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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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율
총 삼만에 달하는 류한의 정예병력이 천공성 스탄헤이드를 필두로 방글라데시를 향해 진군했다.
사실상 세현이 이미 쓸어낸 지역을 마무리하고 안정화시키는 목적의 병력으로, 그러나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움직일 수 있는 핵심인원들은 모두 포함되었다.
황제의 누이인 한혜진에서부터 레야, 김인환, 김유린, 박수진, 권태수, 신소진, 정현욱, 이바노프, 문하랑이 포함됐다.
나머지 주요 간부들인 서영환, 서승태, 왕자, 베이마라, 안테아, 다른 각 지역 영주들은 방어를 맡았다.
한 번 쓸어낸 지역을 마무리해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무주공산이 된 땅에 최소한의 영향력을 심어놓는 일은 분명히 중요하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방심할 수도 없으니 확실한 전투력을 확보해놓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본진의 방어를 신경 써야 했다.
상대는 거대 비행선을 운용하며 인도와 방글라데시까지 병력을 투사해 점령한 적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한반도를 찌르는 것 역시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대열 유지에 신경 쓰면서, 하늘을 주시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마라.”
부대의 선두에서, 총사령관인 혜진과 함께 전체적인 지휘권을 쥔 김인환이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핵심 간부들에서부터 가장 말단의 전투원에게까지 보급된 신형 무선 송수신기 덕에 이전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었다. 이건 예전에 쓰던 것보다 기능은 물론 신뢰도와 내구성도 월등히 뛰어나다.
덕분에 모두에게 명확한 명령하달이 가능했고, 일만에 달하는 선봉부대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천공성에 있는 혜진이 김인환의 스마트폰 단말기로 지도를 실시간 링크해주는 것이 엄청난 도움이었다.
현실의 전장에서 게임에서와 같이 지도를 보며 병력을 배치할 수 있다. 심지어 명령을 받는 전투원 개개인들도 실시간 지도를 받아보고 있었으니 자신의 위치를 아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지도에 일만에 달하는 병력의 목적지가 한 번에 모두 나타난다면 가독성이 엄청나게 떨어지겠지만,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누가 일일이 구분해서 개개인의 명령포인트를 설정해 보여주는 연산을 담당하는 게 아니다. 바로 팔렌니움 시스템의 정령인공지능을 통한 전술보조 시스템의 힘이었다.
첫 실전배치임에도 불구하고 한혜진이나 김인환이나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직접 명령을 내리는 입장의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명령을 받는 입장의 전투원들 역시 어떤 오류나 단점도 찾아내지 못했다.
“완벽해.”
김인환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바로 그때였다.
오른편 멀리, 부대의 끝자락에서 갑작스런 소란이 들려왔다. 중앙에 위치한 김인환에게 들릴 정도였으니 상당히 큰 소란이다.
그는 전술지도로 상황을 확인한 후 곧바로 땅을 박찼다.
쿵!
묵직한 도약음과 함께 하늘 높이 점프한다. 이후 허공을 박차고 방향을 바꾸며 빠르게 쏘아지듯 나아갔다.
이번에 새로 착용하게 된 희귀함 등급 아이템의 능력이다.
*허공도약: 허공에서 연속 세 번까지 공기발판을 생성할 수 있다. 30초의 재사용 대기시간을 갖는다.
– 류한 제국에서 만들어낸 뛰어난 성능의 마법장화. 용들의 성지 메 헤브아 스툰의 마법지식이 섞여들었다. – ]
희귀함 등급이지만 공중에서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다른 대체할 만한 전설등급 신발이 없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부대진형을 그대로 뛰어넘어 최대한 빠르게 질주하는 그의 뒤를 박수진이 뒤따랐다. 그녀는 따로 장화의 능력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도착한 곳에는 아니나 다를까, 부대가 습격을 당하고 있었다.
“버텨!”
“저격수들은 캐스터부터 노려! 그래! 잘한다!”
갑작스런 매복이었지만 그에 대응하는 류한 제국군의 반응은 그야말로 신속하고 정확했다.
온몸에 위장을 위한 수풀을 덕지덕지 붙인, 마치 길리슈트를 연상시키는 복장의 적들이 목숨을 도외시하고 사납게 달려드는 와중에도 일체의 흐트러짐이 보이지 않는다.
고함과 폭음, 그리고 비명성이 울렸다. 그 중 류한 제국군의 비명은 단 하나도 없었다. 조금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단지 그 정도였다.
“방심하지 마라! 괴물의 인자를 몸에 심은 것들이다!”
그렇게 중간 지휘자들이 쉴 새 없이 외쳐댔다.
사실, 습격자들이 아무리 필사의 각오를 다하고 있다지만 일부 대등한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지구 최고 수준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류한 전투원들을 상대로 이 정도의 힘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한 가지다.
인도 깊숙한 곳까지 정탐을 시도했던 이바노프 일행이 밝혀낸, 이데아의 전투원이라면 누구나 부여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속칭 ‘강화제’의 힘이다.
절망과 좌절의 서가 미친듯이 반응했던 것을 단서로 시체를 회수해 조사해본 결과 밝혀낸 사실로, 강화제는 각종 괴물의 인자와 악마의 인자까지 포함하는 일종의 호문쿨루스다.
마치 은빛의 액체처럼 보일 정도로 크기가 매우 작아 눈으로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 육체를 변형시키고 부상을 빠르게 치유하거나 마력의 감도를 높인다.
장점만 본다면 엄청나게 좋은 물건이지만 썩 좋기만 한 물건은 아니다. 함께 밝혀낸 단점 중 하나로, 사용할수록 신체의 수명을 확실하게 감소시킨다. 또한 돌연변이 세포조직을 발생시킬 확률도 있다.
쾅!
그런 습격자들의 중앙에서 갑작스런 폭음이 터졌다.
마지막 허공도약으로 하늘 높이 치솟았던 김인환이 전신에 뇌진대력공을 두른고 포탄처럼 떨어졌다.
번쩍이는 푸른빛 뇌전을 두르고 류한의 장검이 피보라를 일으킨다.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공격들은 찬란한 은빛의 방패가 나서 막았다.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백열하며 강렬한 뇌전을 튀겨대는 타원형의 방패였다. 그것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허공을 때리는 파열음과 함께 닿지도 않은 근처의 적들이 산산조각나고 있었다.
[용군주의 수호(전설적): 절대 손상되지 않는다. 투명한 역장으로 사용범위가 자유자재로 변화하며 가해진 충격의 일부를 약화시키고 일부는 반사한다.– 더 없이 강대한 용의 비늘을 재료로 류한 제국 최고의 장인들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만들어낸 방패. 아주 기본적인 마법적 처리만이 가해졌으나 놀랍게도 기대 이상의 결과물이 탄생했다. 한때 이 비늘이 온전히 주인의 몸에서 기능하던 적, 극의 경지에 달한 각종 보호마법을 머금었던 영향을 받았다. – ]
용군주 아페다의 비늘을 통해 간신히 만들어낸 전설등급 방패. 비록 타차원의 재료를 사용했지만 지구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전설등급 아이템이라는 점이 의미가 깊다.
장인들은 원래는 갑옷을 제작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당장 그것은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목표치를 낮춰 방패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가장 먼저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방패는 김인환의 손에 들어갔다.
그것이 지금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죽어!!”
“으아아아-!!”
이미 죽음을 각오한 습격자들, 이데아의 잔당들은 겁도 없이 계속해서 돌진해왔다. 그를 상대하는 김인환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무자비하게 검과 방패를 휘두르며 전차처럼 걸음을 옮겼다.
푸른빛 뇌전을 휘감은 악마 같은 형상의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 그와 상반되게 자칫 신성하게까지 느껴지는 백광을 두른 검과 방패가 쉬지 않고 움직일 때마다 사람의 육신이 절단나고 박살나며 피보라가 뿜어졌다. 뇌전에 사람의 살이 타는 지독한 냄새와 허공에서 방전하는 전기력의 파공음이 가히 무시무시했다.
그렇게 김인환이 토끼떼 속의 사자처럼 길을 뚫고 지나가자 부대에 가해지던 적들의 압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놈들이 발악을 이어갔으나 어느새 귀신처럼 나타난 박수진이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마무리를 했다.
차가운 검날이 번쩍이고 지나간 자리에는 급소가 찔리고 베인 시체들이 짚단처럼 쓰러졌다. 김인환 같은 무시무시한 위용은 없었지만 접근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공포를 휘감은 채로, 그녀는 순수하게 몸을 풀었다.
그렇다.
굳이 나설 필요도 없는 일에 이토록 신속하게 달려와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한 이유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발생할지 모를 잔당들과의 싸움을 대비해서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놓기 위한 일종의 몸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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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현은 에레도스 사태 이후 바다를 건너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간 넓은 범위를 돌아다녔지만 모두 바다는 건널 필요가 없는 곳들이었다. 중국, 러시아, 유럽, 그 중 유럽은 직접 움직인 것도 아니고 미리 이동한 천공성 하드샤로의 포탈을 이용했을 뿐이다.
가만히 있어도 수집되는 정보들을 통해 막연히 알고는 있었다. 에레도스 사태는 지구의 바다마저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것을. 먼 옛날 인류가 그러했던 것처럼, 바다는 다시금 미지의 장소가 되었으며 또한 두려움의 장소로 변모했다.
육지에서와는 아예 다른 법칙이 존재하는 별개의 세상이다. 당연하지만 배를 띄우는 것 같은 행동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제 바다의 지배자는 이름 없는 거대한 괴수들, 어쩌면 깊은 심해에는 그것들조차 간단히 꿀꺽할 수 있는 괴수 중의 괴수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허.”
그래서 세현은 이런 와중에도 잠시 목적을 뒤로하고 해수면 근처까지 내려가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으로 가까이 다가갔으나 이제는 놀라움에 선뜻 원래의 길을 재촉할 수가 없었다.
신의 경지에 달한 기감으로도 전부 닿지 않는 깊고 깊은 심해, 하지만 일단 그 기감이 닿는 곳에서조차 정말로 대단한 놈들이 몇 잡혀들었다.
이야기에서나 등장하던 크라켄이나 레비아탄, 그런 이름을 붙여도 될 만한 놈들이었다.
덩치만 갖고 비교하자면 육지에서 본 그 어떤 것도 상대가 안 될 정도다. 이놈들 중 하나라도 땅에 올라올 수 있다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일 수 있을까.
새삼스레 깨닫는다.
아직 인류는 변해버린 지구를 완벽히 탐사하지 못했다. 굳이 타차원에 눈독들일 것 없이 당장 이 바다만 하더라도, 뒤져보면 분명 어마어마한 괴물들과 그에 상응하는 굉장한 수준의 원자재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잠깐의 상념에 잠겨있던 와중, 세현은 문득 피식 웃으며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위로 보자면 서쪽, 바로 아프리카 대륙이 위치한 방향이다.
“상륙부터 막아보시겠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세현의 눈에 멀리서부터 까만 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를 셀 수조차 없다.
한 번 슥 둘러본 것만으로 이미 천 단위를 가볍게 넘었다.
세상이 느려졌다.
그 느려진 시간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삼각뿔 모양의 금속체들은 하늘과 수평전 전부를 메워버릴 듯 어마어마한 탄막을 형성한 채 가공할 속도로 떨어졌다.
푸콰콰콰쾅-!!
가장 먼저 도달한 탄환들이 만들어낸 파면음이 시작이었다.
바다가 직접 울부짖는 듯한 거대한 굉음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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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