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17
717화. 기택조
장목화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솟구쳐 오르다 썰물 빠지듯 사라졌다. 남은 건 일부뿐이었다.
그녀는 전방의 미닫이 금속 문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1215는 사명 영역 각성자를 대표해. 그는 여기 왔을 때 문을 통과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빅보스를 치고 회사를 전면적으로 통제하려 한 사명 신도들이 이곳에 잠입했다가 무시무시한 일을 겪고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이거나, 회사에 충성하고 빅보스에 충성하며 이곳을 지키던 사명 영역 각성자가 문 안에서 일찍이 발생한 이변으로 충격을 받고 모종의 통제를 당한 것이겠지.”
자문자답으로 마무리된 이야기에,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가 중얼거렸다.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순 없어요?”
“너도 작은 빨강이 앞에서 긍정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 휴……. 이 지경까지 이른 이상, 들어가 볼 수밖에. 물러날 곳이 없어.”
그녀는 아까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제가 할게요.”
마치 이번엔 자신이 음식값을 내겠다는 투로 말한 성건우가 은백색 금속 벽과 미닫이문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장목화도 그와 순서를 두고 싸우는 대신 느릿하게 뒤를 따르며 왼팔을 들었다. 언제라도 고압 전류를 방출하기 위함이었다.
몇 걸음 만에 성건우는 문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다지 크지 않은 틈으로, 안쪽의 시커멓고 깊은 어둠을 보았다.
성건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약간 흥분한 듯 양손을 뻗어 문틈을 쥐고 옆쪽으로 홱 잡아당겼다.
원래부터 약간 틈을 드러낸 채 열려 있던 금속 문은 순간 마찰음을 내면서 빠르게 밀려나 통로를 내주었다.
성건우보다 먼저 그 안으로 스며든 복도 불빛이 문 근처를 밝혔다.
바닥에는 유백색의 큼지막한 사각형 벽돌이 깔려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도 널찍한 홀의 일부분 같아 보였다.
이때 장목화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안에서 생물 전기 신호가 느껴져. 인간의 것 같아!”
그러나 의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장목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금속 문 안쪽에 복도 불빛이 닿지 않은 구역의 형광등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눈앞에 방 안 깊은 곳에 자리한 거대한 컴퓨터가, 벽 세 개를 빽빽이 채운 액정 화면들이 드러났다.
그 액정 화면에 장목화와 성건우의 모습이 있었다.
구조팀 사무실을 떠나 제니의 사무실로 향했을 때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도착해 계단으로 최하층에 이를 때까지의 여정이 하나도 빠짐없이.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자신과 성건우의 행적을 누군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니. 그것도 낱낱이!
물론 그중 14호 방이나 그들의 집 안을 비춘 것은 없었다. 또한 5층에서부터 최하층으로 내려오는 동안 성건우가 감시카메라를 방해한 덕에 화면이 그리 밝거나 또렷하진 못했다. 두 인영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이내 성건우가 돌연 한숨을 내쉬더니 몹시 신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사는 언제나 우리를 보고 있죠.”
그 말에 흠칫 정신을 차린 장목화는 그 거대한 컴퓨터 앞에서 액정 화면들에 절반 정도 둘러싸인 듯한 검은색 가죽 등받이 의자를 발견했다.
의자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겉보기에 마흔 살이 조금 넘은 듯한 남자는 머리를 뒤로 가지런히 빗어 넘긴 채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얼굴형은 비교적 갸름했고, 코는 상당히 높았으며 입술은 얇지도, 두껍지도 않았다.
그리고 흰 셔츠에 검은 외투, 어두운 붉은색 넥타이를 맨 남자는 의자에 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꼭 상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오래도록 높은 지위에 있었던 자가 드러낼 만한 분위기였다. 그 자체로 지닌 우아함과 한데 융합된 그 분위기는 묘한 매력을 풍겼다.
남자는 성건우, 장목화 모두 잘 아는 사람이었다.
상대는 그들이 기억하는 최초의 순간부터 연말 연초마다 각 층의 활동 센터 액정 화면에 모습을 비추며, 빅보스를 대신해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거나 축하하던 인물이었다.
기택조. 반고 바이오 이사회 이사이자 첫째로 손꼽히는 부총재, 빅보스를 직접 책임지는 회사의 최고경영자.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자였다.
주위에 어떠한 경비도 두지 않은 기택조는 뒤로 살짝 기울인 몸을 가죽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선 살며시 웃음을 띠었다.
“전에 네가 네 아버지를 따라 관리층 연말 파티에 참석했을 때, 난 너를 순종적이고, 예의 바르고, 말도 잘하는 아이라고 생각했었지. 이런 꿍꿍이가 있을 줄은, 이렇게나 음침하면서 단호하고, 앞뒤를 가리지 못할 줄은 몰랐네. 오늘날의 젊은 세대 중 너에 비견할 만한 이는 없을 거다.”
장목화는 의도적으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회사는 저희의 집이니까요. 이상이 발견되었다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않겠습니까? 여태까지 자기 고향을 지키기 위해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말에 기택조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왜 갑자기 이런 선택을 했지? 하마터면 미처 반응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성건우가 곧장 답했다.
“그러니까⋯⋯.”
기택조는 손을 들어 그를 저지했다.
“넌 아무 말도 마라.”
그러고는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네가 얘기해.”
그는 그렇게 성건우의 사유 유도를 성공적으로 불식시켰다.
이건 기택조가 두 사람의 능력을, 그걸 피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뜻이었지만, 장목화는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이건 기택조가 성건우의 능력을 꺼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가 모든 능력에 꿈쩍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우선 주위를 감지해본 장목화는 이쪽으로 몰려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런 다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들이 목인걸이 심근경색으로 죽었음을 알게 됐다는 것부터 누군가 용여홍과 백새벽의 꿈에 영향을 미쳐 민수안과 제니가 생명 제례 교단 구성원임을 알렸다는 것.
그리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과 성건우는 벌 받을 것을 감수하고 능력을 사용해 제니에게 영향을 미치고 답을 얻어냈다는 것까지 모두 다.
장목화는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상황을 관찰하는 것도 놓치지 않고, 동시에 그들의 처지를 생각했다.
현재 그녀는 이사회 이사들이 빅보스의 권능을 탈취하기 위해 집단으로 달지기 사명에게 투항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1215호 주인인 사명 영역 각성자는 당시 전투에 참여한 사람 중 하나로 전력을 발휘한 빅보스에 의해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일 터였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기택조는 두 손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용감하고, 똑똑하고, 대담하구나. 거기다 희생정신도 있어. 과연 땅 위에서 그렇게나 많은 일을 해내고, 그렇게 많은 수확을 얻은 팀다워. 근데 안타깝게도 너희의 이번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원래부터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아니었던 성건우는 입을 다물라는 기택조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바로 질문을 던졌다.
“설마 당신이 경야 성사입니까?”
경야 성사는 반고 바이오 내부의 생명 제례 교단에서 가장 신비롭고 또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언제든 성건우의 말을 끊을 준비를 하고 있던 기택조는 그의 질문을 다 듣고 소리 내어 웃었다.
“아니, 나는 경야 성사가 아니야. 이쪽이지.”
그는 뒤쪽의 거대한 컴퓨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머신 헤븐에 가봤으니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거야. 오직 인공지능만이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감시카메라를 동원해 회사 대부분 구역을 감시하다가 이상 현상이 발견되면 즉각 처리할 수 있지. 이런 성사만이 언제나 우리를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고.”
화들짝 놀란 성건우는 인권 같은 건 아랑곳없이 인공지능을 굴리는 기택조를 지적하는 것도 잊고 습관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손뼉을 쳤다.
“저건 어떻게 생명 제례 교단에 가입하게 된 겁니까?”
장목화가 캐물었다.
파악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상황을 뒤집을 기회를 마련할 가능성도 커지기 마련이었다.
기택조가 미소를 지었다.
“목인걸 사건으로 우린 사실 생명 제례 교단의 꼬리를 잡았었다. 하지만 같은 사명의 신도로서 그들을 지나치게 힘들게 할 필요는 없었어.
그들의 행동을 제약해 그 안의 극단적인 분자가 회사의 안정을 파괴하지 못하게 하기만 하면 됐지.
그래서 난 오메가에게 진정한 경야 성사를 대신해 다른 성사들을 하나하나 통제하게 하고, 생명 제례 교단의 각종 사무를 책임지게 했다.”
장목화의 심장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건 경야 성사의 정체가 아니라, 아무 거리낌도 없이 자신들 역시 사명의 신도라는 사실을 밝힌 기택조의 모습이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구세계의 격언 하나가 떠올랐다.
오직 죽은 자만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법.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가장 중요한, 가장 걱정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이사회 전원이 사명의 신도라고요?”
기택조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음을 머금었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거냐? 실망스럽구나. 왜 이사회 전원이 사명의 신도겠냐. 내가 방금 너희들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말한 이유가 뭐겠어. 너희들 앞에서 이렇게나 힘을 들여가며 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또 뭐고. 답은 간단해.”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슈퍼컴퓨터 오메가 옆쪽의 문 하나를 가리켰다.
“그건 빅보스의 이름이 사명이기 때문이다.”
순간 성건우, 장목화의 눈이 커다래졌다.
두 사람이 무슨 대꾸를 하기도 전, 가슴에 손을 얹은 기택조는 그 문을 향해 겸손하고 장엄하게 말했다.
“길고도 긴 밤, 사명이 비호하시니라.”
그 말이 장목화의 귓속을 맴돌며 그녀의 생각을 폭발시켰다. 동시에 그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빅보스의 갖가지 이상한 부분도 그 말 아래서는 충분히 설명되고 있었다.
가슴에 얹은 오른손을 거둔 기택조가 웃으며 돌아섰다.
“너희가 아직 의심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전에도 이상하다고 느낀 적은 분명 있을 거야.
반고 바이오 빅보스인데도 그분은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지도 않고, 이사회의 각종 회의에 참여하지도 않고, 직원들 앞에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지. 연말 연초에만 라디오 방송에서 모두를 향한 연설을 했을 뿐이고. 꼭 다른 사람에게 떠밀리고 대체될 건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게다가 라디오 방송을 할 수 있다면 겸사겸사 영상을 녹화해 활동 센터 대형 패널로 모든 직원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전혀 힘든 일이 아닐 텐데, 빅보스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지.”
장목화도 확실히 연말 연초에만 라디오로 연설하고, 평소 회사 운영은 철저히 방임하는 빅보스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심지어 음모론적 관점에서 여러 가능성을 생각한 적도 있지만, 신세계 강자의 존재와 그들의 상태를 알게 된 후에는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이미 신세계에 진입한 빅보스가 가끔만 현실로 회귀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었다.
사실 영상으로 모습을 비추지 않으려는 이유야 많았다. 단순히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또 그것이 반고 바이오에서 매해 유전자 개량 연구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이유가 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나 남들을 보기 싫어하는 것이 대가일 가능성까지도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전제를 빅보스가 달지기라는 것으로 바꾼다면, 이 모든 상황은 더욱 잘 설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