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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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남의 땅에서
“미토스의 성장 잠재력은 무섭습니다. 켈데브렘이라는 자가 전수하는 마법지식이 더해지면 머지 않은 미래에 이다니자카스와 반고 수준은 그냥 넘어설 겁니다. 거리가 있는 만큼 성장을 견제하기도 힘들겠지요. 국왕님을 제외하고 본다면, 어쩌면 10년 안으로 류한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이후로 몇 분 정도 더 관련 이야기를 나누던 세현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에서 지배자로 군림하더니 예전보다 시야가 많이 트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이런 경우다.
만약 그가 예전부터 지금 정도 수준이었다면 이바노프의 조력이 없었더라도 무리없이 일본을 정복했을 것이다.
“지원군을 편성할 예정이다. 늦어도 일주일 정도 후에는 출발할 예정이고. 벌써 모스크바까지 위협받고 있다 하니 그보다 더 밀려서야 우리 혼자 싸우는 꼴이 될 수도 있겠지.”
이바노프의 정탐행으로 발발했던 이다니자카스와 미토스의 마찰, 그것은 얼마 걸리지 않아 심각한 외교분쟁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두 국가가 서로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어느 한쪽이 굽히기 전까진 서로의 오해를 풀 길이 없었으니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 국가의 명운을 건 싸움으로 번진 셈이다.
물론 그 저변에는 미토스의 꺼지지 않는 정복에 대한 욕망이 크게 한 몫 했음이 분명하다. 무조건 싸움을 원하던 상대와 마찰이 생겼는데 그 기회를 순순히 걷어찰 리가 없지 않은가?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분명 무리한 사과요구 같은 것을 했을 테고 이다니자카스로선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거다.
“지원군 사령관으로 네가 가라.”
하지만 이어진 말은 서영환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싫으면 굳이 강요하진 않으마.”
“가겠습니다.”
본인조차 의외일 정도로 시원시원한 대답이 나왔다. 세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따로 병력을 내어줄 테고 원한다면 해오름에서 더 데려가도 좋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 정현욱을 붙여주마.”
“정현욱 씨를 말입니까?”
“그래.”
둘이라면 설령 켈데브렘과 정면으로 싸우게 된다 해도 최소한 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서영환 역시 알기에 절로 표정이 밝아졌다.
자신의 재능을 알았으나 에레도스 사태 이전까진 그것을 좀처럼 내보일 기회가 없었고, 에레도스 사태 이후 싸움의 참맛을 깨달았지만 이제는 일본에서 할 일이 더 이상 없었다.
미토스가 만만치 않으며 위험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들과 싸운다고 생각하니 전신에 활력이 도는 기분이었는데, 동시에 공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수장으로서 위험을 고려치 않는 무책임한 행동인 건 아닌가 싶었던 우려를 세현이 해결해준 것이다.
그는 직접 정현욱과 붙어본 적이 있다. 그가 자신의 뒤를 봐준다면, 혹시 모를 상황에서도 결코 치명상을 입거나 죽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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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니자카스의 수도 모스크바.
한반도는 이제 봄을 넘어 초여름이 되어가는 때였으나 모스크바에는 아직도 간간이 눈이 내리는 날씨였다. 삭막하고 추운 날씨만큼 분위기 역시 그러했는데, 방금 전까지 벌어졌던 격전의 흔적으로 그 위에 고통과 비참함이 덧칠해져 더 없이 우울하고 끔찍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파괴된 건물들, 깨져나간 도로, 널브러져 방치된 시체들, 핏물 묻은 지저분한 옷가지를 입고 지친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경계 가득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는 전투원들.
모두 몇 시간 전에 이곳에 쳐들어왔던 미토스의 특공대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놈들은 대담하게도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수도에 쳐들어와 난동을 부리고 지원군이 오기 전에 정체 모를 마법으로 몸을 빼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농락했고, 애초에 그럴 자신이 있었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습공격을 가해왔을 것이었다.
시가의 끝을 짓씹으며 그 패색 짙은 광경을 내려다보면 남자, 이다니자카스의 지배자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분노와 초조함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어떻게 이뤄낸 왕국인데, 한 수 아래로 보던 유럽 놈들에게 이토록이나 밀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유럽과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남색 등급 괴물은 대체 언제 토벌되었단 말인가. 그 정보라도 알았다면 놈들을 무시하지 않고 좀 더 세밀한 대비를 해놨을 터인데.
모든 게 다 그 켈데브렘이라는 자 때문이다. 이계의 잊혀진 영웅, 그자가 전수한 마법이 미토스의 힘을 한 단계 더 강한 곳으로 끌어올렸음이 분명하다.
“마법……”
그저 시스템을 통해 사용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마법, 그것이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올린 과학과 같은 더 없이 유용하고 강대한 힘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물론 좀 더 일찍 깨달았어도 달라질 건 없었을 거다. 단기간에 파악해내기엔 마법은 너무나 심오하고도 낯선 학문이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류한 왕국에서 지원군이 온다는 사실이었다.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지금 당장 강력한 힘을 내보인 미토스를 견제하지 않을 리 없다.
다만 우려스러운 점은, 이 전쟁이 장기화되며 이다니자카스가 꾸준히 약화되고, 결국에는 전쟁이 끝나고 류한에게 저항할 최소한의 힘조차 없다면 어찌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고민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그는 각성자임에도 불구하고 편두통을 느끼고 있었다.
치지직-
그때, 뒤편 테이블에 놓아두었던 무전기에서 잡음과 함께 경계조의 보고가 올라왔다. 사령본부의 담당자와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보니 드디어 지원군이 도착한 모양이다.
그는 곧장 시가를 떼어놓고 코트를 걸치며 방을 나섰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에 온 지원군이니 홀대할 수 없다. 직접 마중나가서 우리가 이만큼 대우해줄 것이라고 알림과 동시에, 지원군 사령관을 만나 그의 성품과 능력을 짐작해볼 생각이었다.
방을 나서자 여섯 정도의 호위병력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그들과 함께 도시 외곽으로 이동하는 사이, 어느새 그를 호위하는 병력의 수는 수십이 넘어가며 눈에 띄는 행렬이 되었다. 당장 오늘만 해도 미토스의 공격이 있었던 만큼 당연한 모습이다.
그렇게 몇 분 정도를 이동해 적당한 장소에서 멈춰 섰다. 대충 이 정도 시간이면 도착할 때가 되었다는 예상과 동시에, 멀리서부터 류한 지원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라르는 생각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그들의 등장에 눈이 절로 커졌다. 어쩐지 경계조의 보고에서 약간 흥분한 기색이 있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다.
우우우웅-
낮은 공명음을 내며 근 백여 대가 넘는 대규모 차량들, 바닥에서 일정 높이를 떠 이동하는 그것을 차량이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미래에서 튀어나온 듯한 수송차량들이 마찬가지로 공중에 떠 이동하는 중무장 장갑차들 수십의 호위를 받으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제야 그의 머릿속에서 류한의 발전도에 대한 외교관의 보고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상당히 놀라고 흥미로워했지만 이런저런 사건들로 바빠 잠시 잊고 있었다.
근처까지 다가온 지원군 차량들이 천천히 속도를 낮췄다. 공중에 떠 있어 제동하기 어려워 보임에도 부드럽게 멈춘 그것들에서, 중앙에 있던 수송차량의 문이 위쪽으로 열리더니 네 명의 사람들이 하차했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그들이 곧장 다가온다. 선두에 선 사내를 제외하고 다른 셋이 제라르의 앞에 도착해 고개를 숙일 때, 가장 선두에 선 사내는 국왕인 그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악수를 청해왔다.
“해오름 공왕 서영환입니다. 이다니자카스의 국왕님이시겠지요?”
“……반갑소. 내가 제라르요.”
공왕? 해오름?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뒤로하고 일단 손을 맞잡아 인사한다.
류한의 주요 간부들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다. 해오름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는 안다. 하지만 서영환이라는 자에 대한 정보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이다니자카스에서 류한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거기에 해오름은 구 일본 지역으로 류한을 관통하듯 지나치고서야 도달할 수 있으니, 이바노프의 방해까지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해오름과 그 주인에 대한 정보는 자세히 모르는 게 당연했다.
이자가 일본의 지배자인가. 한국식 이름인데, 설마 처음부터 류한에서 이자를 파견해 일본을 정복해버린 건 아니겠지?
류한에 속한 공국의 왕, 그 정도라면 제라르 자신과도 동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위치다.
자존심은 조금 상하지만 류한과 이다니자카스 사이엔 도저히 쉽게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있으니 당연하다. 게다가 자신들을 도와주러 온 지원군 아닌가.
“이렇게 와주어 정말 고맙소. 이다니자카스는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별 말씀을. 감사 인사는 미토스를 격파한 후에 받겠습니다. 전황은 어떻습니까? 당장 급한 전투가 있습니까?”
“오늘 오전에 한차례 놈들의 침투부대가 공격해온 적 있지만, 지금은 물러난 상태요. 자세한 것은 본부로 가서 이야기합시다.”
“그러지요. 우리 병력은 어디서 머무르면 됩니까?”
제라르의 곁에 있던 작전관이 나서 이야기하자, 마찬가지로 서영환의 곁에 있던 남자, 카이마스 사이지가 나서 마주했다. 그 사이 서영환과 다른 한 명, 그리고 제라르와 호위병력 십여 명이 본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뒤편에서 재개된 이동으로 다시 차량들에 시동이 걸리고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해오름에 대해선 잘 모르오. 이름만 들어보았는데, 류한의 공국이었소?”
“그렇습니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모르실 만도 하지요.”
제라르는 공왕인 서영환을 상대로 해오름에 대한 집요한 궁금증을 드러냈다. 서영환도 필요한 만큼은 굳이 감추지 않고 말해줬다. 그 내용 중에는 해오름의 시작이 류한이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던 와중, 서영환의 대각선 뒤편에서 따르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혹 모습을 감춘 채로 경계하는 병력이 있습니까?”
“음?”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남자, 제라르가 그를 빤히 쳐다봤다. 누구이기에 자신과 공왕의 대화 사이에 거리낌 없이 들어오나 싶어서다.
“우리측 경계병이 달리 모습을 감추고 있을 이유가 있는가?”
“그러면 적이군요.”
동시에 남자의 신형이 흐려졌다.
깜짝 놀란 제라르가 속으로 ‘마검사?’ 라는 의문을 떠올리는 순간 옆쪽에서 비명성이 터진다.
이십여 미터 떨어진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 언제 거기까지 이동했는지 모를 그가 검으로 웬 남자 한 명을 벽에 꼬치처럼 꿰어놓고 있었다.
“잡고 보니 복장부터 수상하군요. 소속마크도 없는 위장복에 위장크림이라?”
“그놈들이오!”
제라르가 외쳤다. 정확한 명사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모두가 제대로 알아들었다. 몇 시간 전 이곳을 공격했던 미토스 특공대의 잔당이라는 것을.
[영광의 빛으…!] 팟!푸른빛이 번쩍이더니 주문소리가 뚝 끊겼다. 도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벙어리처럼 뻐끔대기 시작한 적을 보며 그를 제압한 남자, 정현욱이 혀를 찼다.
그는 사실 딱히 나설 생각이 없었다.
너무 대놓고 숨어있어서 그냥 지나치기가 더 어려웠을 뿐이다. 그래도 지원군이라고 왔는데 최소한의 일은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다니자카스의 전투원들이 허겁지겁 달려오자 검을 회수한 정현욱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를 보는 제라르의 시선이 확 달라졌음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 작품 후기 ============================
내용을 두 번 정도 엎느라 연재가 좀 늦었습니다. (__) 서영환이랑 정현욱이란 대련도 한 번 하고 지원군 가는 사이에 괴물들도 상대하고 뭐 그런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냥 빼버렸습니다.
내일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이번주에 최소한 3회는 연재할 생각입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__)
P.S
몰랐는데 잭팟 당첨되었었네요.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연재는 다소 늦더라도 (크흠크흠…) 열심히 공들여 쓰겠습니다!
그리고 시간나면 작품설정에 각 캐릭터별 인적사항과 설정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