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66
766화. 합류
커닝미스, 도심지 가장자리.
게네바와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성건우는 고가 다리 아래를 지나 교외로 향했다.
그들은 현재 왔던 길과 다른 길로 돌아가고 있었다. 또 성건우는 인간 의식을 완전히 숨긴 상태였다. 대형 고양잇과 동물이 불러왔을지 모를, 제8 연구원 구성원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성급한 성건우는 역으로 매복해 있다가 공격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그 제안은 표결에 부쳐지기도 전에 다른 성건우들이 바로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은 제8 연구원에서 커닝미스로 보낸 인원이 몇인지도, 그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데, 너무 무모한 행위였다.
물론, 부원장, 이 교수 등의 신세계 강자가 이곳으로 옮겨져 잠들어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각성자 두세 명만 있어도 구조팀이 감당하기엔 충분히 벅찬 상대였다.
황량한 들판을 걷던 그때, 돌연 고개를 돌린 성건우가 큰 소리로 웃었다.
“왜 그래?”
지능 로봇인 게네바의 성격은 꽤 좋은 편이었다.
“아니, 그 말이 아니야.”
성건우는 게네바를 보며 그가 제 뜻을 알아차리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게네바는 성건우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말이 아니라니?”
성건우가 안타깝다는 듯 답했다.
“이럴 때는 왜 웃냐고 물어야지.”
이내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빠르게 그 말을 검색해 본 게네바는 곧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따라서 웃으면서 전형적인 장면을 연출하길 바라는 거야?”
“맞아! 진정한 인간이라면 고루하고, 융통성 없이 굴면 안 돼. 때와 장소에 맞는 풍습과 문화를 파악하고 척하면 척하고 받아줘야지.”
성건우가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카멜레온 같은 외형의 게네바는 목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호응했다.
“왜 웃었어?”
성건우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8 연구원 녀석들이 참 멍청해서. 몇 개 주요 출구들 막고 기다리질 않았잖아? 뭘 믿고 우리가 반드시 왔던 길로 돌아갈 거라고 확신한 거지?”
게네바는 현 상황을 분석한 뒤 대꾸했다.
“인력이 부족해서 가장 가능성이 큰 길목만 막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성건우는 다시 혀를 쯧쯧 차며 웃었다.
“네 말대로면 겨우 그 정도 인력만 커닝미스에 보낸 것 자체가 문제야. 그만한 인력을 누구 코에 붙여? 과하게 거만했던 거지.”
이내 오른손을 든 그는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 표면으로 아래턱을 긁적이며 혼잣말하듯 말을 이었다.
“커닝미스 도심지에 진입한 사람이 멀쩡히 빠져나올 리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죽거나 무심자로 변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 아예 사람을 보내 길목을 막거나 매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어. 그 대형 고양이도 우리가 도심지 깊은 곳, 그러니까 가장 위험한 그 구역에 진입하는지 확인만 할 생각이었던 거야.”
게네바는 이 가설에 한 가지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어느 일에든 절대란 건 없어. 도심지 깊은 곳에 들어갔다가 살아 나온 사람도 있기 마련이야, 너처럼. 그리고 네가 그 유일한 사례는 아니겠지. 지난 오랜 시간, 비슷한 사례는 적어도 네다섯 번은 발생했을 거야.”
성건우가 웃었다.
“넌 내가 왜 아무 일 없이 멀쩡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
이번에 게네바는 굉장히 협조적으로 대꾸했다.
“길고도 긴 밤, 사명이 비호하시니까.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혹은 지인은 무아하고 신세계는 눈앞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성건우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설령 나처럼 무사히 살아 나온 사람이 있다 한들 그 역시 달지기의 비호를 받고 있었을 거야. 달지기의 비호를 받는 목표를 제8 연구원이 감히 공격할 수 있을까? 박사가 에이돌른 때문에 놀라 나자빠지면 어쩌려고?”
게네바는 그제야 성건우의 말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도심지 안에서 죽은 자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살아나온 자에 대해서는 신경 쓸 수가 없다는 건가?”
탁! 탁! 탁!
성건우는 턱으로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두드리며 박수를 대신했다.
“이제 문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제8 연구원이 이곳에 사람을 파견하고 대형 고양이를 보내 순찰하고 있는 이유가 뭐냐는 거야.”
“필요한 조건이 부족한 관계로 분석하기 어렵네.”
게네바가 솔직하게 답했다.
성건우는 제8 연구원으로 농담하는 건 그쯤에서 마치고, 게네바와 점점 더 밝아지는 하늘 아래로 향했다.
* * *
숲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게네바가 먼저, 다음으로 성건우가 걸음을 멈췄다.
“합류 지점이 바뀌었네⋯⋯.”
성건우가 팀원들이 남긴 암호를 보며 중얼거렸다.
목을 한 바퀴 돌려 주위를 둘러보던 게네바가 반대 방향으로 목을 한 번 더 돌리며 말했다.
“세 사람한테 무슨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야영지를 옮긴 모양이야.”
“내가 또 실수한 거야! 이럴 줄 알았다면 난 오늘 숲에 남아있고 겐 너만 커닝미스로 보내 탐색하게 하는 거였는데.”
성건우가 매우 비통해하며 극심한 실망감을 비쳤다.
* * *
성건우와 게네바는 암호를 따라 다시 숲을 크게 우회했다.
예정된 두 번째 합류 지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렇게 산 으슥한 곳에 도착한 둘은, 마침내 세 팀원과 합류했다.
장목화가 성건우, 게네바에게 있었던 일을 다 들려주자 성건우는 지프 안에 돌려둔 소형 스피커를 집어 들며 기특한 듯이 가볍게 두드렸다.
“잘했어! 과연 우리 팀 일원다워!”
동료들이 입을 열기 전, 성건우가 바로 상기된 눈을 빛냈다.
“지금 바로 흔적을 쫓아 반격에 나설까요?”
장목화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색을 살폈다.
“진정해. 시작할 때는 언제나 높은 경계심을 유지해야지. 게다가 하늘이 아직 밝아. 너는, 도심지에서 무슨 발견이라도 했어? 혹시 너희가 한 무슨 일 때문에 커닝미스에 일정 변화가 일어나기라도 한 거야?”
“맞아요!”
성건우는 즉각 전에 있었던 일을 전했다.
게네바는 그가 빠뜨린 부분을 보충하는 역할을 맡았다.
용여홍은 왠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커닝미스와 신세계에 중첩이 발생했고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상황이 심각해졌다고?”
“그런 셈이지. 어쩌면 문제의 근원이 있는 곳에 신세계로 통하는 대문이 있는지도 몰라. 심령의 복도가 아니라 애쉬랜드에 있다는 그 대문이.”
성건우의 목소리에 상당한 기대감이 엿보였다.
이내 백새벽이 미간을 찌푸렸다.
“커닝미스가 파괴된 지는 겨우 10여 년이야. 여태 그곳에 신세계 대문이 있는 것 같은 조짐은 한 번도 보인 적 없었어. 애쉬랜드 어딘가에 신세계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는 소문은 그보다 더 이전부터 돌았는데? 그게 커닝미스일 리는 없잖아?”
성건우가 웃었다.
“신세계로 통하는 대문이 하나뿐이라는 이야기는 누가 했는데? 당시 커닝미스를 파괴한 재난이 신세계 대문을 만든 건지도 모르지.”
백새벽은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음, 당시 구세계 파괴 원인을 조사하던 팀이 커닝미스에 온 것도 그곳 자체에 중요한 단서가 숨겨진 특정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 거야.”
그녀가 가리키는 것은 성건우의 아버지가 속해 있던 구조팀이었다.
“무슨 문제, 무슨 단서였을까?”
게네바가 중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성건우조차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일단은 생존자를 찾을 수 없으니까.”
그런데 순간 갑자기 또 흥분한 그가 커닝미스 도심지를 보며 말했다.
“핵탄두 말고 또 뭘 사용해야 커닝미스와 신세계의 중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문제의 근원 근처에서 모든 전기 에너지를 모아 중첩 현상을 파괴하기?”
용여홍이 떠보듯 말했다.
그러자 게네바가 일렀다.
“지금 남은 전기 에너지가 그렇게 충분하지 않아.”
장목화가 재차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음, 일단 화이트 기사단의 세력 범위에 가서 가진 배터리를 다 충전하는 것도 방법이지. 여름날 천둥을 커닝미스 도심지에 유도한다면 문제는 훨씬 간단해질 텐데.
구세계에 이와 비슷한 원리의 날씨 무기가 있던 걸로 기억해. 안타깝게도 지금은 어느 세력에서도 그 무기를 제작하지는 않지만. 아, 게다가 커닝미스의 전자파 환경을 완전히 파괴한다면 우리는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낼 수가 없어.”
현재 커닝미스 도심지 안쪽에선 과거 장면이 계속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맞아요.”
성건우가 동조했다.
이후, 잠시 침묵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사실 소용돌이를 자극하지 않고 문제 근원에 접근할 방법이 있긴 해.”
“뭔데요?”
성건우의 눈이 번득였다.
장목화가 설명했다.
“그 구역 가장자리에서 플로라와 버나드를 만났을 때, 그들은 너희를 보지도 못하고, 목소리도 못 듣고, 심지어 너희들이 근처에 다가갔을 때만 상응하는 인간 의식을 느꼈다고 했지?
그에 반해 도서관에 앉아있던 남자는 그곳을 지나쳐가려고 했을 때 너희를 봤거나 건우의 인간 의식을 느낀 것 같았다고 했고.
간단히 말해 문제의 근원에 가까울수록 중첩 현상이 또렷해지는 거야. 신세계에 있는 강자도 주위의 커닝미스 광경을 더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거고.
처음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며 지척에서만 감지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일정 거리 안의 상황을 볼 수도, 들을 수도, 감지할 수도 있었잖아.
그러니까 만약 너희가 당시 광장 밖을 우회했더라면 도서관 안의 남자를 자극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앞으로 그와 비슷한 투영을 마주쳤을 때도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돼. 문제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조심하면서 차라리 우회로를 선택해 돌아갈지언정 힘을 아끼는 게 낫다는 거지.”
게네바가 말했다.
“일리 있군. 근데 가장 안쪽에 이르면 그 방법도 통하진 않을 거야. 그곳에는 투영이 널려 있어서 어느 길을 택하든 우회할 수 없을 테니까.”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때쯤 건우는 직관적으로 소용돌이를 감지하고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하게 되겠지.”
짝! 짝! 짝!
어느새 소형 스피커와 생명 천사 목걸이를 거둬 넣은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그는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군용 외골격 장치도 벗어버린 상태였다.
한동안 이 문제로 토론한 구조팀은 마른 식량과 맑은 물로 식사를 마치고 흔적을 따라 제8 연구원 사람을 쫓을 준비를 했다.
커닝미스는 제8 연구원에 통제되고 있었다. 구조팀이 전의 습격자를 다른 세력 사람이 아닌 제8 연구원 사람이라 확신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 * *
“겐, 우리가 응원하고 있을게!”
성건우는 게네바를 향해 열정적으로 오른손을 흔들었다.
현재 그와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은 고지대에 서서 아래쪽의 지능 로봇 게네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망친 적에게 동료가 몇이나 있을지, 각자의 실력이 어떨지, 최대 감지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 함정을 설치해놓지는 않았을지, 우려가 많기에 신중한 구조팀은 게네바만 보내 흔적을 추적하기로 했다.
네 탄소 기반인은 망원경과 주위 지형을 이용해 몇 킬로미터 밖에서 게네바를 꼼꼼히 살피고 언제든 때맞춰 원거리 습격을 가할 준비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결함성이 높은 지능 로봇은 정말로 뜻밖의 상황을 맞닥뜨려도 탄소 기반인보다 생존 확률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지능 로봇은 각성자 능력 대부분에 면역이 돼 있고 인간 의식을 감지당할 걱정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네 탄소 기반인은 게네바의 안전을 위해 검은 늪 철갑뱀 인공지능 갑옷을 입혔다. 방어력을 한층 더 높여 그야말로 만전을 기하는 것이었다.
구세계에는 사람이 철을 감쌌을 때는 죽기 쉬워도 철이 사람을 감쌌을 때는 목숨은 부지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사람이 철을 감싼다는 건 보통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탈 때처럼 철 위에 사람이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었고, 철이 사람을 감싼다는 건 자동차를 탈 때처럼 사람이 철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현재 게네바는 철로 철을 감싼 셈이니 그만큼 더 견고하다 할 수 있었다.
이윽고 게네바는 검은 늪 철갑 뱀의 검은 비늘에 뒤덮인 강철 팔을 흔들어 보이며 동료들의 응원에 호응했다. 그 후 그는 핏자국과 발자국 등의 단서를 따라 먼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