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55
755화. 커닝미스
장목화는 꾸준하고 정밀하게 흔적을 찾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다른 방향에서 단서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녀가 곧 스미스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 의뢰는 어디서 받은 겁니까?”
의뢰인의 생김새와 이름, 특징은 이미 다 지워져 있었다. 그러나 장목화는 무근자 상인단이 출발했던 대형 거점은 그들이 옮기고 실은 대량의 물자, 또 그 외의 여러 사항에 연루돼 있으리라 믿었다.
그 많은 것들을 다 제거하는 건 상당히 수고스럽고 어려운 일이었으니 의뢰인이라도 거기까지 신경 쓰려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래도 이 거래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내 스미스가 빠르게 답했다.
“게스트 보루였어.”
화이트 기사단에 속한 대형 거점인 그곳은 빙원 구역 근처에 있었다.
“음⋯⋯.”
장목화는 그 이름을 기억에 새기며 나중에 한번 들러서 단서가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뒤이어 성건우가 형제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의뢰인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물자를 잃어버리든 말든 아무 차이가 없잖아요? 기껏해야 운송비 절반을 못 받게 됐을 뿐이죠. 그냥 여기까지 회삿돈으로 출장 왔다고 생각하세요.”
스미스는 회삿돈으로 출장 왔다는 구세계 표현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는 명확했으므로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 사이 생각에 잠겨있던 장목화가 물었다.
“혹시 10여 년 전 폐허로 변한 도시를 알고 계시나요?”
그녀는 성건우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출현했던 도시 상황도 대략적으로 한번 묘사했다.
스미스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알지! 그곳이 무심병으로 파괴되기 전까지 우리와 수시로 물자를 운송하며 거래했었거든.”
이내 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거기 가려고?”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네! 남도 아닌데, 얼른 그곳 위치 좀 알려주세요.”
스미스가 미간을 구겼다.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왜죠?”
성건우가 캐물었다.
스미스는 그와 장목화를 번갈아 살피며 말했다.
“여러 유적 사냥꾼이 보물을 찾겠다고 그곳에 갔지만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극소수야. 소문에 따르면 그곳에는 무심병 바이러스가 도처에 퍼져 있어서 들어가기만 해도 감염된다더라고. 그 병에 걸리기도 매우 쉽다는 거야.”
‘무심병 감염 위험이 심각한 편이라고?’
스미스의 말에 장목화의 눈꺼풀이 살짝 움찔했다.
그녀는 여태 그 문제에 약간 소홀했었다.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당시 포로로 잡힌 제8 연구원 특파원이, 그 도시에 들어간 제8 연구원이 이미 다 격리해서 무심병이 다시 전 세계를 휩쓸 위기는 다 해결한 상태라 말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이유는 혼란의 시대에 무심병이 대대적으로 폭발했던 도시에 현존하는 위험의 근원은 대부분 무심자의 습격과 그들의 알력 다툼일 뿐, 끊임없는 감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에 장목화는 제8 연구원이 세워둔 분리대를 넘어가지 않는 이상, 그 폐허 도시를 한번 탐색하는 것에는 별다른 위험이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미스는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었다. 그 후에 해당 도시에 진입한 여러 유적 사냥꾼은 여전히 무심병의 위협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했다.
‘거기 진입만 하면 분리대를 넘어가든 안 넘어가든 무심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아니면 사실 제8 연구원은 그 구역 전체를 격리해둔 걸까? 설마 그래 놓고 유적 사냥꾼이 그 분리대를 넘어 도시에 들어가게 내버려 뒀다고?’
장목화가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는 와중, 성건우가 확인하듯 되물었다.
“정말입니까?”
스미스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들은 말일뿐이지만, 내가 아는 여러 유적 사냥꾼 중 그곳에 갔던 이들은 정말로 돌아오지 못했어. 최소한 난 그들과 다시 마주치지 못했지.”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사실 저도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그 도시랑 주위 구역이 무심병으로 파괴된 지 겨우 십여 년인데 왜 그곳의 구체적인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건지요. 주민이 수십만 규모로 살던 곳이라면 많든 적든 외부와 거래했을 테고, 생산품과 필수적인 자원을 교환하려 했을 텐데요.”
그런 구역에는 기본적인 식량 공급을 보장하기도 쉽지 않았다. 공장이 대량으로 있어 무기와 총알, 천 등의 물자를 생산할 수 있다 한들 그 원재료는 어디에선가 구해와야만 했다.
지하 깊은 곳에 숨은 데다가 내부 생태 시스템을 갖춘 반고 바이오 역시도 외부에서 구해오는 광석과 석유 등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 도시는 반고 바이오나 제8 연구원처럼 비밀스럽기로 유명할 정도로 자신의 위치를 잘 숨기는 세력도 아니었다.
당시 성건우 아버지가 속한 구조팀이 그곳에 찾아가는 데 성공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도출되었다.
엔드이어 시티의 하 씨 역시 십여 년 전 수시로 그 도시의 사람들을 만났다고 했었다.
그리고 지금, 장목화는 그 의문에 대한 대략적인 답을 찾아냈다.
그 도시가 무심병으로 파괴됐다는 소식이 퍼져나가고, 그곳의 구체적인 위치를 아는 거의 모든 이들은 한몫 챙기기 위해 급히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극소수만 겨우 살아남아 돌아온 이후에는 더 이상 그곳에 가 볼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스미스가 약간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일찍이 그곳에 가서 물자를 팔았었지만, 그 소문을 들은 후에는 감히 가볼 엄두를 낼 수가 없었어. 평소에도 그 도시에 관한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 않았지. 그때 당시 우리도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생계가 어려워서 목숨을 걸고 물자를 챙겨야 하는 그런 상황에 있지는 않았거든. 어쨌건 일단 살아는 있어야 더 많은 기회를 노릴 수 있는 법이잖아.”
짝! 짝! 짝!
성건우가 그를 향해 손뼉을 쳤다.
연이어 장목화는 그 도시의 파괴전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몇 가지 더 했다. 답변은 모두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비로소 구조팀은 그 도시의 완전한 이름을 파악하게 되었다.
커닝미스.
아주 오래된 지명이었다. 현재의 레드리버어와도 일정한 차이가 있는데, 정확한 이름의 뜻은 ‘국왕의 숲’이라는 뜻이었다.
이후에 스미스는 남하한 빙원의 영향으로 그곳의 숲은 일찍이 심각하게 손실됐고, 나중에 그 도시와 주위 구역 사람들이 더 많은 논밭을 개척하느라 나무를 대량으로 벌목하면서 숲이란 이름은 유명무실해졌다고 설명했다.
* * *
다음 날 오전, 빙설 폐허 밖.
용여홍은 지프 뒷좌석에서 친구 성건우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지금 성건우는 상반신을 아예 창밖으로 내민 채 스미스 등의 무근자들을 향해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스미스 일행은 화이트 기사단의 세력 범위가 있는 남쪽으로 향하는 참이었다.
“다시 만나요! 꼭이요!”
성건우는 목청을 높여 외치면서도 해당 사유를 이식하지는 않았다.
이내 그가 운전석에 똑바로 앉자, 용여홍이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정말 커닝미스에 가는 거야?”
그곳은 진입하기만 해도 무심병에 감염될 확률이 높은, 위험한 곳이었다.
차창 밖으로는 흰 눈이 표표히 내리고 있었다. 눈송이가 그리 크진 않았고 바람도 나름 부드러운 편이었다.
곧 성건우가 반문했다.
“안 갈 건 뭔데? 거기 대량의 무심병 바이러스가 잠재돼 있고 확산될 가능성까지 있다 한들 보고도 못 본 척할 순 없지. 음, 겐한테 핵탄두를 그 안에 설치해 달라고 하고 멀리서 폭발시키면 종말 위기도 깔끔히 해결될 거야.”
‘가족 카드를 쓸 줄 알았는데, 저렇게 숭고하고 정의로운 말을 하다니. 어쨌든 그곳은 건우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출현하신 장소인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용여홍과 백새벽에게 말했다.
“어제 한참 고민해봤어. 무심병의 가장 무서운 부분은 무지에서 기인해. 어떻게 감염되는지도, 언제 발병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는 거. 근데 우린 무심병에 대해 이미 많이 알고 있어. 신세계랑 관련 있다는 것도 파악했고.
우리가 현재까지 추측한 무심병의 감염 경로는 세 가지야. 첫째, 신세계 강자. 둘째, 신세계와 연결된 교차점. 셋째, 달지기. 심지어는 신세계 강자를 향한 인간들의 신앙.
그렇다면 커닝미스에 널려 있다는, 언제 줄어들거나 사라질지 모를 무심병 바이러스는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게네바는 탄소 기반인들의 기회를 빼앗지 않고 조용히 침묵했다.
그 가운데 백새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세 번째 경로는 배제할 수 있어요. 커닝미스에는 이미 뭔가를 믿을 수 있는 산 사람이 없으니까요. 거긴 시체 아니면 무심자들 조금뿐이잖아요.”
도시가 파괴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생산할 줄 모르는 무심자라면 원래 규모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었다.
게다가 그 구역은 빙원 대부분 지역과 달리 기후가 비교적 온난해 경작이 가능하긴 해도, 겨울에는 여전히 얼어 죽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
이윽고 용여홍이 말을 받았다.
“신앙으로 인해 발휘되는 신세계의 효과는 무심병을 대규모로 일으키지 못해요. 혼란의 시대 후기에 접어든 후에도 달지기나 신세계 강자를 믿는 지역은 많았지만, 커닝미스를 제외하면 무심병이 그렇게 심각하게 발생한 지역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었잖아요.
신세계 강자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사람들에게 굳이 커닝미스를 파괴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나아가 계속해서 거기 머무르며 폐허 도시를 찾은 유적 사냥꾼들을 감염시켜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염호처럼 현실에 돌아오지 못하고, 그 몸을 통제하지도 못한 채 저도 모르게 무심병을 퍼뜨리는 존재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
용여홍이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염호가 잠든 후 호수의 섬에 있던 인간 거점 역시 무심병으로 파괴된 바 있었다. 물론 그 거점 모두가 무심병에 걸린 건 아니었지만 남은 이들도 계속 무심병에 감염되고 무심자에 공격당하면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또한 그 이후 섬을 탐색하러 간 이들도 일정 시간을 넘기면 마찬가지로 무심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 백새벽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거랑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유적 사냥꾼이 커닝미스에 들어간 건 어떤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가 아니야. 최대한 빨리 물자를 취하기 위함이지.
설령 무심자들이 방해했다 한들 아직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니까 그냥 몇 시간 만에 가져온 차에 물자를 가득 실을 수 있었을 거야.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이튿날 바로 커닝미스를 떠날 수 있었다는 거지. 사흘이라는 임계점을 넘기지 않았을 거라고. 그 많은 이들이 운 나쁘게도 신세계 강자가 잠들어 있는 그 구역을 직접 맞닥뜨리지는 않았을 거 아냐?”
장목화가 덧붙였다.
“커닝미스의 면적은 호수 섬보다 훨씬 더 넓을 거야. 만약 바깥쪽이나 도시 가장자리만 돌아다니면 사흘 넘게 있어도 문제가 생길 리는 없어.”
그녀의 말은 단순히 신세계 강자만으로는 커닝미스를 지금과 같은 상태로 만들 수 없다는 의미였다.
끝으로 장목화가 다시금 정리했다.
“그곳에 어느 달지기의 강림체가 잠들어 있거나, 그때의 조사로 그곳에 매우 매우 매우 큰 신세계 교차점, 혹은 곳곳에 분포된 대량의 신세계 교차점이 만들어졌거나. 둘 중 하나겠지.”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근데 제8 연구원의 사람은 왜 무심병에 감염되지 않았던 걸까요? 그들은 온 도시를 뒤졌지만 우리 아버지의 행방은 찾지 못했다고도 했는데. 좀 더 힘을 내줄 수는 없나? 그러면 우리한테 훨씬 도움이 될 텐데.”
그는 좀처럼 이에 대한 의혹을 놓지 못했다. 마지막에 붙인 말에서는 제8 연구원에 관한 그의 실망감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때 게네바가 분석에 나섰다.
“제8 연구원에서도 신세계 교차점을 제거하는 방법을 파악하고 있긴 한데 그 효과가 길게 유지되진 않는 것인지도 몰라. 유적 사냥꾼들이 왔을 때 신세계 교차점은 이미 회복돼 있었던 거지. 아니면 제8 연구원이 온 도시를 제대로 살피는 대신 가장 위험한 구역은 의도적으로 피했을 수도 있고.”
그 말에 용여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8 연구원에는 이 교수, 부원장 등 신세계 강자도 있잖아. 소문에 따르면 어둠의 비호를 받는다니 무심병에 그렇게 쉽게 걸리지 않을 거야.”
“그건 우리한테도 있어!”
성건우는 곧장 생명 천사 목걸이를 꺼내 보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한쪽 손이 축 늘어졌다.
“길고도 긴 밤, 사명이 비호하시니라!”
“…….”
구조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성건우가 당당하게 강조했다.
“우리의 커닝미스 탐색은 회사에서 허락한 임무야. 그러니 빅보스도 분명 우리를 비호해 주겠지.”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네.’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때가 되면 전 생명 천사 목걸이를 가지고 겐과 함께 먼저 커닝미스에 들어가서 거기 존재하는 문제의 근원이 신세계 교차점인지, 아니면 신세계 강자인지, 그것도 아니면 어느 달지기가 남긴 육신인지 확인해볼게요.”
성건우의 말이 끝나고, 장목화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좋아. 스미스가 여기서 차를 타고 커닝미스까지 가려면 이삼일은 걸린다고 했어. 지금 바로 가자. 건우 넌 정신 상태 유지에만 신경 써.”
그녀가 말한 소요 시간은 빙원에서의 자동차 속도에 기반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