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226)
226. 영향력
“아니, 형은 골라도 하필이면 그런 남자를.”
“진짜. 오라버님도, 참. 그 많은 사람 중에 그 남자를 고르시다니. 네 말대로 안목은 좀 없으신가 봐.”
“그렇다니까. 우리 형이 뭐랄까 조심성이 없어. 뭐, 형을 실제로 보고도 해칠 사람이 없으니 평소에는 상관없지만.”
“그건 그렇지. 그런데 아까 네 말 들어서 그런지, 그 남자한테 오라버님이 다가가실 때 엄청 신경 쓰이더라. 다가가시기 전에 확 얼려 버릴까 고민했다니까.”
다 먹은 팝콘 통을 쓰레기통에 넣던 재현은 김나은의 말에 고개를 주억였다.
무대 인사 이벤트를 하던 형은 여전히 조심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상영관으로 옮겨 가서도 그런 모습일까 봐 걱정스러웠다.
기감이 예민해져서 상대의 호의나 악의를 바로 알아차리더라도 그거야 형만 납득할 수 있는 얘기였다. 아무리 형이 안전하다고 말해도 남들 눈에는 위험한 상대한테 무방비하게 접근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속이 탔다.
‘잠깐.’
‘왜 그래?’
‘저 남자 아까 그 남자 아니야? 지금 뭐 하는 거지?’
‘그 남자 맞는데, 뭐가?’
김나은은 재현이 가리킨 방향을 돌아보았다. 재인의 쇼핑백을 획득한 운 좋은 남자가 사람들한테 방해되지 않게 영화관 로비 한쪽에 서 있었다. 그 사이 일행을 만난 듯 몇 걸음 떨어진 누군가와 얘기하는 게 보였다.
‘지금 수상한 거 받았잖아. 안 보여?’
‘뭐가?’
‘쇼핑백 봐 봐. 두 개지? 방금 떠난 남자한테서 쇼핑백 받았어.’
‘그게 어때서?’
재현의 표정이 굳었다. 빌런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손에 재인이 선물한 쇼핑 백 외에 못 보던 쇼핑백이 하나 더 들렸다. 은밀하게 전달받은 쇼핑백이 어쩐지 불길해 보였다. 특히 히죽거리면서 쇼핑백을 훔쳐보는 꼴이 무슨 못된 짓을 꾀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빴다.
“이재현? 어디 가?”
“잠깐만.”
“뭐 하려고?”
“쇼핑백 안 물건 확인만 하고 올게. 잠깐만 기다려.”
“미쳤어? 잠깐이고 뭐고 하지 마.”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재현의 시선이 남자의 쇼핑백에 꽂혀 있는 걸 본 김나은이 기겁했다. 내내 남자가 선물 받은 걸 못 마땅해하더니, 별걸 다 의심하고 있었다. 아무리 자기 형을 좋아하고 걱정한다고 해도 정도가 있지, 의심이 과해도 너무 과했다.
‘이건 진짜 아닌데…….’
눈을 질끈 감았다 뜬 김나은이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남자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재현의 뒤를 따라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착각 같았지만, 막무가내로 남자한테 다가가는 재현을 말릴 수 없었다. 진짜로 따라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년간 같이 활동한 동료의 의리로 쪽팔림을 감수하기로 했다. 잠깐의 쪽팔림을 참는 게 모른 척했다가 며칠 동안 삐져서 툴툴대는 걸 받아 주는 것보단 나았다.
“실례하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KH 길드의 이재현이라고 합니다. 잠시 쇼핑백 안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네?”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으며 조용히 재현 쪽으로 다가가던 김나은이 이마를 짚었다.
남자가 의심스럽다면 조용히 보안 팀을 부르면 그만 아닌가. 설명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다짜고짜 쇼핑백부터 보여 달라니 그게 무슨 무례한 짓인가. 만약 자신에게 저랬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뜰하게 얼려 줬을 것이다.
‘대책 없는 인간 같으니!’
던전 공략할 때는 재현의 저돌적 기질이 도움이 많이 됐다. 그러나 지금, 남자의 또라이를 보는 시선을 앞둔 지금은 그 기질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쇼핑백 좀 보여 주십시오.”
“아, 안 됩니다.”
“안에 든 물건만 확인시켜 주시면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이건 내 겁니다.”
재현이 하는 양을 뒤에서 지켜보던 김나은의 눈이 가늘어졌다. 재현을 상대하는 남자의 반응이 일반적인 반응과 달라서였다.
이유도 없이 의심받는 상황이 불쾌했다면 화를 내거나 재현을 뿌리치고 자리를 피해도 됐다. 혹여 사람들 시선을 끄는 게 싫다거나 쇼핑 백 안 물건이 별것 아니라면 슬쩍 보여 줘도 될 일이고.
그러나 남자는 예상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피부가 저릿할 만큼 뿜어내는 거친 기세나 강철처럼 단련된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쇼핑백을 끌어안고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쇼핑백 안 물건 좀 보여 주십시오.”
“아, 안 됩니다.”
반신반의하던 김나은 역시 남자의 쇼핑백에 무언가 이상한 게 있는 게 아닐까 의심되기 시작했다. 김나은은 조용히 남자의 뒤로 돌아가 퇴로를 차단했다. 이어서 언제든 상대를 얼릴 수 있게 은밀하게 기운을 끌어 올렸다.
“저거 KH 길드 아니야?”
“무슨 일입니까?
“재현이잖아. 무슨 일 있어?”
“뭐야? 무슨 일인데?”
남자를 사이에 두고 재현과 김나은이 대치하는 장면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영화관 안에 있던 관객 중 두 사람을 아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주위를 감쌌다. 대부분 KH 길드와 다른 길드의 스트라이커들이었다.
“이 남자가 수상한 쇼핑백을 거래하는 걸 봤어.”
“그래?”
“수상하다니 무슨 말입니까! 이건 내가…….”
“폭발물인 거 같아.”
“헉! 말도 안 됩니다! 폭발물이라뇨!”
폭발물이라는 단어에 주변 공기가 날카로워졌다.
번화가 한복판의 영화관이었다. 쇼핑몰 꼭대기 층에 있는 상영관이라 유동 인구도 많은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폭발물 테러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각성자들이 좀 전보다 더 촘촘하게 재현과 남자를 둘러쌌다.
재현은 포위하듯 다가온 길드 동료를 활용해 남자를 압박했다. 남자가 쇼핑백 안을 보여 줄 수밖에 없도록 분위기를 몰아갔다.
“진짜 안 되는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더 이상 감추길 포기했는지 남자가 팔에서 힘을 뺐다.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으나 폭발물이라는 오해를 사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인 것 같았다. 쇼핑백이 천천히 열렸다.
“이, 이건!”
“헐! 장난 아니다.”
“와! 이게 뭐야. 이런 것도 있어?”
“진짜 잘 만들었다.”
남자가 주섬주섬 눈치를 보면서 꺼낸 것은 재현이 예상한 물건이 아니었다. 남자를 본 누구라도 예상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이거 경쟁률 엄청났는데, 어떻게 받았어요? 나는 예약도 못 했는데.”
“반년 전에 주문했습니다.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개봉일에 맞춰서 받을 수 있어서 운이 좋았습니다.”
“부럽네요. 거기 몇 달 전부터 주문이 꽉 차서 예약도 안 받더라고요.”
남자가 누군가에게 건네받은 쇼핑백 안에는 재인의 피규어가 들어 있었다. >더 히어로즈>의 룬 캐릭터 의상을 입은 피규어는 몇 달씩 예약이 밀리는 유명한 공방의 작품이었다.
쇼핑백 내용물을 공개한 직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일촉즉발의 위태로웠던 공기는 자취를 감추고 사람들 사이로 화기애애하고 온화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재현. 어, 어떡해?’
‘씁! 수습해야지.’
재인을 향한 팬심으로 하나 된 공간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남자를 의심해서 사태를 키운 재현과 그를 말리지 못한 김나은이 그 주인공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알고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죄송해요.”
“…….”
재현은 남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남자의 거친 기세가 이런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은밀하게 누군가와 거래하는 행동이 수상해 보였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런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실수를 인정하고 깔끔하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비록 바로 용서받진 못했지만.
“죄송합니다.”
“…….”
“후우! 어쩔 수 없군요.”
한참 동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재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저지른 무례였다. 애초부터 몇 마디 말로 가볍게 용서받을 거로 생각하진 않았다. 재현이 재킷 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야! 이재현. 너 뭐 해? 미쳤어? 지갑은 왜 꺼내!”
“앗! 따가워! 잠깐. 때리지 마. 그런 거 아니야.”
자신이 벌인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 지갑을 꺼내던 재현의 행동에 제약이 걸렸다. 사과하다 말고 지갑을 꺼내는 무례한 모습에 기겁한 김나은이 막아서였다.
“아니긴. 사과하다 말고 지갑은 왜 꺼내는데!”
“아이, 진짜! 아니라고. 이거 꺼내려고 한 거라고.”
김나은의 매서운 손길에 시뻘겋게 변한 팔뚝을 문지르며 재현이 지갑을 열고 무언가를 꺼냈다. 지갑 속에 고이 모셔 놓은 사진이었다.
“사진?”
“그래, 사진. 저번에 형 왔을 때 찍은 거.”
“…….”
“……왜?”
“아니야. 아무것도.”
그게 거기서 왜 나와? 김나은은 자신을 황당하게 보는 이유를 모르는 재현에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형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동생이라니. 아무리 친형이 재인이라도 그건 좀 이상했다.
“받으십시오.”
“허억! 이, 이건.”
“지난달에 같이 저녁 먹으면서 찍은 겁니다. 이건 화단에 물 주는 거고, 이건 하찬이랑 공원에서 산책하는 걸 찍은 겁니다. 이것으로 보상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되, 됩니다. 완전 됩니다.”
재현은 지갑에 꽂아 두었던 명함 크기의 폴라로이드 사진 중 세 장을 골라서 남자한테 건넸다. 전부 재인을 찍은 것으로 외부에 공개된 적 없는 일상 사진이었다.
대화하는 내내 한쪽 발을 뒤로 뺀 채 경계하던 남자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보상으로 건넨 세 장 말고 다른 사진들도 보고 싶은 욕망이 반영된 솔직한 반응이었다.
‘어휴! 이재현 저건 진짜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네.’
김나은은 남자한테 보상으로 재인의 사진을 내미는 재현을 보며 한숨을 삼켰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길드원들한테 써먹는 방식을 남자한테 그대로 써먹는 모습이 참 한결같았다.
* * *
“아하하하! 그래서? 제대로 사과했어?”
-했어. 나중에는 사진 줘서 고맙다는 말도 들었어.
“그래 그러면 됐어.”
-사진, SNS에 안 올릴 거라고 약속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 안 해. 그리고 사진은 이상한 것만 아니라면 올려도 괜찮아.”
재인은 키득거리는 소리가 재현에게 넘어가지 않게 핸드폰을 손으로 가렸다. 형의 이상한 사진을 남한테 줄 것 같냐며 따지느라 여념이 없어서 웃음소리가 넘어가도 못 들을 거 같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래서 뭐 하는 사람이었어?”
-몰라. 안 물어봤어.
“같이 커피도 마셨다면서.”
-얘기만 조금 하고 헤어졌어. 알고 보니까 형 초기 팬이더라고. 팬클럽 생기기 전에 디바인 스타만 있을 때부터 좋아했대.
“상영관에서 봤을 때부터 굉장히 호의적이었어.”
-내가 볼 때는 진짜 빌런 같았는데…….
행동이나 생김새가 무척 의심스러웠다는 동생의 하소연을 듣던 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재현이 본 게 맞을지도 몰랐다. 특히 그 사람이 디바인 스타에서 활동하던 초기 팬이라면 빌런일 가능성이 제법 컸다. 디바인 스타를 관리하는 해성이 이클립스 조직원이니, 같은 이클립스 소속일 수도 있었다.
‘비비도 악명 높은 빌런이고 변호사님도 마찬가지지.’
통화를 마친 재인은 소파에 몸을 묻으며 빌리 브라운과 김태오를 떠올려 봤다. 자신에게는 친절한 두 사람이었지만, 본 모습은 현상금 사냥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현상금이 걸린 빌런이었다.
“하아암! 빌런이든 키퍼든 팬은 팬이지.”
빌런이긴 해도 그들은 그의 활동을 지지해 주고 출연한 작품을 좋아해 주는 팬이었다. 또 매년 막대한 금액을 기부하는 기부자이기도 했다. 디바인 스타나 미국 팬 카페 이름을 빌려서 하는 일이지만.
키퍼 팬이나 일반인 팬이 보면 배신감을 느낄지 몰라도 재인은 그들이 마냥 나쁘게 생각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앞에서 빌런다운 모습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하아암! 이렇게 보니 연예인 영향력이 대단하구나.”
자신의 팬이 됐다는 이유로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는 빌런이 기부도 하고 사람들을 도왔다. 사회 환원 차원에서 한 일로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론 그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하아암! 어쨌든 결과는 좋으니까.”
선행 이벤트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한 인터뷰에서 기부 금액과 기부 인원이 전년 대비 몇 배로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당시 인터뷰어는 기부가 늘어난 원인으로 재인을 지목했었다.
그때는 그저 웃으면서 질문을 넘겼었는데 지금 보니 아주 허튼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앞으로는 더 주의해야겠다.’
지금도 사람들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있었지만, 영향력이 크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는 더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점점 내려앉는 눈꺼풀에 저항하는 걸 포기한 재인의 몸이 소파 위로 길게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