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041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41)
120. 주사 (11)
늦은 밤, 경기도 외곽의 산속.
야오러치는 벌써 몇 번째 오는 동굴 앞에 서 있었다.
디샹은 특훈을 핑계로 몇몇 학생들을 이곳에 불러냈는데, 한 번씩 시도한 후에는 야오러치가 고정으로 불려오게 되었다.
디샹은 늘 중간에 자리를 비웠으나 경호원을 통해 같은 요구를 했다.
―디샹 님의 전언입니다. ‘여기에서 전에 했던 연주를 하도록.’
야오러치는 호족의 영역에서 들었던 노랫소리를 연주했는데, 그게 패착이었다.
디샹은 의심을 살 위험을 감수하고 야오러치를 계속 불러냈다.
야오러치의 연주는 관 속의 상대에게 아주 큰 영향을 준 듯했다.
디샹의 미심쩍고 무리한 요구가 이어지자 루보원이 눈치챘다.
―러치, 앞으로 나랑 행동해. 특훈이든 뭐든 다 따라갈게!
―디샹 선생이 네가 따라오게 두지 않을 거 같은데.
―괜찮아. 나는 억지 부리는 거 잘해.
루보원이 얼마나 억지를 잘 쓰는지 알았기에 야오러치는 조금 안심했다.
그러나 루보원이 아무리 자신만만하게 굴어도 땅울림의 기사가 얕은 잔꾀에 당할 정도로 허술하진 않았다.
디샹은 이미 코치진을 상대로 특훈에 관련한 교섭을 끝마친 덕에 루보원의 억지는 잘 통하지 않았고, 어찌저찌 특훈에 따라갔으나 따돌려지고 말았다.
그 결과 야오러치는 혼자 이곳에 오고 말았다.
―만약 디샹 선생이 같은 요구를 또 하면 시간을 끌어.
―시간을 끌어도 안 되면?
―거부하면 의심을 살 수도 있어. 성격 이상한 천재가 할 법한 방식으로 딴청을 부려. 의심하는 티는 내면 안 돼.
루보원은 어렸을 적부터 천재성을 이용당해 큰일을 당할 뻔한 적이 많았다.
엉뚱한 짓을 많이 하는 루보원이었지만, 이런 류의 조언은 항상 잘 맞아떨어졌다.
야오러치는 디즈를 손에 꽉 쥐고 루보원이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아주 천천히 걸었다.
야오러치 탓에 이동이 더뎌지자 경호원이 물었다.
“불편한 점이 있습니까? 걷기 어려우면 업겠습니다.”
“싫어요. 누가 저한테 손대면 연주할 기분이 안 들어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연주할 때, 야오러치의 집중력은 상당했다.
루보원이 뒤에서 매달리든, 앞에서 그림자극을 하든, 동샤오단한테 얻어맞든, 앞에서 이계가 발생하든 야오러치는 어떤 환경에서도 신경 쓰지 않고 연주할 자신이 있었다.
누구한테 한 번 업혔다고 야오러치가 연주를 못 할 리는 없지만, 시간을 끌기 위해 유난을 떨기로 했다.
야오러치는 한술 더 떠서 말했다.
“밤공기가 좋아요. 악상이 떠올라서 바로 연주하고 싶어요. 조금만 연주하다가 갈래요.”
야오러치는 경호원이 제지하기 전에 디즈를 입에 대고 한 소절을 연주하였다.
연주한 곡은 중국 당대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 비파행(琵琶行)에 음을 붙인 것으로 야오러치가 직접 디즈로 어레인지한 곡이었다.
忽聞水上琵琶聲(홀문수상비파성)
문득 수면 위를 따라 들려오는 비파 소리에
主人忘歸客不發(주인망귀객불발)
주인은 집으로 향할 생각을 잊고 손님은 떠나지 못하노라
달빛 아래에서 퍼지는 곡조에 순간 경호원들도 잠시 넋을 잃고 멈췄으나 이는 잠시뿐이었다.
곧 경호원들은 엄한 표정을 짓고 야오러치를 만류했다.
“내일 경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늦게 돌아가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곳에 불러내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야오러치는 상식적인 생각을 했으나 기왕 미친 척한 거 계속 미친 것처럼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애들은 제가 모처럼 떠오른 악상을 놓치는 걸 더 슬퍼할 거예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얼른 일을 마치고 학생들과 감상을 나누길 바랍니다.”
야오러치는 이어서 미친 소리를 몇 번 하며 시간을 끌었으나 점점 할 말이 없어졌다.
상식인 야오러치가 미친 척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야오러치는 자신이 노골적으로 시간을 끄는 것처럼 보이기 전에 멈춰야 했다.
그렇게 시간을 끌고 끌었지만, 야오러치는 다시 동굴 깊숙한 곳에 위치한 관 앞에 도달하고 말았다.
‘호족의 영역에서 들었던 걸 연주한 게 잘못이었나? 그날 다른 걸 연주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
호족과 깊은 연을 가진 관 속의 존재는 야오러치의 곡이 아주 마음에 든 듯했다.
그건 야오러치의 연주 실력이 출중한 덕도 있겠지만, 선곡의 힘이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곡을 연주할수록 무언가 잘못되어 가는 듯한,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야오러치는 후회하는 마음을 숨기고 마지막 발악을 했다.
“오늘은 다른 곡을 연주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그렇다면 두 곡 다 연주하시면 됩니다.”
다른 곡을 연주하려는 것도 통하지 않았다.
오늘도 야오러치는 꼼짝없이 호랑이 덫으로 가득한 동굴의 관 안에서 신인의 노래를 연주하게 생겼다.
야오러치는 아무렇지 않게 ‘좋아요’라고 말하곤 먼저 비파행을 연주했다.
느린 템포로 연주를 질질 끌어가던 야오러치는 괜히 루보원 탓을 했다.
‘계속 동행하겠다고 했으면서, 시간을 끌라고 했으면서, 왜 안 와!’
디샹이 지정한 곡을 연주하면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이렇게 몰래, 은밀하게, 호족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필 그게 자신의 연주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야오러치는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야오러치가 처음으로 택한 곡의 연주가 끝났다.
“다음은 지정한 곡을 연주해 주십시오.”
야오러치는 디즈를 고쳐 쥐는 척, 숨을 고르는 척 천천히 움직였다.
야오러치가 디즈의 취구에 입술을 가져가고 지공을 손끝으로 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우우웅……!
땅이 크게 울리고, 강력한 힘이 땅 밑을 맴돌았다.
스킬 없이는 그 힘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판별하기 어려웠으나 야오러치의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답이 있었다.
바로 지력이었다.
한반도는 진족의 거점과 다소 떨어진 곳에도 지력이 충만하다고 들었다.
누군가가 지력을 움직이고 있었다.
“누구지? 호족인가?”
“호족이 아니야. 호족이 힘을 썼다면 지금쯤 지력이 역류해서……!”
연주를 멈추고 경계하는 야오러치의 귀에 경호원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저들은 호족이 이곳에서 힘을 사용하면 지력 역류 현상이 발동하도록 대비한 듯했다.
저들은 정말로 호족을 상대할 준비를 철저히 한 듯했다.
그렇다면 지금 지력을 사용한 건 누구란 말인가?
‘호족과 연합한 다른 진족일까? 그것도 아니면 인간?’
경호원들이 뒤늦게 귀가 밝은 야오러치를 의식해 목소리를 내지 않고 디바이스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사이에 누구도 야오러치에게 연주를 독촉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찌직, 찍…….
멀리서 무언가가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멀고 작은 소리라 잘 들리지 않았지만, 쥐가 낼 법한 소리였다.
이런 동굴에 쥐가 몇 마리 있는 것쯤 이상하지는 않았으나 경호원들은 마치 역병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 그 진족이……!”
“마스크를 착용해라. 아니, 당장 방역복을!”
“아니, 아니다. 괜찮을 거다. 기사들이 해독제를 넣기 위해 이 수를 썼으니 말이다!”
“일단 나갑시다. 밀폐된 공간에 있어선 안 됩니다.”
경호원들이 경악한 얼굴로 전신을 이능파로 덮고선 혼비백산하여 밖으로 빠져나갔다.
고작 쥐가 내는 소리에 저리도 놀란 걸 두고 야오러치는 의아하게 여겼다.
어찌 됐든, 이곳에 있는 건 꺼림칙했으므로 경호원들보다 한 박자 늦게 밖으로 나섰다.
‘쥐 때문에 놀란 건가?’
야오러치는 연주에 능한 만큼 귀가 좋으며, 방금 들린 소리에 관해서도 금방 파악했다.
야오러치는 찍찍거리는 듯한 소리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건 살아 있는 쥐가 낸 소리가 아니었어. 마치 녹음해서 틀어 놓은 것 같았는데, 동굴이라 소리가 울려서 헷갈렸나 보네.’
당연히 야오러치가 경호원들에게 그 쥐 소리의 정체를 알려 줄 리가 없었다.
야오러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끝까지 괴상한 천재를 흉내 내며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야오러치의 시간 끌기가 헛수고로 끝나지 않은 셈이었다.
한편,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이곳에 급하게 온 건지 심하게 숨이 흐트러진 자도 있었지만, 검고 견고한 결계 덕에 이들의 모습을 눈치챈 자는 아무도 없었다.
셋 중에서 가장 지쳐 보이는 루보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력을 쓰시는 것 같던데 막 동굴이 무너지거나 하는 건 아니겠죠? 아, 야오러치다! 지금 마중 가려면 좀 그러려나.”
“현무 님, 야오러치는 무사한가요?”
루보원이 징징거리다가 겨우 안심하여 말한 것에 이어 리웨이가 침착하게 물었다.
리웨이의 물음에 현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 그 아이의 생각대로구나.”
어둠 속에서 눈까지 가리고 있으니 현무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 텐데, 현무는 마치 먼 곳에 있는 누군가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 아이요? 지금 한 건 다른 분이 제안한 건가요?”
“그렇단다. 늦지 않아서 그 아이의 수를 망치지 않아 다행이야.”
현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한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지력을 조금 사용하고, 쥐 소리를 들려준 것만으로 놀라다니. 아직 멀었구나.”
조의신의 첫수는 신인의 노래에 관한 것이었다.
야오러치가 반복적으로 청호의 관 앞에서 연주를 했다는 걸 파악한 조의신은 우선 이를 중단시키기로 정했다.
이는 서돌을 투입시키는 게 가장 확실했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서돌에게 진 빚이 많아지는 데다가 청호의 육신과 야오러치에게 해가 될 수도 있으니 다른 수를 쓰기로 했다.
그래서 동굴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데다 리웨이와도 연이 있는 현무의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런데 저기에 뭐가 있기에 야오러치가 불려 나간 거예요?”
“루보원,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저기에 뭐가 있는지 묻는 게 쓸데없는 거야? 그만큼 위험한 거야?”
꼬치꼬치 캐묻는 루보원을 상대로 리웨이가 한마디 하려 할 때, 현무가 대신 나섰다.
“그렇단다. 지금은 우리가 함부로 입에 담아선 안 될 것이지.”
현무의 말투는 여전히 상냥했으나 루보원의 입을 다물게 하는 박력이 있었다.
루보원이 주저하다가 입을 다물자 현무가 달래듯이 웃어 주고는 말을 돌렸다.
“그 아이에게 직접 보고를 하고 싶지만 바쁘겠지. 조금만 더 지켜보다가 돌아가자꾸나. 그들은 바쁠 테니 누군가는 계속 보고 있는 게 좋겠지.”
그들이 누군지 루보원은 궁금해 미칠 것 같았으나 꾹 참았다.
많이 알수록 위험해지는 건 잘 알았지만, 야오러치가 연루되어 있는데 호기심을 참기 어려웠다.
루보원이 딜레마 속에서 고통받는 사이, 현무가 말한 ‘그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필두 중 하나는 바로 황호였다.
청호의 관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폐가, 20대의 모습을 한 황호와 디샹이 마주 보고 있었다.
“거래에 응할 준비가 되었다고 들었다만.”
황호의 말에 디샹이 입을 다물고 표정을 흐렸다.
디샹이 착용한 이어링 타입 디바이스에 경호원의 철수 보고가 들어와 있었다.
미끼 없이 호랑이 앞에 와 있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