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009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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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가의 말대로 됐네.”
홍룡의 소환을 해제한 염준열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화염 속성에 내성을 가진 벌레의 존재 탓에 힘을 꽤 소모했을 텐데도 후배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농담 비슷한 말을 하다니, 정말 염준열은 좋은 선배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과분한 제자이기도 했다.
‘염준열이 이만큼이나 성장하다니.’
염준열이 홍룡과 감각 공유를 하며 싸우는 모습을 떠오르니 다시 벅찬 기분이 들었다.
이제 염준열은 내게 없는 힘을 쓸 수 있다.
지금 당장 플마고의 염준열의 힘을 빌려 화염술로 이능 삼키기 대련을 한다면 내가 이기겠지만, 지금처럼 홍룡과 감각 공유를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전장에서 싸워야 한다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전에 용제건이 염준열이 홍룡화 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제자의 성장을 위해 리플레이를 하라면서 긁어 댔는데, 그 후로도 염준열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을 게 분명했다.
“저는 방금 선배님이 했던 것처럼 싸우지 못할 거예요. 굉장했어요.”
“어……!”
그냥 평범한 겉치레 같은 말이었으나 염준열의 모습을 빌려도 저건 따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총명한 염준열은 칭찬의 말에 담긴 의미를 곧바로 해석하고 밝게 웃었다.
방금 사용한 능력이 자신만의 힘이라는 게 몹시 기쁜 건지 염준열의 말에서 기쁨이 묻어났다.
“좋은 스승님과 경쟁 상대가 존재한 덕분이야. 고마워. 예언가가 곁에 없었다면 이렇게 싸우지 못했을 거야. 제안한 수 덕분에 걱정 없이 편히 싸웠어.”
염준열은 내 역할을 의식한 건지 연신 예언가를 연호하며 얼굴에 금칠을 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어떻게 싸우자고 제안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수를 둔 것처럼 된 건지 모르겠다.
잠자코 듣던 야오러치도 같은 의문을 품은 듯했다.
“쟤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 혹시 암호를 써서 의사소통을 한 건가…… 외적도 있었고, 근처에 웅족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물론 야오러치가 생각한 암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불꽃이 잘 통하지 않는 붉은 날개의 벌레가 등장했을 때, 어떤 수를 생각했을 뿐이다.
홍룡의 불꽃에 대한 외적의 대처가 지나치게 빨랐다.
만약 불꽃의 힘을 쓴다는 웅족을 경계했다면 처음부터 붉은 날개의 벌레를 보냈어야 했다.
얼핏 보기에 두 벌레의 공격력은 비슷한데, 다룰 수 있는 두 유닛 중 한쪽에만 불꽃 내성이 붙어 있다면 내성이 있는 쪽을 우선 운용하는 게 안전하다.
염준열의 불꽃에 타죽은 벌레들을 그냥 다른 전장에 배치했더라면 성과를 냈을 텐데, 순식간에 개죽음당한 꼴이다.
그렇다면 바로 붉은 날개의 벌레를 보내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 점을 종합하여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첫째는 붉은 날개의 벌레에게는 약점이 있다는 점. 둘째는 벌레를 다루는 술사가 전황에 맞춰 대응할 만큼 가까이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생각하면 누구나 다음 수를 둘 수 있었을 거야.’
약점을 찾아내어 근처에 있는 술사를 쓰러뜨려야 한다.
문제는 그 약점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불꽃 내성이 있으니 물에는 약할 수도 있고, 단순하게 연비가 나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벌레를 관찰하고 얼마 안 되어 그 약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벌레는 삿된 어둠 속에서도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날개가 발하는 힘의 원천이 어디로 이어졌는지 아주 희미하게 보였다.
그 원천은 삿된 어둠 저편의 술사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공격대원 중, 화염 속성 내성을 지닌 벌레 떼를 뚫고 저 희미한 기척을 추적하여 단숨에 술사를 쓰러뜨릴 만한 순발력을 지닌 건 나와 독고미로뿐이었다.
“애들이 오고 있어. 다들 무사한 것 같아.”
벌레를 밟지 않으려고 폴짝 뛰면서 독고미로와 곽경구가 귀환했다.
플레이어 슈즈를 신고 있으니 벌레 사체를 밟는다고 몸에 지장은 없지만, 신발이 더러워지는 게 싫어서 저러는 듯했다.
박승현이 본 대로 곽경구의 선수단복 상의는 거의 다 탔는데, 안에 입은 티셔츠는 비교적 상태가 좋았다.
홍룡의 친구로 지내다 보니 방열 의상을 입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열을 제외한 충격에는 약할 테니 선수단복을 입는 게 좋을 거다.
“100초가 지났는데 괜찮았어? 여벌 선수단복 있어?”
“시간은 반 정도 남았다.”
곽경구가 나를 보며 말했다.
곽경구는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이를 직접 실행했나 보다.
곽경구는 광림 가용 시간이 반 정도 남았다고 했는데, 내가 예상한 것보다 많이 남아 있었다.
그사이에 더 광림을 끊어 쓰는 요령이 늘었나 보다.
놀란 나를 두고 곽경구와 염준열이 말을 나눴다.
“저번에 싸울 때 여벌 선수단복 한 벌 버렸는데…… 남았나? 없으면 네 거 줘.”
“그래야지. 내가 태워 버렸으니까. 가호를 나눠줄 걸 그랬네.”
“그럼 외적을 속일 만큼 화력을 내기 어려워지잖아.”
다행히 여벌 옷이 있던 건지, 카드 홀스터 안을 확인한 곽경구가 새 선수단복을 실체화하여 입었다.
그사이 박승현이 곽경구의 몸 상태를 확인했는데, 회복 아이템을 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한편, 독고미로는 곽경구보다 훨씬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말로 직접 하지 않았을 뿐 독고미로에게 위험한 역할을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는데 무사해서 안심했다.
‘곽경구는 벌레 떼 속에 삼켜져도 광림으로 버틸 수 있지만, 독고미로는 아니야. 그런데도 저 안으로 밀어 넣었어.’
곽경구도 상당한 수준의 플레이어지만, 본인이 공언한 대로 강적을 상대로 버티는 싸움에 능하다.
조용히 접근하여 벌레가 날뛰기 전에 한 방에 적을 쓰러뜨릴 수 있냐고 물으면 긍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100초의 은총을 유지하면서 붉은 날개가 남기는 힘의 흔적을 따라 술사를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에 반해 독고미로는 어릴 적부터 1대 다수를 상대로 싸우면서 한 놈을 잡아 머리를 깨는 방식에 익숙했다.
광일파출소를 단독으로 습격했을 때, 가장 윗대가리였던 범인을 색출하여 동조한 자들까지 전부 박살된 후 유유히 탈출한 모습을 봐도 그 실력이 건재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염준열의 불꽃과 곽경구의 탱킹 능력을 활용해 독고미로의 모습을 한 번 숨기면, 벌레들의 술사를 찾는 건 금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쉽게 제안할 수는 없었다.
‘그건 나도 할 수 있는 일이야. 독고미로에게 위험한 역을 맡기지 않아도 됐는데…….’
그렇게 생각해 벌레의 힘의 흔적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독고미로를 바라보다 입을 다물었는데, 순식간에 내 생각을 간파한 패왕께서는 거침없이 외적의 머리를 부수기 위해 적진에 돌입했다.
그리고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지금 내 상태로 작전을 수행했다면 독고미로만큼 빠르고 별 피해 없이 돌아오긴 힘들었을 거다.
독고미로는 한 손에는 모닝스타, 다른 손에는 머리가 깨진 외적의 한 다리를 잡고 돌아왔는데, 상의에 그을음이 조금 남은 것 외에는 다친 곳이 전혀 없어 보였다.
독고미로가 결박 아이템으로 묶인 외적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마치 휴지를 쓰레기통에 넣는 듯한 몸짓에 박승현은 외적의 무게가 통찰계 스킬로 감지한 것보다 훨씬 가벼운 게 아닌가 의심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거 가져왔어. 뭐 분석하면 쓸 만한 게 나오지 않을까?”
독고미로가 말한 ‘이거’는 곽경구의 살점을 갉아먹으려 한 벌레를 다루는 술사였다.
직접 이능파의 흔적을 추적하거나 호족이나 웅족에게 넘기는 데에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 데다가 외적을 더럽고 귀찮다고 해서 버리지 않고 잘 챙겨 온 독고미로에게 감사를 표한 후 사과하려 했다.
“고생했어. 미…….”
“앞으로 말 안 해도 내가 알아서 하긴 할 건데, 다음부터는 시킬 거 있으면 그냥 말해. 네 수대로 할 거니까.”
독고미로는 사과하기 전에 빠르게 내 말을 잘라 버렸다.
이렇게 잘 싸우는 독고미로를 두고 미안하네 뭐네 하는 쪽이 더 실례일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동시에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좀 가신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혼자 싸우는 것처럼 생각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같이 싸우려고 내가 직접 택한 공격대원들인데, 그동안 전혀 의지하지 않았구나.’
만약 이 자리에 호랑이들이 있었으면 달랐을 것이다.
처음부터 황지호한테는 내가 수를 생각하는 사이 벌레를 막고 시간을 끌라고 했을 거고, 상황을 파악한 후에는 백호군에게 빨리 저 벌레 떼 너머에 있는 술사를 베고 오라고 했을 거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공격대원들에겐 그러지 못했다.
플마고에서 본 최후가 떠올라 쉽게 위험을 감수하라고 할 수 없었다.
‘이젠 달라. 독고미로는 무기력해 보이던 NPC가 아니고, 염준열은 내가 쓸 수 없는 힘을 사용해. 곽경구와 박승현도 새로운 전투 방식에 점점 적응하고 있어.’
이 세계가 플마고와 다른 길을 걷도록 많이 노력했는데, 정작 나는 플마고의 존재를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변한 세계를 의식한 덕일까, 피로하던 몸이 훨씬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정비를 마친 후, 염준열이 선두에 서서 말했다.
“이제 이동하자. 웅족이 지금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으니까 경계하면서 가야 해.”
“일본 선수의 함정이 있으니까 먼저 그쪽하고 만날 것 같다.”
곽경구의 말이 씨가 되었다.
얼마 걷지 않아 우리는 기척을 느꼈다.
적대적인 기운은 없었고, 어둠 저편에서 익숙한 불빛이 보였다.
디바이스의 홀로그램 투사에 사용하는 광원이었다.
아마 우리가 그쪽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도록 유도한 것 같았다.
‘이런 어둠 속에서는 피아 구분이 어렵고, 난전이 벌어지기 쉬워. 잘 알고 있구나.’
괜히 일본 대표팀에서 이쪽의 동태를 살핀답시고 기척을 숨기고 접근했다면 바로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반사적으로 우리가 공격할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가 광원을 향해 걷자 저쪽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곧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히라노 세이지다.’
히라노 세이지 외에도 일본 대표팀의 공격대원 전원이 그 자리에 있었다.
연꽃을 모티브로 한 선수단복을 입은 건 히라노 세이지 하나뿐인 것도 잘 보였다.
‘아리하라 토모아키는 그렇다 쳐도, 다른 셋까지 선수단복을 안 입고 있어. 그중 두 명은 출발 전에 선수단복을 입고 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뭔가 바뀐 건지도 모르겠다.
히라노 세이지는 우리를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 대표팀의 공격대장인 염준열에게 한국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라고 하기엔 미묘했다.
밖에서는 아마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염준열은 히라노 세이지보다 한 살 연상이고, 그 전에 통성명을 해 둔 건지 편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오랜만이야.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어?”
“공격대원 중 하나가 홍룡의 존재를 봤어요. 그 주변엔 저희가 설치한 함정이 있어서 살펴보고 있었거든요. 위험해지려면 가세하려고 했는데, 그전에 끝났네요.”
야오러치는 그 말을 듣고 가라앉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정말로 가세하려 했는지 의문을 품은 듯했다.
또, 일본 대표팀에선 중국 선수가 우리 쪽에 동행한 걸 보고 경계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과 중국이 연합해 공격하여 정보나 단서를 강탈할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저희도 다른 팀과 상의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무엇을 상담하고 싶었어?”
히라노 세이지는 어설프게 도발하는 대신, 솔직하게 자신의 카드를 보여 주는 길을 택했다.
저 모습을 보니 일본 대표팀의 공략 상황도 한국이나 중국과 그리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히라노 세이지가 염준열의 물음에 답했다.
“이곳의 존재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이명’에 관해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