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91
291====================
인과율
세상을 멸하려는 신의 징벌처럼 하늘에서 강철의 폭우가 쏟아졌다.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드는 탄환들에 허공이 일그러지고 바다가 찢어지며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압도적 질량들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는 갈 길 잃은 바람이 사납게 휘몰아치며 칼날비처럼 날뛴다.
그 재앙의 한복판을 가르며 자색빛이 번쩍였다. 한줄기 선이 세상을 반으로 양단한 후, 날아들던 수천 발의 강철 탄환들이 소리도 없이 동강나며 미끄러졌다.
그 직후 폭발하듯 급속히 범위를 늘리는 자색의 구형 충격파에 사방 천지가 백색으로 물들며 번쩍였다.
라비아고스 셉테나(Laviagos-Sebtena), 파멸의 재림.
이전의 타격이 바다에 수없이 많은 구멍을 뚫어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듯한 파괴였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거대한 공이로 내리친 듯한 대파괴다.
원리는 단순한 힘의 방출이지만 그것을 일순간에 사방 모든 면향으로 해낸다는 점에서 극에 달한 기예 중의 기예, 난이도로 치자면 검술의 무형검이나 이기어검술과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어렵다. 또한 입신의 경지에 달하지 않은 마력이 없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이름 그대로의 파멸의 재림, 그것이 현신한 자리에 쏟아지던 탄환들이 모조리 재로 부서지고 바다는 사방으로 밀려나며 하늘까지 치솟는 해일이 발생했다.
압도적인 파괴의 중앙에서 빛살처럼 쏘아진 하나의 신형이 공간을 꿰뚫었다.
라비아고스 셉테나의 모든 충격파를 뒤로하며 쏘아진 세현이 지나친 자리로 바다가 갈라졌다. 원래부터 해수면 가까이 있었기에 그가 움직인 속도로 발생한 여파는 바다를 일직선으로 헤집으며 깊은 고랑을 생성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던 강철의 탄환들이 놀라울 정도로 기민하게 방향을 바꾼다. 압도적인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그가 지나칠 바로 앞을 노리며 정확히 떨어지는 궤적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다.
그러나 맞춰도 아무런 타격이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카가가가가가가강!!
그에게 직접 부딪혀오는 탄환들을 자색빛 의형강기에 휩싸인 청월이 마주했다. 세현의 몸을 마치 막처럼 감싼 듯한 검의 영역이 날아드는 탄환들을 모조리 동강내고 빗겨쳤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충돌음이 쉬지않고 터진다. 그 어떤 연사력 좋은 총기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빠른 템포, 그 굉음들을 만들어내는 자색빛 검막에 부딪힌 탄환들이 사방으로 박살나고 튕겨나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마치 신의 징벌 같았던 강철의 폭우를 살아있는 진짜 신이 헤치며 나아간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방어하며 쏘아지는 궤적을 따라 잔상이 혜성처럼 따라붙고 뒤를 잇는 충격파에 바다가 갈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아프리카의 해변가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쏟아지던 강철의 폭우의 근원지와 그를 방어하는 이데아의 전투원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사장과 암석지대가 절반씩 섞여 자리한 해안지대, 그곳엔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방어선이 펼쳐져 있었다. 적어도 그를 막기 위해 급조한 것은 아닌 듯했지만 어찌됐든 당장의 목적은 그를 막는 것이다.
또 다시 발생한 굉음과 함께 방어선 곳곳에서 천여 발 이상의 탄환들이 쏘아졌다.
사방 곳곳에 자리한 대포처럼 커다란 무기들은 이미 포구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였는데, 그럼에도 무리없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다가오는 세현을 향해 탄환을 발사했다.
그 순간 청월이 훨씬 더 빠르게 움직였다. 사방에서 번쩍이며 순식간에 생성된 수백 개의 자색빛 검들이, 날아드는 탄환들을 마치 그가 직접 움직이는 것처럼 절묘하게 컨트롤하며 받아낸다.
소리보다 배는 빠르게 날아드는 탄환의 바로 옆을 검면이 붙어 방향을 틀어낸다. 막대한 반동을 그대로 사방으로 분산해 흘려내며 불가사의할 정도로 원래의 힘을 보존시킨 채 그대로 돌려보냈다.
수백 자루가 넘는 빛의 검들이, 순수한 검술의 기교로는 최상급에 위치하는 이화접목(移花接木)을 펼쳐낸다.
감히 신을 향해 이를 드러냈던 강철의 탄환들은 말 잘 듣는 순한 양으로 변해 180도 방향을 바꿨다. 제 원래 주인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아무런 위력이 가감없이 날아갔다.
번쩍이는 자색과 은빛 강철의 폭우가 일순간 장내 전체를 물들인다. 그 순간 인간보다 월등하게 빠른 인지력으로, 아마도 원래부터 내장되었을 것이 분명한 방어선의 보호막이 활성화되며 푸른빛이 터져나왔다.
거대한 폭발과 그 속에서 스러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더 없이 이상적인 반응이었지만 펼쳐진 보호막 중 태반 이상이 박살났다. 멀쩡한 것들도 그 보호막의 중앙장치로 보이는 것에 힘을 공급하던 각성자들이 미이라처럼 말라 비틀어져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몇 장치들은 과부화라도 된 건지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사방으로 마력의 스파크를 방전하다가 폭발해버렸다. 그것이 방어선에 2차적인 피해를 발생시켜 상당히 큰 부분을 무너뜨렸다.
“으아…! 으아아악!!”
“도, 도망가!! 도망가!!”
“정신 차려! 일어서 싸워라!”
“후퇴…! 후퇴! 후퇴!”
자신들끼리 명령이 통일되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적잖은 혼란과 공포에 빠졌음을 그대로 증명한다. 명령을 내리는 이들조차 제정신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지 이제야 제대로 깨달은 모습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들 개개인에겐 죄가 없을지 몰라도 이미 이곳에 자리한 것만으로도 항변의 여지는 없다.
휘두른 검의 궤적, 그것이 한줄기 선을 만들고 그곳에서 수백이 넘는 검기다발이 만개하는 꽃처럼 폭발했다. 동시에 뻗어낸 반대편 손에서, 한줄기 섬광이 방어선의 구조물을 그대로 가르고 지나가며 어마어마한 대폭발을 일으켰다.
쏟아지는 검기다발과 모든것을 찢어발기며 부수는 섬광, 소이페(Soipe).
그렇게 방어선을 완전히 붕괴시키기까진 채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멀리서부터 유성처럼 날아드는 괴물체들이 있었다.
반은 금속이고 반은 생명체다. 생김새는 그야말로 기괴 그 자체, 기계로 된 눈으로 세현을 똑바로 주시하며 깃털 풍성한 날개를 펼친 채 쏘아진 화살처럼 날아든다. 일반적인 조류와는 격이 다른 속도였다.
당연하게도 그것들을 가만 두고 볼 이유가 없다. 놈들은 채 세현에게 닿기도 전 마주 쏘아진 탄지와 검기들에 모조리 꿰뚫리고 절단됐다.
그리고 한순간, 세상에 소리가 사라졌다.
흡사 또 하나의 태양이 생겨난 듯한 어마어마한 섬광이 모든 곳을 가득 메웠다.
세현조차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을 정도의 광량, 그와 함께 가공할 빠르기로 그를 덮쳐버린 엄청난 압력과 열기가 피할 곳을 모조리 차단했다.
지옥의 열기라 해도 믿을 화염이 그를 뒤덮고 사방에서 몰아쳤다. 해안선과 바다, 주변 대기와 하늘까지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듯한 강렬한 열기의 폭풍, 그것이 만들어낸 흐름이 세현이 보는 세계 전부를 화염의 지옥으로 꺼트린다.
호신의형기가 부서지고 재생하길 반복했다. 방어선과 그 위의 사람들은 물론, 해안의 모래와 암석들까지 플라즈마로 화해 증발해버린다. 바닷물이 순식간에 백색의 화염폭풍에 휩쓸려 소멸하고 대기는 스스로 불타오르며 사방을 가득 채운 빛으로 더해졌다.
일대의 지형을 통째로 소멸시켜버린 폭발의 힘이, 하늘로 끝없이 치솟으며 원형의 고리를 퍼트리는 버섯구름으로 화했다.
“핵폭발……!?”
그 압도적이고 맹목적인 파괴의 중앙에서 세현이 경악해 외쳤다.
그 순간에도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폭발의 압력과 충격, 열기에 이어 보이지 않는 죽음이 사방을 뒤덮고 그의 호신의형기에 실시간으로 침투해오기 시작했다.
그는 방사능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그저 단순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방사선은 원소의 붕괴에서 방출되는 일종의 에너지로 닿는 물질들을 마찬가지로 붕괴시킨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방사능의 세기를 측정할 때 초당 붕괴 횟수(decay per second)를 사용한다는 것을 연관지으며 추상적으로만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방사능은 과학적으로 원리가 밝혀진 에너지, 그리고 마력은 에레도스 사태 이전까지 인류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비과학적인 에너지다.
서로가 충돌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 수 없었고 딱히 궁금해한 적도 없다.
헌데 그것을 직접 체험해보고 있었다.
간신히 몸을 보호하며 자리를 지키기도 바쁜 와중이다. 이곳을 벗어나려는 것이 힘든 상황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 목을 조여왔다.
그러나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세계를 아우르며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기운의 흐름, 그를 주관하는 신인 세현의 눈에서 자색빛 힘의 증거가 타오른다.
쳐다볼 수도 없는 빛의 한가운데서도 그는 모든 것을 보고 느꼈다. 시간과 공간을 격하고 집중되는 힘의 파도가, 어마어마한 파괴의 중앙에서 간신히 버텨내던 호신의형기에 힘을 더했다. 곧이어 치켜드는 청월의 칼날에 의지가 서리고, 빛보다 빠르게 움직인 자색빛 칼날이 사방에서 조여들던 무형의 죽음을 가차없이 찢어발겼다.
어마어마한 파괴에너지를 머금고 완연한 버섯구름의 형태로 치솟아오르던 그 거대한 폭발의 중앙에서 또 다른 섬광이 번뜩였다.
한순간 버섯구름이 중앙에서 두 조각나며 형태가 흐트러졌다.
사방으로 퍼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맹렬하게 하늘까지 치솟고 있던 그 멸망의 손아귀 속에서 불타오르듯 선명한 자색의 기운을 휘감은 세현이 뛰쳐나왔다.
만약 누군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핵폭발이라는 그 엄청난 섬광의 여파 속에서도 세현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했을 터였다.
세계의 흐름과 신의 의지가 결합되어 만들어낸 자색빛 불길은 그 강함과 관계없이 영혼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었다.
대기권을 돌파해버릴 것처럼 솟구치던 세현은 마침내 푸른 하늘과 검은 우주가 만나는 경계선에 도달하고서야 멈춰 섰다.
그리고 내려다보게 된 아래의 광경은 그야말로 참혹하기 짝이없었다.
아직까지도 실시간으로 범위를 늘려가며 퍼지고 있는 파괴력이 느껴진다. 또한 그 폭발의 흐름을 타고 하늘 높이 치솟아 사방으로 흩뿌려지기 시작하는 보이지 않는 죽음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세현은 처음으로 위기의식을 느꼈다.
아사드, 이 미친 보라색 기계인형은 가만히 놔두면 이 무시무시한 핵무기를 계속 생산해서 아예 지구 전체를 불태워버리려 들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세계를 인질로 삼아 그를 협박하거나 다른 원하는 것을 강탈하려들지 모른다.
원래 지구에 존재하던 모든 핵무기와 그 비슷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원자력 발전소들은 모두 에레도스 시스템의 힘으로 무력화됐다.
하지만 이렇게, 그 이후 만들어낸 핵무기라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물론 놈이 만들어낸 이 핵폭발이 원래 인류의 그것과 완전히 같은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사소한 차이점들은 지금 내려다보이는 광경을 보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로,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핵무기……”
솔직하게 평가해서 아페다의 브레스보다 강렬했다.
같은 원리의 핵무기라도 그 위력이 천차만별로 나뉘는 만큼 이것이 과연 원래 인류가 보유하던 핵무기들 중 얼마만한 수준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등골이 서늘한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이게 류한 본진에 떨어지면 막아낼 수 있을까? 또한 현재 방글라데시와 인도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출전한 군대에 떨어지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 것인가?
“빌어먹을.”
놈이 보유한 핵무기가 더 이상 없기를 바랄 뿐이다. 만드는 게 쉬운지 어려운지 아는 게 없으니 아무리 그라도 불안해진다.
조금 조급해진 마음으로, 세현은 허공을 박차며 빠르게 내리꽂혔다.
방향은 아프리카 대륙의 중앙, 아마도 놈의 본체가 있을 거라 짐작되는 구 콩고 민주 공화국 지역이었다.
@
– …… –
실패했다. 그간 어렵게 만든 비장의 무기들을 한 번에 전부 쏟아부었는데도 성과가 없었다.
대륙 사방에 자리한 그의 눈에 멀쩡히 살아서 심장부로 접근해오는 자색빛 기운에 휩싸인 세현의 모습이 포착됐다.
아사드, 이전처럼 여러 개의 여분을 갖춘 인형이 아닌, 커다란 기계의 본체의 모습을 한 그의 시선이 맞은편 의자에 자리한 의문의 남자에게 가서 멈췄다. 마도공학적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눈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분명한 영성이 서려 보랏빛을 흘리고 있었다.
“실패한 모양이군.”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검은 로브를 입은 사내는 익히 짐작했다는 듯 말해왔다.
– 신이라 해도 육체를 가졌으니, 상당한 효과가 있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실패했군요. –
인간의 형상을 띈 몸체가 아니기에 분명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기계음이 실내를 울렸다.
“아직 남은 수가 더 있나?”
– 제가 가진 데이터와 다릅니다. 예측을 벗어난 상황입니다. –
“다른 신을 상대해본 적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 있습니다. 결국엔 패배해서 후퇴하긴 했지만, 그때도 핵폭발은 분명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세현은 더 강하군요.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이 된지 채 십 년도 되지 않았을 텐데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
검은 로브의 남자는 보이지 않는 후드 안 어둠 속에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검신(劍神)이지 않은가.”
– 과연, 무력으로써 신이 되었단 말입니까. –
같은 신이라도 어떤 수단을 통해 신이 되었는가가 상당한 힘의 차이를 만드는 모양이다.
그렇게 아사드는 신에 대한 새로운 데이터를 축적하며 눈앞의 갑작스런 방문객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그의 영토에 상당히 강력한 소환수를 들여보내 의사를 전해왔던 자였다. 현재의 아사드가 반드시 끌릴 수밖에 없는 그런 제안을.
– 좋습니다. 아직 한두 가지 수가 더 남아 있긴 하지만…… 저도 이곳을 포기하긴 어려우니, 제안을 받아들이지요. –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 헌데, 그 말을 실천할 능력은 있습니까? –
“내가 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 누구도 하지 못한다.”
언뜻 오만하게까지 들리는 말과 함께 검은 로브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작품 후기 ============================
제 인생 마지막 기말고사가 시작됐습니다. 이제 곧 졸업이네요. ㅋㅋ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