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042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42)
120. 주사 (12)
‘동굴에 쥐가 나타나서 철수했다니, 서족이 움직였단 말인가!’
경호원이라 불리고 있지만, 그들은 한국에서 중요한 작전을 담당하고 있는 기사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주요 기사들과 따로 행동했기에 역병을 피할 수 있었지만, 세 기사의 맹세에 퍼진 역병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서돌의 성격이 반영된 듯한 역병은 아주 성가시고 역겨웠다.
피부의 괴사와 이에 동반하는 악취, 시력 저하, 이능파를 사용할 때 따르는 통증 등등.
이능파를 통해 병이 깊어지는 걸 막을 수 있었으나 고통이 수반되었으며 서돌의 기분에 따라 멋대로 병세가 위중해져 더 큰 고통을 감수하고 이능파를 운용해야 했다.
고통이 두려워 병을 억누르는 걸 멈추면 병이 깊어져 죽거나 의식 불명 상태에 이를 수도 있으니 역병에 걸린 자들의 정신 상태는 더욱 피폐해졌다.
정말 서족의 수장이 또 나타나 역병을 퍼뜨리고자 했다면 당장 철수해야 하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땅울림의 기사는 바로 납득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진정 서돌이었단 말인가? 그자는 이제 우리에게 흥미를 잃었을 터. 추가타를 날리고 싶었다면 진작에 했을 것이다. 그 동굴에 관해 알았다면 진작에 쳐들어가서 안에 있는 것들을 훔쳐 갔겠지.’
이 부분은 땅울림의 기사의 생각이 옳았다.
서돌은 역병을 거둘 만큼 화가 풀린 건 아니었으나 슬슬 세 기사의 맹세를 가지고 노는 걸 재미없어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이 청호의 육신을 쥐고 있다는 걸 알면 동굴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서돌이 호족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건 서족에 관해 조금만 조사해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쥐 소리가 들리기 전에 지력을 사용했다는 점이 생각을 방해했다.
‘그냥 쥐 소리만 들린 것도 아니고, 동굴 안에 영향을 줄 만큼 지력 사용에 능한 진족이 개입했다고 했지. 그것도 호족이 아닌 다른 진족이……! 그 미치광이 쾌락주의자라면 이 타이밍을 노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땅울림의 기사는 서돌이 아닌 다른 진족이 개입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진 못했다.
12지 동맹은 고립되어 있고, 특히 호족은 배타적이었다.
그나마 토족과는 서로 욕하면서도 교류는 유지하는 중이었고, 최근 들어 성국언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용족과 호족이 손을 잡은 듯했으나 둘을 이런 곳에 부를 것 같진 않았다.
토족 중에는 지력을 잘 다루는 자가 없었고, 호족이 용족에게 청호의 육신이 있는 곳을 맡길 만큼 신뢰할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토족이나 용족 중에 지력을 잘 다룰 만큼 유서 깊은 영물이 극히 혐오하는 쥐 흉내를 낼 것 같진 않았다.
결국 땅울림의 기사는 그 자리에 나타난 건 서돌이 맞다고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바로 청호의 육신을 회수해야 한다. 쥐새끼의 손에 들어가게 하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다른 기사들도 같은 생각인지, 땅울림의 기사에게 회수 동의 여부를 확인했다.
청호의 육신이 담긴 관에는 회수용 공간 이동 이능이 걸려 있었다.
호족이 목숨을 던질 각오를 하고 동굴에 뛰어들었을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였다.
그들은 호족의 이능파에 반응해 지력을 역류시키는 덫, 호랑이를 살해한 전승이 있는 함정과 무기만으로는 안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청호의 관에는 두 가지 장치가 되어 있었다.
하나는 내용물을 파괴하는 이능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곳으로 대상을 전이시키는 공간 이동 이능이 그러했다.
무사히 전이가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은 후에야 땅울림의 기사가 안심했다.
“…….”
땅울림의 기사는 말없이 이쪽을 응시하는 황호를 보았다.
만약 지금 호족이 서족과 손을 잡고 움직이는 중이거나 서족이 아닌 다른 진족을 보내 행동하는 중이라면 청호의 육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아니, 황호의 성품이라면 분신 하나쯤을 동굴 주변에 배치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 원흉 중 하나인 자신을 앞에 두고 한껏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게 분명할 테니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황호는 처음 나타났을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표정 변화가 없군. 모르는 건가?’
물론, 처음부터 황호는 땅울림의 기사 앞에서 한 번도 본심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처음 대면했을 때 여유가 없어 보였던 것도, 초조해 보였던 것도 전부 연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황호는 이미 이번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었다.
―그자들은 네가 지력을 잘 다룬다는 걸 알아. 그러니 호족이 지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수작을 부렸을 거야. 게다가 호족이 청호의 육신과 연루된 건을 다른 진족에게 맡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겠지. 그러니 세 기사의 맹세와 적대 중인 서돌이 침입했다고 가장하기 쉬워.
조의신은 세계 10대 프로 플레이어 팀의 팀 마스터와 수 싸움을 하는 걸 쉽다고 단정 지으며 자신의 수를 계속 설명했다.
―게다가 서돌이 왔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역병을 경계해서 그 자리를 지키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달아나겠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청호의 육신을 회수하기는 어려울 거야.
―호족이 아닌 다른 존재라도 그 동굴을 공략하기 어렵겠나?
―공략 자체는 불가능하지 않을 거야. 문제는 공략이 아니라 청호의 육신이지. 그렇게 보란 듯이 관을 준비해 놨잖아. 관에 특별한 장치가 되어 있을 거야. 전이라든가.
워프, 공간 이동 혹은 전이라고 칭하는 류의 이능은 이능파 소모가 극심하고 전이 성립을 위해 술식을 짜는 것도 상당히 까다로웠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좌표를 미리 고정해 놓고 지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청호의 육신을 어디론가 보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청호의 육신이 어디론가 전이되어도 내색하지 마. 어디까지나 이번 건은 서돌의 단독 행동으로 가장할 생각이니까, 너는 모르거나 나중에 알아낸 척하는 게 좋을 거야.
―걱정 마라. 이 몸은 불필요할 때가 아니면 격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잘 처웃으면서?
가만히 그 말을 듣던 독고미로가 시큰둥하게 되묻고 조의신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호는 그런 반응을 보이는 둘을 보고 진지한 상황임에도 웃음이 터질 뻔했으나 잘 참아 냈다.
지금도 청호의 육신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는데도 황호는 전혀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황호는 다른 이유로 심기가 불편한 척, 위엄있게 물었다.
“이 몸을 불러내고 감히 기다리게 할 생각인가?”
땅울림의 기사가 침묵한 건 보고를 받는 몇십 초에 불과했지만, 여유 없는 흉내를 내는 황호가 해도 어색하지 않은 대사였다.
땅울림의 기사는 황호가 청호의 육신에 관한 일련의 상황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의심을 완전히 거두었다.
그러나 땅울림의 기사가 중요한 미끼를 잃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변수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내용물이 없는 청호의 육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청호’를 내밀 수 있었을 텐데, 일이 틀어졌군.’
먼 옛날부터 듣는 것을 좋아한다던 청호의 육신을 관리하는 데에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의류 등에는 보존 이능을 사용했으나 육신에게는 연주가 필요했다.
멋진 노래나 연주를 들려주면 청호의 육신에 생기가 돌았고, 이능파를 쥐어짜 내기에 좋은 상태가 되었다.
녹음된 음악보다는 생음악이 더 효과적이었기에 황호와 거래하기 전, 땅울림의 기사는 학생들을 이용했다.
복원 이능에 능한 학생들, 특히 음악에도 재능이 있는 야오러치가 그러했다.
그런데 뜻밖의 행운이 발생했다.
야오러치가 연주한 낯선 곡조를 들은 청호의 육신이 여태까지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저 곡은 뭐지? 야오러치가 작곡한 곡인가?
―야오러치 본인에게 물었으나 묘한 표정으로 ‘이 곡을 연주하고 싶은 기분이라서’라고 하더군요.
―푸른 바이올리니스트도 그렇고 예술가의 머리는 이해하지 못하겠군.
야오러치가 연주한 것은 신인의 노래였으나 그녀의 기지로 비밀이 드러나지 않은 채로 넘어갔다.
야오러치가 연주한 곡에서 코드를 따내어 디지털 피아노로 재생해 보기도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청호의 육신은 같은 곡이라 해도 싸구려 연주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 연주를 듣는 동안에 관 속에 있던 청호의 육신에서 푸른 이능파가 들끓었다. 아름답고,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청호의 육신에 영혼이 돌아온 듯한 모양새였지.’
그저 청호의 육신이 아니라 이능파를 휘감고 잠들어 있는 듯한 청호를 황호에게 보여 주고 거래를 건다면 상정한 것 이상의 대가를 얻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황호가 껍데기뿐인 육신보다는 살아 있는 청호를 높게 쳐줄 게 당연하고, 평정심을 더욱 잃어 다루기 편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청호의 육신은 안전한 곳으로 전이되었다.
SR급 아이템, ‘천리를 넘는 눈’으로 공간을 넘어 관 속에 있는 청호가 연주를 듣고 반응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 주려던 계획이 무너졌다.
‘녹화된 영상으론 황호를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조작이 불가능한 이능 아이템을 활용해 보여 주려 했더만……!’
청호의 육신을 준비했지만 서돌의 습격을 받아 대피시켰다라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했다간 황호가 거래 대상을 세 기사의 맹세에서 서돌로 바꿀 지도 모른다.
황호의 노여움을 사더라도 이대로 다음을 기약하고 물러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디샹, 곤란한가 보네.]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기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물그림자의 기사였다.
[그럴 줄 알고 선물을 준비했어. 황호에게 양해를 구하고 클로젯을 열어 봐.]물그림자의 기사가 준비했다는 ‘선물’이라는 말에 땅울림의 기사가 눈을 번뜩였다.
그 선물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물그림자의 기사가 워낙 애지중지하던 대상이라 이런 위험한 자리에 준비해 둘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땅울림의 기사는 상황을 반전할 카드가 나타났다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가 준비한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땅울림의 기사가 썩어 가는 클로젯 앞에 섰다.
손잡이에 손을 올리자 ‘삣’하는 소리가 들렸다.
손잡이가 디샹의 지문을 인식한 듯했다.
썩어 가던 외관은 위장일 뿐, 미리 물그림자의 기사가 장난질을 친 듯했다.
땅울림의 기사가 클로젯의 문을 벌컥 열었다.
“하.”
내용물을 본 황호가 숨을 내뱉었다.
그 안에는 눈을 감은 듯한 청호처럼 보이는 존재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우의 재회에 기뻐하거나 분노할 줄 알았는데 황호는 큰 반응이 없었다.
감정이 지나치게 격해져 반응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육신을 대가로 역병의 치료제와 근원의 제거를 요구합니다.”
땅울림의 기사가 뻔뻔하게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황호가 달려들어 저 육신을 탈취해 갈 가능성도 있었으나 상관없었다.
물그림자의 기사가 이것을 전이시켜 버리거나, 그냥 모르는 척 이 가짜를 내주면 그만이었다.
황호가 미쳐 날뛸지, 냉정하게 거래에 응할지 가늠해 봤지만, 실제 보이는 반응은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놀랍군.”
“오랫동안 찾았던 친우가 눈앞에 있는 것이 말입니까?”
“아니, 상정한 수대로 움직인 게 놀랍군.”
의아해하는 땅울림의 기사를 두고 황호가 은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청호의 육신을 전이시킨다면, 네게 다른 것을 내밀 거야.
―무엇을?
―재러드 리 사건을 기억해?
조의신의 말에 황호는 재러드 리에 관해 떠올렸다.
전 세 기사의 맹세 소속 플레이어.
현 영원의 호수 서브 팀 마스터.
간단한 프로필에 이어서 그가 겪었다는 사건이 떠올랐다.
유원지에서 발생한 목우람 암살 미수 사건 이후 고했던 비밀이 그러했다.
―흑막이 청호의 육신을 세 기사의 맹세에게 맡길 만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
―설마……!
세 기사의 맹세는 맨체스터의 지력을 끌어다가 에너미를 만들어 냈다.
재러드 리를 복제한 듯한 에너미를.
―그자들은 청호의 육신을 복제했을 거야. 재러드 리를 복제했듯이. 아주 잘 만들어진 복제 인형이 있다면 네 앞에 내밀어 속이려 들 거야.
콰아아아아!
황호의 손에서 뻗어 나온 황금색의 빛줄기가 복제된 청호의 육신으로 향했다.
가짜라는 걸 알지 못했다면 속을 만큼, 너무나도 똑같은 육신이었다.
그 빛줄기는 가짜 육신을 감싸던 얇은 결계를 순식간에 꿰뚫고 상의의 어깨 부분을 찢었다.
청호의 육신과 몹시 닮은 인형의 어깨에 WR이라는 표식이 작게 새겨져 있었다.
‘Knight of Water Reflection’, 물그림자의 기사가 인형에게 새기는 시그니쳐였다.
황호가 분노를 숨기지 않으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진짜를 준비하지 않으면 네놈들이 걸린 병은 영원히 낫지 않을 것이다.”