생각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데 그 무엇도 하기 싫어지는 무력감이 늪처럼 몸을 빨아들린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긴 하는 건가 의문이 들 정도로. 이러다 더 곪아서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조차 힘들어지진 않겠지? 그답지 않게 괜히 불안해진다.
그때, 심각한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던 그의 앞을 누군가 가로막았다.
문하랑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와 함께 고개를 숙여오는 그녀에게 이바노프 역시 마주 고개를 숙여 예를 차렸다. 허나 문하랑의 태도는 명백히 단순한 인사가 목적이 아니었다.
이바노프가 물었다.
“제게 무슨 용건이 있으십니까?”
“제가 대주교로서 이런저런 능력을 갖고 있음을 아실 겁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으시군요. 몸이 아니라 마음에.”
그걸 그냥 보기만 해서도 알 수 있다?
레야조차 그가 먼저 말을 꺼내고서야 이런저런 마법을 통해 파악해낸 것을 문하랑은 단번에 알아봤다.
고요하게 마주해오는 밤색 눈동자 안쪽에서 일렁이는 자색빛 신성력을 보니, 어쩐지 이바노프는 자신의 속내까지 비쳐보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의외로 그게 기분 나쁘진 않았다. 역시 군주께서 선택한 대주교라는 생각만이 들었을 뿐.
“제가 나름의 해결법을 알고 있는데, 혹시 바쁘십니까?”
“아니요, 오늘 하루는 괜찮습니다.”
“그럼 잠시 함께 가실까요?”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군요.”
이 끔찍한 기분을 떨쳐낼 수 있다면 되려 먼저 부탁해야 할 입장이다.
문하랑은 그와 함께 성을 나서 수호교의 신전으로 향했다. 1층의 커다란 홀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수십에 달하는 개인실들이 늘어선 복도가 나타났다. 그녀는 그 중 한 방에 들어섰다.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고 가구로 별로 없어 아주 단촐했다. 옷걸이와 옷장, 편하게 앉을 수 있을 법한 푹신하고 깨끗한 소파, 그리고 나무로 제작된 수호교의 상징이 한쪽 벽에 걸려 있을 뿐이다.
“편하게 앉으세요.”
“그 해결법이라는 게 일종의 기도입니까?”
“비슷하지만, 수호교는 기도 대신 명상을 합니다.”
“제게도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딱히 의심을 품고 한 말이 아니라, 그는 살면서 제대로 명상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효과는 분명히 있습니다.”
문하랑은 단언했다. 이바노프가 소파에 앉자 그녀가 설명을 시작했다.
“명상의 기본은 조용하고 편한 장소를 찾는 겁니다. 편안한 옷과 자세를 취할 수 있다면 더 좋지요. 일단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세요. 다른 잡념이 지워질 때까지,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그 뒤로 약 이삼 분 정도, 침묵 속에서 이바노프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호흡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잡생각이 사라지고 몸이 이완되면서 끔직하던 기분도 조금이지만 떨어져 나간다.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이제 다음 단계로, 신체의 발끝에서부터 모든 부위를 차례차례 의식적으로 느끼며 긴장을 풀어주십시오. 만약 잘 안 된다면 너무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조용한 방안에 문하랑의 낮은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정시키는 듯한 기묘한 힘이 담긴 목소리였다.
“모든 신체의 긴장이 그럭저럭 완화되었다 싶으면, 이제는 내부의 마력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 살피는 겁니다.”
처음에는 호흡에, 다음으로는 몸의 각 부위를, 그 다음으로는 마력에.
그렇게 다시 십 분 정도가 흘렀다.
긍정을 대신해 몸집을 불렸던 부정의 감정은, 명상으로 찾아온 고요와 평온에 기세가 꺾였다. 이렇게 간단하게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하다니 사뭇 놀라울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신성력에 집중하면 됩니다.”
이바노프 역시 세현을 신이라고 믿기에 신성력을 갖고 있었다.
단지 갖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꽤나 상당한 수준으로, 그렇기에 신성력을 감지하고 그것의 흐름에 집중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신의 존재를 애써 믿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현상을 보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신성력은 이 세계의 질서와 조화를 근원으로 둔 힘, 그렇기에 이치를 거스르는 부정한 힘에 상극입니다. 동시에 우리 인간에게 더 없이 유익한 힘이고요. 우리가 이 세계에 속한 생명체이기에, 신성력은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일어서게 합니다.”
마력에 집중할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기다렸다는 듯, 어째서 이제야 관심을 주냐는 것처럼, 흡사 스스로 의지를 가진 듯, 존재를 인지하고 지켜보기 무섭게 신성력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어디에서 시작이라 할 것 없이 전신을 휘돌기 시작한 신성력은 놀랍게도 신체에 미약하게 남아있던 피로와 긴장을 씻은듯이 소멸시켰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바노프가 자신도 모르는 새 숨을 들이켰다.
세계를 근원에 두고 모든 것을 자비롭게 포용하는 힘, 그것에 몸을 맡기는 일이 이 어찌도 평온하단 말인가.
스스로가 거대한 질서의 조화로운 일부가 되어 흘러가는 듯한 감각이다.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는데, 마치 먼 우주에서 푸른 구형의 지구를 내려다보는 듯 경이로운 기분이었다.
모든 골칫거리들이 더 이상 조금도 중요치 않은 하잘것 없는 문제가 된 듯한, 이 광활한 세계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에 대한 경탄과 겸손, 모든 행성과 생명체의 시작에서 현재를 아우르는 장엄한 흐름에 대한 경외.
그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이바노프가 눈을 떴을 때 문하랑은 진즉에 자리를 떠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앉아 있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리를 정리하고 방을 나서자 어느새 날이 저물어 불이 밝혀진 복도가 보인다.
놀랍게도 족히 여섯 시간이 넘게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같은 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음을 좀먹어가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깨끗이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정신과 진료를 권유받았을 정도로 문제였던 마법서의 부작용이 치유되었다.
처음 제대로 해본 수호교의 명상법은 가히 놀라웠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그 정도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그리고 경이와 감동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항상 이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다면 누구라도 수호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지지 않을 리 없다.
이바노프는 앞으로 매일 정해진 시간에 명상을 해야겠다 생각하며 신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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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영환이 류한의 용인 본성을 방문했다. 해오름의 주요 간부들인 정보부장 다샤 타란과 마법병단장 카이마스 사이지를 동행한 채였다.
그를 마중하기 위해 간단한 환영식이 열렸다. 대영주이자 일본의 실질적 지배자를 대우해주기 위한 의전이었는데, 서영환은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설마 자신을 위해 이런 준비를 해줄 것이라곤 몰랐던 듯하다.
“국왕님을 뵙습니다.”
부담스러운 환영식과 함께 홀에 들어와 기다리던 세현을 본 서영환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뒤에 선 두 명의 해오름 간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세현이 툭 던지듯 말했다.
“해오름의 대영주 서영환을 공왕으로 임명하고 그 영지를 공국으로 명한다.”
“예, 예?”
“승진이다.”
피식 웃은 세현이 태블릿을 꺼내들고 관련 행정절차를 시행했다.
– 대영주 서영환이 공왕의 직위에 올랐습니다. –
– 해오름 영지가 공국으로 변경됩니다. –
시스템적으로 수정되었다는 메시지가 세현을 비롯한 류한의 핵심 간부들에게, 그리고 서영환과 해오름의 핵심 간부들에게 울렸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영지민에서 공국민이 된 일본 지역의 각성자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나도 몰랐는데 어느 날 보니 이런 게 가능하더군. 조금 늦었지만 그 정도 영토를 갖고 공을 세웠으면 공왕 정도는 되어야지.”
“감사합니다.”
뜻밖의 승진(?)을 한 서영환이 약간의 떨림을 감추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인사는 이 정도로 하고, 식사는?”
“아직입니다.”
“잘됐군.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나 하지.”
안 그래도 요리사들이 요리 준비를 마친 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식당에 자리하게 된 인원은 총 다섯이었다. 세현과 혜진을 대신해 자리한 이예슬, 서영환과 다샤 타란 그리고 카이마스 사이지.
가볍게 나오기 시작한 동서양 퓨전식 에피타이저를 시작으로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서영환이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세부적인 것을 정보부장 다샤 타란이 이어 설명했다.
죽음의 군주가 처음 자리했던 규슈 지방은 잔여 언데드들의 청소가 끝났다. 그곳 역시 제주도처럼 오염되었기에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땅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위험요소는 확실하게 제거했다.
그리고 세력전 면에서, 덴세츠를 꺾고 교토를 넘어 도쿄까지 진출한 해오름은 윗지방의 다른 모든 영주들에게 항복선언을 받아내고 휘하에 결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실상 일본을 완전히 정복한 셈이다.
해오름의 지배구조가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언제든지 일본의 모든 전력을 끌어올 기반이 만들어졌다.
“잘했다.”
설명을 듣자하니 정말 최소한의 피해로 최선의 결과를 끌어냈다. 서영환의 무력도 무력이었지만, 다샤 타란과 카이마스 사이지 등 핵심 간부들의 역량도 받쳐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확실히 서영환을 일본으로 보낸 건 매우 잘한 결정이었다.
그 혼자서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려 들었다면 지금과는 여러 모로 달랐을 터였다. 아마도 안 좋은 쪽으로.
직접 류한을 이끌고 일본을 정벌하려 들었다면 시간이야 비슷하게 걸렸을지 몰라도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써야했을 거다. 그간 반고 왕국과 죽음의 군주 등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발생했기도 하고, 게다가 정복 후 직접 관리까지 해야 하니 업무량이 폭증했을 것도 자명하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제 식사가 마무리 과정으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코스형식으로 먹는 음식은 식사시간이 꽤 걸리고 중간에 짬이 많은 만큼, 긴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하다.
“미토스와 이다니자카스 말인데.”
그래서 아직 시간도 남았겠다, 세현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전달된 내용은 살펴봤겠지?”
“예. 딱히 다른 곳에 신경 쓸 일도 없어서 꼼꼼히 체크하고 있습니다.”
“그럼 네 생각은 어떻지?”
“제 생각엔 지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이다니자카스 혼자서는 버틸 수 없을 테니까요.”
그는 이어 입을 열었다.
“미토스의 정복행을 놔둘 이유가 없습니다. 지켜보기만 하면 놈들은 반고 왕국까지 내려올 겁니다. 더 나아가선 류한에까지 욕심을 낼 수도 있고요. 어차피 싸우게 될 거라면 남의 땅에서 초기에 진압하는 게 더 좋다고 봅니다.”
“우리가 미토스와 동맹을 맺고 이다니자카스를 반으로 나눠먹을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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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법은 호흡에 집중하는 법과 신체 각 부위에 집중하는 법까지, 실제 사용되는 명상법입니다. 효과가 있으니 한 번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