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16
716화. 감시카메라가 있어
장목화는 상대가 혹시 농담하는 건지 살피려 제니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믿음직한 동료이자 생사를 함께 한 전우인, 같은 팀원이라면 짓궂은 장난이나 심한 농담 같은 것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니의 표정은 진지했다. 눈가와 입가를 막론하고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어려 있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달지기 사명을 숭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장목화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여홍이랑 새벽이가 꾼 꿈이 진짜였어. 다른 세력에서 우리한테 전한 정보는 약간 오류가 있어도 본질은 문제가 없었어. 제니 부장은 사명의 신도가 맞아. 생명 제례 교단에 속해 있지 않을 뿐⋯⋯. 민수안도 분명 그렇겠지.’
반면, 성건우의 표정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새 또 그의 인격이 바뀌었는지 안 바뀌었는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제니 부장님, 부장님은 어느 교파에 속해 있으십니까?”
성건우의 질문에 제니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속한 교파는 없어. 사명을 믿는 데 교파를 통할 필요는 없지.”
계속 성건우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부장님이 사명을 믿도록 한 것은 누구입니까?”
제니는 하늘색 찻잔을 들어 입을 살짝 축였다.
“소 이사.”
‘역시.’
그 답을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실제로 그 답을 마주하자 장목화는 마음에 거친 파도가 일었다.
‘회사 문제는 엄청 심각해! 이사회 이사마저 몰래 달지기를 믿고 있다니!’
성건우는 계속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아아-. 소 이사님 말고 다른 이사님들도 달지기 사명을 믿나요?”
“모르겠어.”
“그럼 부장님은 생명 제례 교단을 어떻게 보십니까?”
제니는 순간 정색을 했다.
“너무 제멋대로지. 그들이 사명을 숭배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 행위는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 네가 말했던 것처럼 잘못한 길에서 경전을 왜곡해 해석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네. 만회의 여지는 있어.’
장목화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성건우의 사유 이식은 반례나 계기가 되는 상황이 없는 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언제까지나 제니 곁에 머물면서 그녀가 받는 정보를 통제하고 제때 교정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이곳을 떠난 후 제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향에서 벗어나 문제를 발견할 것이 분명했다.
운이 좋다면 앞으로 며칠은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며 아무 문제도 감지하지 못하겠지만, 운이 나쁠 경우 돌아서자마자 소지훈의 전화를 받고 이야기를 하다가 정신을 차리게 될 수도 있었다.
무조건 그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순간 장목화는 전광석화처럼 두 가지 방안을 떠올렸다.
첫째는 이사회의 이사 중 누구에게 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만큼 제니의 컴퓨터와 계정을 이용해 이 사실을 담은 메일을 이사회 이사 모두에게 발송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맨 아래층에 있는 빅보스를 만나 이 사실을 보고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긴급한 상황이었으므로 장목화는 두 방안을 동시에 실행하기로 했다. 아직은 두 사람과 같은 편인 제니를 통한다면, 관리층 진입 허가를 받고 그곳의 비상 통로를 통해 맨 아래층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메일 발송 예약을 해두면 이 상황을 지나치게 일찍 파악한 문제 있는 이사가 미리 사람을 보내는 걸 막을 수 있었다.
타이밍만 잘 맞으면 이메일로 인한 혼란 덕분에 장목화, 성건우도 맨 아래층에 훨씬 순조롭게 진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장목화는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녀가 웃으며 제니를 바라보았다.
“부장님, 부장님 컴퓨터 좀 써도 될까요?”
“그럼.”
지금의 제니는 장목화의 행동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다.
장목화가 제니의 사무용 책상으로 향하자 성건우도 벌떡 일어났다.
“제가 돕겠습니다!”
그는 장목화 옆에 바짝 붙어 제니가 이쪽 상황을 살피지 못하도록 했다.
타닥- 타닥-
장목화는 계획을 빠르게 작성해 성건우에게 보여주었다.
“음, 음.”
성건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가 지금 무슨 연기 중인지 알 길이 없는 장목화는 방금 쓴 건 지우고 제니와 소지훈이 달지기 사명의 신도이며 민수안 역시 그런 것으로 의심된다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제니의 계정으로 로그인된 이메일 프로그램을 열고 새 메일을 작성했다. 받는 이는 이사회의 이사 전원이었다.
복사 붙여넣기로 내용을 채운 장목화는 15분 뒤에 발송되도록 예약했다.
이때 성건우는 계획에 따라 제니를 더 심층적으로 설득해 앞으로 30분 동안은 컴퓨터를 건드리지 않도록, 또 장목화, 성건우가 관리구역, 즉 지하 빌딩 5층으로 가 비밀리에 소 이사를 만날 수 있게 허락하도록 했다.
제니의 사무실은 646층에 있었지만 수시로 5층에 가서 회의에 참석하는 데다가 직급도 상당히 높았다. 또한 소 이사의 측근이기도 한 까닭에 성건우의 요구쯤은 충분히 들어줄 수 있었다.
제니는 곧 전화로 적당한 이유를 대 필요한 허가를 받아주었다.
* * *
제니의 사무실에서 나온 장목화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와 성건우는 서로를 마주 보다가 아무 말도 없이 지름길을 통해 관리구역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동 중 장목화는 이 결정을, 정말로 이런 모험을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냐고,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그녀보다 더 급진적이고, 모험심 넘치고, 더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반고 바이오는 우리 집이야. 어쨌든 난 이곳을 안전하게 지켜야 해.’
장목화는 곧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5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가는 사이, 마음을 다 잡은 장목화가 웃음을 지으며 성건우를 쳐다보았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성건우는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 안의 감시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이런 공공장소에서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말도 있잖아요.”
“의미심장한 말이네.”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그녀는 정말로 무슨 일 때문에 관리 구역에 가는 것처럼 매우 여유로워 보였고 또 능숙해 보였다.
* * *
5층에 도착해 밖으로 나간 성건우는 손목시계부터 확인했다.
“아이고, 너무 일찍 왔네! 복도에 쪼그려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어.”
동시에 엘리베이터 홀 출구의 인공지능 갑옷을 착용한 경비들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장목화는 그들의 거부감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무례하긴!”
장목화는 성건우와 합을 맞춰 욕했다.
이 틈에 성건우는 한숨도 내쉬었다.
“그럼 계단에서 기다리죠. 다른 사람들 눈에 거슬리지 않게.”
그가 한 일련의 말이 사실 사고 유도였다. 경비들은 비상 통로로 향하는 성건우, 장목화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게 여겼다.
등불이 켜진 계단 안에서 장목화가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감시카메라가 있어. 나는 그것들 위치를 파악할 테니 너는 방해해.”
성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을 뻗었다.
이메일 발송 예정 시간이 되자 장목화는 문제 상황이 무럭무럭 발효되어 혼란을 빚어내도록 애써 스스로를 억누르며 3분을 더 기다렸다.
시간이 1분 1초 지나는 가운데, 그녀가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가자!”
장목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계단을 따라 민첩하게 아래로 내려가며, 수시로 오른손을 들어 성건우에게 감시카메라 위치를 알려주었다.
성건우는 장목화의 뒤를 바짝 따르며 모든 감시카메라 화면을 방해해 마치 전등이 고장 난 것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
이러한 이상 현상은 감시카메라 담당 직원들의 관심을 끌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단 회로에 고장이 났나보다고 생각하면서 사람을 보내 검사하게 하고 나서야 해당 구역의 경계를 높일지 말지 고민할 터였다.
장목화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 시간 차였다.
두 사람 능력이면 최고 등급의 경계를 맞닥뜨리지 않는 이상 충분히 빅보스의 문 앞에 이를 수 있었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장목화, 성건우는 다섯 개 층 계단을 단번에 뛰어내리며 금세 맨 아래층에 다다랐다.
그때, 돌연 걸음을 우뚝 멈춘 장목화가 내뱉듯 말했다.
“밖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빅보스가 머무는 최하층의 경계도가 이렇게나 낮다고?
눈 깜짝할 사이, 장목화는 몇 가지 추측에 들어갔다.
‘설마 빅보스는 후계자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난 건가? 이사들은 이 사실을 발설하지 않고 성대모사를 잘하는 사람을 찾아 이 반고 바이오를 멋대로 호령하고 있었던 건가?’
“저도요, 인간 의식은 하나도 안 느껴져요.”
성건우도 장목화의 감지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줬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내려온 이상 물러날 순 없어.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그녀는 왼손을 뻗어 계단 통로의 문을 밀었다.
* * *
밖에는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 경비도 없었다.
계단 통로를 나가 복도에 이른 장목화, 성건우는 짙은 갈색 타일이 가지런히 깔린 바닥을 발견했다. 그 양쪽 벽을 장식한 벽화, 조각상, 각양각색의 장식들은 굉장히 고전적인 느낌을 풍겼다.
“빅보스의 취향, 훌륭하네요.”
이렇게나 긴장된 상황에서도 성건우는 이곳 분위기를 평가하고 있었다.
장목화는 그를 팩 노려본 뒤 전방을 향해 가볍게 뛰어갔다. 쓸데없는 말 따위 하지 말고 얼른 빅보스의 방이나 찾으라는 뜻이었다.
성건우 역시 그녀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 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주위를 경계하며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천장에 박힌 형광등 불빛들의 도움 아래, 장목화와 성건우는 빠르게 이 복도의 끝에 도착했다.
눈앞에 보이는 건 은백색 금속 벽이었다. 그 벽 한가운데에는 미닫이 형식의 문이 하나 나 있었고, 문 옆에는 정밀한 전자 설비가 딸려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닫혀 있지 않은 문이 시커멓고 넓은 틈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목화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문 안이 빅보스의 거처일까?”
그녀가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다가가 찬찬히 살펴보려 한 순간, 갑자기 성건우가 손을 뻗어 그녀를 저지했다.
“왜?”
장목화는 성건우가 자신보다 먼저 뛰어 들어가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성건우는 몹시 진지한 얼굴이었다.
“문이 어딘가 눈에 익어요. 아무래도 1215호 방에 있던 그 문 같아요.”
“1215호⋯⋯.”
멍하게 호수를 되뇌던 장목화는 곧 그게 바로 성건우가 심령의 복도에 진입한 후 처음으로 탐색한 방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냈다.
당시 1215호 안에서 약간 열린 금속 문을 발견했던 성건우는 방 주인이 그 문 뒤에서 극도로 무시무시한 일을 겪고 이로 인해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모양이라 의심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는 성건우 민주 협의회가 8대 2로 내린 결과 때문에 끝내는 탐색을 포기하고 그 방을 떠났었다.
그 후로는 성건우도 더 이상 1215호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지금, 눈앞에 빅보스의 거처로 통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이 문과 1215호 안에서 봤던 그 문이 굉장히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