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040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40)
120. 주사 (10)
한중일 교류전 마지막 경기를 앞둔 밤, 상황이 크게 움직였다.
코즈카 야시로가 나를, 땅울림의 기샤 디샹은 황지호를 불러냈다.
그냥 불러낸 것도 아니고 둘 다 강력한 미끼를 걸었다.
‘그 악플러를 데리고 나오겠다고?’
3차전이 시작되기 전에 한번 만나자고 하던 코즈카 야시로는 내가 답장을 쓰기 전에 추가 메시지를 보냈다.
코즈카 야시로는 ‘조작꾼’이라고 칭하는 악플러를 데리고 나오겠다고 덧붙였다.
루머에 시달리는 나를 걱정한다는 핑계로 수작질을 부리려는 게 틀림없었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조작꾼의 연락처를 얻었으나 그자를 밖으로 끌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그자를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조작꾼이 코즈카 야시로와 협력 관계라고 하나 교류전이 끝나고 각자 원하는 바를 달성하면 둘 다 손을 끊고 내가 손에 넣은 디바이스 코드도 폐기할 가능성이 컸다.
‘조작꾼 건만으로도 생각해야 할 게 많은데 디샹도 움직였어.’
그뿐만이 아니라 현재 황지호는 디샹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황지호가 보여 준 홀로그램에는 단 두 개의 문장만이 쓰여 있었다.
[(알 수 없음)] 거래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저 메시지를 가장 먼저 확인한 건 황지호의 비서였고, 비서는 가공 없이 황지호한테 전달했다.
발신자가 연락처에 등록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비서는 ‘세 기사의 맹세 소속 땅울림의 기사가 보낸 메시지입니다.’라는 설명을 간결하게 덧붙였다.
디샹은 호족이라면 저 짧은 메시지에 담긴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디샹은 청호의 육신을 걸고 거래를 할 생각인 거다.
‘청호의 육신이 있는 위치를 드러낸 것도 일부러일까?’
세 기사의 맹세는 황지호와 무엇을 걸고 어떤 거래를 할지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서면이나 구두 등의 확실한 증거도 남기지 않았으나 의도를 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저 정도의 꾀를 부릴 줄 몰랐다면 진작에 서돌의 역병에 완전히 무너졌겠지만 말이다.
나와 황지호를 잠자코 바라보던 독고미로가 말했다.
“보통 메시지가 아닌가 봐. 한이랑 관련 있는 거야?”
코즈카 야시로 건은 몰라도 디샹은 한이와 깊게 관련된 메시지를 보냈다.
거짓말을 해서 한이와는 일절 관계없는 일이라고 둘러댈 수도 있다.
혹은 여기에서 독고미로와는 관련 없는 일이니 이만 돌아가라고 하면 독고미로는 군말 없이 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한다면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 독고미로는 절대 나나 황지호에게 상담하지 않을 게 뻔했다.
독고미로는 나와 황지호를 신뢰해서 이 자리에 왔는데, 속이거나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다.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위험한 일일 수도 있어.”
“그야 그렇겠지. 모르고 왔겠어?”
독고미로가 한이와 황지호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한이는 말없이 식어 가는 핫초코의 표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황지호는 분신을 움직여 무언가를 확인하는 중인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독고미로의 말대로 신화계 호족이 엮인 일인데 안전할 리가 없긴 했다.
“어떻게 위험한 일인데? 힘으로 해결할 일이면 나도 할래. 네 발목은 안 잡아.”
독고미로가 하는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1차전에서 보여 준 활약을 생각하면 독고미로에게 발목을 잡을 존재라고 하긴 어려웠다.
독고미로는 유적형 이계 시뮬레이션의 보스, 흑호를 쓰러뜨린 패왕 아닌가.
보스 에너미가 어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전황 등을 고려하면 쓰러뜨리기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평범한 플레이어가 밀려오는 외적 떼와 지력의 서포트, 백호의 압박 속에서 흑호의 능력까지 파훼하고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독고미로는 한이를 문경지우라고 칭할 정도로 소중히 여기고 있어. 황지호보다 먼저 한이의 이상을 알아차렸지.’
그렇다면 독고미로가 황지호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황지호를 바라봤다.
이번 건은 호족과 깊게 엮인 일이라 내 뜻대로 독고미로를 휘말리게 할 수는 없었다.
분신을 여럿 움직이는 듯 먼 곳을 보는 것처럼 눈을 굴리던 황지호가 내 쪽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미로 건은 나에게 맡기겠다는 것 같았다.
호족의 수장이 허락도 했겠다, 나는 신중하게 말했다.
“힘이 필요한 일인지는 알 수 없어. 지금부터 알아내야 해.”
“그래? 무슨 일인데.”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말을 고르고 고르다 지금 당장 필요한 사항만을 전하기로 했다.
“한이가 꿈에서 들었다는 건 개천신화 때 신인이 불렀다는 노래야. 현대에 전해지지 않은 노래지. 기억하고 있는 건 신인이 있던 시대를 산 진족이나 후예, 상위 존재뿐일 거야.”
“어쩐지 그 노래에 관해 개천신화 관련 자료를 다 찾아봐도 안 나오더라.”
“그럴 거야. 하지만 이제 시뮬레이터 속에서 그 노래를 들었던 플레이어들이 기억하게 됐지.”
흑호가 힘을 사용할 때에는 이명이 섞여 노랫소리를 듣기 어려웠지만, 그냥 평범하게 연주를 할 때는 들을 수 있었다.
권제인이 힘을 실어 연주를 하지 않는 한, 이능 바이올린을 아무리 능숙하게 켠다고 해도 수면이 춤추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와 독고미로는 신인의 노래와 흑호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고, 우리 외에도 그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들었을 것이다.
“그 노래를 아는 건 아주 오래 산 존재들과 극히 일부의 플레이어들뿐이라는 거구나.”
“맞아. 그 일부의 플레이어들에는 중국 대표팀에 소속한 야오러치도 포함되어 있어.”
“아, 그 언니. 우리가 그 연주 들을 때 호족이 내준 처소에서 막 일어났었지. 그때 같이 들었나 보네. 귀 좋다.”
독고미로는 야오러치에 관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말을 하기 쉬워졌다.
나는 한이 쪽을 흘끗 봤다.
한이는 드문드문 우리의 입 모양을 확인하는 것 같았지만,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듯 집중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듣는다는 걸 경험했고, 그게 또 연주였으니 눈앞의 우리에게 집중하지 못해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한이가 수업종 정보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우리의 감상을 들을 정도로 연주에 흥미를 가졌던 걸 생각하니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한이가 볼 수 없는 위치로 고개를 조금 돌리며 말했다.
“야오러치가 최근 그 노랫소리를 청호의 육신 앞에서 연주했어. 한이가 야오러치의 연주를 청호의 육신을 통해 들었을 수도 있어.”
“뭐?”
독고미로가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놀라고 당혹스러워 보이는 패왕의 얼굴을 처음 본 것 같았다.
황지호 보고 대놓고 계속 돌아이라고 부르길래 청호의 육신 이야기가 나와도 담담히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한이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듣는다면 내 노래였으면 했는데……!”
패왕께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놀란 것 같다.
0반 중에선 나름 상식인 축에 속하던 패왕께서도 결국 훌륭한 0반의 일원이었다.
패왕께서는 호족의 복잡한 사정이나 비밀보다는 자신의 문경지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절절하게 느껴졌다.
황지호도 독고미로의 반응이 예상외였는지 관자놀이를 짚던 손을 떼고 그쪽을 볼 정도였다.
아쉬움을 표하던 독고미로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돌아이가 받은 메시지는 청호의 육신과 관련된 건가 보네. 돌아이가 갑자기 나타난 중국인이 청호의 육신 앞에서 연주하게 할 리가 없으니까 그 육신은 중국인 손에 있겠지?”
패왕께서는 아쉬워하는 와중에도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한 듯했다.
황지호가 청호를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는지는 시뮬레이터 속에서 경험했기에 알고 있고, 이와 내가 한 말을 바탕으로 청호의 육신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추측해 냈다.
“쟤는 돈이랑 힘이 있잖아. 그거 노리고 거래라도 하려는 거겠지. 미친 새끼들이었네. 중국 학생도 한패야? 허튼짓 못 하게 태그 매치할 때 걔들 반 정도 죽여 놓을게.”
독고미로가 눈앞에 보스 에너미라도 두고 있는 것 같은 눈을 했다.
거래에 관한 독고미로의 추측은 거의 정확했지만, 학생들이 연관되었을지는 의문이었다.
현무와 리웨이를 통해 중국 대표팀 상황을 간단하게 전해 들었는데, 야오러치는 좋아서 연주하러 가는 것 같진 않다고 했으니까.
패왕께서 중국 학생을 반 죽여 놓기 전에 그 점을 밝혀 두기로 했다.
“어디까지 연루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어.”
“그냥 구린 구석이 있는 애들을 다 때려잡는 것도 방법이야. 주범을 특정 못 해도 어쨌든 쥐어팰 수 있으니까.”
“……학생들은 그냥 휘말렸을 가능성이 커.”
“그래? 정보통이 있나 보네.”
패왕의 일 처리 방식을 알게 되었다.
그날 광일파출소에서 결국 신참 순경을 제외하고 모든 이들이 흠씬 처맞은 것과 같은 원리인 듯했다.
혼자 행동할 수밖에 없던 독고미로와 같은 처지였다면 나도 환몽 경매에서 그랬듯 다소 비효율적이더라도 전부 때려 부수었겠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선의의 피해자가 존재했고, 이쪽에선 움직일 수 있는 체스 피스가 많았다.
내가 수를 생각하려 할 때, 독고미로가 다시 통찰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너도 무슨 메시지를 받은 것 같던데? 돌아이만 홀로그램을 보여 준 게 아니잖아.”
홀로그램의 내용은 못 봤어도 내가 코즈카 야시로에게 메시지를 받아 황지호에게 보여 주는 장면을 목격한 건가.
패왕의 눈썰미가 귀신 같았다.
“그건 한이와 관계없는 일일 가능성이 커.”
차마 관계가 없을 거라고 딱 잘라 말하지는 못했는데, 독고미로가 이를 파고들었다.
“부정을 확실히 안 하는 걸 보니 이상해. 넓게 보면 한이와 관계있을 수도 있어. 안 그랬음 이 자리에서 네가 돌아이한테 메시지를 보여 주지 않았을 거야. 돌아이가 별것 아닌 메시지를 보낼 때는 답변도 안 하는 부반장이 시시콜콜한 잡담을 갑자기 할 리가 없지.”
나도 독고미로와 같은 생각을 하긴 했다.
조작꾼에게도, 청호의 육신 쪽에도 흑막의 입김이 닿아 있는데 그 둘이 동시에 움직였으니 넓게 보면 이 두 메시지는 이어져 있었다.
패왕의 추리를 듣던 황지호가 물었다.
“이 몸이 조의신에게 안읽씹을 당하는 게 그렇게 당연하고 유명한 일이 되었나?”
“어. 우리 반만 아는 게 아니라 다른 반 애들도 알걸? 맨날 투덜거리잖아.”
그러게 왜 평소에 그걸 말하고 다녔을까.
어찌 됐든 황지호의 자업자득이었다.
황지호와 독고미로가 잠시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나는 생각에 잠겼다.
메시지가 도착한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우선 답변을 해야 했다.
‘너무 늦게 반응하면 불리해. 이쪽이 고심하고, 단단히 무언가를 준비했을 거라고 상정할 테니까.’
그래서야 황지호가 여태까지 초조한 척 굴었던 게 허사가 된다.
나는 코즈카 야시로 앞에서 우유부단한 척을 실컷 해 뒀으니 그나마 낫겠지만, 청호의 육신을 두고 황지호가 바로 행동하지 않는 건 의심을 살 법했다.
이것 외에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조작꾼, 코즈카 야시로, 렌조인 카렌, 한이가 들었다는 노랫소리, 꿈, 그동안 나왔던 천신…….’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사이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황지호와 독고미로 그리고 한이까지 나를 보고 있었다.
셋은 날이 서 있거나 불안해 보였는데, 지금은 다소 안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안할 게 있나 보군.”
“자주 이랬나 보네. 뒤에서 수상한 짓을 많이 했지?”
“그래.”
황지호는 자랑하듯이 말하고 나를 봤다.
수상한 짓을 많이 한 건 사실이라 일단 반박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할 말이 있었다.
“제안할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