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92
292====================
인과율
류한 제국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나아갔다.
세현이 가했던 무자비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잔당들이 죽음을 각오하며 달려들었으나 진군을 멈출 수는 없었다. 벌써 방글라데시를 넘어 인도로 들어섰을 정도였다.
적들의 게릴라성 공격은 평범한 세력의 군대였다면 상당한 효과를 봤을 것이다. 놈들은 강화제를 통한 무력과 죽음을 각오한 정신에서 나오는 용맹함, 동시에 목숨의 귀함을 알기에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최대한 좋은 기회를 노리는 신중함까지 갖춘 적들이다.
허나 그들에겐 불행하게도 류한의 군대는 평범하지 않았다.
모두가 희귀함 등급의 고급 아이템으로 떡칠을 했고 자신들의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전투기술을 갖췄다. 동시에 각종 마도공학 장비들을 통해서 전술적으로도 대단한 효율성을 갖췄으며 마지막으로 사기마저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혜진은, 바로 그렇기에 다른 측면에 보다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달려들게 만드는 그 이유에 대해서였다.
어딘가 결여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긴다. 또한 생존본능이란 것이 있으니 그를 이겨내고 행동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신념……”
원래부터 그렇게 훈련받아온 사람들도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어쩌면 무의미할 정도로 달려드는 그들에겐 분명히 신념이 보였다.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는 바가 있으며 그를 위해 목숨마저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그것은 세현이 초창기부터 버릇처럼 강조해왔던 집단의 중요한 핵심요소였다. 또한 그가 인력이 부족했던 상황에서도 타락한 생존자들을 철저히 배제한 이유이기도 했다.
집단은 그 집단을 구성하는 모든 개인들이 공감하며 믿고 따를 수 있는 대의(大意)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더 오래도록 존속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같은 상황에서 같은 자원을 갖고도 더 큰 위력을 내보일 수 있다.
그저 무력으로만, 혹은 금력으로만 이뤄진 조직은 위기 앞에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진다. 설령 별다른 사건이 없어 무너지지 않고 성세를 이룬다 한들 놀랍도록 빠르게 부패하여 와해돼버린다.
이데아는 그러한 일들을 방지하는 핵심적인 가치를 갖췄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파고들어 보면 분명 혜진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부분이 있을 터였다.
어쩌면 이데아와 류한은 닮은 점이 있다. 하위요소 측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을지라도, 한 명의 절대자가 통치한다는 그렇다.
파시즘의 요소가 있고 계급주의나 엘리트주의와 유사하기도 하다. 그것들이 가진 보편적 인식 탓에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기 쉽지만, 민주주의와 이것들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더 효율적이고 뛰어난지를 논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인류는 아직 명백한 답을 찾지 못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세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함께 변해왔으며 어쩌면 그렇게 무한한 세월이 흘러도 결국 정답을 찾아내진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 모든 것들이 각자의 매력과 장점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했을 거다.
저절로 상상해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세현이 이데아의 존재를 계속해서 몰랐고, 그런 시간을 통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대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세계정세는 과연 어떻게 흘러가게 되었을까.
“……”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 무엇으로 포장해도 결국은 적자생존(適者生存),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패배한다면 도태되어 사라질 뿐이다.
“전군 정지.”
그래서 명령했다.
“대기하면서 후퇴준비를 시작합니다.”
혜진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생뚱맞은 명령이었으나, 불복은 있을 수 없다. 거칠 것 없이 나아가던 류한의 군대가 움직임을 멈췄다.
지도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그녀는 여태껏 오른손에 쥐고 있던 자그마한 목걸이를 살폈다.
별다른 장식도 없이 아주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제작된 물건, 세현의 품속에 있을 발신기와 호응하여 작은 불빛을 점멸하는 도구다.
이제부터 그녀가 할 일은 간단했다.
이 목걸이를 살피면서 세현에게서 모든 일이 끝났다는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또한 만약의 사태에, 최대한 신속하게 후퇴하여 가능한 오래 무사히 버티는 것이었다.
@
꽈과광!
몇 번째일지 모를 폭음과 함께 산맥이 통째로 붕괴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자색빛 검의 폭우, 그것은 산맥을 수백 미터 이상 뚫고 들어가며 지각을 통째로 뒤바꿀 정도의 충격파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거인처럼 일어나 포효하는 먼지구름과 함께 무너지는 산맥의 토사가 사방을 휩쓴다. 그에 휘말린 산맥 중앙의 비밀시설은 이미 흔적도 없이 부서졌을 터였다.
“서른다섯.”
아프리카에 들어서고 그가 박살낸 비밀시설의 수다. 대놓고 드러난 시설들은 아예 셈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아사드의 본체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 모르는 이상 이런 식의 대청소 작업을 벌일 수밖에 없다.
겸사겸사, 그에게 위기감을 선사했던 정체불명의 핵무기 제조시설을 파괴하면 더 좋은 일이었다. 이 정도 부셨으면 한두 개 시설 정도는 얻어걸렸을지 모른다.
동시에 그는 지금 핵무기가 생각만큼 만들기 쉽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쉽게 만들 수 있었다면 이미 두 번째 핵폭발을 겪었을 것 아닌가?
설령 아직 남겨두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한들, 그것 역시 핵무기가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만들기 쉽지 않으니 아끼는 것 아니겠는가. 상당히 안심되는 부분이었다.
이곳에 쳐들어온 그를 두고 다짜고짜 다른 장소에 핵무기를 쏘진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세현에겐 최악이겠지만, 아사드로서도 자신의 생존도모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였다. 기계 같은 성질을 가진 놈이 그런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다.
“최소한 먼저 찾아와 협박이라도 하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다시 허공을 박찼다. 쏘아진 포탄처럼, 그러나 훨씬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로질렀다.
아사드는 어째서 이곳의 인류를 ‘완전하게’ 지배하려 했을까.
이데아의 통치는 힘이나 기술을 통한 강압적인 지배가 아니다. 먼저 도움의 손길을 주어 마음에서부터 승복하게 만드는, 아주 정상적이고 동시에 왕도적인 지배다.
어쩌면 놈은 이들의 숭배를 통해 세현처럼 신으로서의 길에 들어서려 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숭배를 받는다고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놈처럼 보라색 등급에 이른 존재라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놈은 신에 대해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 그것을 시도해볼 이유도 있는 셈이다.
만약 세현이 이 세상에 없었고 놈이 성공적으로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신이 되었다면, 놈은 이 세상을 결코 포기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검신이 아닌 또 다른 종류의 신으로서 이곳을 보다 훌륭하고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성심을 다했을 거다.
부질없는 상상이긴 했다. 만약 그렇게 세현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사드가 나타나기도 전에 멸망했을 테니까.
인간을 통해 번식하며 세를 불리던 케르시타 종족, 죽은 자들을 부려 온 땅을 오염시키던 죽음의 군주, 그리고 중국에서 소환되어 시체의 군단을 이끌고 한반도로 내려왔던 악마, 유럽에서 제 동족의 부활을 위해 움직이던 잊혀진 영웅 켈데브렘까지.
세현이나 류한이 없었다면 결코 막을 수 없는 재앙들이었다.
스팟!
그 상념의 순간을 가르는 섬전이 있었다.
회피한 자리를 꿰뚫은 검은빛 선 두 줄기, 그것이 대기를 찢고 폭발함과 동시에 사방에서 푸른빛 마력의 원반들이 미친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느닷없는 공격, 심지어 세현마저 공격이 쏘아지기 전까지 놈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스카가가각!
쒸아악-!
쒸악!
마력의 원반들이 곁을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매섭다. 휘말린 대기와 마력이 갈라져 신음하고 대기가 일그러지듯 그가 보는 세상 전체가 푸른빛 잔상에 가려졌다.
하나하나가 고도로 계산되어 피할 곳을 차단하며 날아드는 공격들, 어지간한 보호막 정도는 우습게 찢어버릴 위력 또한 품었으나, 세현은 거침없이 손을 뻗어 날아드는 원반들을 쳐내고 흘렸다. 그 중 일부는 되돌려 던지기까지 하며 허리춤에서 청월을 뽑아냈다.
칼날이 예기를 드러냄과 동시에 하늘을 가득 메우며 자색빛 거대한 꽃이 피어났다.
검술이라기엔 너무나 화려하고 광범위하여 마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검에서 발생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어마어마한 양의 검기들!
사방 전부를 푸른빛으로 물들이던 원반형 투사체들이 눈 한 번 깜빡일 사이 수백 조각으로 부서진다. 치명타를 노리고 쏘아지던 정체불명의 검은 선들 또한 그 압도적인 힘에 뭉개져 사라진다.
천지를 물들이며 터져나가는 폭발들 속에서 선명한 목소리가 들린다.
“몸이 얼마나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몇 개이든 아무 상관 없다.
세현과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리하던 아사드는 측정할 수 없이 거대한 마력의 폭풍우에 감지능력의 일부분을 봉쇄당한 채였다.
그의 감지능력은 보라색 등급 존재답게 최상급 수준, 수천 수만 발의 폭탄이 떨어지는 곳에서도 어디가 어떻게 부서지고 있으며 누가 죽고 누가 살았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 그러나 분명히 만능은 아니다.
그 미세한 틈을 비집으며 한줄기 빛살이 날아들었다. 아사드가 그것을 인식했을 땐 이미 펼쳐진 보호막이 관통당하고 가슴팍 부근까지 심각한 손상을 입은 채였다.
콰창!!
소리가 뒤늦게 인식됐다. 가슴을 관통한 한 자루의 칼, 검신의 애병인 청월에서 가공할 열기와 냉기가 동시에 뿜어져 피해를 누적시킨다.
아사드가 마력으로 그를 차단하며 허공을 박찼다. 동시에 귀신처럼 접근해온 세현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빈공간을 스쳤다. 그러나 예상했다는 듯 펼쳐진 무형검이 주변 사방을 포위하며 거세게 몰아쳤다.
만화천검진(萬花天劍陳).
그 누구라도 벗어나기 힘들 필살의 검망 속에서 아사드가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해일 같은 마력이 뿜어지고 찰나지간 오른손과 왼손이 맞부딪친다. 수십 가지 주문과 에너지가 섞이고 충돌하며 태양처럼 빛나는 구체를 창조하고, 그것이 세현이 인식과 동시에 폭발하며 화염을 분출했다.
선명한 백색의 화염, 그 모든 것을 불사를 열기 속에서 마찬가지로 신성할 정도의 백열과 함께 아사드가 튀어나왔다. 마치 날개처럼 화염을 두르고 치솟는 놈의 양손에서 다시 두 개의 태양체가 생성되어 사방 모든 곳의 색체를 앗아간다.
[불타, 죽어라!]의지를 싣고 마법으로 화한 외침과 함께, 모든 것이 희게 물들었다.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의 광량과 동시에 두 번째 극염이 뿜어지며 거대한 화염의 용오름이 탄생했다.
아래쪽 광활한 숲이 수 킬로미터 범위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근처를 지나던 강물이 순식간에 말라붙고 대지가 통째로 녹아내려 용암으로 흘렀다.
하늘과 허공과 땅, 그 모든 공간이 통째로 불타오르는 듯한 열기 속에서 아사드는 화염처럼 변해버린 상태로 오히려 기운을 북돋았다. 놈이 다시 펼쳐드는 두 손에서 세 번째로 태양체가 생성되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꿈틀댔다.
============================ 작품 후기 ============================
어제 시험 다 마치고 자취방에서 이사한 후 마지막 레포트 딱 제출했습니다. 이제 대학생 신분도 안녕이네요. 12월 내로 완결을 낼 생각인 만큼 부지런히 달려보겠습니다.
아, 공지사항에도 적었지만 이곳에도 따로 적겠습니다. 조아라 특성상 공지사항 접근성이 워낙 떨어지는지라……
무슨 내용인가 하면, 성인소설에서 일반소설로의 변경과 완결 후 프리미엄 전환 이야기입니다. 일반소설로 변경은 이미 신청을 해놨고 며칠 내로 될 듯합니다. 프리미엄 전환은 조아라와 이야기해본 결과 12월 중 완결을 냈을 때 2월 중순에 될 듯하네요.
다른 변경사항이 생기면 공지를 수정하겠습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